안녕, 여러분 에디터M이다. 오늘은 아주 귀하고 신박한 술을 가지고 왔다.
곧 다가올 명절, 간만에 만난 가족들끼리 모여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서로의 신변을 묻느니 차라리 시원하게 우리 술 한 번 깨고 시작하는건 어떨까? 오늘 소개할 술은 ‘퍽’하고 깨서 마시는 술이다.
배상면주가 고창LB 오매락 퍽 세레모니주. 거참 이름 한 번 길다. 와인을 배울 땐 라벨을 읽는 방법만 알아도 그 술에 대한 정보를 80%는 다 얻을 수 있다는데 전통주라고 뭐가 크게 다를까. 이름부터 찬찬히 뜯어보자.
- 배상면주가: 우리나라 최초로 사람의 이름을 딴 전통주기업이다. 이름 그대로 배상면 가(家)에서 빚어낸 술이란 뜻이다.
- 고창LB: 뒤에 붙은 LB는 ‘Local Brewery’의 약자로 산좋고 물맑은 전라북도 고창에서 지어진 브루어리를 말한다. 주변의 농가와 함께 손잡고 지역 특산물로 술을 빚어내고 있다.
- 오매락: 구운 매실이란 뜻의 오매와 예부터 소주를 말하던 아랍어 아락(Araq)에서 따와 오매락(烏梅樂)이 나왔다.
- 퍽세레모니주: 오매락 퍽은 토기를 깨뜨려서 마신다. 이 토기는 햇빛을 차단하고, 제품이 딱 좋을 정도로 산소호흡을 할 수 있게 돕는 숙성저장고 역할을 한다.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일단 토기를 깨부숴야한다. 함께 동봉돼 있는 나무 망치로 쾅쾅 내리쳐주자. 원래는 하얀 망이 씌워진 상태로 깨야 파편이 여기저기 튀는 일이 없다. 하지만 난 과격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니 과감하게 벗기고 망치질을 시작했다.
[와장창! 흩어진 파편을 주워담으며 엄청 후회했다…]
고운 자태의 토기를 인정사정없이 깬다. 유쾌한 퍽 소리와 함께 한 해의 나쁜 기억도 모두 씻겨져 나가길 바래본다.
[뚜껑을 따라 머리도 곱게 따서 내렸다]
붉은 토기를 깨고 나면 고급스럽고 우아한 오매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복을 차려입은 선비처럼 자태가 고고하다. 멋지게 쓰여있는 한자는 가슴속에 멋진 시 한수를 품고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도 구운 매실과 배를 품고 있으니 과한 상상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시음을 하기 전 먼저 안주부터 준비한다. 디에디트 사무실 최애템 필립스 에어프라이어에 피코크 막창을 구워낸다. 200도에 12분이면 기름은 쏙 빠지고 겉은 바삭 속은 촉촉 쫄깃한 막창을 맛볼 수 있다. 이 정도면 가게에서 왜 사먹나 싶을 정도다. 여러분 다들 에어프라이어에 막창을 구워드십쇼.
잔에 따르면 투명하지만 노란 액체가 나온다. 매실로 빚었다고해서 끈적이는 걸 상상했는데, 의외로 가볍다.
도수가 40도로 높기 때문에 알코올 향을 강렬하게 뿜어내지만, 그 기운을 받아들이고 맛을 음미해보자. 높은 도수에 비해 목넘김이 부드럽다. 강할 알코올이 안개처럼 걷히고 나면 소담하고 하얀 꽃잎처럼 매실의 향이 피어난다. 톡 쏘는 오크의 향도 느껴진다. 새침한 맛이 가시면 배의 뭉근한 단맛이 입안을 감돈다. 절대 과하지 않고 아주 뭉근하다.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는 그런 단맛이다. 아주 좋다 이 술.
높은 도수 덕분에 기름진 음식과도 궁합이 좋다. 이 말인 즉슨 명절 음식이나 전과 함께 마셔도 더할 나위 없다는 소리다.
스트레이트로 마셔도 훌륭하지만, 온더락으로 마시는 걸 추천한다. 강한 알콜의 맛을 조금 누그러뜨리면서도 모든 맛들이 한결 조화롭게 피어난다. 어딘지 좀 익숙한 맛이다 싶었는데, 맞다. 꼭 탄산을 뺀 하이볼 같다.
개인적으로 술을 넘기고 난 뒤 입안에 남는 맛이 좋은 술을 최고라고 평하는데, 오매락 퍽이 그렇다. 잘 익은 홍옥을 먹고 난 뒤 입안에 감도는 싱그러운 단맛이 돈다.
500ml 용량 한 병에 사 만원대 후반. 먹는 과정도 맛도 더할 나위 없는 술이었다. 다행인 것은 전통주는 인터넷 주문이 가능하다는 것. 아직 기회는 있다. 빠르게 주문해서 올 명절에 강인한 인상을 남겨 보시는 건 어떠신지. 재미있는 기회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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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