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여러분, 김리뷰다. 집에서 빵과 밥만 축내며 살아가던 어느 날, 디에디트 에디터H가 말했다. 글 안 쓸 거냐고. 난 쓰고 싶은데 마땅한 소재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다음 날 퀵서비스로 맥주를 보냈다. 치킨이랑 같이 먹고 리뷰를 해보라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아닌가, 싶었는데 치킨은 영수증 처리하면 페이백 해주겠단다. 난 순간적으로 몹시 기뻐서, 소스 추가해서 시켜도 되냐고 물었다. 에디터H는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거래가 성사됐다.
[김리뷰가 안찍은 치킨 사진]
맥주를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분류한다. 라거와 에일이다. 어떻게 구분하냐고? ‘향이 덜 하고 탄산이 강해서 목이 따가운 것’이 라거, ‘비교적 향이 세고 탄산이 적은 것’이 에일 이라는 게 내 구분 방법이다. 하면발효가 어떻고 상면발효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에디터M의 기사를 참고하도록 하고. 그런 얘기는 난 잘 모르겠다. 전문가가 아니라 일개 소비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맥주를 좋아하기는 한다.
다만 여러분이 알아두셔야 할 것은, 어떤 문화를 사랑하기 위해 꼭 전문가 흉내를 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디 맥주를 사랑하도록 태어났다. 잘 익은 곡식과 젖은 흙, 오래 구워낸 빵 냄새 같은 건 표현의 소재일 뿐, 코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김리뷰가 안찍은 사진, 이미지속 남자도 당연히 김리뷰가 아니다]
대중에게 에일의 존재가 널리 알려진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맥주라고 하면 체감 상 라거가 대부분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맥주는 좀 2인자 느낌이었다. 맥주는 취하기 전에 배가 부르니 애들이나 먹는 술이며, 소주야 말로 우리 민족 고유의 소울드링크라는 것이다. 소주의 강력한 아성, 그리고 사람들이 맥주에 대해 갖고 있었던 모종의 편견 같은 것들을 생각해보자면, 토종 브루어리가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을 만큼 성장한 오늘날의 맥주문화는 새삼 놀랍기도 하다.
[김리뷰가 안찍은 사진]
사실 터닝 포인트는 치킨이었다. 소주와 달리, 맥주는 치킨과 너무 잘 어울린다. 적당한 탄산이 고기의 맛을 돋궈주는 것은 물론이며 알싸한 보리향은 지방질이 주는 느끼함을 중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물론 치킨과 소주가 전혀 말이 안 되는 조합은 아니다. ‘치소’에도 매니아층이 있다. 그저 치맥에 비할 바는 아닐 뿐이다. 소주가 우리 민족 특유의 한, 고독함과 쓸쓸함을 극대화한다면, 맥주는 자유로움과 즐거움, 부담 없이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축제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월급날, 친구 혹은 가족과 모여 닭을 뜯는 이벤트에 맥주가 더 어울리는 이유다.
[김리뷰가 안찍은 사진, 덕분에 디에디트는 치맥파티]
아무튼,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집 앞 편의점에 가면 종류별로 구비된 수입산 맥주 네 캔을 만 원에 사마실 수 있을 만큼 맥주에 호의적인 세상이 됐다. 라거, 흑맥주는 물론이고 에일까지 쉽게 구할 수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치맥 전용 에일까지 출시됐다. 매혹적이고 달콤한 치킨 냄새, 토종 브루어리 ‘더 부스’에서 심혈을 기울여 뽑아낸 에일의 깊은 향. 이건 악마적 조합이다.
[김리뷰가 안찍은 사진, 호기롭게 제일 비싼 메뉴를 시킨 김리뷰]
나는 닭다리가 좋다. 그래서 BBQ 닭다리 반반을 주문했다. 그리고 ‘치믈리에일’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왠지 낯설지 않은 네이밍이다. 그렇다. 배달의 민족이다. 제조업을 향한 배민의 야욕이 이제는 맥주까지 다다르고만 것이다. 물론 직접 담근 건 아니고, 더 부스와의 콜라보로 출시된 제품이다.
사실 더 부스의 맥주는 여러 번 마셔봤다. 이미 유명한 대동강 페일에일은 물론이거니와 국민 IPA같은 것들은 꽤 많은 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타트업 관련 행사 같은 곳에서 프리드링크로 주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당연히 김리뷰가 안찍은 사진]
처음 마셨던 더 부스 맥주는 대동강 페일에일(지금은 검열당해서 대강 페일에일로 이름을 바꾼 모양)이었다. 가만히 앉아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대주의자고 국산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아주 낮은 사람이다. 그런데 에일 이름이 대동강이라니? 북한에서 만든 게 여기 있을 리는 없고, 그럼 국산이라는 얘기잖아. 적잖이 얕잡아보고 있었다. 얻어 마시는 게 아니었다면, 이런 국산 맥주는 입에 대지도 않았을 텐데, 뭐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별 기대감 없이 마시기 시작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난 그날 대동강물만 대여섯 병 마셨다. 국산 맥주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김리뷰가 안찍은 사진]
그렇다면 치믈리에일의 첫 인상은 어떤가. 솔직히 말해서 이름은 구리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좀 구린 것 같다. 딴에는 센스 있는 말장난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맥주는 장난이 아니고, 경험상 이름에 말장난을 해놓은 것들은 늘 퀄리티가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일단은 배가 고프고, 꼭 치킨이랑 같이 먹으라는 당부도 받았으므로 패기롭게 병뚜껑을 땄다.
[김리뷰가 찍은 사진]
단순한 탄산수와 훌륭한 맥주를 구분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은 무엇인가. 뭣보다도 향이다. 뚜껑을 따자마자 스멀스멀, 방 가운데로부터 진동하는 치킨 냄새를 가로질러 코로 달려오는 에일의 향. 나쁘지 않다. 좋다.
[김리뷰가 찍은 사진, 우리 모두 다함께 초점이란 걸 찾아보자]
닭다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우물우물 씹다가, 기름으로 입천장이 코팅될 쯤 에일을 때려 붓는다. 모름지기 병맥은 병나발이다.
[김리뷰가 안찍은 사진, 병맥도 잔에 따라마셔야 맛있다]
첫 맛은 에일로서 충실하다. 학생으로 치면 모범생이다. 쌉쌀한 홉이 나와 호흡한다. 코팅된 기름을 걷어내고, 빈 곳은 절묘한 청량감으로 채운다. 이게 바로 치맥에서 맥주가 해야 할 일이다. 입안을 점유하던 에일은 목구멍 뒤쪽으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시원한 느낌이 지나간 다음에는 과할 정도로 선명한 향이 남는다. 탄산과 함께 올라온 향을 코로 내뿜는다.
[김리뷰가 안찍은 사진, 김리뷰는 보아라 이것이 세팅이다]
과일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단 맛을 떠올리는 법이다. 사과, 복숭아, 배, 감, 포도, 딸기에 이르기까지, 당도가 높으면 더 맛있는 품종으로 취급되는 게 예사다. 그런데 맥주를 마시면서 느끼는 ‘과일향’은, 단 맛과는 사뭇 다르다. 맥주는 술이고, 술은 기본적으로 쓴 맛이다. 라거도 에일도 바탕은 독특한 쓴 맛에 있다. 과일이 주는 단 맛과는 명백한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맥주로부터 과일향을 찾아낸다. 어떤 사람은 과일의 종류까지 알아맞힌다. 맥주가 제공하는 과일향은 상당히 섬세하고 복합적이어서, 여간해선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근데 치믈리에일처럼 선명한 향이라면, 대강 시트러스 계열이겠거니 하는 추측은 가능하다. 향이 강하긴 하지만 첫 맛부터 강렬하지는 않다. 치킨의 맛은 손상되지 않고, 목으로 모든 게 넘어간 뒤에는 그윽한 흔적이 남는다.
[김리뷰가 안찍은 사진, BBQ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더라]
향이 워낙 강해 양념치킨과도 잘 어울린다. 라거에 비해 강하지 않은 탄산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소스와 부딪히지 않고 자연스러운 맛을 유지한다. 다만 간장 및 오리엔탈 소스나 매운맛 소스와는 매치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치킨으로부터 기대한 자극이 맥주의 향에 묻히거나 변질될 우려가 있다. 그래도, 당장은 좋다. 좋았다.
[김리뷰가 안찍은 사진, 이제 딱히 더 할 말이 없다]
흠… 그냥 치맥 먹는 건데 너무 거창한 것 아닌가?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하루 더 아름다운 삶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이고, 맛있는 걸 먹고 마시며 입을 즐겁게 만드는 일은 실로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다 먹고 요약해서 결론을 내자면, 치믈리에일과 함께한 치맥타임은 졸라 행복했다는 것뿐이다. 한 문장으로 끝날 것을 더 거창하게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글쎄, 글 쓰는 사람의 일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는 것밖엔 변명거리가 없다. 그저 이 글을 읽으면서 치킨과 맥주가 꽤 땡기는 상태가 됐다면 훌륭한 마무리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