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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의 세계

주말 내내 앓았다. 몸져 누운 것은 아니고, 그냥 골골댔다는 표현이 맞겠다. 양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 엄마가 해준 홍합탕을 거칠게 들이키며...
주말 내내 앓았다. 몸져 누운 것은 아니고, 그냥 골골댔다는 표현이 맞겠다. 양…

2017. 12. 14

주말 내내 앓았다. 몸져 누운 것은 아니고, 그냥 골골댔다는 표현이 맞겠다. 양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 엄마가 해준 홍합탕을 거칠게 들이키며 모니터 앞을 떠나지 않았다. 병원 가긴 머쓱할 만큼만 아픈 현대인의 몸살엔 어떤 약을 처방받아야 할까? 그래. 바로 넷플릭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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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한국 서비스를 시작함과 동시에 프리미엄 멤버십에 가입했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 넷플릭스 오리지널 ‘하오카(하우스 오브 카드)’로 입문했다. 꽤 재밌었지만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길모어 걸스> <슈츠>같은 익숙한 미드가 있길래 슬그머니 재탕도 시도해봤다. 한 바퀴 돌고 나니 영 볼 게 없더라. 그나마 등록된 드라마도 최신 시즌이 업데이트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영화 쪽은 더 심했다. 볼 게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삼류 에로 영화처럼 굴림체와 바탕체로 휘갈긴 포스터 디자인은 공포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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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돈을 내고 있으니 주기적으로 접속해서 근황을 살폈다. 콘텐츠는 늘어갔지만 내 취향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다, 버리고, 보다, 버리고. 이 과정을 지속하다 보니 점점 한 시즌을 완주하는 비중이 늘어갔다. 그러다 몇 편이 내 인생 미드로 등극하는 일까지 생기고 말았다. <13 Reasons why> 라든지… 이것은 미친 띵작. 아, 정신을 차리니 넷플릭스가 내 주말을 지배하고 있었다. 맙소사. 나는 자본의 무시무시한 힘 앞에 맥없이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어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재밌었는지 읊는 게 흐름에 맞겠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루자. 오늘은 좀 다른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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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처럼 자기 전에 누워 나의 브랜뉴 아이폰X으로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뭔가 기묘하다. 이것이 OLED의 맛인가? 뭐랄까. 화면이 훨씬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빨려들 것 같다. 앱등이는 생각했다. “여윽시! 아이폰이다!” 하지만 비밀은 돌비였다. 돌비가 뭐냐고? 마치 인텔 로고처럼 여기저기 붙어있는 그것. DOLBY! 왜, 영화관에 가도 ‘돌비 애트모스 관’ 이런게 있지 않나.

돌비라는 회사를 뭐라고 설명해야 쉽게 와닿을까? 영상과 음향을 보고 듣는 ‘맛’을 살리기 위해 여러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라고 소개하면 될까. 영화관은 물론 TV나 모바일 기기에서 더 근사한 화면과 오디오를 구현하는 게 이들의 목표다. 실제로 굉장히 많은 제조사와 협업해 기술을 흩뿌리고 있다.

사실,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니 돌비 비전이니 분주하게 떠들어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 영상이 생동감이 넘친다는 둥 사운드가 실감 난다는 둥 말해봤자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사용자 입장에서야 돌비든 둘리든 나 쓰기에 좋으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오늘은 모처럼 내가 친절한 마음을 먹었으니, 새로운 기술이 우리를 얼마나 즐겁게 하는지 슬쩍 알아보자. 사람이라는 게 단순해서 이 기술이 어떤 원리인지 알고 나면, 괜히 더 신경이 쓰이는 법이다. 그때부터 사운드는 더 입체적으로 귓가에 울리고 화면은 더 선명하게 느껴지게 된다. 진짜다. 알고 나면 더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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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돌비 애트모스!

이건 사운드에 대한 기술이다. 지난 2012년에 영화관에 처음 적용됐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사운드가 좋아진다는 건 “실제로 그 소리가 내 옆에서 나는 것 같다”는 경험을 말한다. 돌비 애트모스는 상하좌우는 물론 머리 위에도 독립된 스피커 채널을 추가해 360도 서라운드 사운드를 구현한다. 심지어 영상에서 나오는 각각의 사물에 독립적인 음향 정보를 부여할 수 있다. 만일 작은 상자에서 소리가 들리는 장면이라면, 시청자는 정말 그 소리가 상자 안에서 시작되는 것 같은 청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영화는 실제가 아니라 가짜다. 화면과 소리가 분리되어 있다. 그런데 그 소리에 눈으로 보는 공간감이 그대로 표현돼 있다면, 시청자는 더욱 스토리에 몰입하게 될 것이다. 가상의 경험에 정교한 기술을 덧입히다 보면, 그 경험은 진짜에 가까워진다. 소리가 유독 그렇다.

더 재밌는 건 수십 개의 스피커가 설치된 영화관이 아니라 손바닥 만한 모바일 기기에서도 돌비 애트모스를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지원 기기가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도 거의 팔리지 않은 기기가 대부분이라 아직은 유니콘 같은 존재다. 이 드라마틱한 사운드 기술이 하루빨리 아이폰에도 적용될 날을 기대해보는 중.

아이폰X에서 지원하는 것은 돌비 비전이다. 사실은 아이폰8 시리즈와 애플TV 4K, LG OLED TV, LG G6도 돌비 비전을 지원한다. 어쩌면 내가 이 변화를 아이폰X에서만 느낀 이유에는 플라시보가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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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다면 돌비 비전은 무엇일까?

돌비 비전은 화면을 더 생동감 있게 만드는 HDR 솔루션이다. 영상 원본이 담고 있는 명암비와 컬러를 그대로 표현해준다. 음. 말이야 쉽지, 이렇게 설명해서 “아!! 이런 게 바로 돌비 비전이구나!”라고 알아듣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직접 보면서 확인해보자.

DSC03650[위: 아이폰7 / 아래: 아이폰8 플러스]

우리 사무실에선 이미 구형폰이 되어버린 에디터M의 아이폰7과 나의 아이폰8 플러스로 넷플릭스에서 같은 콘텐츠를 재생해 보았다. 지난 11월에 공개된 <마블 퍼니셔>다. 돌비 비전 HDR은 물론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까지 지원한다. 솔직히 내 취향의 드라마는 아닌데, 좋은 샘플인 것 같아서 15분 정도 감상해보았다.

처음엔 에디터M이 “아이폰7으로 보는 게 훨씬 좋아보이는데?”라며 자기방어를 한다. 쟤는 꼭 저런다. 3분이 넘어가니 두 화면의 차이가 보인다. 같은 장면에서도 돌비 비전을 지원하는 아이폰8의 화면이 더 어두워 보인다. 아니, 더 어둡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어두운 곳만 더 어둡게 표현한다. 명암비가 뛰어나다는 얘기다. 아이폰7에서 짙은 회색빛 그림자가 드리웠다면, 아이폰8 플러스에서는 새까만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러나 디테일은 아이폰8 플러스에서 훨씬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하늘이나 구름의 컬러도 더 풍성하게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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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위의 장면에서는 옷 소재의 질감 표현이 두드러지게 다른 걸 확인할 수 있다. 인물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에서는  실물을 보는 것처럼 주름이나 땀방울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뿌옇게 보이던 디지털 세계의 렌즈를 깨끗이 닦아 눈 앞에 씌워준 것 같은 느낌. 아, 이것이 돌비 비전이란 말인가. 아이폰X에서 볼 때는 이런 특징이 더 드라마틱하게 드러난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듯 비교해보는 게 참 재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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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이를 깨달은 뒤로는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새로 오픈할 때마다, 제목 밑에 귀여운 ‘돌비 비전’ 로고가 있는지 확인하곤 한다. 참고로 돌비 비전을 지원하지 않는 기기에서는 이 로고가 표시되지 않는다. 에디터M이 왜 내 폰에는 표시되지 않는 거냐며, 얘네(넷플릭스)가 내가 무슨 폰을 쓰는지도 엿보는 거냐고, 생활 침해가 아니냐며 악을 쓰고 있다. 다 내 잘못이고 업보다.

자, 이제 돌비 비전을 지원하는 넷플릭스 콘텐츠를 한번 훑어보자. <마인드 헌터>, <마블 퍼니셔>, <기묘한 이야기 시즌2>, <다이너스티>, <산타클라리타 다이어트>, <마르코 폴로>, <걸보스> 그리고 애니메이션 <블레임> 등이 돌비 비전을 지원한다. 내 취향의 드라마는 기묘한 이야기와 걸보스, 다이너스티 정도. <다이너스티>는 1%의 1%라는 이상한 부제의 막장 드라마인데 가쉽걸보다 연령대가 좀 더 높은 소프 오페라다. 킬링 타임용으로 나쁘지 않다. 그리고 돌비 비전의 생생함을 즐기로 싶다면 드라마도 좋지만, <블레임>이라는 애니메이션의 화면 몰입도가 상당하다. 이 기사 빨리 마무리하고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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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가 놀랍다. 모바일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도 그렇고. 더 놀라운 건 모두가 손바닥 만한 모바일 화면에 빠져 안일하게 생각할 때, 넷플릭스는 그 이상의 화면도 포용할 수 있는 퀄리티를 예비하고 있었다는 것도 놀랍다. 화면이 더 아름다워지고, 소리가 더 풍성해지는 것. 누군가는 이까짓게 뭐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눈치채고 나면 이 작은 차이를 포기할 수 없다.

자, 오늘은 이렇게 새로 산 아이폰X 뽕에 맞아 설명충이 되어 보았다. 넷플릭스에서 돌비 비전을 체험할 수 있는 기기를 쓰는 분들은 한번 느껴보시길.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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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