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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즈 앳 청담

디에디트 회식 날. 매일 사무실에 갇혀 살던 세명의 여자가 멋스럽게 차려입고 밤마실을 갔다. 에디터H가 소싯적 좀 놀았다는 압구정 로데오로. 왜...
디에디트 회식 날. 매일 사무실에 갇혀 살던 세명의 여자가 멋스럽게 차려입고 밤마실을…

2017. 11. 16

디에디트 회식 날. 매일 사무실에 갇혀 살던 세명의 여자가 멋스럽게 차려입고 밤마실을 갔다. 에디터H가 소싯적 좀 놀았다는 압구정 로데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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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청담이냐고? 지금 포잉과 함께 청담동의 13개 바가 힘을 합쳐 2017 칵테일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거든. 11월 22일(수)까지 시그니처 칵테일을 60%나 할인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고 하니 회식비도 아끼고 좋은 기회였다. 그동안 앨리스, 르 챔버, 셜록 등 청담의 핫한 바를 가보고 싶었지만, 얇은 지갑 사정 때문에 섣불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꽤 근사한 기회다.

이렇게 쓰니까 굉장히 광고처럼 보이는데, 사실 취재로 갔던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챙기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은 모두 아이폰8으로 찍었다. 원래 바는 하나같이 조명이 어둡기 마련인데 저조도에서도 꽤 근사한 결과물을 만든 아이폰8에 치얼스. 이렇게 썼더니 이번엔 아이폰8 광고처럼 보이는데 이 역시 아니다.


시작은 얌전하게 1차. Lupin

요즘은 바들은 하나같이 입구를 어찌나 잘 감춰두는지. 호기롭게 앞장섰던 루팡에서도 그랬다. 주소는 분명 맞는 것 같은데 문이 보이질 않는다. 막혀있는 벽 앞에서 짐짓 침착한 척하던 두 언니를 제치고 막내가 방법을 찾아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구체적인 방법은 공개하지 않겠다. 여러분이 직접 루팡을 잡는 형사의 마음이 되어 찾아보시길.

이렇게 꽁꽁 숨어있는 바를 스피크 이지(Speak easy) 라고 한다. 미국 금주법 시대에 단속을 피해 입구를 감춰두었던 스타일을 계승한 것이다. 혼란스럽지만 나쁘지 않다. 어떤 비밀스러운 공간에 초대받은 기분. 자, 이제 본격적으로 달려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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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펄
    막내의 선택.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좋아한단다. 병안에 유리로 만든 배가 들어있는 멋스러운 병에 넣어 서빙된다. 조니워커 블랙 레이블을 베이스로 가죽향을 인퓨징했다. 터프한 맛 사이로 오렌지와 달콤한 맛이 은은하게 깔린다. 아주 진중한 사람과 오랜 시간동안 눈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것 같은 칵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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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이지리타
    마가리타를 변형한 칵테일. 돈훌리오 테킬라 베이스에 파인애플과 세이지 그리고 오렌지 향을 더했다. 은은하게 나는 세이지의 향 덕분에 쨍한 맛이 나면서도 마가리타 특유의 청량한 매력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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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팡 체포되다
    루팡의 시그니처 칵테일. 소설 아르센 루팡의 첫 번째 에피소드 <루팡 체포되다>에서 영감을 받았다. 루팡이 감옥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장면을 칵테일로 만들었다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곳에서 마술처럼 칵테일이 등장하는데 아이돌의 컴백 무대를 보는 것처럼 입을 떡 벌리고 봤다. 맛 또한 신비롭다. 진한 카카오크림 안에 팡팡 터지는 레몬그라스의 반전이 매력.

쾌활했던 2차. Mr. Children

“가자 2차로!”

꼭꼭 숨어있는 입구가 무색할 정도로 루팡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오네?” “헤이!” 드나드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바텐더와 친해 보이더라. 괜히 머쓱해져서 2차를 가기로 했다. 루팡 바로 옆에 위치한 미스터 칠드런. 루팡에서 일하던 바텐더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미스터 칠드런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루팡이 낮은 천장 어두운 조명 아래 사람들이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라면, 미스터 칠드런은 좀 더 캐주얼하다. 시원하게 뻗은 천장, 활발한 바텐더 덕분에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다. 하하호호. 취기가 오른 세 여자는 제법 큰소리로 웃고 떠들며 잔을 기울였다. 그게 바의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술기운 덕분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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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깨비
    시작부터 강렬한 불쇼. 두개의 쉐이커 사이를 위태롭게 줄타기 하는 푸른 불꽃을 보고 세 여자가 물개 박수를 쳤다. 이 칵테일의 이름은 도깨비. 설마 했는데 맞다. 한반도를 휩쓸었던 드라마 도깨비를 보고 영감을 받았단다. 불을 붙여 알코올을 많이 날아갔지만, 향을 가둬두는 코냑잔에 서빙이 되기 때문에 알코올의 향을 코를 찌른다. 시나몬 스틱을 태운 연기와 따듯하게 데운 위스키는 겨울과 퍽 잘 어울리는 맛이다. 향은 강해도 도수는 낮다.  딱 나를 위한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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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낫 얼론
    혼자 마셔도 둘이 같이 마실 수 있는 것 같은 칵테일. 헐벗은 남녀 피규어가 잔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나온다. 위에 올라간 거품이 꽤 성긴 것처럼 보였는데 신기하게 칵테일을 마시는 내내 꺼지지 않고 단단하게 유지되더라. 향긋한 크림슨 펀치 티 향을 입혀서 새콤하면서도 꽃향기가 난다. 막내 에디터는 러쉬가 생각나는 맛이라더라. 싱그러운 거품 목욕을 하고 난 뒤 같은 청량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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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이 말론
    이름과 비주얼을 보고 눈치를 챈 사람이 있을 거라 믿는다.  조 말론 디퓨저와 똑 닮은 병에 청포도로 만든 세계 최초 프랑스 보드카인 시락을 베이스로 하고, 라임과 바질 그리고 만다린 향을 입혔다. 모양도 맛도 조 말론의 라임 바질 앤 만다린과 상당히 흡사하다. 직접 발품을 팔아 병과 케이스 그리고 향기 노트까지 재현한 바텐더의 장인정신에 박수를 짝짝짝.

대망의 3차. Mixology

이제 3차다! 근처에 에디터H가 아는바가 있다고 했다. 무려 6년 전에 종종 들렀다는데. 강산이 절반 정도 변할만한 시간에 찾은 믹솔로지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되었다. 음 이곳의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믹솔로지는 루팡과 미스터 칠드런의 장점을 딱 반반씩 섞어놓은 듯한 곳이다. 18세기 살롱 같은 분위기와 달리 명치를 때리는 신나는 음악, 쾌활한 바텐더와 손님들이 어우러져있다.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요소들이 묘하게 잘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었다. 어쩌면 발갛게 상기된 우리 세 여자가 잔뜩 취기가 올라서 그렇게 느껴졌을 지도. 사실 믹솔로지부터는 정확한 기억이라기보다는 어렴풋한 이미지만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더듬더듬 기억을 되짚어 보자. 내가 마신 그게 무슨 맛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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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로렌스 로얄
    우아한 이름과 상큼해 보이는 모습에 속지 말자. 증류주인 진과 발효주인 샴페인이 하나의 잔 안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아주아주아주 위험한 칵테일이다. 라즈베리와 샴페인의 향긋한 덕분에 마음을 놓았다간 취기가 한꺼번에 오를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이건 작업주다. 우아한 맛의 칵테일이다. 특히 샴페인이라면 환장을 하는 에디터H가 아주 흡족해하며 쪽쪽 빨아 마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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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질 앤 레몬그라스
    이름이 다했다. 바질과 레몬그라스가 만나 상큼함이 폭발한다. 얼마 전에 태국에 다녀온 나는 그리운 그곳 태국의 향수를 느꼈고, 레몬그라스의 향에 익숙하지 않은 나머지는 드레싱 맛이 나는 칵테일이라고 했다. 같은 잔을 두고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다양한 재료들이 맛의 집을 짓는 칵테일의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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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리비안 타르트
    고급 럼으로 알려진 자카파 럼을 베이스로 계란 흰자 거품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설탕을 살짝 그을린 칵테일이다. 토치를 가지고 눈앞에서 카라멜라이징을 할 땐 파이를 굽는 듯한 달콤한 향기가 식욕을 자극한다. 그런데 막상 마시면 혀를 조여오는 새금한 맛 때문에 깜짝 놀란다. 칵테일은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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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마신 세여자는 취했다. 시작은 럭셔리했으나 그 끝은 초라하리라. 자정에 가까운 시간 근처 족발집에서 해물떡볶이(?)와 피츠를 마시며 회식의 성대한 막을 내렸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