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맥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 요즘. 멍때리기 좋은 계절이다. 무엇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복합적인...
아침 저녁으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 요즘. 멍때리기 좋은 계절이다. 무엇도 할 수…

2017. 10. 27

아침 저녁으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 요즘. 멍때리기 좋은 계절이다. 무엇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복합적인 감상에 젖는다.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차, 커피 그리고 맥주다. 안주는 귀찮다. 그냥 홀짝 홀짝 마실 수 있으면 그걸로 완벽하다. 뜬금없는 전개지만, 내 기분이 좀 그러하니 오늘은 맥주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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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엔 항상 네 권 정도의 맥주 관련 책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틈틈이 사모으고 때때로 공부하듯 읽은 책들이다. 즐기는 것과 많이 아는 건 조금 다른 문제다. 맥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도 즐겁게 마실 수 있다. 어느 밤의 치맥, 오랜 친구와의 편맥, 남의 돈으로 마시는 공짜 맥주까지 맥주는 나의 친구. 싸고 쉽게 마실 수 있는 술. 사실 맥주는 그리 어려운 술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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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범람하는 이 맥주의 시대에 알면 더 잘 마실 수 있다고 믿는다. 난 시간이 나면 영화를 본다. 영화의 경우 아무리 재미있어도 그 영화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상영이 끝나길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입으로 들어가는 건, 마주 앉은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눈썹을 치켜 올린 채 돌고래 소리를 지르며 즉시 기뻐할 수 있다. 지금 마시고 있는 이 맥주가 나의 혀를 얼마나 현란하게 농락하고 있는지. 혹은 ‘이 맥주가 말이야…’로 시작되는 쓸데없는 잡학다식은 아주 훌륭한 안줏거리이자 반찬이 된다. 술에 대해 더 잘 알면 술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다. 또한 질감과 몇 가지 맛이 빠진 술의 경우 일반 사람이 그 맛의 미묘함을 모두 캐치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냥 말하고 즐기자.

아주아주 긴 서론이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그래서 결론은 이거. 오늘은 맥주에 대한 기본 상식을 정리해봤다. 만약 내가 맥주에 대해좀 빠삭하다 하시는 분은 그냥 스킵하셔도 좋다. 하지만, 에디터H처럼 맥주만 많이 마셨지 맥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면 차근차근 읽어주시면 도움이 될 거다.


“맥주는 뭘로 만들어요?”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가지 요소가 캡틴 플래닛의 핵심이라면 맥주에도 4가지 기본 재료가 있다. 바로 보리(맥아), 홉, 효모(이스트), 물이다.

1.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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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용어의 문제다. 기본은 보리. 영어로 몰트. 한자로 맥아(麥芽)라고 한다. 보리를 이렇게 어렵게 쓰는 이유는 보리에 싹을 틔워 더 이상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 뜨거운 바람으로 건조시키는 과정을 더하기 때문이다.

2. 홉(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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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초록색 솔방울처럼 생긴 식물의 열매다. 솔직히 나도 생홉은 사진으로만 봤다. 맥주의 쓴맛을 담당하고 있으며 맥주가 상하지 않도록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한다. 쓰고 깐깐한 녀석이다.

3. 효모(이스트y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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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이다. 발효는 다 이 눈으로 보이지 않는 미생물 덕분이다. 효모는 먹기 좋은 상태가 된 맥아를 와구와구 먹고 탄산과 알코올을 뱉어낸다. 맥주가 방탕해진데는 다양한 향과 맛을 내는건 효모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4.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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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거와 에일은 뭐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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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설명을 위해 라거와 에일이라는 대표적인 맥주로 이야기 하긴 했지만 사실 상면발효와 하면발효 맥주로 나누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상면발효가 에일, 하면발효가 라거다.

photo-1489984744982-7aa2b481c1da[흠. 에일 라거 그런게 중요한가? 맛있으면 장땡 음뇸뇸]

이 둘의 차이는 효모의 성질과 관계있다. 상면발효(다음부턴 그냥 에일로 통칭하겠다)는 발효되는 효모가 상면(上面) 그러니까 위쪽에 둥둥 떠있다는 소리다. 에일의 경우 발효 시간도 짧고 또 상하기도 잘 상한다. 위쪽에 효모가 둥둥 떠있으니 색이 탁하고 시간이 지나면 침전물도 생긴다. 맛은 씁쓸하고 과일, 꽃 등 세상의 모든 풍미가 이 에일에 있다.

반면, 라거는 고작 19세기나 되서 등장한 희대의 발명품이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과거에 맥주는 다 에일이었고, 라거는 에일에 비하면 한참 어린 ‘뉴본 베이비’란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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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거는 에일보다 조금 더 낮은 온도에서 조금 더 긴 시간 발효시킨다. 과거엔 냉장시설이 없었으니까 독일의 양조 업자들은 알프스 산맥의 깊은 동굴에서 라거를 발효하곤 했다. 효모가 바닥에 가라 앉으니 맑고 투명하며 청량한 맛이 난다. 에디터H의 표현을 빌리자면 ‘캬~!!’하는 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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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탁한 에일만 마시던 옛날 사람들에게 투명하고 맑은 라거는 신문물이요 참으로 귀족적인 술이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신흥세력 라거가 지금은 맥주 시장의 80%를 차지하고있지만, 다시 크래프트 비어의 유행으로 다시 에일의 시대가 오고 있다. 하지만, 에일과 라거에 옳고 그름은 없다. 무엇을 마실지는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 자기가 좋아하는 걸 마시면 그만이다.


“그래서 지금 이게 라거라고 에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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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라거와 에일에 대한 큰 개념은 잡혔을 테니 가지를 치고 뻗어나가보자. 라거는 몸집만 크지 실속은 없다. 원래 깨끗한 맛이라는 게 맛의 아주 미묘한 차이로 승부를 봐야하는데, 그렇게 만들어봤자 일반 소비자들에게 와닿기가 힘든 법이다. 그래서 라거를 만들고 있는 수많은 대기업들은 맛보다는 마케팅에 더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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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편의점에서 어떤 맥주를 집었는데 브랜드명 말고는 별 말이 적혀있지 않다? 그럼 그 맥주는 라거란 뜻이다. 눈을 감고 아무거나 집어보자. 맥주 시장의 80%가 라거니 그 캔이 라거일 확률이 80% 정도 되겠다.

라거에는 카스, 하이트, 양꼬치엔 칭타오, 코로나, 하이네켄, 버드와이저 등등 아주 친근하고 익숙한 브랜드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페일 라거가 있다. 여기서 페일은 창백한 흐릿한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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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체코에서 만들어진 라거를 뜻하는 필스너가 있다. 조금 더 노오란 빛을 띠고 씁쓸하며 페일 라거보다는 약간의 풍미가 있는 편이다.

자 그리고 나머지 종류는 거의 다 에일이다. 흔히 흑맥주라고 하는 스타우트? 에일이다. 호가든, 블랑 같은 밀맥주 독일어로 바이젠? 에일이다. IPA? 에일이지롱. 라거와 필스너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높은 온도에서 빠르게 발효하는 탁하고 진한 맛의 에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쉽다 쉬워.


“요즘 힙스터는 IPA를 마신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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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A는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필요하다. 쓴맛은 원래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피하는 맛이다. 그런데 말이지 그래서 쓴맛은 본능이 아니라 사회의 맛이며 한 번 빠지면 오히려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한마디로 인생의 쓴맛 좀 본 어른의 취향이라고나 할까.

그래 맞다. IPA는 쓰고 도수도 높다. 그런데 이 맥주가 탄생된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 좋은 안주거리가 될테니. IPA는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의 줄인말이다. 직역하면 인도의 페일 에일 정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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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인도에 파견갔던 영국인들은 고향의 맛, 에일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본국 영국에서 인도로 에일을 수입하기로 한다. 그런데 웬걸. 몇달을 걸려 배안에서 뜨거운 태양과 비에 노출된 에일은 폭삭 다 상해버렸다. 하지만, 먼 뱃길도 뜨거운 대서양도 인도양도 술을 마시고자 한 인간의 집념을 꺾진 못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상하는 맥주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던 영국인들은 방부제 역할을 하는 홉을 엄청 때려넣고, 알코올 도수를 확 올린 맥주를 배에 실어 보낸다. 저 먼 타국에서도 고향의 술맛을 느끼고자 한 영국인들의 집념으로 탄생한 맥주가 바로 인디아 페일 에일이다.


심화문제:
“하이네켄 다크와 기네스의 차이점을 기술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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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기출자는 결론을 앞에 말해주는 걸 좋아한다.  정답은 하이네켄 다크는 라거. 기네스는 에일이다. 자 내 기사를 차분하게 읽었다면 이제 차이를 알겠지. 하이네켄은 하면발효, 기네스는 상면발효를 했다는 거다.

근데, 둘다 검은데?
맛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매처럼 흡사하다고.

그 유사점은 바로 보리(맥아)에서 나온다. 왜 커피에서 콩을 얼마나 볶느냐로 다크/라이트 로스팅이 나뉘는 것처럼 싹을 틔운 보리를 얼마나 오랜시간 어떤 온도로 건조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맥아를 뜨거운 바람으로 오래 건조시키면, 맥주의 색이 검고 어두워진다. 또한 맥주는 달콤한 캐러맬의 맛과 향이 더해진다. 이 맥아에 상면발효할 효모를 넣을 건지 하면발효를 넣을 건지에 따라 기네스와 다크 라거가 나올지가 결정된다는 말씀.

위에 설명한 것처럼 스타우트의 경우 에일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 받아 맛이 강하고 묵직하고 향이 많은 편이고. 하이네켄 다크의 경우 라거를 안에 품었으니 다크지만 여전히 가볍고 청량하다.

어쩐지 쓰고보니 주절주절 설명이 길어진 것 같다. 맨날 머리 위에 물음표만 한가득 띄우고, 진행을 방해하는 질문충 역할만 하다 설명충이 되려니 사뭇 어색하다. 설명하는 나는 흥겨웠는데 어떻게 여러분도 재미있게 읽으셨길 빈다. 반응이 좋으면 더 풀어보겠다. 궁금한게 있으시면 댓글 남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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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