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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날에 만나, 스튜디오3

공돌이는 촌스러울 거야, 패션업계의 여자는 사치스러워. 우리는 특정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에 빠지곤 한다. 제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유가 아닌 이상 오버...
공돌이는 촌스러울 거야, 패션업계의 여자는 사치스러워. 우리는 특정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에…

2017. 10. 23

공돌이는 촌스러울 거야, 패션업계의 여자는 사치스러워. 우리는 특정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에 빠지곤 한다. 제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유가 아닌 이상 오버 이어 헤드셋을 끼고 다니는 건 어쩐지 긱(GEEK)스러운 일이고, 혼자만의 세상에 푹 빠진 덕후로 보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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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테크 브랜드가 스타일리시해 보였던 순간이 있다. 수 년 전 격한 유행을 맞이했던 비츠 바이 닥터드레 말이다. 오디오 좀 안다는 이들이 “비츠는 저음이 너무 튀어”라며 훈수를 둬도 내겐 들리지 않았다. 숱한 패션 화보에도 얼굴을 올리는 ‘b’로고의 헤드폰이 그렇게 근사해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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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츠 바이 닥터드레의 신제품 ‘스튜디오3 와이어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에디터H가 직접 써보고 체험하고, 신제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왔다. 누구한테? 비츠의 CEO인 루크 우드로부터 직접. 꺄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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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리란 원래 Small Talk로 시작하기 마련인데, 친절한 루크 우드님이 케이팝 스타에 대한 화제로 말문을 연다. 엑소의 멤버 누군가를 만났다는데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 BTS(방탄소년단) 이야기를 꺼내도 꿀 먹은 벙어리. 한국인이라면 모두 엑소와 방탄소년단에 빠삭할 것이라 생각했을 텐데, 남자 아이돌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나는 식은땀만 흘린다. 마지막으로 그가 지드래곤을 언급했을 때 가까스로 미소 지으며 대답할 수 있었다. “흐흐. 권지용은 알아요. 자, 이제 제품 얘기로 들어가는 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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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스튜디오2와 신제품인 스튜디오3 사이에서 디자인의 차이를 찾긴 어렵다. 디자인에 집착하는 나는 이 점이 조금 의아했다. 헤드폰은 사운드를 전달하는 도구이며, 현재의 디자인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리한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 디자인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바뀌었다는 설명을 들으며, 어쩐지 ‘애플스러운’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한 식구(?)일까.

실제로 비츠가 애플에 인수된 이후로 많은 긍정적 시너지가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애플의 W1 칩이다. 내가 현재 사용 중인 에어팟에도 W1 칩이 들어가 있다. W1은 iOS 애플 기기 간의 물 흐르는 듯한 연결을 가능하게 해줌은 물론, 인내심 있는 배터리 시간을 안겨준다. 배터리! 오늘의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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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전자기기에 기능을 추가하거나 성능 향상을 도모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되는 문제가 무엇일까? 하나는 ‘휴대성’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배터리’일 것이다. 부품이 추가되어 크기나 무게가 늘어나는 것도 곤란하고, 더 강력해지는 바람에 배터리 시간이 짧아지는 것도 몹시 곤란하다.

신제품의 가장 큰 변화는 노이즈 캔슬링이다. Pure ANC(Adaptive Noise Canceling)이라는 기술을 적용했는데, 이 개념이 아주 재밌다. 사용자 주변의 청취 환경을 지속적으로 파악해서 상황에 맞게 소음을 차단해준다는 뜻이다. 내가 굳이 ‘보이스 모드’나 ‘비행기 모드’ 등의 메뉴를 선택하지 않아도, 제가 알아서 “아 여긴 비행기인가보다 엔진 소음을 차단해보잣!”, “아, 바람이 불고 있군 이 소리를 없애보자!”이렇게 행동한다는 얘기. 사용자의 조작을 최소화하고 알아서 판단하는 것 역시 대단히 애플스러운 사용자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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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 우드가 직접 그림까지 그려가며 Pure ANC 기술을 설명해줬는데, 내가 좀 더 쉽게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이 헤드셋은 내가 장소를 이동하거나, 주변 소음이 달라질 때마다 그걸 파악해서 최적의 노이즈캔슬링을 제공한다. 아주 솜씨 좋은 웨이트리스 같은 존재다. 손님이 수저를 떨어트리면 즉시 새 수저를 가져오고, 햇볕이 너무 세다 싶으면 블라인드를 내려주고, 물잔이 비기 전에 시원한 물을 가득 따라준다. 어떻게 이런 서비스가 가능할까? 계속해서 손님의 행동과 표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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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3도 마찬가지다. 외부에 달린 2개의 마이크는 실시간으로 주변 소음을 파악해서 감소시키고, 안에 있는 또 다른 2개의 마이크는 사용자가 실제 듣는 소리를 파악해서 소음을 감소시킨다. 말로 하면 쉽지만 실제로는 실시간으로 엄청난 작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외부 소음을 분석하고, 사용자가 듣는 소리를 원음과 비교해 조정하고, 헤드셋의 밀착 상태나 머리 움직임 등의 요소를 분석한다. 이를 반영해 초당 5만 회의 pure ANC 실시간 오디오 보정이 이루어진다. 말만 들어도 배터리 닳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굉장히 다이내믹한 노이즈 캔슬링이다. W1 칩을 통해 충분한 배터리 효율을 때문에 이런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 초당 5만 회의 오디오 보정을 하면서도 최대 22시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배터리엔 입을 떡 벌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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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저 노이즈 캔슬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고? 안 그래도 현장에서 체험해보고 왔다. 내가 워낙 막귀라서 느끼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스튜디오3를 착용하고 앉아서, 애플뮤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갑자기 강력한 보네이도 선풍기를 얼굴에 정면으로 틀어준다. 눈이 시리다. 그날따라 머리를 묶지 않아서, 바람 때문에 이어쿠션에 머리카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타닥, 타닥…하는 머리카락 소리와 부웅 거리는 바람소리가 음악 소리에 섞여서 들린다. 이게 노이즈 캔슬링이라고? 뭐 이래? 근데 딱 5초? 6초쯤 지났을까? 귓가에 울리던 머리카락 소리가 사라졌다. 바람소리도. 실시간으로 소음 환경에 맞춰 오디오 보정이 이뤄진 것. 헤드셋을 벗으며 “헐, 신기해요!’라고 하니 비츠 관계자가 빙그레 웃는다.

이번 자리는 사실, 무지한 내가 비츠 브랜드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 나는 이들이 쿨하고 스타일리시한 것을 일부러 좇는 브랜드라고 생각했다. 패셔너블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몹시 애를 쓰고 있을 것이라 단정했다. 하지만 루크 우드는 거듭 “우리는 오직 음악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라며, “우리는 신생회사고, 막 시작한 밴드와 비슷하다. 처음엔 열정만으로 음반을 만들었다면, 세 번째 음반부터 정말 좋아진다고 믿는다. 우리의 핵심은 우수한 사운드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 세 번째 음반은 아마 스튜디오3를 의미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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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유명인사와의 인터뷰 같은 자리는 좋아하지 않지만, 꽤 즐거운 대화였다. 마지막 질문을 할 타이밍엔 진짜 궁금했던 걸 물었다. 당신 스웨터 너무 예쁜데, 그거 어디서 샀나요? 루크 우드가 웃는다. 10꼬르소꼬모에서 살 수 있다며, 쪽지에 브랜드 이름도 적어줬다. 메종 키츠네의 스웨터였다. 좋은 취향을 가진 남자와 그가 만드는 소리에 대한 대화였다. 스튜디오3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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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