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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축제는 끝났다. 젠장. 긴 것 같았던 연휴도 오뉴월 귓가를 맴돌던 똥파리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하지만 하나가 가면 새로운 것이 다가오는 게...
축제는 끝났다. 젠장. 긴 것 같았던 연휴도 오뉴월 귓가를 맴돌던 똥파리처럼 빠르게…

2017. 10. 11

축제는 끝났다. 젠장.

긴 것 같았던 연휴도 오뉴월 귓가를 맴돌던 똥파리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하지만 하나가 가면 새로운 것이 다가오는 게 우리네 인생사. 지금부터 또 다른 축제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쓰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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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무실로 거위가 날아들었다. 귀여운 멜빵바지를 입고 있는 검은 상자를 열어본다. 팡! 이것은 축제의 서막. 화려한 팝업 아트가 성대한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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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에 잠들어 있던 것은 신상 맥주. 구스아일랜드가 맥덕의 성지 맥덕의 꿈과 희망, 옥토버페스트를 맞아 구스아일랜드 페스트 비어를 선보였다. 구스 아일랜드 페스트 비어는 메르첸 맥주다. 다들 궁금해하시겠지. 과연 메르첸이 무엇이냐. 나도 이번에 알게 되었으니 지금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해보자.

약 백 년 전만 해도 우리는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살아야 했다. 달콤한 문명의 이기인 에어컨도 히터도 없었으니까. 뭐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냐고? 자, 화내지 말고 침착하게 좀 더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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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의 핵심은 발효다. 그런데 말이지 이 발효라는 게 꽤 까다로운 녀석이어서 너무 추워도 또 너무 더워도 불가능하다. 발효는 과학, 아니 온도가 중요하니까. 그래서 과거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4월부터는 맥주를 만들지 않았다.

메르츠(März)는 독일어로 3월이란 뜻이다. 독일의 양조업자들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4월이 되기 전, 그러니까 3월에 일 년 중 가장 많은 맥주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 만든 맥주를 약 5개월 정도 알프스산맥에 있는 시원한 동굴에서 숙성시킨다. 이렇게 꽤 오랜 시간 동안 시원한 곳에서 숙성된 맥주는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 그러다 가을이 오면 짠! 하고 맥주를 오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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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페스트는 본래 왕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시작했다. 축제엔 술이 빠지면 섭하지. 운명적으로 메르첸 맥주가 공개되는 그 시기와 딱 맞아떨어졌고 그래서 이 메르첸 비어가 옥토버페스트를 상징하는 맥주가 되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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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말이지 오늘 마셔볼 맥주는 가을의 선물 같은 존재다. 조금 슬프게도 냉장시설이 잘 발달해 사시사철 맥주를 만들 수 있는 요즘은 메르첸 스타일을 만드는 곳은 없다. 왜냐고? 맥주는 평균적으로 한 달 안팎이면 숙성이 끝났다. 그런데 굳이 3개월 이상 숙성을 하는 건 경제적이지 않다. 단가가 맞지 않는다는 소리다.

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험난하고 좁은 길을 꾸역꾸역 가는 것이 진정한 힙스터. 시카고에서 온 거위가 그려진 이 힙한 맥주 브랜드는 메르첸 스타일의 맥주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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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에 반짝이는 붉은 머리칼처럼 맑고 투명한 빛을 띤다. 잘 익은 홍시 같기도 하고, 오렌지빛 호박 같기도 하다. 풍성한 가을의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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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도 옹골차다. 구운 맥아를 충분히 사용한 이 맥주는 풍요로운 수확의 맛이다. 입안을 쪼이는 적절한 씁쓸함에 카라멜의 달콤함 그리고 고소하게 구워낸 호밀빵의 맛도 느껴진다. 꽉 찬 바디감이 느껴지지만, 라거 특유의 깨끗한 맛도 느낄 수 있다. 뭐랄까 통통하게 살이 오른 라거의 맛이랄까? 꼭 나처럼.

알코올 도수는 5.7%. 이 맥주는 1월까지 국내 대형마트와 바틀샵에서 장장 5개월간 한정(?)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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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1월까지 구스아일랜드 브루하우스에서는 독일 뮌헨의 슈파텐 양조장과 협력해 만든 켈러 메르첸(Keller Märzen)을 맛볼 수 있다.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아 살아있는 효모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50L의 대형 케그로 한정 판매될 예정이며 알코올 도수는 6.3%.

gooose_q214r[캠프통 아일랜드 혹시 이곳은 천국…?]

또 있다. 풍악을 울리자. 오는 10월28일, 29일 가평에 위치한 캠프통 아일랜드에서 옥토버베스트 페스티벌을 진행한다. 페스트가 아니라 베스트다. 멋진 곳이다. 너른 잔디밭에서 햇살을 적당히 따사롭고 손에 들린 맥주는 차갑고. 나른하게 누워서 맥주를 마시는 걸 상상하니 독일은 가서 무얼 하나.

1Day1Sul(@1day1sul)님의 공유 게시물님,

구스아일랜드 페스트 비어
Point – 독일 옥토버페스트로 가는 급행열차
With – 담백 짭조름한 탄수화물 폭탄 프레첼
Nation – 미국
Style – 메르첸 비어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