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book]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회사에 도움되는 글을 쓰고, 주말엔 내가...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2023. 01. 29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회사에 도움되는 글을 쓰고, 주말엔 내가 도움받은 책에 대해 쓴다. (주말을 쪼개 낱말퍼즐 뉴스레터 <퍼줄거임>도 만들어 보내고 있다.)

이번 달에도 재밌는 책들을 많이 읽었다. 일을 잘하고 싶은 너에게, 나답게 살고 싶은 너에게, 그림 많은 책을 읽고 싶은 너에게, 아직 내 안의 어린아이를 만나지 못한 너에게, 기가 막힌 소설책으로 올해를 시작하고 싶은 너에게, 이 다섯 권을 소개한다.


[1]
<일을 잘하고 싶은 너에게>

“어려운 걸 쉽게 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잘한다고 하는 거다, 그게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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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담백한데 추천사 라인업이 화려하다. 책방 대표 최인아,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팟캐스트 진행자 김하나, 수많은 SNS 팔로워를 보유한 마케터 이승희, <채널예스> 편집장 엄지혜. 그중 김하나 님의 추천사는 특히 생생하다.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신입사원 시절, 선배가 의자를 힘차게 돌려 나를 향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잊지 못할 칭찬을 건넸던 것을.” ‘잊지 못할 칭찬’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 ‘일을 잘하고 싶은 너에게’ 어떤 얘길 들려줄지 궁금해졌다.

목차를 보니 주변에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이 여럿이었나 보다. 의견 내길 망설이는 너, 왜 날 뽑았는지 묻는 너, 팀장이 된 너, 퇴사를 앞둔 너, 이제 막 신입사원이 된 딸까지. 그래서 책은 꾹꾹 눌러 쓴 편지를 엿보는 느낌도 준다. 난 그래서 좋았다. 꼰대 소리를 좀 듣더라도 어떻게든 후배의 어려움을 덜어주고픈 마음이 전해져서. 어쩌면 일터에서 저자는 고민을 털어놔도 될 것 같은, 조용히 듣고 나서 좋은 답을 툭 던져줄 것만 같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책과 일과 삶을 연결하고 싶다.” 서문에 쓴 문장처럼 책 곳곳에는 저자가 인상깊게 읽은 다른 책의 구절들이 삽입되어 있다. 인용된 구절 중 이문재 시인의 시 한 편은 기억에 오래 남아 따로 메모해뒀다. 책을 읽으며 일과 삶을 생각하고, 책과 일에 대한 사랑이 삶의 동력이 된다. 앞으로 뭘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답해야지. “책과 일과 삶을 연결하고 싶어요.” 나도 저자에게 편지 한 통을 받은 기분이다.

  • <일을 잘하고 싶은 너에게> 이원흥 | 유영 | 2022.11.22 | 15,000원

[2]
<반항의 기술>

“자기 것을 지키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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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하고 싶은 너에게>를 읽으며 따로 메모해둔 구절이다. “일 앞에서 똑같은 n분의 1로 홀로 서서 오로지 너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선명하게 부딪치거나 격렬히 반대하거나 뜨겁게 지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존중이라고 나는 생각해.” 이 문장에 공감하면서도 자기 의견을 솔직히 드러내기가 부담스럽다면 <반항의 기술>을 추천한다.

일할 때 솔직함을 요구하는 회사들이 점점 늘고 있다. 최소한 “니 생각은 안 궁금하니까 토 달지 마라”는 태도가 구리다는 공감대는 형성된 것 같다. 다행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달라’는 요청만으로는 부족하다. 대세를 거스르는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건 무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 불평처럼 들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때문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회의실에서 하고픈 말을 삼킨다. 삼키려던 말을 뱉어내게 하려면 오버를 좀 해야 한다. “마음껏 불평하고 반항하세요! 그건 당신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예요!” 이 책의 제목과 부제를 합하면 <물러서지 않는 프로불평러의 반항의 기술>이다. 진정 팀원들이 솔직하길 바란다면, 실리콘밸리의 조직문화를 늘어놓는 어지간한 책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이 책은 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당신이 되어라, 진실을 말하라, 그대로 행하라. 그리고 이 책은 다시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두렵더라도 뭔가를 해라. 한 해를 시작하는 지금 읽기 좋은 책이다.

  • <반항의 기술> 러비 아자이 존스(지은이), 김재경(옮긴이) | 온워드 | 2022.12.01 | 17,000원

[3]
<북투어>

“작가의 비대해진 성취감과
범죄자의 광기 어린 정신 상태에는
분명 공통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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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고른 이유는 3가지다. 첫째는 제목. 책 소개글을 연재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북투어>는 설레는 제목이다. 둘째는 표지. 천장까지 책이 가득 차 있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역시나 설레는 그림이다. 셋째는 장르. 올해의 목표 중 하나는 만화, 웹툰, 그래픽노블 가리지 않고 많이 보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만큼 실컷 읽고 있지만, 만화나 그래픽노블은 좋아하면서도 많이 못 보고 있기 때문에.

그래픽 노블 <북투어>의 주인공 프렛웰은 소설가다. <사라진 K>라는 신작을 펴낸 기념으로 서점 여러 곳을 다니며 사인회를 할 예정이다. 출판사에서 북투어를 열어줄 정도면 꽤 인기 작가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 가는 곳마다 휑하다. 출판사와 서점 직원마저 작가를 냉대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른 작가의 베스트셀러 <그림자 산맥>만 칭찬해대는 통에 내가 다 뻘쭘하다. 프렛웰의 표정은 점점 쭈글쭈글해진다.

무관심도 서러운데 반갑지 않은 관심까지 받는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경찰 두 사람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사인회가 열린 다음날, 서점 직원이 살해됐기 때문이다. 사인회에 사람이라도 많이 왔다면 다른 목격자가 있을 텐데… 답답한 마음에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아내도 프렛웰을 못 믿는 눈치다.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난 누구한테도 함부로 해본 적 없어. 근데 왜 다들 나한테 함부로 해?”(올드 미스 다이어리 중)

프렛웰이 누명 벗길 기대하며 한 권을 금방 다 읽었다. 책을 덮으며 표지를 다시 봤다. 천장까지 책이 가득 차 있고 그 가운데 프렛웰이 앉아 있다. 이젠 설레지 않는다. 같은 그림도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것, 올해 그래픽노블을 많이 읽고 싶은 이유다.

  • <북투어> 앤디 왓슨(지은이), 김모(옮긴이) | 이숲 | 2022.12.15 | 20,000원

[4]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

“마냥 놀이공원 같아 보이던 유년 시절의 우리는
꽤나 치열했고 두렵기도 했음을,
이제라도 알아봐주고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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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힘들 때, 내 안의 어린아이를 만났다. 상담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다 보니 희미하던 아이의 모습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이 아이에게는 사춘기가 없었다. 그럭저럭 무난하게 10대를 통과하는 동안 힘들다, 버겁다는 말 한 번 하지 않았다. 예전엔 그게 은근히 자랑스러웠는데… 이젠 안쓰러웠다. 힘든 표시 한 번 못 내고 어른이 된 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다짐했다.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는 이 어린아이가 힘들어할 때, 다시는 방치하지 않겠다고.

내 안의 어린아이는 보통 힘들 때 찾아온다. 많은 어른들이 <토이 스토리 3> 마지막 장면을 보고 운 이유는, 장난감들과 인사하는 앤디를 보며 자기 안의 어린아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그 장면에서만 운 게 아닌가 보다. 원, 투, 쓰리, 포까지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다양한 캐릭터로 ‘내 안의 어린아이’를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며 한창 힘들 때가 생각났다. 물론, 내 안의 어린아이도.

저자는 작사가이자 방송인으로 유명한 바로 ‘그 김이나님’이 맞다. 몇 년 전 저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좋은 가사를 쓰려면 뭐가 가장 필요한지 물었다.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답이었다. 이해하기 위해 가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녹음실에 몇 시간씩 틀어박혀 대화한다고 했다. 좋은 가사를 쓰려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가 했던 말을 고쳐 써 본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내 안의 어린아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 김이나 | 삼호ETM | 2022.12.20 | 23,000원

[5]
<이중 작가 초롱>

“네 탓 아님,
‘It’s not your fault’의 순진과 나태는
그녀를 짜증나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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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편소설 ‘하긴’을 읽다가 흥분되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표지 사진을 찍어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다. “20쪽밖에 안 읽었는데 벌써 너무 좋다 침착해…”라는 호들갑과 함께. 그후로 정말 침착하게 한 편, 한 편 꼭꼭 씹어 삼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흥분할 만한 책이었다.

호들갑을 좀 더 구체적으로 떨어보겠다. 일단 웃기다. 재밌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몇 번 웃음이 터졌다. ‘재밌는’ 소설은 많지만 읽다가 ‘빵 터지는’ 소설은 귀하다. 그리고 통쾌하다. 뭐 하나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는 세상에서 텍스트만으로 통쾌함을 선사하는 작가가 여기 있다. 근데 슬프다. 내 맘대로 슬퍼해도 될지 모르겠으나 슬펐다. <이중 작가 초롱>은 웃긴 상황을, 통쾌하게 묘사함으로써, 슬픔을 건네는 책이다.

‘이런 소설을 여덟 편이나 써내다니! 역시 소설은 재능인가?’ 성급한 결론을 내릴 즈음 책 끝에 붙은 작가의 말을 읽었다. 만만찮은 책을 써낸 저자답지 않게, 저자는 글과 소설이 만만해지는 세상을 상상한다. 그는 “헤비 블로거”였다. “읽는 사람이 열 명이 안 되는 블로그”에 밤을 새워 글을 쓰던 때가 있었고, 아직도 좋아하는 블로그에 새 글이 올라오면 설렌다. 본인 글의 뿌리는 “문학이 아니라 포스팅”이라 말하는 그에게 글은 “친구 같은” 무엇이다. “기록하고”, “비약하고”, “거짓말하고”, “화려하게 살리고”, “싱겁게 씻어내”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친구. 가만있자, 내 블로그 주소가 뭐였더라…

  • <이중 작가 초롱> 이미상 | 문학동네 | 2022.11.08 | 1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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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균

매달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기이할 기, 밝을 명, 고를 균, 이름처럼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