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줄 서는 베이글 집, 줄 설만큼 맛있을까?

안녕.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고 베이글에 빠져들게 된 객원 필자 에리카팕이다. 나는 요리와 게더링을 기반으로 한 여러가지...
안녕.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고 베이글에 빠져들게 된 객원…

2022. 12. 04

안녕.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고 베이글에 빠져들게 된 객원 필자 에리카팕이다. 나는 요리와 게더링을 기반으로 한 여러가지 모임과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과 개인 뉴스레터 ‘에리카팕의 중구난방’을 발행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베이글이 맛깔나게 나오는 장면은 없다. 되려 허무주의의 표상이자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표현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베이글이 먹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 않을까 확신한다. (나만 그럴 리 없어.)

비단 이 영화의 여파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한국은 베이글의 인기가 대단하다. 한국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베이글에 진심이었나 싶을 정도로 베이글 집들이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영국, 미국, 독일의 베이글 스타일을 표방하는 베이글 집 세 곳에 다녀왔다. 객관적인 맛 평가가 아닌 줄 서기 대비 주관적인 맛 평가를 해봤다.


[1]
🇬🇧영국🇬🇧
런던 베이글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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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런던 베이글 뮤지엄 도산점에 다녀온 사진을 올렸을 때 근래 들어 가장 많은 디엠을 받았다. “어떻게 갔어요?”, “줄 설 정도로 맛있나요?”, “런베뮤 어때요?”, “평일에 런베뮤 갈 수 있는 여유로움 부럽다.” 등등… 많은 분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했던 줄 서기 난이도는 오늘 소개하는 세 곳 중 가히 최상이라고 할 수 있다.

평일 1시 약속이었지만 줄 설 결심을 하고 12시에 도착했을 때 이미 대기팀이 142팀이었다. 다행히 ‘테이블링’으로 먼저 원격 줄 서기를 했던 지혜로운 일행 덕분에 같은 시간 대기는 108팀으로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숫자, 108팀. 마치 108배를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과연 오늘 안에 맛볼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 “정 안되면 다른 곳에 가지 뭐.” 포기하고 싶은 마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먹어봐야 하지 않겠어?” 하는 오기까지. 여러 가지 심정을 밀푀유처럼 포개며 기다리다 보니 차례가 왔다. 포장만 해가는 분들이 꽤 있어 생각보다 줄이 금방 줄어들었다고 해도 한 시간 반 정도 기다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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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도 창 안쪽으로 언뜻 보이는 직원들의 모습과 고즈넉한 벽돌 건물 외관이 어울려 유럽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매장 안으로 들어가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얼굴들이 가득해 여왕님의 도시, 런던에 온 느낌이 낭낭해진다. (그런데 궁금하기도 하다. 로열패밀리의 허락은 받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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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내부에 들어가면 계산대 앞에 똬리를 튼 줄이 있다. 이곳이 베이글의 테마파크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두가 치열한 줄 서기를 거쳐 이곳에 입성한 만큼 주문에 신중함과 결의가 차 있다. 매장에서 먹고 갈 베이글과 수프와 음료 등을 주문하고 또 포장해서 가져갈 베이글과 크림치즈 등을 추가로 주문하기 때문에 신중한 속도로 줄이 줄어든다. 나와 일행 역시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안고 가능한 여러 가지 메뉴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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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맛은?! 물론 맛있는 베이글이다. 베이글 자체를 평가하자면 베이글 자체의 밀도가 상당하다. 거의 공기층이 없이 쫀쫀하다. 베이글의 밀도만큼이나 크림치즈의 밀도와 그 양 또한 상당한데, 풍성하게 들어있는 크림치즈의 비주얼은 매력적이지만 한 입 이상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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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치즈는 단맛보다는 크림치즈 고유의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이 두드러진다. 고소한 맛, 느끼한 것이 부담스러운 분이라면 토마토수프와 진한 커피를 곁들이기를 추천한다.

다시 줄 서서 갈 것인가? 글쎄요…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라는 이름처럼 서울에서 여권 없이 런던을 다녀온 듯한 경험을 선사하는 베이글의 테마파크 같은 공간이다. 눈치 게임을 해서라도 한 번쯤은 다녀올 법한, 아름답고 촘촘하게 꾸며진 공간인 것만은 확실하다. 베이글이 맛있는 집이라는 사실도 자명하지만 또다시 90분에서 100분을 기다려서 먹어야 한다고 하면, 나의 대답은 “괜찮습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 줄 서기 난이도 : 최상.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테이블링 앱을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 줄 서기 대비 맛 : 중. 베이글의 밀도, 크림치즈의 밀도 모두 밀도가 쫀쫀하다. 대체로 간이 짭짤하고, 달지 않다.
– 공간 : 한 번쯤 경험해보면 좋을 아름다운 공간이다.
– 집에서 다시 먹을 때 베이글 컨디션 : 안에 크림치즈가 있는 베이글로 포장해와서 그런지 충분히 촉촉하게 다시 먹을 수 있었다.

  • 주소 : 서울 종로구 북촌로4길 20(안국점), 서울 강남구 언주로168길 33(도산점)
  • 영업시간 : 매일 08:00-18:00
  • @london.bagel.museum

[2]
🇺🇸미국🇺🇸
니커버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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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커버커’라는 이름을 들으면 왜인지 추억의 운동화 브랜드가 떠오르는데, 1600년대 지금의 뉴욕에 정착한 네덜란드인들에게서 기원한 이름이라고 한다. 무릎 아래로 롤업 된 스타일의 바지를 ‘knickers’ 니커스라고 불렀고, “Knickerbockers”는 “Newyorker”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고 한다. 브랜드 로고에도 브루클린 다리를 사용한다. 뉴욕 본고장의 베이글을 선보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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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 밀도 있는 브랜딩과 고즈넉함이 느껴지던 공간이었다면, 니커버커는 미국 항구 모처에 있는 식당처럼 큼직하고 청키한 인상을 준다. ‘뿌~’ 하고 뱃고동 소리가 들려도 아무도 놀라지 않고 그러려니 하며 베이글을 즐길 것 같은 쿨한 분위기랄까. 베이글을 넣는 통들도 많고 큼직하고, 각양각색의 크림치즈를 담고 있는 유리볼들도 큼직큼직하다. 전반적인 인테리어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유럽인보다는 옷매무새에 덜 신경 쓰는 미국인 같은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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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점심시간에 들렀을 때 대기팀은 3-4팀 정도로 20분 정도 기다렸다. 내부에 앉아서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이쯤이야 뭐. 거뜬히 기다려 줄 수 있지.” 런베뮤에서 108팀 대기 수련을 한 결과, 넉넉한 마음로 대기를 받아들였다. 두 번째 방문은 평일 3시쯤이었는데 대기인원도 없었고, 롯데월드타워와 석촌호수가 보이는 명당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소진된 베이글 종류가 있었지만 특별히 원하는 베이글 종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점심시간이 지나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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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글은 본래 유대인들의 음식이지만 어쩐지 미국이, 그중에서도 뉴욕이 베이글의 본 고장처럼 여겨진다. 훈제 연어 록스와 크림치즈를 넣은 베이글이 대표적인 뉴요커 메뉴로 떠오르는데, 니커버커에서는 ‘록셔리 샌드위치’라는 이름으로 선보여지고 있다. 첫 방문에서는 일행이 많아 이것저것 시켜볼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클램 차우더는 연안 부두에서 먹는 느낌이었으니 니커버커에서는 베이글과 크림치즈에 집중하여 주문할 것을 권한다. 특히 크림치즈의 선택권이 다양한 곳인데, 허니 바질 크림치즈와 스리라차 베이컨 크림치즈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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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방문 때는 시도하지 않았던 샌드위치 메뉴를 주문해봤다. 1차 방문 후 블로그를 찾아봤을 때 뉴욕 땅 좀 밟아본 사람들이 한국에서 주문할 수 있다며 반가워하는 메뉴가 있었다. 바로, “루벤 샌드위치”. 파스트라미가 소의 양지로 만든 햄이라 그런지 묘하게 설렁탕 맛이 나서 특이했다. 역시 소울 푸드는 다 비슷한 맛으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 나는 뉴욕 땅을 안 밟아봐서 그런지 내 최애는 연어가 들어간 록셔리 샌드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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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줄 서서 갈 것인가? 개인적으로 집에서 가깝기 때문에 다시 갈 수는 있다. 다시 들른다면 크림치즈와 에브리씽 베이글을 포장해 올 것.

– 줄 서기 난이도 : 중. 평일 3시쯤 가면 줄 서지 않을 수 있으나 소진된 베이글 메뉴들이 있을 수 있다.
– 줄 서기 대비 맛 : 인당 6개로 구매 개수 제한이 있다. 다양한 크림치즈가 강점인 곳이니 여러 가지 크림치즈를 구매해볼 것을 추천한다.
– 공간 : 공간 면에서 대단한 메리트는 없다.
– 집에서 다시 먹을 때 : 중. 베이글은 다시 토스트 하기 필수이며, 크림치즈가 양이 많아 활용도가 높다.

  • 주소 :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로 268 1층 109-112호
  • 영업 시간 : 평일 09:00-17:00 / 주말 09:00-19:00
  • @knickerbockerbagel_official

[3]
🇩🇪독일🇩🇪
베베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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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소개하는 베베베는 평일 낮 2시에 방문해서인지 줄 서지 않았고, 내부에도 자리가 많이 비어있어 신나게 공간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앞서 소개한 두 곳은 공간과 브랜딩 자체에서 ‘런던’, ‘뉴욕’이라는 지역 느낌을 낭낭하게 보여줬다면, 베베베는 유럽 시골 어드메에 테디베어가 사는 곳이 있다면 이런 곳이겠다 싶은 컨셉추얼 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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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는 창고 콘셉트의 자리가 있고, 1층에서는 베이글을 고르고 주문받는 카운터와 주방이, 2층은 곰돌이의 안뜰, 3층은 곰돌이의 거실과 침실, 옥상은 루프탑 가든으로 콘셉트로 매장이 꾸며져 있다. 한남동의 4층 건물을 통째로 쓰는 테디베어 가족이라니. 일단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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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흑맥주로 반죽을 발효하고 16시간의 저온 발효 숙성, 참나무 장작 화덕을 자랑하는 만큼 베이글 자체의 촉촉함이 남다르다. 순수한 베이글 자체만으로 봤을 때 오늘 소개하는 세 곳 중 가장 맛있다. 줄을 안 서고 먹어서 그런지 가장 관대한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자타공인 빵순이 베이글이 너무 좋아서 베이글에 대한 잡지를 만든 지인도 베이글 맛집 원픽으로 베베베를 꼽았다. 다시 집에서 먹었을 때도 별도의 토스팅 없이도 촉촉했다는 점에서 나도 두 번 감동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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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에서 식사로 주문해 먹었던 것은 치킨 슈니첼 베이글 샌드위치. 독일식 커틀릿인 슈니첼이라는 특징 외에 독특한 점은 딸기잼이 들어간다는 것인데, 이 외에도 재료가 담뿍 들어가 있어 치킨버거 이상으로 든든하다. 다만 이 집에서는 샌드위치류보다는 베이글 단품으로 주문하여 드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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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 서기 난이도 : 중
– 줄 서기 대비 맛 : 상. 줄을 안 서고 먹어서 그런지 가장 관대한 마음이다.
– 공간 : 상. 고즈넉한 테디베어 시골집 콘셉트.
– 집에서 다시 먹을 때 : 상. 베이글 자체가 촉촉해서 별도로 토스트 하지 않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 주소 :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42길 46-12
  • 영업시간 : 매일 10:00~21:00 (20:30 라스트 오더)
  • @bbb_hannam

전체적으로 베이글이 맛있는 집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세 집 모두 베이글을 반으로 갈라 속 재료를 넣은 샌드위치 메뉴들을 선보이지만 베이글과 크림치즈의 조합으로 경험해야 참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 곳의 강점이 명확했는데, 베이글 자체가 강점인 곳은 베베베, 크림치즈가 강점인 곳은 니커 버커, 브랜딩과 공간이 강점인 곳은 런던 베이글 뮤지엄으로 하겠다. 순전히 나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이다. 모든 것이 올려져 있지만 허무함으로 점철되는 에.에.올의 베이글처럼, 모든 베이글을 경험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얼큰한 국밥 생각이다.

참고 자료

  • <베이크 페이퍼 no1. 베이글 편> @bakepaperseoul
  • <빵으로 읽는 세계사> (이영숙 저, 스몰 빅 인사이트)
About Author
에리카팕

요리연구가 라고 스스로 소개할 자신은 없으나 요리를 먹고 가게 하는 것만큼은 자신 있어서 '요리먹구가'라고 소개한다. 음식 얘기를 하다 보면 자꾸 말이 길어져서 요리 박찬호라고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