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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램지의 무제한 피자

안녕, 피자와 치킨을 좋아하는 피자나라 치킨공주(아님) 에디터B다. 요즘엔 핫한 게 오픈했다 그러면 다 성수동이다. 고든 램지가 성수동에 피자가게를 열었다. “돈...
안녕, 피자와 치킨을 좋아하는 피자나라 치킨공주(아님) 에디터B다. 요즘엔 핫한 게 오픈했다 그러면…

2022. 11. 06

안녕, 피자와 치킨을 좋아하는 피자나라 치킨공주(아님) 에디터B다. 요즘엔 핫한 게 오픈했다 그러면 다 성수동이다. 고든 램지가 성수동에 피자가게를 열었다. “돈 세다 잠드세요 형님”, “생생정보통 맛집으로 곧 나올 집” 같은 개업 축하 화환은 보이지 않아도 딱 봐도 쌔삥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곳의 이름은 ‘고든램지 스트리트 피자(이하 ‘스트리트 피자’). 이탈리아 피자를 베이스로 고든 램지의 재해석이 곁들여진 피자를 판다. 고든램지 코리아의 초대를 받아서 오픈 전에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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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특징은 피자 무제한 방식이라는 점. 아무리 물가가 올라도 가성비니, 무제한이라는 단어는 고든 램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다. 한국에 진출하면서 처음으로 선보인 메뉴가 ’14만 원짜리 햄버거’였기 때문에. 무제한 피자라는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고든 램지가 웬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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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하면 바로 보이는 전경이다. 고든 램지의 식당인 만큼 그의 이름이 여기저기 둥둥 떠 있고, 인테리어는 모던, 깔끔, 세련이다. 전체적으로 화이트 컬러인데 붉은 조명을 썼고 조도는 낮은 편이며 밖이 잘 보이지 않아서 낮인지 밤인지 모르게 신나게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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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에 주방이 있고, 손님들을 위한 테이블과 좌석이 주방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매장 중앙에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연상되는 조형물이 하나 설치되어 있는데, 어느 좌석에서나 한눈에 보여서 공간을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준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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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방식은 간단하다. 2만 9,800원의 이용료를 내면 모든 피자 메뉴를 먹어볼 수 있다. 당연히 이용료에 사이드, 디저트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피자 외의 메뉴는 추가 지불해서 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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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엔 당연히 맥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피자는 위스키와도 잘 어울리고, 스파클링 와인, 칵테일이랑 먹어도 좋다. 스트리트 피자에서는 생맥주는 라거, 바이젠, IPA 각각 한 종류씩만 판매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칵테일이 있는 게 재밌었다. 피맥을 많이 해봤다면 피칵이나 피와를 이참에 시도해봐도 좋겠다. 메뉴판을 정독하고 있는 사이 서버가 피자판을 들고 내 앞으로 왔다. “페퍼로니 드실래요?” 이렇게 서버가 음식을 들고 다니며 계속 제공하는 방식을 바텀리스 서비스라고 하더라. 이용 시간은 한 시간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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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덕에서 갓 나온 피자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피자는 맛없게 만들기도 힘들고, 맛있게 만들기도 힘들다.” 방금 조리된 피자는 기본적으로 어느정도는 맛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특출나게 더 맛있게 만드는 게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트리트 피자는 지금까지 먹었던 화덕 피자보다는 도우가 얇다는 느낌을 받았다. 화덕 피자를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여러 피자를 골고루 먹을 수 있게 한 조각을 헤비하지 않게 만든 것 같다. 나는 다섯 조각을 먹었는데 배부르기보다는 적당히 먹었다는 느낌이었다. 사이즈가 적당한 덕분에 여러 맛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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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를 먹고 있을 때 런던가든 칵테일과 윙이 나왔다. 윙은 스위트 칠리 김치, JFC, 초콜리티 바베큐, 스트리트 핫소스, HOTTER THAN HELL 중에서 고를 수 있고, 내가 먹은 건 HOTTER THAN HELL. 서빙되자마자 매운향이 퍼졌는데, 뭘로 만든 거냐고 물어보니 하바네로 고추 베이스라고 한다. 혀가 따끔거리게 맵긴 하지만 빠르게 증발되는 매움이라 먹을 땐 매워도 여파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엄청 맛있진 않아도 시그니처 메뉴여서 안 먹어보면 섭할 수 있다.

피자, 칵테일, 치킨윙을 함께 먹고 있으니 고든램지 코리아를 총괄하고 있는 데미안 브라셀 셰프가 “피자, 칵테일, 윙? 퍼펙트!”라고 인사를 건네더라. 나는 “어썸”, “와우, 어메이징” 같은 말을 떠올렸다가 어색해하며 맛있다는 표정만 지었다. 한국 주입식 영어 수업 방식엔 확실히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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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먹은 피자는 콘&초리조 피자. 고수가 들어갔는데, 고수의 자기 주장이 강하진 않아서 고수를 잘 못 먹는 나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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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자는 데일리 스페셜로 나온 라구 피자다. 이게 제일 맛있었다. 하지만 데일리 스페셜이기 때문에 언제 또 라구 피자의 날이 올지는 모른다.

피자 하나하나에 대한 맛 평가를 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듯하다. 어차피 무제한 방식이고, 궁금하면 한 입씩 먹어보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다섯 가지 피자 모두 다 맛있었다. 반죽도 좋고, 토핑도 맛있었다. 스트리트 피자가 고든램지 버거처럼 하이엔드를 추구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피자 한 조각 먹고 머리 위로 이탈리아의 토마토 밭이 그려지지도 않는다. 고든 램지도 그걸 생각해서 만든 브랜드는 아닐 테고. 고든램지 버거와는 방향이 아예 다르니 파인 다이닝한 느낌을 기대하지는 말자.

그래서 스트리트 피자를 다른 핏제리아의 화덕 피자와 일대일로 놓고 비교하기엔 곤란하다. 스트리트 피자가 드라마라면, 다른 핏제리아의 화덕 피자는 영화랄까. 스트리트 피자에 피자 한 종류만 먹으려고 가는 사람은 없다. 첫화부터 마지막화까지 봐야 완결이 되는 드라마처럼 스트리트 피자는 모든 피자를 다 먹어본 후에 “아 잘 먹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퀄리티가 괜찮은 여러 종류의 화덕 피자를 한 자리에서 한 조각씩 먹어볼 수 있다는 게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큰 메리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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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서빙을 원치 않을 땐 고든 램지가 그려진 나무 스푼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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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아서 피자를 와구와구 먹다보니 피자가 나오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피자가 빠르게 나오고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이토록 빠른 회전율을 감당하는 건 바로 특별한 화덕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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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에서 봤던 화덕은 보통 돌을 사용하는데 스트리트 피자의 화덕은 딱 봐도 다르게 생겼다. 데미안 브라셀 셰프는 이 화덕이 ‘화덕계의 롤스로이스’라고 표현했다. 그는 꽤 많은 말을 내게 해주었는데, 30% 정도 알아 들었다. 요약하자면 모든 피자를 균일하게, 그리고 빠르게 구울 수 있다는 게 이 화덕의 장점이라고 한다. 화덕 안에 바닥이 회전하기도 하고 위아래로 움직이기도 하는데 장작 화덕에서는 본 적 없는 광경이라 꽤 신기했다. 이 화덕으로 1시간에 60개에서 70개 정도의 피자를 구워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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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덕 피자를 좋아한다면 큰 메리트가 있는 식당이다. 고든램지 버거가 궁금했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방문하지 못했다면 스트리트 피자에 가보는 걸 추천한다. 1차에서 화덕피자로 배를 채우고 약간의 와인과 칵테일을 마시면서, 2차로 서울숲 데이트를 하면 좋은 데이트가 될 거다.

고든램지 스트리트피자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