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숨은 넷플릭스 명작 8편

안녕, 얼마 전부터 빔프로젝터를 쓸 수 없게 돼 작은 화면에 적응 중인 객원 에디터 임현경이다. 나의 불운과 별개로 최근 OTT...
안녕, 얼마 전부터 빔프로젝터를 쓸 수 없게 돼 작은 화면에 적응 중인…

2022. 09. 27

안녕, 얼마 전부터 빔프로젝터를 쓸 수 없게 돼 작은 화면에 적응 중인 객원 에디터 임현경이다. 나의 불운과 별개로 최근 OTT 업계에서는 좋은 소식이 있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이 지난 9월 12일 에미상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관왕을 차지했다. 최근 구독자 감소로 위기를 맞은 넷플릭스에겐 오리지널 시리즈의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유독 반가운 성과일 것이다. 혹여 넷플릭스 구독 해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여기 알고리즘 구석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는 8편의 콘텐츠를 소개한다.


[1]
<아이 엠 낫 오케이>

피범벅이 된 채 황망히 밤거리를 걷는 소녀. 압도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며 시작된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정말 ‘괜찮지 않다.’ 17세 소녀 시드니(소피아 릴리스)는 단짝 디나(소피아 브라이언트)를 짝사랑하지만 내색할 수 없고, 디나는 학교에서 유명한 바람둥이 브래드(리처드 앨리스)와 연애를 시작한다. 아버지는 1년 전 지하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식당에서 주 60시간씩 일한다. 마음만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남동생을 돌보는 건 첫째 시드니의 몫이다. 이런 삶이 마음에 안 들어 죽겠는 시드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속을 부글부글 끓이다가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불안정한 청춘, 사랑과 우정, 우울, 초능력.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소재들이지만, 달리 말하면 넷플릭스가 가장 잘하는 것들로만 맛있게 버무려 놓았다. 그만큼 확실한 재미를 보장한다. 찰스 포스먼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감독 조나단 엔스위슬이 연출을 맡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시즌 2 제작이 취소됐다고 한다. 많은 것들이 미지의 영역에 남겨졌기 때문에 모든 세계관과 사건의 전말을 다 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2]
<무비: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

만화책과 함께 빌려봤던 비디오테이프가 상영이 끝난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던 때가 있었다. <무비: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은 이런 추억을 가진 비디오 세대들을 위한 다큐멘터리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뒷이야기와 함께 당시의 시대상을 조명해본다. <더티 댄싱>은 당시 메이저 제작사들에 퇴짜를 맞고, 신생 제작사와 함께 최소한의 예산으로 만들어졌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제작할 예산이 부족해 배우의 자작곡을 사용했고, 기성 음악 사용료 지급을 위해 수많은 타협과 호소를 해야만 했다. <나 홀로 집에>는 워너브라더스가 예산 초과를 이유로 영화 제작을 취소하자 미리 물밑작업으로 섭외했던 20세기폭스로 환승해 제작을 이어갔다. 아쉬움이 남았던 편집본은 어렵게 모셔온 영화 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의 손길을 거치며 완전히 새롭게 탄생했다. 이외에도 <고스트버스터즈>, <다이하드>, <백 투 더 퓨쳐>, <에이리언 2> 등 회당 한 편씩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빠른 호흡의 편집과 유쾌한 내레이션이 리듬감을 만들어 낡은 화면을 보고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3]
<앨리 웡: 돈 웡>

넷플릭스에서 놓쳐선 안 될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다큐멘터리요, 다른 하나는 스탠드업 코미디일 것이다. <앨리 웡: 돈 웡>은 앨리 웡의 세 번째 넷플릭스 스탠드업 스페셜이다. “돈, 권력, 명예를 쟁취한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위협을 느낀다고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고 관객들을 응시하더니 쉼 없이 말을 잇는다. 앨리 웡은 여성, 베트남계 미국인, 남편과 두 아이를 둔 아내이자 엄마, 스탠드업 코미디언 등 그의 생애와 경험을 소재 삼아 삶의 해학을 보여주고 사회를 풍자한다. 한 시간 내내 오롯이 홀로 광활한 무대를 채우고 박수갈채를 받아내는 그의 퍼포먼스를 보다 보면 앨리 웡이 왜 ‘돈, 권력, 명예’를 쟁취할 수 있었는지를 알 것도 같다. 그는 웃기지만 결코 우습지 않다. 앨리 웡과 코드가 통했다면 그가 공동 제작과 각본,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우리 사이 어쩌면>도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로맨틱 코미디라 스탠드업 코미디에 비해 거칠거나 야하지는 않지만, 앨리 웡의 재치는 여전하고 간질간질한 설렘까지 담고 있다.


[4]
<언커플드>

뉴욕에서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는 마이클(닐 패트릭 해리스)은 17년째 동거 중인 애인 콜린(턱 왓킨스)이 떠나버리자 큰 충격에 빠진다. 40대에 다시 연애를 시작해야 한다니. 내가 이 나이에 싱글이라니. 이젠 익숙할 법도 한데 이별은 늘 힘들다. 그 사람이 보고 싶은 건지 관성적으로 같이 있던 사람이 사라져서 허전한 건지, 사랑이 하고 싶은 건지 그저 혼자 있기 싫은 건지 혼란스럽다. 오랜 연애 끝에 FA 시장에 나온 마이클은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지만, 그새 변화한 세상에 기함한다. 앱으로 사람을 만난다고? 다짜고짜 잠부터 잔다고? 젊은이들에겐 고리타분한 늙은이 취급을 받고, 모처럼 취향도 세대도 잘 맞는 남자는 잠자리가 안 맞는다. 가족과 친구, 곁에 있어 주는 소중한 사람들과도 삐걱거린다. 마흔이 혹하지 않는 불혹의 나이라지만, 여전히 외롭고 서툴고 두렵다. <언커플드>는 타인과 나누는 사랑이든 스스로를 보듬는 사랑이든, 나이, 성별, 성 지향성과 무관하게 사랑은 누구에게나 어렵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모두가 계속 나아가며 성장하고 또 사랑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5]
<돈, 돈, 돈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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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을 위해 필수로 들어야 했던 교양 과목 중에는 ‘회계와 통계’가 있었다. 지금 와서 기억에 남는 거라곤 재무제표와 감가상각비 정도인데, 재테크에 도움이 됐냐고 한다면 글쎄…. 돈과 친해지고 싶은 이들에게 이 다큐멘터리를 추천한다. “돈을 관리하는 방식은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끼치지만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돈, 돈, 돈을 아십니까?>는 원제 ‘Get smart with money’로 알 수 있듯 경제적으로 영리해지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큰돈을 벌었지만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운동선수, 학자금 대출 이래 빚의 연쇄 고리에 놓인 직장인, 남편의 실직 이후 아내의 수입만으로 경제적 자유를 계획하는 부부, 예술가로서의 삶을 꿈꾸지만 당장 생계를 위해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청년. 돈의 중요성은 알지만 돈을 운용하는 법은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각 전문가가 1년간 개인 재정 코치가 되어준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유용한 꿀팁이나 부자가 되는 비밀 등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가장 기본이 되는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자’를 토대로 부채를 해결하고 소득을 창출해나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6]
<그리고 베를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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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시라 하스)는 극도로 엄격한 유대인 공동체에서 탈출한다. 에스티가 베를린으로 향하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동안, 그가 떠난 자리에는 지난 삶들이 남아 그를 뒤쫓는다. “여인을 남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집단 내 남성들의 결정에 에스티라는 인격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홀로코스트로 잃은 600만 명의 유대인을 복구해야 한다는 사명 아래, 에스티는 단지 집안의 소유물이고 출산을 기능해야 하는 톱니바퀴에 불과하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현대, 뉴욕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놀라운 건 이 작품이 데버라 펠드먼의 회고록 ‘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 즉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 이야기는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일면들을 돌아보게끔 만든다. 누군가는 행정자치부가 가임기 여성인구 분포를 토대로 ‘출산 지도’를 게재했던 때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본 에피소드와 따로 분리된 메이킹 필름도 놓치지 말 것. 현실을 반영한 작품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보여준다.


[7]
<아니마>

폴 토머스 앤더슨이 연출하고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가 음악을 맡은 단편 영화다. 톰 요크가 주연으로서 연기와 무용까지 소화한다. 어둠과 함께 온몸을 집어삼키는 듯한 지하철 소리가 곧 심장 박동과 함께 공간을 감싸는 음악이 된다. 점점 빨라지는 리듬에 맞춰 잠에 취한 군중들이 반복적으로 움직이고, 그중 한 남자가 한 여자와 묘한 눈빛을 주고받는다. 남자는 여자를 따라가려 하지만 그 길에는 현실과 다른 혼돈과 왜곡이 가득하다. 뒤틀리고 미끄러지고 날아올랐다 추락하는 과정 끝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남자는 마침내 여자와 재회하고, 두 사람은 서로 깊이 교감하며 다시 잠에 빠져든다. 이 추상적인 작품은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의 ‘아니마’를 알아두면 훨씬 이해하기 쉽다. 아니마는 남성의 생물학적 성과 반대되는 특성의 내적 인격(여성의 경우 ‘아니무스’)을 일컫는다. 융은 아니마가 개인이 타인과의 차별성을 형성하는 깊숙한 내면의 심상이기에, 아니마를 포용하는 자기 이해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요컨대 <아니마>는 한 남자의 모험담이다. 무의식 속에서 아니마를 만나기 위해 떠나는 모험. 스피커, 헤드셋 등 가진 것 중 최대한 좋은 음질의 장비로 감상하길 권한다. 넷플릭스의 설명란에도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환상적이고 감각적인 세계로 인도한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


[8]
<헤드스페이스: 숙면이 필요할 때>

침대에 누워서도 바로 잠에 들지 못하고 오랜 시간 뒤척인다면, 머릿속에 밀려드는 불안과 걱정을 끌어안고서 동이 트는 창밖을 바라본 적이 있다면, 지금 당신에겐 <헤드스페이스: 숙면이 필요할 때>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명상과 마음 챙김이 평온한 밤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수면 관련 상식, 스트레스 대처법, 수면제와 꿈자리에 대한 조언 등 각종 정보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전한다. 매회 후반부에는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이완 명상이 준비돼있다. 애니메이션이 독특하고 직관적이며 귀엽다. 한 번 보면 계속 보고 있게 되지만, 굳이 화면을 감상하기보다는 머리맡에 라디오처럼 틀어두기를 권한다. 내래이션도 한국어로 되어있으니 영어 듣기평가가 될 걱정은 접어두자. 스마트폰을 포함한 전자기기를 침대 가까이 두는 것이 숙면을 방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이 내용도 해당 콘텐츠에 포함돼있다), 어차피 놓을 수 없다면 최대한 숙면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이용해보자. 긴장이 풀리고 몸이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면서 조금씩 잠과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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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임현경

이야기와 글쓰기, 사람들을 만나 삶의 일부를 나누는 일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