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book]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면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회사에 도움 되는 글을 쓰고, 주말에 내가...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2022. 06. 20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회사에 도움 되는 글을 쓰고, 주말에 내가 도움받은 책에 대해 쓴다. (주말을 쪼개 낱말퍼즐 뉴스레터 <퍼줄거임>도 만들어 보내고 있다.)

이번 달에 읽은 책 세 권을 순서대로 소개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쓰기를 낳았다. 글 읽는 재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를.


[1]
<아무튼,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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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 노래를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이 나라는 걸 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 노래한다.
부르면 부를수록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지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그게 내가 먼저 노래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 <아무튼, 노래> p143

아무튼 시리즈에 참여한 여느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슬아 작가는 ‘노래’에 진심이다. “즐거울 수 있는 만큼만 매달릴 자유”를 만끽하며 노래를 만들고, “네가 서러울 때 눈물이 되겠다는 게, 허전하고 쓸쓸할 때 벗 되겠다는” 친구의 약속을 되새긴다. “잘 못 불렀는데도 좋아죽겠는 노래”를 떠올리며 그게 음악이라는 걸, 그게 삶이라는 걸 배운다.

책을 읽는 내내 근질근질했다. 저자가 불렀다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어서. 잊고 있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서. 그때 같이 불렀던 사람을 추억하고 싶어서. 저자처럼 나 역시 인생의 소중했던 몇몇 장면을 노래로 기억한다. 이 책을 골라 읽고 글을 쓰는 이유도, 어쩌면 노래 얘기를 마음껏 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내가 이적 할게, 니가 김동률 해.” 노래방에서 이런 식으로 듀엣곡의 파트를 나눴던 순간을 떠올리면 조금 민망하다. 하지만 신입생 때를 돌아봤을 때 그 정도는 민망한 축에도 못 끼기 때문에… 우린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이적과 김동률을 흉내 냈다. 내가 억지로 비음을 내면, 넌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를 깔았던 것 같다. 둘 다 딴엔 흡족했는지, 그후로 노래방에 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위의 꿈’이나 ‘그땐 그랬지’를 예약하고는 서로의 옆구리를 찔렀다. ‘같이 부를 거지?’ 그래요 난 꿈이 있어요, 라고 노래하기엔 꿈이 없었고, 참 세상이란 만만치 않더군, 이라 노래하기엔 세상을 하나도 몰랐지만, 어쨌든 같이 불렀다.

그때 같이 노래방에 갔던 친구들이 15년 후 한 자리에 모였다. 버즈의 ‘가시’를 불렀던 H도 왔고, 자우림의 ‘애인발견’을 불렀던 P도 왔고, 잔뜩 취해 Queen의 ‘Don’t stop me now’를 불렀던 J도 왔다. 근데 목소리를 깔고 김동률을 흉내 내던 친구는 오지 않았다. 본인이 주인공이었음에도. 아니, 본인이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비음을 내며 이적을 흉내 내던 나는 ‘그땐 그랬지’도, ‘거위의 꿈’도 부를 수 없었다.

1년 후 나는 결혼을 했다. 축가는 꼭 내가 부르고 싶었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니까. 근데 신부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같이 불렀다. 여러 후보들을 놓고 고민하다, 결국 신부가 제안한 ‘기적’을 부르기로 했다. 신부는 이소은 파트를, 난 김동률 파트를 맡아 무사히 축가를 마쳤다. 목소리는 깔지 않았다.

  • <아무튼, 노래> 이슬아 | 위고 | 2022 | 12,000원

[2]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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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이 아니라면 그 정도의 격정과 진심은 결코 드러나지 않는데
어떻게 노래방을 싫어할 수 있단 말인가.
룡이처럼 과묵하고 쑥스러운 자의 진심을 대신 전해주는 세상의 명곡들에게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
가사들이 입 밖에 나오자 모를 수 없게 되었다.
이게 얼마나 커다란 우정의 노래인지.
불러보기 전엔 진짜로는 알 수 없던 마음이었다.
하마와 나 사이에 마지막까지 남을 문장이 그 노래에 있었다.”

– <아무튼, 노래>

노래의 힘을 빌려야만 전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 노래로 불러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마음도 있다. 마음이란 게, 이렇게 어렵다.

어릴 때부터 ‘마음’은 어려운 문제였다. 친구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따르기 싫을 때, 우린 이런 말로 우기기를 시작한다. “내 마음인데?” 억울한 친구는 응수한다. “니 마음만 있나? 내 마음도 있다!” 예상치 못한 반박에 당황하는 나. 너무 맞는 말이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성숙해진다는 건 어쩌면, ‘니 마음도 있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시작부터 희한한 가설로 독자를 당황시킨다. ‘당신의 어머니에게 마음이 있을까? 그걸 어떻게 알아? 본 적 있어?’ 싸우자는 게 아니다. 실제로 우린 내 마음 말고는 그 누구의 마음도 ‘존재한다’고 100% 확신할 수 없다. 영화 <트루먼 쇼>를 생각하면 쉽다. 엄마를 포함한 주변 사람 모두가 ‘마음’을 가졌다 믿고 살아왔지만, 어느 날 갑자기 진실을 알게 된다. 나를 둘러싼 인간, 개, 세상 모든 것들이 나를 놀려먹기 위한 NPC에 불과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는 건 저자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마음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과감히 지워버리고는, 그 자리에 새로운 질문을 써넣는다. “당신은 어떤 것이 마음을 갖고 있다고, 또 어떤 것이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가?” 여기서 ‘어떤 것’의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성인 남성, 성인 여성, 생후 5개월 된 아기, 5세 아동, 야생 침팬지, 식물인간 상태의 인간, 최근에 죽은 사람, 어느 집에서 키우는 개, 사회성을 가진 로봇, 청개구리, 7주차 배속 태아, 당신, 그리고 신(god).

그들은, 아니 우리는 왜 어떤 것은 마음을 갖고 있고, 어떤 것은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고 느낄까? ‘마음 설문조사’에 참여한 2,499명의 답변에서 이 책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대니얼 웨그너&커트 그레이 | 추수밭 | 2017 | 18,500원

[3]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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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마음은 한편으로는 헤아릴 수 없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편리하게도 매우 인간적이다.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신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p358

누군가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을 읽으며 코웃음을 치고 있다. 신의 마음도 개의 마음도 모두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철저히 인간 입장에서 쓰인 책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쓴 책이니까 인간 입장에서 쓰이는 게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방금 전까지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를 읽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저자 존 그레이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만큼 저자의 주장이 명확하고, 신선하고, 흥미롭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인간의 위대함을 부정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류가 이제까지 존재했던 어떤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부정한다. 그가 보기엔 이성도, 진보도, 과학도 모두 인류가 우월하다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건 이성이 아니라 무의식이다. 진보한 기술도 인간 본성의 취약함은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추긴다. 과학은 또 다른 이름의 종교일 뿐이다.

“종교는 이 땅에서의 삶이 고되다는 것은 인정했다.
모든 고통이 없어지는 다른 세상을 약속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종교를 인간주의의 형태로 계승한 진보주의자들은 그보다 더 믿을 수 없는 것을 약속한다.
미래에, 심지어 가까운 미래에,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리라고 약속하는 것이다.”

–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p184

나는 인간이 쓴 책을 읽고, 인간과 대화하며, 인간으로서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간답다’고 여겨지는 일들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행복을 쫓거나, 숨어 있는 의미를 찾거나, 삶의 목적을 묻거나 하는 것들. 아주 까칠한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소중한 이유는 읽는 내내 ‘인간답지 않은’ 고민들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을 쫓는다고 잡을 수 있을까. 의미를 꼭 찾아야 할까. 삶의 목적이 ‘그냥’일 순 없을까.

“꽃이, 돌이, 강이 무엇인지 모를 때만이, 그것들이 느끼는 바를 말할 수 있다.
꽃, 돌, 강의 영혼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은 너 자신, 너의 환상을 말하는 것이니까.
하느님 감사합니다. 돌은 그저 돌일 뿐이고, 강은 그저 강일 뿐이며, 꽃은 그저 꽃일 뿐이라서.

(…)
동물들은 삶의 목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기모순적이게도, 인간이라는 동물은 삶의 목적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냥 바라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삶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p195, p252

  •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 이후 | 2010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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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균

매달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기이할 기, 밝을 명, 고를 균, 이름처럼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