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디에디툰] 여중생A와 여중생H

안녕, 여러분. 에디터H다. 오늘부터 나는 만화 골라주는 여자가 되어 보려 한다. 날 키운 건 팔할이 만화였다. 스물 셋에 재능 없음을...
안녕, 여러분. 에디터H다. 오늘부터 나는 만화 골라주는 여자가 되어 보려 한다. 날…

2017. 01. 18

안녕, 여러분. 에디터H다. 오늘부터 나는 만화 골라주는 여자가 되어 보려 한다.

날 키운 건 팔할이 만화였다. 스물 셋에 재능 없음을 실감하고 만화가의 꿈을 접었지만, 여전히 좋은 작품을 보면 가슴이 설렌다. 더러는 만화를 유치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날 한번 믿어 보시길. 어쩌면 인생 만화를 만나게 될지 누가 안담? 자, 디에디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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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여중생A’. 네이버 웹툰에서 월요일마다 연재되는 만화다. 네이버는 요일별 웹툰을 조회수가 많은 순서대로 정렬해둔다. 마치 보험회사 영업왕을 뽑는 것 같은 치열한 시스템이다. 여중생A는 여기서 중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두드러지는 순위가 아니지만 충분히 놀랍다.

잘나가는 일진(요즘 애들이 어떤 표현을 쓸진 짐작도 못 하겠다)들의 피튀기는 러브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글래머 주인공의 팬티가 심심찮게 나오는 팬서비스도 없다. 심지어 작화는 상당히 우중충한 편이다. 연습장에 낙서하듯 그린 선과 주인공들의 표정만 간신히 가늠할 수 있는 그림체는 단순하다 못해 시크할 정도다. 이게 이 만화의 제1 진입장벽이다. 재밌으니 한번 봐주겠니, 하고 추천하면 “그림이 예쁘지 않아!”라고 거절 당하는 슬픔을 여러 번 겪었다. 하지만 이 여중생A란 만화에선 이 모자란듯한 작화가 가장 완벽한 장치다. 정말로.

주인공은 ‘장미래’. 중학교 3학년 소녀이며, 학교에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목소리 큰 여학생 무리 중 하나는 장미래를 싫어한다. 음침하고, 머리에 비듬이 있는 것 같다며 조롱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괴롭힘은 일본 만화에서 다뤄진 이지메처럼 폭력적이거나 드라마틱하진 않다. 주인공은 그냥 어느 학교, 어느 반에나 한 명쯤 있을 법한 평범한 외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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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웹툰은 주인공 캐릭터처럼 외톨이 같다. 화려한 웹툰 세계에서 드물게 칙칙한 흑백톤을 고수한다. 가끔 컬러가 덧입혀지곤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장미래가 온라인 게임을 하는 장면이다. 이 소녀는 소위 말하는 게임 덕후다. 현실 속에서는 친구가 한 명도 없지만, 온라인 게임 속에서는 길드원들과 가깝게 지내며 활발한 성격으로 변한다. 게임 세계는 화사한 컬러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내 게임을 끝내고 로그아웃할 때는 칙칙한 흑백톤으로 돌아오게 된다. 한 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는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존재다. 그림자만으로도 장미래의 일상을 덮어버린다.

자칫 아주 우울한 만화로 생각될 수 있겠지만, 작가인 ‘허5파6’은 굉장히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끔찍한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내고, 우울한 순간에 별안간 위트를 발휘하기도 한다. 이 과정을 눈으로 좇는 사이 주인공은 서서히 성장한다. 한 두 마디 씩 대화를 주고받는 친구가 생기고,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하기도 한다. 만화라는 장르의 특수성과 관계없이, 이 과정은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등장인물들 또한 상당히 입체적이다. 주인공이 변하면 그 주변 인물들도 변한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중학생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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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친구들과 햄버거를 먹으며 “나 지금 정상인 같다”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소박함에 코끝이 찡해진다. 이 소녀는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나에겐 과분한 관계들이야”라며 행복을 경계한다. 실제로 짧은 행복 뒤엔 촘촘한 불행이 드리운다. 독자들은 작가의 밀당에 피가 거꾸로 솟게 된다. 여고생A라는 익명성 짙은 제목이 어떤 비극적인 결론을 암시하는 건 아닌지 불안에 떨면서 말이다.

만화 곳곳에서 시대적 배경이 ‘미묘하게 옛날’이라는 느낌이 풍긴다. 주인공은 윈도우 98을 사용하고, 등장인물들은 모두 구형 폴더폰을 들고 다닌다. 친구들이 아이돌 노래를 듣는 동안 주인공은 자우림과 델리스파이스를 듣는다. 추측하건데 2005년 정도가 아닐까. 이런 장치 덕분에 사람들은 여중생A를 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랬다. 모두가 장미래는 아니지만, 모두가 장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사실은 나 역시 주인공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두려워했던 것들을 연상한다. 여중생H의 사소하고 끊임없던 불안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은 다듬어지지 않아서 어여쁘고 잔인했다.

이 웹툰엔 100화 동안 비슷한 댓글이 지속적으로 달린다. “제발 장미래를 행복하게 해주세요”, “미래야 너는 아름다운 사람이야.”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장미래에게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다. 여러분도 여중생A를 보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만화 속 캐릭터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마음을 말이다. 정주행이 끝나면, 아마 작가의 전작인 ‘아이들은 즐겁다’까지 찾아보게 될걸. 진짜다.

TITLE : 여중생A
TYPE : 네이버 웹툰
GENRE : 약간 불안하지만, 일단은 치유계 성장 만화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