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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좋아질 거예요, 요즘 전통주 7

안녕, 술잔 부딪치는 소리를 좋아하는 에디터B다. 나이가 듦에 따라 술에 대한 취향이 바뀌었다. 이십대에는 라거로 시작해 흑맥주, 바이젠, 에일 순으로...
안녕, 술잔 부딪치는 소리를 좋아하는 에디터B다. 나이가 듦에 따라 술에 대한 취향이…

2022. 03. 14

안녕, 술잔 부딪치는 소리를 좋아하는 에디터B다. 나이가 듦에 따라 술에 대한 취향이 바뀌었다. 이십대에는 라거로 시작해 흑맥주, 바이젠, 에일 순으로 변했다. 삼십대에 들어서는 맥주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 소주, 청주 같은 쌀로 담근 맑고 깔끔한 술을 마셨다. 흔히 ‘전통주’라고 말하는 분류에 속하는 술이다. 나는 왜 어느 날 갑자기 전통주를 좋아하게 된 걸까. 그 이유가 뭘까.

몇 년 전 국내 캔맥주에 관심을 갖던 이유와 비슷한 것 같다. 그 당시 국내 캔맥주 시장은 신선하고 창의적인 시도가 폭발하는 곳이었다. 서울, 제주 등 지역에서 영감을 받은 맥주가 나오고, 맥주와 접점이 없는 브랜드와 (좋은 의미로) 생뚱맞은 콜라보를 했다. 물론 그런 시도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익숙해진 탓인지, 피로도가 쌓인 것인지 관심은 예전만큼 높지 않다. 캔맥주 컬래버레이션 시장은 ‘곰표’로 정점을 찍고 이제는 조금씩 내려오고 있다고 본다.

지금 전통주 시장을 보면 마치 초창기의 국내 캔맥주 시장의 꿈틀거림을 보는 것 같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양조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셀럽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전통주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와인, 맥주와 달리 전통주는 인터넷으로 구매가 가능해 접근성도 좋다. 일 년 후 한국의 전통주 시장은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달라져 있지 않을까. 와인, 맥주에 비해 인기가 없고 낯선 전통주이지만, 한번 맛보면 천천히 좋아질 거다. 오늘은 평범하지 않은 전통주 7종을 소개하려고 한다. 탁주, 청주, 약주, 소주 종류별로 모았다. 그럼 시작한다.


[1]
삼양춘 X 에빗
오마이갓 스파클링 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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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 스파클링 봄꽃’은 전통주 양조장과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이 협업해서 만든 술이다. 삼양춘 양조장 그리고 에빗이 그 주인공이다. 역삼동에 있는 에빗은 2020년부터 꾸준히 미쉐린 가이드 1스타를 유지하고 있는 레스토랑이다. 사실 에빗과 삼양춘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7월에 ‘오 마이 갓’이라는 약주를 처음 선보였고, 올해 대대적인 리뉴얼을 하며 재출시한 것이다. 오 마이 갓의 특징은 백목련 꽃잎에서 나오는 향긋한 꽃향기, 그리고 스파클링이다. 도수는 9도로 이전 버전에 비해 5도 낮고, 스파클링을 주입해서 조금 더 산뜻하게 마실 수 있는 약주로 만들었다. 백목련 향이 강한 존재감을 띠고 있고, 약주 특유의 곡물 향과 잘 어울린다. 다른 약주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달콤함을 지닌 술이다. 마치 익선동에 있는 예쁜 한옥 카페 같다. 한옥의 뼈대를 갖추고 있지만, 에스프레소를 팔고, 재즈가 흘러나오는 그런 카페. 오늘 소개할 제품 중 가장 만족스러운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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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2만 8,000원. 한정 수량으로 판매하다 보니 재고가 없을 수도 있는데, 삼양춘 홈페이지에서 똑같은 제품은 아니지만 스파클링 약주가 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스파클링 약주의 가격은 2만 2,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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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춘에서는 막걸리, 청주, 약주 등 여러 종류의 전통주를 판매하고 있다. 술맛이 좋아서 지난 설에는 명절 선물 세트로 샀을 정도다. 참고로 삼양춘은 ‘세 번 담그는 술’이라는 뜻의 삼양주에서 왔다. 술을 세 번 담그기 때문에 더 많은 쌀이 들어가고, 담그는 기간도 길어진다. 그만큼 술맛은 더 진하고 깊어진다. 구매 링크는 여기.


[2]
술샘 / 서설(瑞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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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은 청주다. 나는 청주와 약주의 차이를 안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두 가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누룩의 사용 유무다. 주세법상 1% 미만의 누룩이 들어가면 청주, 1% 이상이 들어가면 약주로 분류된다. 1% 미만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누룩이 아닌 입국이 들어가는데, 누룩과 입국 둘 다 술을 발효시키는 발효제다. 다만 누룩은 밀로 만드는 것이고, 입국은 쌀로 만드는 것이며 보통 사케를 만들 때 쓴다(그래서 혹자는 입국을 쓴 술을 전통주라고 불러도 되느냐고 문제 제기를 한다). 누룩과 입국 안에서도 종류가 많은데 여기서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으니 이만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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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샘에서 만드는 서설은 청주다. 나는 어떤 제품을 구매하든 디자인에 가중치를 크게 두는 편이다. 전통주를 꺼내며 사람들의 환호를 받기 위해서는 ‘까리한’ 디자인이 중요하기 때문이다(물론 맛이 더 중요하긴 하다). 서설은 상서로운 눈이라는 뜻이다. 일반 종이로 라벨을 만들지 않고 스펀지 같은 소재로 눈이 소복이 쌓인 듯한 모양새를 표현했다. 라벨 재질이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시도는 좋다. 맛은 심심한 편이다. 향이나 맛에 특별한 캐릭터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친구의 모든 말을 귀담아듣는 타입이랄까. 이런 술은 맵고 짠 맛이 강한 음식과 먹을 때 어울린다. 알코올향을 유독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가격은 1만 5,000원.


[3]
한아양조 / 일곱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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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양조는 2021년 6월에 오픈한,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신생 양조장이다. 한산소곡주 양조장이 이선희라면, 한아양조는 엔믹스다.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를 넣지 않고, 오직 쌀로만 단맛을 냈다. 현재는 탁주 3종만 판매하고 있는데, 제품명이 귀엽다. 일곱쌀, 아홉쌀, 열두쌀. 각각의 숫자는 도수를 의미한다. 7%, 9%, 12%의 탁주가 한아양조의 라인업이다. 나는 지금껏 탁주를 한 번만 빚는 술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한아양조는 두 번 빚는다. 그 과정에서 막걸리 특유의 거친 맛이 사라지고 향미가 살아난다고 한다. 사과 향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나의 둔한 미각으로는 사과 향까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적당한 탄산에 목 넘김이 좋은 막걸리라 마음에 든다. ‘막걸리에 딸기, 포도 같은 걸 넣는 게 딱 질색’이라는 막걸리 근본주의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감미료가 없어서 입안에 텁텁한 느낌이 남지 않고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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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도 맛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건 라벨이다.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의 아이는 한아양조 대표의 일곱 살 때 사진이다. 일곱쌀에서 선명한 아이의 얼굴이 아홉쌀에서는 조금 흐리게 표현되는 것도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얼굴 걸고 장사하는 셈이다. 아쉬운 건 온라인 구매가 불가능하다는 점. 인스타그램 DM으로 예약 후 픽업하면 된다. 가격은 9,000원. 링크는 여기.


[4]
이쁜꽃 양조장 / 뱁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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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꽃 양조장 역시 오픈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첫 판매를 시작한 게 작년 7월 즈음이니 한아양조와 마찬가지로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다. 한아양조가 엔믹스라면, 이쁜꽃 양조장은 갓더비트다. 신인이지만 신인이 아니다. 이쁜꽃 양조장을 운영하는 양조사 양유미의 경력을 보면 ‘헐? 이게 그분이야?’ 하고 깜짝 놀라기 때문이다. 막걸리 부재료로 레몬, 건포도, 생강, 통후추, 천도복숭아 등을 넣는 실험적인 시도를 했던 구름아 양조장, 벌꿀술이라는 신세계를 소개했던 곰세마리 양조장을 거쳐온 인물이 바로 양유미 양조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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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꽃 양조장의 뱁새 역시 평범하지 않다. 이 술은 전통주에서는 보기 드문 ‘하이볼 전용 소주’다. 설명에 따르면 그대로 마시면 입안을 쪼이는 응축된 맛이 나고, 탄산수에 풀어 맛을 펼치면 달지 않은 식혜와 몸을 은근히 달아오르게 만드는 생강, 솔잎 향으로 마무리된다고 한다. 실제로 마셔보니 향이 굉장히 독특하다. 설명처럼 생강의 향도 나고, 마셨을 때는 견과류의 향도 느껴진다. 각각의 향이 서로 주인공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향이 복잡하다. 뱁새는 이쁜꽃 양조장의 약주 ‘황새’를 증류한 것인데, 황새의 맛은 어떨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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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2만 7,000원. 온라인 구매는 불가능하고 DM 예약 후 방문 픽업해야 한다. 이쁜꽃 양조장에는 전통주, 사케 등 여러 종류의 술이 있는데, 시음을 요청하면 친절한 설명과 함께 맛볼 수 있다. 이쁜꽃 양조장 인스타그램 계정은 여기.


 [5]
원스피리츠 / 원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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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는 제조 방식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된다. 희석식과 증류식. 참이슬, 처음처럼은 희석식 소주다. 90도가 넘는 주정을 물에 희석해서 도수를 맞춘다. 반면 화요, 일품 진로 같은 소주는 증류식 소주다. 증류식 소주는 희석식 소주와 달리 복합적인 향이 있다. 소주가 향미 없이 알코올밖에 안 느껴지는 술이면, 증류식 소주는 누룩 향, 바나나 향, 곡물 향 등 원재료에서 발현한 독특한 향을 품고 있다. 술에 민감하고 향에 예민한 사람들은 그 ‘디테일한 포인트’에 지갑을 여는 거다. 박재범이 출시한 원소주는 22도의 증류식 소주로, 막걸리 향을 은은히 풍기는 매력적인 소주다. 또 다른 증류식 소주인 화요의 17도가 너무 낮고, 25도가 너무 높다고 생각했다면 원소주가 좋은 선택이 될 거다. 소주의 날카로움 없이 부드러움이 도드라지는 좋은 술이다. 가격은 1만 4,900원. 더 자세한 리뷰가 궁금하면 여기.


[6]
청산녹수 / 편백숲 딸기스파클링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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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주나 청주에서 점잖게 한복을 차려입는 어르신이 떠오른다면, 막걸리는 조금 더 캐주얼한 느낌이다. 가평으로 MT를 가는 대학생 무리, 통 넓은 청바지에 오버핏 티셔츠를 입은 채 스케이트를 타는 젊은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막걸리는 역동적이고 발랄한 청춘이 연상되는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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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개하는 막걸리는 딸기 스파클링 막걸리다. 그 이름처럼 딸기가 들어갔고, 스파클링이 들어갔다. (요즘 막걸리에는 샤인머스켓, 포도, 딸기바나나 등 다양한 과일을 쓰는 게 유행인 듯 그런 시도가 눈에 띈다) 전남 장성에 있는 양조장 청산녹수에서 만든 딸기 막걸리는 로컬 재료를 적극 사용했다. 오직 장성에서 재배한 딸기와 찹쌀만 썼다. 한 모금 마셔보니 진짜 딸기의 맛이 느껴진다. 가향도 아니고 딸기 시럽을 넣은 것도 아니다. 딸기 농장의 이미지가 뭉게뭉게 그려지는 맛이다. ‘엄청 맛있다’라고 말하기엔 애매하다. 딸기 향은 좋으나 맛 자체는 건강한 느낌이다. 딸기 막걸리를 찾는 사람은 최소한 이것보다는 더 달고 나쁜 맛이길 원하지 않을까. 살짝 아쉽다. 탄산은 복순도가만큼이나 강하다. 덕분에 막걸리 열 때 고생 좀 했다.


[7]
술아원 / 복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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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단지는 복분자로 담근 과실주다. 흔히 복분자 하며 편의점에서 파는 빨갛고 둥근 복분자주를 떠올리곤 하는데, 술아원의 복단지는 그것과 맛에서 큰 차이가 있다. 설탕이나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단맛이 적다. 들어간 재료를 보면 국내산 복분자, 밀 누룩을 사용했고, 다른 재료는 전혀 넣지 않고 양조했다. 대놓고 단맛은 없지만 은은한 단맛은 느껴진다. 모임을 가질 때 복단지를 몇 번 사봤는데, 항상 반응이 좋았다. 병과 라벨도 귀여워서 챙겨가는 사람도 있었다. 생긴 건 귀엽지만 도수는 14도로 만만치 않다. 가격은 1만 9,000원으로, 양이 적다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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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