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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이 만든 소주, 원소주

안녕, 전통주를 좋아하는 에디터B다. 소문만 무성했던 ‘박재범 소주’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박재범이 콘서트와 미디어를 통해 ‘곧 소주를 출시하겠다’고 밝힌...
안녕, 전통주를 좋아하는 에디터B다. 소문만 무성했던 ‘박재범 소주’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2022. 03. 01

안녕, 전통주를 좋아하는 에디터B다. 소문만 무성했던 ‘박재범 소주’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박재범이 콘서트와 미디어를 통해 ‘곧 소주를 출시하겠다’고 밝힌 지 4년 만에 런칭이다. 아티스트의 주류 사업 진출은 외국에서는 흔하다. 제이지, 포스트 말론, 스눕 독 등 많은 아티스트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건 술을 출시하곤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시도는 처음이다. 게다가 그 술이 전통주라니! 오랫동안 박재범의 ‘원소주’를 기다려왔던 사람으로서 드디어 리뷰를 하게 되어 기쁜 마음이다. 리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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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디자인부터 훑어보자. 눈에 바로 들어오는 건 범상치 않은 디자인의 블랙 라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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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질이 독특하다. 대부분의 전통주에서는 종이 라벨을 쓰는데, 원소주에서는 천을 사용했다. 천의 텍스처가 사진으로 전달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보면 다르다는 것이 바로 느껴질 정도다. 덕분에 손으로 병을 쥐었을 때의 느낌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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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주류학개론>, 매거진 <에스콰이어>, <하입비스트> 등의 인터뷰를 보니 천 라벨을 사용한 의도가 있었다.

“라벨을 만졌을 때 뭔가 만져지는 느낌이 들면 좋겠다”, “전통 느낌이 나도록 텍스처가 두드러졌으면 좋겠다”, “긁히면 스크래치가 나는데 전통술에 어울리는 빈티지한 느낌이 생긴다”.

종이가 아닌 천을 쓴 것이 단순히 목적 없는 차별화가 아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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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에는 흰색과 검은색만 사용되었다. 얼핏 단순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그 안에는 굉장히 많은 요소가 들어가 있어서 하나씩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가장 중심에는 물방울이 떨어지며 파장을 일으키고, 원소주를 상징하는 W를 그 뒤에 배치했다. 그것들을 둘러싼 그래픽은 태극기의 건곤감리다. 건곤감리 주변에는 태극 문양, 화폐단위 원, AOMG 로고에 들어가는 지구 모양, 알파벳 W가 둘러싸고 있다. 대부분의 소주는 한국인을 타깃으로 만들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외 시장을 함께 공략하는 원소주는 과감하게 한국적인 디자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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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음식품 패키지 디자인을 보면 제품명에 강렬한 컬러로 힘을 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원소주는 제품명만 강조하지 않고 라벨을 하나의 아트웍처럼 표현된 게 재미있다. 아트웍에서는 주연과 조연이 정해져 있지 않다. 시선이 닿는 곳이 중심이 되고, 그래서 감상자에 따라 그림은 다른 의미를 전하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 원소주의 라벨이 그렇다. 각각의 전통적인 그래픽이 각각 주인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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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폰트도 재미있는데, 한국인의 기준에서 이런 폰트는 사실 세련된 폰트가 아니다. 90년대 개봉했던 영화 속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빈티지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소주 라벨에는 꽤 어울린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이 봤을 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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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주를 상징하는 그래픽은 뚜껑에도 있다. 라벨부터 뚜껑까지, 디자인 하나만큼은 마음에 드는 제품이다. 자, 디자인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얘기하고, 이제 가장 중요한 맛 평가로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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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증류식 소주 시장은 화요와 일품진로 두 곳이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외에 서울의 밤(법적으로는 리큐르로 구분된다), 토끼소주도 있지만 오늘은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두 제품하고만 비교를 해보도록 하겠다. 두 제품 모두 도수는 25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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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하며 시음을 해보니 원소주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일단 원소주는 향이 독특하다. 뚜껑을 열자 막걸리 향이 은은하게 올라왔다. 한국인이라면 ‘어? 막걸리 향이 나네?’라고 생각할 만한 분명한 막걸리 향이다. 막걸리를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바나나 향이 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수가 22도라 목 넘김이 깔끔하고 부드러웠다. 원소주는 증류 후 옹기에서 2주 동안 숙성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는데 그 과정에서 좀 더 부드러워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원소주가 처음 혀에 닿을 땐 자극적인 느낌이 없었고, 향이나 맛이 둥글다는 인상이었다. 나는 희석식이든 증류식이든 알콜의 날카로움이 있는 게 소주라고 생각해왔는데, 원소주는 그게 덜하다. 둥근 느낌이다. 끝 맛은 약주처럼 약간의 구수함도 살짝 느껴진다. 참고로 원소주는 충주 고헌정영농조합법인에서 위탁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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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품진로의 향은 날카롭다고 해야 할까. 물론 도수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도수가 같은 화요와 비교하더라도 확실히 더 강하게 느껴진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날카로움과 부드러움 같은 말들은 취향의 차이일 뿐, 무엇이 더 좋다고 하는 말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부드러운 원소주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박재범이라는 이름을 빼고 제품만 놓고 평가를 해도 충분히 좋은 술이다. 원소주의 가격은 1만 4,9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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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22도가 증류식 소주치고는 너무 낮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하반기까지 기다려 보면 좋겠다. 협동조합모월에서 위탁 생산하는 소주가 하반기에 생산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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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증류식 소주 예찬론을 펼치긴 했지만, 사실 희석식 소주도 그만의 매력이 있다고 본다. 삼겹살에 소주를 반드시 증류식 소주가 대체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중요한 건 전통주가 인기를 얻으면 우리에겐 더 많은 선택권이 생긴다는 거다. 삼겹살에 청주, 삼겹살에 약주 같은 다양성도 언젠가는 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연남동의 바다회사랑에서 원소주를 만나게 될 날을 기다려본다. 방어회와 소주 조합이라, 군침 돌지 않나.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