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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 나의 인생 아이스크림 9

안녕, 술 마시면 꼭 아이스크림을 찾는 에디터B다.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으로 투표 하나를 했다. “아이스크림은 여름에 먹어야 맛있다 VS 겨울에 먹어야...
안녕, 술 마시면 꼭 아이스크림을 찾는 에디터B다.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으로 투표 하나를…

2022. 02. 13

안녕, 술 마시면 꼭 아이스크림을 찾는 에디터B다.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으로 투표 하나를 했다.

“아이스크림은 여름에 먹어야 맛있다 VS 겨울에 먹어야 맛있다”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겨울에 먹어야 맛있다’가 두 배에 가까운 수치를 기록했다. 당연히 여름 아이스크림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 예상했으나,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당황스러우면서 반가웠다. 나도 ‘겨울파’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아이스크림 없이 겨울을 나지 못하는 아홉 명에게 인생 아이스크림이 뭐냐고 물었다. 제품이 겹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사람들의 입맛은 천차만별이었다. ‘그 아이스크림’을 고른 이유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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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렉션 딸기맛 / 프리랜서 에디터 김해서 

롯데제과의 ‘셀렉션’은 초코맛만 따로 묶여 나올 정도로 초코 애호가들의 환영을 받는 아이스크림이다. 그에 비해, 딸기맛은 찬밥신세. 어디서도 셀렉션 딸기맛을 더 좋아한다는 사람은 못 본 것 같다. 과거엔 슴슴한 단맛의 매력을 몰랐기에 초코맛을 하나라도 더 먹으려 동생과 다퉜지만, 지금의 나는 딸기맛 처리반. 심지어 77kcal밖에 안 된다!(초코맛은 102kcal) 앙증맞은 사이즈라 식후에 가볍게 입가심하고플 때도 좋다. 떨어지기 무섭게 냉장고에 비축해두는 내 오래된 디저트 메이트, 셀렉션. 이쯤 됐으면 딸기맛도 따로 내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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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콘 쿠앤크 / 폴인 에디터 황은주 

월드콘 쿠앤크맛을 아시는지? 기존 월드콘 오리지널 위에 감질나게 입혀진 초콜릿과, 한 줌도 안 되는 땅콩가루에 아쉬움을 느낀 분들을 저격하는 신상이다. 쿠앤크와 콘이라니 이거야말로 ‘맛없없'(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랄까. 특히 겨울철 재택근무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창문을 열기엔 춥고 닫으면 머리가 살짝 멍해지는 오후에 먹어보시길. 적당히 떨어진 당을 채우기에도 손색없고, 차가운 크림을 입에 넣는 순간 정신도 번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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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가이 피치 / 디에디트 에디터M 

명치까지 시려오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이런 아이스크림을 소개한다는 게 좀 춥긴 하지만, 나의 인생 아이스크림은 아이스가이 피치다. 좀 생소할 수도 있다. 아이스크림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우유가 들어간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아니니까. 아이스가이는 빙과류에 가깝다. 물에 복숭아맛 시럽을 탄 뒤 얼려낸 얼음을 망치로 아무렇게나 깬 모양을 하고 있으니까. 플라스틱 통을 통째로 들고 입안에 탈탈 털어 넣은 얼음을 이로 아그작아그작 깨서 먹으면 이를 넘어 뇌까지 얼어붙는다. 입안이 텁텁해지는(우유나 초코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이스크림과 달리 질리지 않고 끝까지 먹을 수 있고, 칼로리도 고작 10kcal 정도다. 낮은 칼로리 덕분에 여름 밤이면 나는 어떤 죄책감도 없이 아이스가이를 찾는다. 아이스가이를 더 맛있게 먹는 나만의 시크릿 레시피가 있는데, 아이스가이를 반 정도 먹고 남은 통에 제로 콜라를 부어 마시는 거다(0더하기 10은 여전히 10kcal다). 작년 8월, 정수리를 뜨겁게 공격하는 태양을 피해 도망치듯 들어간 편의점에서 친구가 건넨 이 레시피로 나는 구원 받았다. 목에 맺혔던 땀이 순식간에 얼고 두 분이 번쩍 뜨이는, 최고의 여름 편의점 음료라 자부한다. 이 겨울에도 여름이 그리워지는 맛. 어느 여름에 여러분도 아이스가이 제로 콜라 레시피로 구원받는 순간이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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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 오리지널 / 다노 데이터엔지니어 장석현 

세상에는 맛난 아이스크림이 많다. 그래서 하나를 고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굳이 고르자면 추억과 관련 있는 걸로 고르고 싶었다. 그건 바로, 구구 크러스터. 구구구구구, 비둘기가 떠오르는 아이스크림. 나에게 인생 아이스크림이란 어린 시절 엄마가 병원 가기 싫다고 우는 나에게 쥐여준 구구 크러스터가 아닐까. 지금도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하나씩 냉동실에서 꺼내어 먹는다. 구구 크러스터는 나에게 있어 마음에 바르는 빨간약이다. 이 아이스크림의 킬링 포인트는 살짝 녹은 상태에서 먹어야 한다는 것(이걸 위해 냉동실 온도를 최소한으로 설정했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초코와 바닐라 그리고 겉에 묻은 바삭한 초콜렛과 아몬드의 조화란. 여기가 바로 지상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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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앤크/ 토스 에디터 기명균 

평소 아이스크림을 자제하는 편이다. 너무 좋아해서,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었다가는 뒷수습이 힘들어질 테니까. 자제에 실패할 때도 많다. 디에디트에서 ‘인생 아이스크림’ 원고 청탁을 받은 오늘 같은 날. 생생한 원고를 쓰려면 반드시 먹어봐야지! 후보가 몇 개 스쳐 갔지만, ‘인생’이란 수식어를 감당하기엔 베테랑 쿠앤크가 제격이다. 쿠키는 딱딱하고 크림은 느끼한데, ‘쿠앤크’는 부드럽고 담백하다. 1+1이 2 이상이 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기업들의 M&A가 모두 실적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듯이. 그런 점에서 쿠앤크는 성공적인 M&A의 결과물이다. 쿠키와 크림 중 누가 누굴 인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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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비얀코 / 디에디트 에디터H 

더블 비얀코를 처음 먹어봤을 때, 나는 중2병을 앓고 있는 조숙한 초등학생이었다. 당시엔 그게 아주 고급스러운 디저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실제로 다른 아이스크림에 비해 비싸기도 했다). 친구들한테 “니네 샤베트가 뭔지 알아?”라고 으스대기도 했다. 나는 뭐든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는 걸 좋아했는데, 막대 아이스크림은 녹아서 흐르기 전에 허겁지겁 먹어야 하는 게 영 섭섭했다. 반면, 더블 비얀코를 먹는 과정은 실로 귀족적이지 않은가. 처음엔 부드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살살 돌려가며 혀로 먹다가, 나중엔 밑뚜껑에서 작은 스푼을 꺼내 숨겨진 샤베트를 맛보는 비밀스러운 즐거움이 있었다. 사과맛 샤베트 덕분에 상큼하게 입가심이 된다. 샤베트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더블 비얀코는 두 가지를 함께 먹었을 때 비로소 완벽해진다. 맛있는 걸 먹으면서 그다음에 먹을 맛있는 걸 기대하게 만드는 두근거림. 코스 요리를 먹는 것 같은 기다림 자체가 더블 비얀코의 미학이었다. 게다가 지금 봐도 놀라운 혁신이 아닌가. 서로 다른 맛의 두 가지 아이스크림을 한 통에 담고, 밑바닥에 스푼을 숨겨두는 센스까지. 2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먹을 때마다 새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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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초 / 디에디트 에디터B 

사실 아이스크림을 딱 하나만 사 본 적이 거의 없다. 기왕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결심했다면, 네 개 정도는 사야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 ‘인생 아이스크림’ 하나만 고르는 건 버거운 일이다. 그래도 다른 분들이 모두 하나씩 골랐는데, 정작 원고를 청탁한 사람이 네 개를 적어버리면 다음부터는 안 써줄 것 같아서 고민 끝에 하나만 골랐다. 바로 엔초다. 엔초는 크게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안쪽에는 딱딱한 초콜릿이 있고, 그 초콜릿을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감싸고, 겉면은 초콜릿이 또 감싼다. 그러니까 엔초 말만 아이스크림이고 ‘초콜릿 바’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당뇨가 걱정될 정도로 달아서 하나 이상은 먹기 힘들지만, 끊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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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빠레 초코 / 커리어리 커뮤니티 매니저 주윤하

초콜릿을 좋아하지만 단 건 좋아하지 않고, 그럼에도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날이면 무조건 빵빠레 초코를 고른다. 슴슴한 맛의 옥수수콘 위에 코코아 가루를 넣어 만든 초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얹은, 변주 하나 없는 정직한 아이스크림. 토핑도 없고 단맛도 덜하면 먹는 재미가 없지 않냐 할 수도 있는데, 그건 빵빠레를 제대로 먹어보지 않았다는 얘기다. 빵빠레는 이가 아닌 입술로 먹는 아이스크림이다. 입술로 아이스크림의 표면을 살살 긁어내어 입안에 들이고 사탕을 녹여 먹듯 천천히 굴려 가며 녹여 먹었을 때 비로소 빵빠레의 진가를 알 수 있다. 특히, 빵빠레 초코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뭉근한 코코아를 한 잔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코코아 가루를 섞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따뜻한 햇살이 드리운 카페에 앉아서 마시는 코코아 같단 생각이 몽글몽글 피어오를 때, 남아있던 옥수수콘을 먹기 시작하면 이 느낌이 점점 희미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입안에 맴돌던 아이스크림이 옥수수콘에 스며들고, 젖은 옥수수콘을 꼭꼭 씹어 삼키면 언제 먹었냐는 듯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니까. 빵빠레 초코의 빈 케이스를 보면 분명 먹은 게 맞는데 입안은 어째서 깔끔하기만 할까. 기억나지 않는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에, 텁텁한 걸 좋아하지 않지만 이때만큼은 한 숟갈 넉넉하게 담아주면 좋겠다는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나온다. 그래도 나는 이런 빵빠레 초코가 참 좋다. 미련 따위 1도 남겨두지 않는 쿨하디 쿨한 아이스크림이지만. 아이스크림 하나로 전혀 다른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는, 맛에도 시공간이 있다면 시공간을 넘나드는 재미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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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엔제리스 청키몽키 / 바이브랜드 에디터 김정년

내게 최고의 아이스크림은 언제나 편의점에서 파는 파인트 아이스크림이었다. 둥근 종이그릇에 플라스틱 뚜껑을 덮은 고급 아이스크림, 밥숟가락으로 긁어내도 쉽사리 모양이 뭉개지지 않는 우유 아이스크림, 표면 위를 큼지막하게 도려내서 한술 뜨면 꾸덕한 식감과 기분 좋은 단맛이 느껴지는 아이스크림 말이다. 2019년 가을, 밴앤제리스가 국내 공식 수입을 시작했다. 편의점으로 달려가며 휘파람을 불었다. 내가 먹어본 아이스크림 중에 가장 꾸덕하며 기분 좋은 향미를 주는 우유 아이스크림이었기 때문이다. 이 브랜드가 뽑아내는 모든 제품을 사랑하지만, 그중 하나를 뽑자면 역시 청키몽키다. 바닐라와 바나나가 공존하며 드러내는 이색적인 우유 맛이 끝내준다. 입안에서 재미난 식감을 주는 견과류와 초콜릿이 아이스크림에 킥을 준다. 팬이 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는 브랜드다. 시대를 앞선 ESG 경영이 존경심을 부른다고 해야 할까. 원료를 어디서 끌어와 어떻게 가공하는지, 벌어들인 돈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하는지를 열심히 알렸던 곳이다. 파타고니아와 마찬가지로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는 퀄리티의 제품을 뽑아낸다는 게 좋다. 아이스크림이 맛있는데 심지어 좋은 일하는 곳이라고? 할인행사를 적게 하는 건 아쉽지만, 좋은 일 한다 생각하고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갑을 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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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