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대륙은 정말 실수하는 걸까?

안녕하세요, IT 칼럼니스트이자 슬로우어답터 최호섭입니다. 저는 천천히 알아보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게 아니라 딱히 필요하지는 않은데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을 망설이다가...
안녕하세요, IT 칼럼니스트이자 슬로우어답터 최호섭입니다. 저는 천천히 알아보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게 아니라…

2022. 02. 23

안녕하세요, IT 칼럼니스트이자 슬로우어답터 최호섭입니다. 저는 천천히 알아보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게 아니라 딱히 필요하지는 않은데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을 망설이다가 끝물에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 조금은 게으르고 호기심 많은 INFP 같은 소비자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 그거 정말 괜찮은 걸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하다가 야심한 밤 원고 작업이 끝나고 잠들기 전 우발적인 소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지내다 보면 바다 건너 온 선물처럼 현관에 택배가 놓여 있곤 하지요. 그렇게 지른 것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레노버의 ‘샤오신 패드 P11’과 QCY의 ‘T13’입니다.

1400_retouched_-11

“아… 또 그거 좋다고 사라는 얘기인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저도 오며가며 글 제목이나 유튜브 썸네일만 봐도 지긋지긋할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어쨌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들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결국 그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잉여로운 소비를 적잖이 했습니다.

레노버의 샤오신 패드 P11은 지난 2021년 가장 뜨거운 반응을 받은 제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흔히 쓸 만하고 저렴한 중국산 태블릿이라고 하면 샤오미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요. 레노버는 어떻게 보면 브랜드 이미지도 샤오미보다는 조금 더 비싼 편에 속하기도 하고, 레노버 태블릿은 우리에게 낯설기도 하지요.

1400_retouched_-1

그런데 이게 왜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을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싸니까요.

11인치의 이 태블릿은 4GB 메모리에 64GB 스토리지를 넣은 제품과 6GB에 128GB 스토리지 제품으로 나뉘는데, 13만~16만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6GB/128GB 제품에 보호필름과 케이스까지 다 해서 16만 원 남짓한 가격에 넘어가서 지난 연말에 손에 넣었습니다.

1400_retouched_-4

사실 제품을 받기 전까지 깊게 살펴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미 아이패드를 잘 쓰고 있기 때문에 태블릿이 더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지요. 성능은 더더욱 관심이 없었고요. 제품을 셋팅하면서 살펴보니 스냅드래곤 662가 들어 있더군요. 이 칩은 스냅드래곤 660을 개선한 중급형 통합 칩으로 성능은 비슷하지만 전력 효율이 더 좋습니다.

스냅드래곤 600 시리즈는 아무래도 낯설지요. 저는 스냅드래곤 660을 샤오미의 홍미노트 시리즈를 통해서 처음 접했었는데 안드로이드 OS가 아주 빠릿빠릿하지는 않았지만 앱 실행 속도나 미디어 재생, 심지어 게임도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10만 원대 스마트폰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날려버린 칩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발열과 배터리가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1400_retouched_-2

스냅드래곤 663를 쓴 P11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런처의 홈 화면을 이리저리 만져보면 ‘조금 버거운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앱을 실행하고 미디어를 재생하면 이내 그런 불안이 사라집니다. 이야기가 길었는데, 아이패드만큼 빠릿하지는 않지만 성능은 부족하지 않고 원하는 일들을 해내는 데에 전혀 거슬리는 것이 없습니다.

특히 미디어 재생이 만족스러웠습니다. 화면은 11인치 2000×1200 픽셀 해상도로 5:3 비율입니다. 16:9보다는 위아래가 조금 남고, 16:10보다는 조금 짧습니다. 그래서 11인치 아이패드 프로보다 영상을 볼 때는 더 넓어 보입니다. DCI-P3나 HDR이 되지는 않지만 화면 밝기나 색 표현력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건 ’10만 원대 제품치고 좋다’가 아니라 그냥 봐도 괜찮습니다.

1400_retouched_-6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스피커인데, 대개 이런 제품들은 스피커에 거는 기대가 크지 않습니다. 가볍고 찢어지는 소리가 나게 마련이지요. ‘아이패드 외에는 안 된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따로 블루투스 스피커 생각이 별로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전체적으로 아이패드와 비교할 수 있을 제품은 절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태블릿 앱 이용이 많고, 무엇인가 만드는 일에 필요하다면 P11보다는 조금 무리해서라도 9세대 아이패드를 고르는 것이 나을 겁니다. 하지만 콘텐츠를 소비하는, 그러니까 영상이나 음악, 전자책, PDF 등을 보는 용도로는 아주 훌륭합니다. 물론 그 만족도의 상당 부분은 ‘이 값에 이 정도야?’라는 가격의 만족이지요.

고장 나면 어쩌냐고요? 하나 더 사도 아쉬울 게 없는 가격이라고 봅니다. 마침 한 단계 위의 프로세서와 디스플레이를 쓴 P11프로가 이 제품에 이어 가격을 내리는 중이어서 솔깃하기도 합니다.

1400_retouched_-9

지난해에 질렀던 것 중 하나는 QCY T13 이어폰입니다. 하도 신제품이 많이 나와서 ‘월간 QCY’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인데, 몇 가지 제품을 써 본 입장에서 T1은 너무 만족스러웠고, 중간의 제품들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T13은 T1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제품입니다.

음질이나 음색은 평가하기가 어렵지만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싼 티가 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소리 좋다고 꼽는 이어폰, 헤드폰 브랜드들에서 내놓는 것 중에서 이름 모르는 엔트리 모델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뭉개지지 않고 정확한 소리가 나면서도 고음이나 저음이 튀지 않고 전체적인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가벼운 유튜브 영상을 보기에도 좋고, 음악도 괜찮습니다.

1400_retouched_-10

귀에 꽂히는 느낌도 좋습니다. 인이어 이어폰들이 오래 꽂고 있으면 귀 안쪽이 눌리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표현이 애매하지만 ‘적당하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배터리도 오래 가서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잠깐잠깐 꽂아두면 충분합니다.

이게 2만 원이 안 되는 값에 살 수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지요. 별다른 연결고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레노버 P11과 함께 사면 18만 원 남짓한 거예요. 가격만으로도 적지 않은 부분을 양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중요한 부분은 별로 양보할 것도 없다는 점입니다.

1400_retouched_-13

흔히 이런 제품들을 두고 ‘대륙의 실수’라고 하죠. 제가 처음 대륙의 실수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제품을 구입했던 게 한 10년쯤 전에 구입했던 이어폰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밋밋했는데 한 달 정도 써본 뒤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더 사 둘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이때만 해도 ‘실수’라는 쪽에 더 중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제품들에 비해 엄청나게 좋다는 느낌은 아니었고, 이 가격대에 꽤 좋은 소리를 낸다는 점이 재미있었던 거죠.

하지만 그 이후에 이어진 샤오미의 제품들은 ‘어디에서 수익을 내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파격적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피트니스 밴드를 비롯해, 공기청정기, 선풍기까지 샤오미는 큰 재미를 주었죠. 오디오 쪽의 중국 제품들의 비중은 더 놀랍습니다. 1~2만 원 하는 브랜드의 이어폰들을 여럿 사 봤는데, 이제는 중국의 오디오 기술이 이어폰에 대해서는 전통적 강자인 독일이나 일본의 제품들 못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1400_retouched_-3

특히 무선 이어폰은 리시버의 기본적인 수명과 배터리를 비롯해 잃어버릴 위험이 높기 때문에 소모품의 특성이 더 짙어졌죠. 그래서 1만 원대에 구입할 수 있는 이 정도의 이어폰은 아주 매력적입니다. 막말로 제품이 고장 나면 골치 아픈 서비스 대신 새 제품을 다시 사면 되고, 잃어버려도 밤잠을 설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입니다.

1400_toro-tseleng-3tTjVqxhQuw-unsplash

이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는 중국 제품들, 중국 브랜드들에 대한 불신이 중심에 있습니다. 싸지만 어딘가 부족한 데가 있는 거죠.

하지만 근래 중국의 IT 기기들을 구입해보신 분들은 비슷하게 느끼셨을 겁니다. 이미 스마트폰, 태블릿을 비롯한 스마트 기기는 성능을 좌우하는 프로세서, 디스플레이 기술이 보편적으로 상향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플래그십 급의 프로세서가 아니라 한 단계만 내려오면 비교할 수 없는 가격에 부족하지 않은 성능을 얻을 수 있지요. 아주 단순하게 보면 정해진 부품을 적절한 조합으로 조립하고, 윈도우를 설치하면 큰 편차 없이 비슷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PC의 모듈화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1400_retouched_-8

이어폰 역시 블루투스와 소리를 처리하는 칩이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성능을 내고, 소리를 결정하는 진동판 등의 소재도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적절한 디자인에 조립만 잘하면 괜찮은 제품들이 나오는 겁니다. 점차 더 많은 것들이 모듈화되면서 이런 식의 제품들은 더 많이 쏟아질 겁니다. 당장 모터와 배터리가 중심이 되는 전기차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지요.

결국 제조사, 브랜드 사이 기기 품질의 간극은 더 줄어들게 될 겁니다. 가격은 더 중요한 소비의 결정 요인이 될 테고요. 다른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은 하드웨어만으로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지요. 다시금 그 차이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뻔하지만 소프트웨어가 주는 가치를 돌아보게 됩니다. 에어팟의 공간 오디오가 여느 무선 이어폰과 다른 재미를 주는 것처럼 말이지요.

1400_jayalekshman-sj-b6r7UiR7I1w-unsplash

‘대륙의 실수’는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이미 대륙은 ‘실력’을 갖게 됐고, 마법 같은 가격에 놀라운 제품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조금씩 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경험하면 그 막연한 불안감은 사라지고, 매력적인 가격에 다시 손이 가게 됩니다. 중국 제품을 바라보고, 접하는 기준점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지요. 올해는 또 대륙이 어떤 ‘실력’을 보여줄까요?

About Author
최호섭

지하철을 오래 타면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모바일 기기들이 평생 일이 된 IT 글쟁이입니다. 모든 기술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공부하면서 나누는 재미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