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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먹한 명절엔 와인이 필요해

안녕, 디에디트 객원필자 김은아다. 와인은 함께 마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술이라고들 한다. 와인에 깃든 이야기를 알고 나면 더 맛있는...
안녕, 디에디트 객원필자 김은아다. 와인은 함께 마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술이라고들…

2022. 01. 28

안녕, 디에디트 객원필자 김은아다. 와인은 함께 마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술이라고들 한다. 와인에 깃든 이야기를 알고 나면 더 맛있는 술이라는 말도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 사이에 서먹한 분위기를 풀어줄 재미있는 와인 이야기가 필요하다거나, 메시지가 담긴 와인으로 새해 덕담을 건네고 싶다면 이 네 병의 와인을 선택해 보자.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으로만 골랐다.


[1]
Vueve Clicquot Yellow Label

뵈브 클리코 브뤼 옐로 레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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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만큼 설에 잘 어울리는 와인이 있을까. 코르크를 열 때의 경쾌한 ‘펑!’ 소리가 지난 한 달간의 미적지근함을 날려주는 것 같다.(사실 샴페인의 정석 매너는 최대한 소리 나지 않게 오픈하는 것이 매너. 그래도 기분이니까!) 어차피 한국인의 진짜 새해는 설부터니까 이제부터 잘하면 된다구! 이런 셀프 최면과 함께 뽀글뽀글 기포가 오르는 황금빛 샴페인을 나눠 마시면 올해가 다 잘 풀릴 것만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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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좋은 의미까지 담은 와인을 선택하면 술자리는 한결 더 훈훈해질 것. 그럴 때는 경쾌한 노란색 라벨을 갖춘 뵈브 클리코를 선택하면 좋다. 그 자체로 성공의 상징과도 같은 와인이니까.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기 위해서는 200년 넘게 거슬러 ‘바브 니콜 퐁사르당’이라는 사람을 만날 필요가 있다. 그는 클리코 가문의 아들과 결혼했는데, 남편이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문 와이너리의 경영을 맡게 된다. 당시로서는 여성이 와인 생산은커녕 사회적인 활동도 자유롭지 못했던 때. 그러나 ‘마담 클리코’는 마치 이 기회만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활약하기 시작한다.

1400__2 [이 분이 바로 샴페인 품질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마담 클리코.]

대표적인 것이 샴페인 품질의 혁신적인 개선. 샴페인 생산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와인에 효모 찌꺼기가 생기는데, 이 찌꺼기를 술과 분리해 완벽하게 제거하는 방법과 도구를 고안한 것이다. 마시기 전 필터링 과정을 거치고도 침전물과 섞여 뿌연색의 샴페인을 마셔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혁신과 다름없었다. 샴페인 병에 지금 같은 노란색 컬러 라벨을 부착하고, 특정 해의 포도만을 사용해 만드는 빈티지 샴페인을 생산하는 최초의 시도들 역시 모두 마담 클리코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러니 새로운 출발점에 선 이들과 성공을 기원하며 건배하기에 이만한 와인이 없을 듯싶다. 참, 샴페인 이름의 ‘뵈브(Veuve)’는 미망인이라는 뜻. 비극적인 단어가 성공의 상징으로 바뀌었으니, 역전 드라마를 만들라는 격려로도 좋겠다. 7만 원대.


[2]
Castello Banfi, Chianti Classico Riserva
반피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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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이는 명절. 반가운 재회의 순간은 찰나이고, 걱정과 덕담을 빙자한 질문 전쟁이 펼쳐지기 마련. 슬슬 날카로워지는 기류를 막아보고자 TV나 보자며 리모컨을 들었는데, 화면에 힘있게 등장하는 대선 후보들. 어느새 주제가 정치 토크로 넘어가고, 가족의 평화는 물 건너갔다 싶을 때면 이 와인을 토템처럼 꺼내 들자.

이 와인 병에 새겨진 검은색 수탉이 평화의 상징이기 때문(수탉 엠블럼은 반대편 라벨에 그려져 있다). 와인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에서 생산되었는데, 이곳이 1300년대 피렌체-시네나의 영토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검은색 수탉이라고 한다. 사건은 이렇다. 피렌체와 시에나 두 도시 국가는 기병 한 명과 수탉 한 마리를 준비하고, 새벽에 자국의 수탉이 우는 소리에 기병이 뛰어가 서로 만나는 지점을 국경으로 정하기로 했다. 피렌체는 자신들이 준비한 검은 수탉 덕분에 훨씬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1400_bp2 [바로 이 수탉이 와이너리를 상징하는 그 수탉]

중요한 것은 이탈리아 와인, 그중에서도 키안티 와인이 한식과 뛰어난 궁합을 보여준다는 것. 키안티 와인은 ‘산지오베제’라는 이탈리아 토착 품종으로 만드는데, 풍부한 과실 향과 산미를 갖추고 있는 것이 매력. 반피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에서는 감초와 초콜릿 풍미와 함께 체리, 라즈베리와 같은 붉은 과일 향을 느낄 수 있다. 레드 와인 특유의 묵직하고 드라이한 맛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편안하게 마실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묵직한 티본스테이크에 곁들이는데, 명절 음식으로는 갈비찜과 전 등 기름이 풍부한 음식과 함께하면 잘 어울린다.

와인병의 DOCG는 이탈리아에서 ‘최고 품질 와인 생산지’로 인정받은 지역의 와인에만 부착할 수 있는 등급이다.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는 최소 24개월 이상 숙성했음을 의미한다. 4만 원대.


[3]
Spy Valley, Sauvignon Blanc

스파이밸리 소비뇽 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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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얼죽아, 얼죽코 회원분들이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얼죽화에 가입하실 생각 없는지. 얼어 죽어도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모임이다(현재 회원 1명). 시베리아보다 추운 한국의 겨울에도 굽히지 않고 마이웨이를 걷는 이들이라면 그 진가를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솔깃하다면 이번 명절에 살짝 발을 들여놓아 보는 것은 어떨지. 기름지고 무거운 명절음식으로 텁텁해진 입을 화이트 와인으로 환기시켜 줄 때다.

Wineglass,With,Grapes,On,A,Wood,Table,,Italian,Wine,,Glass

화이트와인 중에서도 상큼함의 끝을 보고 싶다면 역시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이다. 뉴질랜드에서도 남섬의 말보로 지역은 품질이 뛰어나면서도 가격이 합리적인 소비뇽 블랑을 생산하기로 유명한 곳. 일조량이 풍부하고 기온과 습도가 포도나무 재배에 최적화되어있기 때문인데, 스파이밸리 와이너리 역시 말보로에 위치해 있다.

이곳의 소비뇽 블랑은 레몬과 시트러스, 자몽과 청사과 등 이름만 읊어도 침이 고이는 새콤한 과일로 이루어진 바구니를 받아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청량하고 풋풋하지만 미네랄 뉘앙스도 충분해 산미가 날카롭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풍부한 허브향까지 더해져 마치 마시는 샐러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여름에 마시는 소비뇽 블랑이야 말할 것도 없이 좋지만, 겨울에 마시는 이 한 모금은 찜질방에서 만나는 식혜보다 달다. 3만 원대.


[4]
Gonzales Byass Alfonso Oloroso

곤잘레스 비야스 알폰소 올로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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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재충전 시간으로 조용히 연휴를 보내고 싶은 이에게는 셰리와인을 추천하고 싶다. 스페인이 고향인 셰리와인은 일반 와인과 다르게 숙성 과정에서 브랜디를 첨가해 도수가 높다. 배로 물자를 수송해야했던 시절, 영국까지 와인을 수출하는 동안 맛이 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다. 어느 단계에서 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하는지, 숙성 중 공기를 얼마나 접촉하는지에 따라 셰리도 여러 종류로 나뉜다. 올로로소는 와인을 공기와 접촉하며 산화 과정을 거쳐 깊은 맛을 낸다. 이 과정에서 진한 바닐라와 견과류, 캐러멜 등의 깊고 구수한 풍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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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은 달콤하지만 맛은 드라이하고 깊다. 그래서 요리보다는 초콜릿이나 치즈 정도의 간단한 간식거리를 곁들이는 것이 좋다. 명절 차례상에서는 호두 등의 견과류, 약과, 강정처럼 한식 디저트와도 잘 어울린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보내는 조용하고 낭만적인 겨울밤에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알코올 도수 40도를 육박하는 위스키가 부담스럽다면, 자기 전 한 잔씩 홀짝이는 나이트캡으로도 좋다. 3만 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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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전시, 공연, 와인에 대한 글을 씁니다. 뉴스레터 '뉴술레터' 운영자. 뭐든 잘 타요. 계절도, 분위기도, 쏘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