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book] 미스터리 소설 좋아해?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퍼블리를 위해 남이 쓴 글을 읽고,...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2021. 07. 15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퍼블리를 위해 남이 쓴 글을 읽고, 주말엔 디에디트를 위해 내가 읽은 것에 대해 쓰고 있다.

날씨가 확 더워진 이번 달에는 신작 미스터리 소설 다섯 권을 골랐다. 누가 ‘어떤 책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추리소설이요!”라고 답하곤 한다. 그래서 이 글을 준비하는 한 달간 행복했다. 혹독한 여름을 나는 데 이 리스트가 도움이 되기를.


[1]
<영매탐정 조즈카>

“중간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출발점과 결론만 보여주면,
다소 유치하긴 해도 상대를 놀라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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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매우 화려하다. 지하철에서 꺼내 읽기엔 용기가 좀 필요했다. 띠지에 적힌 수상경력 또한 표지 못지않게 화려하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본격 미스터리대상 수상작…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는 매년 미스터리소설 랭킹을 발표하는 일본 잡지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요네자와 호노부 등 인기 작가들이 이 랭킹을 거쳐갔으니, 신뢰할 만한 기록이다.

‘본격 미스터리’는 미스터리 중에서도 ‘사건-단서-해결’이 주요 뼈대를 이루는 장르를 뜻한다. ‘사건’이 벌어지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혹은 방해가 될) ‘단서’들이 하나씩 공개되고, 탐정 역할의 주인공이 누가/어떻게/왜 이 사건을 저질렀는지 밝혀내면서 사건이 ‘해결’된다. 코난이나 김전일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제목을 보아하니 이 책에서는 ‘조즈카’라는 이름의 영매가 코난의 역할을 하는가 보다. 살해당한 피해자의 영혼을 불러내 범인을 잡는다는 건가? 유치해지기 쉬운 설정이라 잠시 주저했다. 그런데 독자 리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책장을 덮었을 때 모든 것이 이해가 되면서 아, 이래서 1위에…! 하게 되더군요.” 대체 어떤 결말이기에?

스포일러 없이 사족을 달자면, 나는 눈치가 좀 없는 편이라 영화나 소설의 결말 예측에 서툴다. 그 덕분에 이 소설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평소 눈치가 빨라 영화의 반전을 쉽게 알아차리는 분이라면 이 책이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반전을 알고 봐도 충분히 재밌는 영화가 있는가하면, 반전 자체가 이야기의 핵심인 경우도 있으니까.

  • <영매탐정 조즈카> 아이자와 사코 | 비채 | 14,800원

[2]
<샘 호손 박사의 불가능 사건집>

“나 때는 추리소설을 참 많이 읽었는데,
그래도 내가 개인적으로 겪었던 몇 가지 일들에는 비할 바도 못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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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밤마다 MBC <심야괴담회>의 영상 클립을 하나씩 보고 잔다. 보다 보면 금방 오싹해져서 화장실 가기도 겁나지만, 이 오싹함이야말로 ‘무서운 이야기’의 묘미다. <심야괴담회>에서 다뤄지는 사연들의 특징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사연일수록 더 무섭다는 것이다. ‘옆집에는 아무도 안 사는데 왜 밤마다 여자 울음소리가 들리지?’ ‘혼자 자고 일어났는데 왜 누가 내 목을 조른 것처럼 손자국이 생겼지?’ 귀신의 소행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현상들은 그렇게 괴담의 재료가 된다.

그런데 만약 귀신의 소행이 아니라면? 괴담이 아니라 ‘범죄’다. 누군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도록 위장함으로써, 자신의 범행을 감추려는 것이니까.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를 어떻게 가능케 했는지, 즉 ‘트릭’을 밝혀내는 과정은 추리소설을 읽는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다. 다리 중간에서 사라진 마차, 잠긴 문으로 빠져나간 강도, 허공에서 목이 졸린 스턴트맨…

이러한 이야기가 12편이나 실려 있는 <샘 호손 박사의 불가능 사건집>을 읽으면서 어릴 때 읽던 수수께끼 책이 생각났다. 거기엔 초등학생이 읽기엔 다소 끔찍한 것도 섞여 있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함박눈이 쏟아진 날 밤, A가 흉기에 찔려 살해됐다. 그런데 시체 곁에는 아무런 발자국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성냥개비를 2개 옮겨서 삼각형 2개 만드는 식의 수수께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싹함…! 그 강렬한 기억이 이어져, 지금까지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추리소설을 읽는 것 아닐까.

  • <샘 호손 박사의 불가능 사건집> 에드워드 D. 호크 | GC북스 | 15,300원

[3]
<무덤의 침묵>

“뼈는 반 세기 동안 여기 묻혀 있었어요.
며칠 차이가 중요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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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외곽에서 땅에 묻힌 유골이 발견된다. 뼈와 주변 흙의 상태로 보아 최소 20년은 지난 듯하다. 당장 어제 묻힌 뼈라 해도 자초지종을 알기가 힘든데,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면 포기하는 게 현명할 듯하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무식한 사람들이 있다. 수사반장 에를렌뒤르와 그를 돕는 올리, 엘린보르그 형사다. <무덤의 침묵>은 침묵하는 유골 대신 진실을 말하기 위해 지루한 수사 과정을 묵묵히 견뎌나가는 아이슬란드 경찰의 이야기다.

미스터리는 밝혀져야 맛이다. 마지막까지 이상한 사건만 잔뜩 일어나고 진상이 속시원히 드러나지 않는다면 독자들의 별점 테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셜록 홈즈 같은 탐정이 미스터리의 주인공을 맡는 이유다. 사람들은 대부분 비범한 천재의 활약상을 보고 싶어 하고, 명탐정의 마법 같은 추리는 그 기대를 충족시킨다. 아니, 경찰은 뭐하고? 홈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레스트레이드 경감처럼, 경찰은 보통 주인공 탐정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헛다리 짚거나 뒷북을 치는 정도면 양반이다. 탐정의 활약을 시기해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무덤의 침묵>은 미스터리 작가들로부터 홀대받아온 경찰이 주인공이다. 순식간에 범인을 맞춰버리는 탐정의 추리가 ‘토끼’라면, 발품을 팔며 끈질기게 탐문하고 증거를 찾는 경찰의 수사는 ‘거북이’다. 멋지다, 라고 말하기에 이 거북이들은 너무 지쳐 있다. 다들 잠이 부족하고, 딱히 취미생활이랄 것도 없다. 하지만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누가 이기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 <무덤의 침묵>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 엘릭시르 | 14,000원

[4]
<다시 한번 베토벤>

“이게 바로 음악의 지배력이다.
귀에 들어오는 정보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조종하고
기분을 바꾸며 컨디션까지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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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는 시리즈로 출간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소개한 <무덤의 침묵>도 에를렌뒤르 형사 시리즈 중 한 편이다. 애써 구축해둔 탐정 캐릭터를 한 번만 쓰고 버릴 수는 없겠지. 바꿔 말하면, 시리즈를 이어간다는 건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책임을 진다는 얘기다. 주인공을 둘러싼 서사가 추가될수록 세계는 더욱 넓어진다. 독자 입장에서도 한껏 몰입했던 세계를 다시 만날 수 있는 후속편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의 후속편 출간 소식을 접한 내가 그랬다.

이 시리즈의 원동력은 클래식이다. 첫 작품인 <안녕, 드뷔시>부터 시작해 라흐마니노프, 쇼팽, 베토벤 등이 제목에 이름을 올렸다. ‘바흐 매니아’ 한니발 렉터 이후, 클래식은 연쇄살인마의 잔혹성을 강조하기 위한 클리셰로 쓰여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단순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주인공 미사키 요스케는 천재 피아니스트고, 등장인물들도 대부분 클래식과 얽혀 있다. 작품 속 음악 묘사도 디테일하다. 아무 배경지식 없이 들을 땐 별 감흥 없던 곡들도, 해당 장면을 읽을 때 틀어놓으면 한결 다가가기 쉽다. 작가의 이력이 궁금해졌다.

의외로 평소 저자는 클래식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음악 미스터리를 집필하기 시작한 이유는, 소설가로 오랫동안 활동하기 위해서다. “어떻게 하면 소설가를 계속 할 수 있을지 필사적으로 생각하다가 (…) 음악, 법률 등 여러 가지 장르에 손을 대두면 그 중 하나는 인기를 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소설에 대한 열정은 그가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등을 동시에 연재 중이라는 사실에서도 느껴진다. 이 시리즈로 작가에 대한 신뢰가 쌓였으니, 다른 시리즈로 발을 넓혀볼까 싶다.

  • <다시 한번 베토벤> 나카야마 시치리 | 블루홀식스 | 13,800원

[5]
<완전한 행복>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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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권 중 유일하게 국내 작가의 소설이다. 국가대항전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든든한 이유는 그 이름이 ‘정유정’이기 때문이다. 이름 세 글자만으로 초판 10만 부를 찍을 정도니 국가대표로도 손색 없겠다. 정유정의 브랜드 파워는 허술하게 쌓아올린 ‘스타성’ 같은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법. 나 역시 그의 소설을 읽던 순간으로 정유정을 기억한다. <7년의 밤>의 서늘한 문장을 처음 접하던 여름밤의 습한 공기. 수도관이 꽁꽁 얼 정도로 추웠던 제주도에서 읽어내려간 <28>의 뜨거운 에너지. (이번엔 ‘마스크 쓰고 지하철에서 정신없이 읽은 책’ 정도로 기억되려나.)

‘5권짜리 소설을 쓴 다음 그걸 다시 1권으로 압축한 듯한’ 이야기의 밀도는 신작 <완전한 행복>에서도 여전하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책을 한 번에 읽기가 힘들었다. 전작들에 비하면 잔혹한 묘사가 거의 없다시피 한데도 그랬다. 번갈아가며 화자로 등장하는 세 사람의 상황이, 책 제목과 달리 너무나 불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불행의 근원은 세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한 사람, 주인공 신유나다.

미스터리를 읽을 때 보통 ‘누가? 어떻게?’를 궁금해한다면,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신유나는 왜 그런 선택을, 왜 그런 행동을 한 걸까. 그는 단 한 번도 이야기의 화자로 등장하지 않기에 직접적으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다만, 다음과 같은 대사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이 책을 읽고 나니, 한동안 ‘행복하게 살고 싶다’라는 말이 조금 섬뜩하게 들릴 것 같다.

  • <완전한 행복> 정유정 | 은행나무 | 1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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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균

매달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기이할 기, 밝을 명, 고를 균, 이름처럼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