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book] 열심히 하지 말라는 거야?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퍼블리를 위해 남이 쓴 글을 읽고,...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2021. 06. 16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퍼블리를 위해 남이 쓴 글을 읽고, 주말엔 디에디트를 위해 내가 읽은 것에 대해 쓰고 있다.

이번 달에 고른 다섯 권은 타인의 관점을 빌려 내가 처한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책들이다. 14명의 철학자로부터 조언을 얻고 싶다면, 항상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린다면, 익숙치 않은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아래 리스트에서 힌트를 찾아보기를.


[1]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사람들은 해롭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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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된 후 줄곧 베스트셀러 순위에 있던 책이다. 의아했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에 관심이 많았지? 설마 나훈아 때문에? 책 소개 문구를 봐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유쾌하고 설레는 철학자행 특급열차!” 유쾌하고 설렌다고? 무려 ‘철학’인데? 책 파는 사람이 ‘불쾌하고 지루한’이라 쓸 리는 없으니 아직은 판단 보류. ‘빌 브라이슨의 유머와 알랭 드 보통의 통찰력이 만났다!” 잘 팔리는 작가들 이름을 들먹이는 저자 소개가 후킹하긴 하다. 근데 아무리 현지에서 인기 많은 저자라도 번역되는 과정에서 글발이 실종되는 경우를 꽤 여러 번 봐서 말이지… 에잇 몰라, 일단 사!

배송된 책을 펴보니, 14개의 목차 제목이 모두 ‘OO처럼 XX하는 법’으로 통일되어 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 유튜브나 서점에서 ‘잘 팔리는’ 제목들이 보통 이런 형태다. 백종원처럼 김치찌개 끓이는 법, 김영하처럼 글 쓰는 법, 힙스터처럼 옷 입는 법, 장윤주처럼 다이어트하는 법, 워런 버핏처럼 투자하는 법… 다만, 앞의 OO가 철학자이다 보니 XX도 뭔가 철학적이다. 침대에서 나오는 법, 걷는 법, 보는 법, 듣는 법, 즐기는 법, 싸우는 법, 궁금해하는 법, 관심을 기울이는 법, 친절을 베푸는 법,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후회하지 않는 법, 역경에 대처하는 법, 늙어가는 법, 죽는 법까지 how to가 총 14개.

그렇다고 ‘XX하는 법’을 숟가락째로 떠먹여 주길 기대하진 마시라. 또 한 명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도 말하지 않았던가. “철학은 답 찾는 법을 가르쳐주는 학문이 아니라 그걸 찾아가는 과정 자체다.” 이 말을 옮기고 보니, 굳이 기차를 타고 철학자의 흔적을 더듬어가는 책의 구성이 새삼 탁월하게 느껴진다.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 어크로스 | 18,000원

[2]
<노력의 기쁨과 슬픔>

“운명의 선고만을 기다리던 처지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기회를 쟁취하는 것, 그것이 결국은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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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정주행할 만한 유튜브 채널을 발견했다. <빠니보틀>이다(뒷북주의). 세계 일주를 꿈꾸며 방콕에서 여행을 시작한 그는 434일간 아시아와 유럽 여러 나라들을 다니며 찍은 영상을 업로드했다. 그사이 구독자는 60만 명을 돌파했고,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일주를 마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아쉬워하는 구독자들의 댓글이 달렸다. ‘내가 여행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해줘서 고마웠다. 하루빨리 다시 떠나 달라.’ 자본과 인력을 퍼부은 여행 영상들이 넘쳐나는 유튜브에서, 빠니보틀의 여행은 무엇이 특별했을까?

한편, 며칠째 읽고 있던 책 <노력의 기쁨과 슬픔>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노력은 때로 비생산적이고 쓸모없으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다, 그런데 지단 같은 선수가 결정적인 순간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던 건 오랜 노력 덕분이다, 그런데 또 진정한 용기는 최고가 되려는 욕망을 내려놓는 것이다… 노력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부제가 ‘너무 열심인 나를 위한 애쓰기의 기술’인 걸 보면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는 것 같긴 한데, 결국 ‘기술적으로’ 노력하라는 건가?

빠니보틀의 여행과 <노력의 기쁨과 슬픔>을 겹쳐보자. 그럼 아귀가 들어맞는다. 너무 잘하려고 애써온(노력을 요구받아온) 사람들은 뭔가 대단한 걸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는 빠니보틀을 보며 대리만족한다. 그런데 빠니보틀이 아등바등하지 않고도 낯선 나라들을 여행할 수 있는 건 오랜 여행 경험에서 나오는 내공 덕분이다. 여행 첫날 비행기를 타러 가면서 빠니보틀은 말한다. “내가 누군지를 알아간다든가, 뭐 그런 거 없고요. 그냥 재밌으니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책 중반 ‘성공의 순간’이란 챕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곳.”

  • <노력의 기쁨과 슬픔> 올리비에 푸리올 | 다른 | 16,000원

[3]
<슈퍼팬>

“성공적인 사업을 위해 전 세계를 바꿀 필요는 없다.
단지, 누군가의 세계를 바꾸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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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지금의 애플이 된 이유는? BTS가 지금의 BTS가 된 이유는? 팬(fan)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디에디트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다 당신 같은 팬 덕분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언제 어떻게 디에디트의 팬이 되었는가. 벌써 옛날 얘기가 되어버린 아이폰 리뷰 영상 때문일 수도 있고, 매주 금요일 지름신을 대리 소환해주는 뉴스레터 ‘까탈로그’ 때문일 수도 있다(새로 나온 책을 소개한답시고 하고 싶은 얘기만 잔뜩 늘어놓는 이런 글도, 디에디트의 팬을 늘리는 데 한 줌 도움이 되기를…).

모두가 애플이나 BTS처럼 팬이 많을 필요는 없다. 책 <타이탄의 도구들>에 따르면, ‘1,000명의 진정한 팬(1000 true fans)’만 확보하면 먹고사는 데에 아무 지장이 없다. 이들이 매년 10만 원씩만 쓰게 해도 연 매출 1억 원은 보장되니까. 그러려면 말로만 팬이 아니라 1년에 10만 원 정도는 기꺼이 지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슈퍼팬’을 모아야 한다. 그럼 슈퍼팬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햇반의 팬, 롱패딩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을 본 적 있으신지?). 슈퍼맨 만들기에 도가 튼 저자 팻 플린이 강조하는 포인트는 ‘특별함’이다. “어떤 것의 슈퍼팬이 되는 것은 어떤 사람, 제품, 이름, 브랜드 때문이 아니다. 그 사람, 제품, 이름, 브랜드가 자신에게 어떤 특별함을 가져다주느냐가 슈퍼팬이 될지를 결정한다.” 사실 글 몇 줄로 요약하기엔 구체적인 팁이 많은 책이다. 최근 사이드 프로젝트로 뉴스레터를 기획 중인데, 이 책에서 힌트를 많이 얻었다.

  • <수퍼팬> 팻 플린 | 알에이치코리아 | 17,000원

[4]
<비트의 세계>

“나에게 컴퓨터과학의 정확함은 언어학적 허풍을 억제하는 유용한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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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그는 왜 자꾸 생기는 거예요? 버그가 안 생기게끔 프로그램을 짜놓으면 안 되나요?” 1~2년 전, 회사 동료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였다. 퍼블리 앱을 만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평소 순혈문과생으로서 가졌던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버렸다. 옆에 있던 몇몇은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었을 질문인데, 엔지니어는 차분하게 편집자를 이해시켰다. “글 편집할 때도 오탈자가 한두 개씩 꼭 나오잖아요? 맞춤법을 다 알아도 못 잡아내는 비문이나 오탈자가 나오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돼요.” “아하!”

사람마다 편하게 생각하는 ‘언어’가 다르다. 같은 한국어라도 말이 편한 사람과 글이 편한 사람으로 나뉘고, 같은 컴퓨터 언어라도 자바, C+, 파이썬 등 종류가 여러 가지다. 언어는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컴퓨터 언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비트의 세계’를 이해하려니 ‘버그는 왜 생겨요?’ 같은 질문밖에 못 던지는 것이다. 다행히 동료 엔지니어가 본인에게 익숙한 ‘개발자의 언어’가 아니라 ‘편집자의 언어’로 답해준 덕분에, 낯선 ‘비트의 세계’에 한쪽 발이라도 들여볼 수 있었다…

책 <비트의 세계>도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이어보려는 노력이다. 컴퓨터과학과 문학을 함께 전공한 저자는 프로그래머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과 코드, 그리고 세상을 얘기한다. 국문학과가 문을 닫고 코딩학원이 문을 여는 세상에서, 그가 생각하는 인문학의 가치는 무엇일까. “인문학적 상상력 덕분에 나는 이 기술주의적 미로에서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 일을 왜 하고 있으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자문할 수 있었다.”

  • <비트의 세계> 데이비드 아우어바흐 | 해나무 | 18,000원

[5]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좌절을 더이상 부인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는 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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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의 소설이 수록된, 김금희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이다. 책 제목은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지만, 내가 이 글에서 주로 얘기할 작품은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이다. 영화든 소설이든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에 쉽게 흔들린다. 읽는 내내 ‘이제는 불가능해진 어느 여름’을 떠올렸다. 그래서 장바구니에만 담겨 있던 김금희 작가의 책을 몇 권 더 주문했다. 아직 소설을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지금부터는 최근 들은 팟캐스트 얘기로 소설 소개를 대신하는 게 좋겠다.

팟캐스트 <빅 리틀 라이프>는 사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여느 방송과 달리, 진행자가 사연을 읽어주는 방식이 아니라 사연 주인공의 목소리를 그대로 녹음해 들려준다. 그래서 ‘빅 리틀’인가 싶다. 제삼자에겐 사소해 보여도 당사자에겐 인생이 휘청할 만큼 임팩트 큰일들이니까. <빅리라>의 세 번째 에피소드 제목은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 너에게’였다. 한때는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농담을 주고받을 것처럼 가까웠으나, 언제부턴가 특별한 이유 없이 멀어져 버리고 만 ‘너’의 이야기.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물론이고, 사연을 수집하는 제작진의 목소리도 젖어 있었다. 사연을 들으며 ‘이제는 불가능해진 시간’을 떠올리는 나의 마음 역시.

소설 말미에 나오는 두어 문장을 인용하려고 적어뒀는데, 역시 아직 소설을 읽지 않은 분들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지난해 2월쯤부터 입에 맴도는 노래 가사를 대신 적는다. “언젠가 마주쳤던 웃는 모습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어. 그때는 정말 몰랐었지만 좋은 날들이었던 것 같아.”

  •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 창비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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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균

매달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기이할 기, 밝을 명, 고를 균, 이름처럼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