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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으로, 면식기행

안녕, 에디터B다. 오랜만에 인천에 다녀왔다. 손가락으로 세어보니 태어나 인천을 겨우 세 번밖에 가지 않았더라. 첫 번째는 12년 전 <인천세계도시축전>을 보러(그런...
안녕, 에디터B다. 오랜만에 인천에 다녀왔다. 손가락으로 세어보니 태어나 인천을 겨우 세 번밖에…

2021. 06. 13

안녕, 에디터B다. 오랜만에 인천에 다녀왔다. 손가락으로 세어보니 태어나 인천을 겨우 세 번밖에 가지 않았더라. 첫 번째는 12년 전 <인천세계도시축전>을 보러(그런 게 있었다), 두 번째는 친한 친구가 송도에 살아서(너무 멀어서 다신 못 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면식 기행을 위해서다(허영만의 백반기행 같은 거다). 이방인의 방문이 잦았고 덕분에 신문물이 일찍이 퍼진 항구도시 인천엔 노포도 많고 맛집도 많다. 오늘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인천의 면 맛집 세 군데를 소개한다. 차가운 거 하나, 뜨거운 거 두 개 준비했다.


[1]
백령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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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면옥은 제물포역 근처에 있는 냉면집이다. 서울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백령도식 냉면’을 파는 곳이라고 해서 더운날 힘들게 찾아갔다. 그런데 잠깐, 백령도식 냉면?

백령도식 냉면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우선 황해도식 냉면이 무엇이냐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와 동치미를 함께 쓰는 평양 냉면과 달리 황해도식 냉면은 오직 돼지고기 육수만 쓰고, 면발은 뚝뚝 끊어지지 않고 찰기가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현재 인천에서 맛볼 수 있는 황해도식 냉면 레시피는 가게마다 다르고 어떤 집에서는 소고기만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황해도식 냉면이란 자고로 이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기엔 힘들다. 면발의 찰기, 여러 고기의 육수를 섞어쓰느냐 아니냐의 차이 정도로 구분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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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황해도식 냉면과 백령도식 냉면의 차이는 무엇일까. 백령도식 냉면의 탄생사를 보면 알 수 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황해도 주민들은 백령도 등등 주변 섬으로 피난을 갔다. 주민들은 전쟁이 끝나면 돌아가려고 했지만 휴전을 하게 되면서, 백령도에 정착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챙겨온 것들 중에는 메밀 종자도 있었는데, 그 종자로 백령도에서 메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메밀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백령도식 냉면이 시작되었다. 강원도 봉평 못지 않게 메밀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 백령도라는 사실은 이번에 조사하면서 처음 알았다.

백령면옥의 모든 냉면은 백령도산 메밀을 쓰고 찰기를 위해 밀가루와 전분을 섞는다고 한다(그 비율은 비밀이란다). 평양냉면과 가장 크게 차이점은 백령도산 까나리액젓으로 간을 한다는 건데, 그래서 테이블마다 까나리액젓이 세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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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발에는 찰기가 있어서 평양냉면처럼 후두둑 끊어지는 없지만, 앞니로 잘랐을 때는 저항 없이 끊어지는 정도다. 정말 매력적인 건 육수인데, 한우 사골을 100% 우린 육수라고 하는데 간이 절묘하다. 액젓을 넣기 전에도 이미 간이 되어 있는데, 식초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감칠맛의 정체를 모르겠다. 나중에 사장님 인터뷰를 찾아보니 국물 감칠맛의 비결은 소꼬리라고 한다(소꼬리가 전부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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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메뉴는 물냉, 비냄, 반냉이 있는데 반냉은 비냉에 육수를 추가한 스타일이다. 배가 불러서 물냉밖에 못지 못했다. 나는 백령면옥의 냉면이 평냉보다는 분식집에서 먹는 냉면 같다고 느꼈는데, 아마도 면발의 찰기와 육수의 신맛이 느껴지는 감칠맛 때문인 것 같다. 물론 표현이 그렇다는 것이지 분식집 냉면과 비교했을 때 당연히 그것보다는 몇 단계나 레벨이 높다. 몇 번씩 먹으며 음미해야 알 수 있는 게 평냉의 진수라면, 백령면옥의 냉면은 한 입 먹는 순간 그 맛을 알 수 있다. 돌려 말하지 않는 매력이 있다. 가격도 8,000원으로 저렴한 편.

  • 백령면옥
  • 인천 미추홀구 석정로 226

[2]
개항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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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역에서 7분 정도 걸어가면 브랜딩이 잘된 가게가 한 블록에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다. 개항로 통닭, 개항면, 레바논 버거 등 모두 개항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개항로 프로젝트는 이창길 대표를 비롯한 디자이너, 셰프, 기획자 등 20여명이 합심해서 시작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이창길 대표는 목포, 군산, 제주 등에서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하다 약 2년 전부터 개항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기획자와 예술가들의 손길이 닿은 지 2년만에 ‘힙’과는 거리가 멀었던 개항로는 새로운 문화가 꿈틀대는 곳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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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 ‘개항로’하는 단어가 자주 보이기 시작했고, 위치를 보니 모두 동인천역 부근이었다. 그게 모두 알고 보니 개항로 프로젝트와 관련된 곳들이었다. 일광전구와 콜라보한 카페 라이트 하우스, 레바논 버거, 개항로 통닭, 폐업한 산부인과 건물의 외형을 두고 레트로한 카페로 탈바꿈한 브라운 핸즈 등 모두 가보고 싶었지만 날이 덥고 배가 부른 관계로 개항면에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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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플레이스를 많이 다니다 보니 컨셉만 화려하고 실속없는 음식점에 실망한 적이 많은데 개항면은 절대 그런 곳이 아니었다. 개항로 프로젝트는 겉만 화려하게 바꾸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노포와 협업을 통해 조화롭고 지속가능한 변신을 꿈꾸는데, 대표적인 예가 개항면의 면발이다. 이 면발은 국내 최초로 쫄면을 만든 광신제면에서 만들었다. 광신제면은 인천에 있는 오래된 제면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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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면의 시그니처 메뉴는 온수면과 비빔면. 하지만 체감 온도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도저히 온수면을 먹을 수 없어서 비빔면만 주문했다. 비빔면 소스는 고추장과 된장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 쓱싹쓱싹 비벼서 먹어보니 딱히 된장 맛이 나지는 않고, 고추참치에 면을 비벼 먹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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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닌데, 이런 요리를 파는 곳을 찾기가 힘들어서 개항면이 아니면 이런 요리를 맛보기 힘들 것 같다. 공기밥은 무료로 제공하니 아쉬운 상태로 가게를 나올 일은 없을 거다. 나는 비빔면을 1/3쯤 먹고 결심했다. 이건 맥주 각이다. 그래서 개항로 라거를 한 병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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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로 라거 역시 개항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발된 제품이고, 개발 및 생산은 인천의 로컬 브루어리 인천맥주에서 했다. 예스럽게 쓰인 폰트가 매력적인데, 인천의 노포 ‘전원공예사’ 사장님이 디자인했다고 한다. 모델은 인천의 오래된 벽화 미술가 최명선.

1400_retouched_-07518[동네 마트 ‘굿모닝 마트’에 붙어 있는 개항로 라거 광고.]

‘끝맛이 좋아야 라거다’라는 말처럼 끝맛이 예술이다. 라거와 같은 청량감, 끝에는 에일의 쓴맛이 느껴진다. 카스처럼 가벼우면서도 홉의 쓴맛까지 살아 있으니 이건 인천의 기념품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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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잘한다는 생각이 드니 온수면을 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배가 불러서 온수면은 국물 위주로 먹었는데, 그렇게 뜨겁지도 않으면서 깊은 사골국물 맛이 만족스러웠다. 온수면의 국물이 다른 맛집과 비교해서 특별히 굉장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좋은 맛이고 매일 만든다는 겉절이와 조합이 좋아서 꼭 다시 찾아가고 싶었다. 기사를 쓰는 지금도 개항면의 비빔면과 온수면 생각에 군침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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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근처 마트에 가서 개항로 라거를 몇 병 사면 좋겠다. 개항로 라거는 오직 인천에서만 구매할 수 있고, 굿모닝 마트에서 판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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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항면
  • 인천 중구 개항로 108-1

[3]
신승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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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반점은 차이나타운 초입에 있는 중국집이다. 이 곳은 한국 짜장면의 원류이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공화춘을 승계하고 있다. 1900년 인천항 부둣가에서 처음으로 짜장면을 만들었던 우희광의 딸과 공화춘 주방장 출신의 사위가 함께 개업한 곳이 바로 신승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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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창에 ‘인천 공화춘’이라고 검색하면 공화춘이라는 이름의 중식당이 하나 나오는데, 그곳은 진짜 공화춘과는 무관한 곳이니 꼭 신승반점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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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메뉴는 유니짜장. 유니짜장은 잘게 다진 고기라는 뜻의 ‘육니’가 변형되어 유니짜장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나는 몇 년 전 연남동 구가원에서 유니짜장을 처음 맛 보고, 고기와 짜장이 하나로 어우러진 헤비한 맛에 반했다. 이후 중식당에 가면 꼭 유니짜장을 시키려고 했는데 유니짜장을 파는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 다양한 종류의 유니짜장을 먹어보지 못해서 레퍼런스가 많지는 않지만, 신승반점의 유니짜장은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유니짜장이었다. 하나의 맛이 뾰족하게 개성을 드러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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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달지도 짜지도 않았고, 돼지고기가 아낌없이 들어간 게 마음에 들었다. 구가원에서 먹었던 짜장은 조금 짠 느낌이었는데(그래서 좋았는데), 신승반점의 유니짜장은 조금 싱겁다고도 느껴졌다. 계란후라이를 짜장면에 올려주는 이런 스타일, 서울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아서 반가웠다. 내가 아는 서울 최고의 짜장면 맛집은 성수역 인근에 있는 성수장인데 그곳에서조차 500원을 내고 계란후라이를 추가 주문해야 한다. 성수동에 오면 어니언 카페 말고, 아모레 성수 말고 성수장을 꼭 가길 바란다. 성수동을 넘어 성동구 1티어 짜장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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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반점의 유니짜장은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인지 드라마틱한 맛을 느끼진 못했는데, 공복 상태에서 한 번 더 찾아가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유니짜장 얘기가 나와서 사족을 덧붙이자면, 지금은 문을 닫은 충화반점의 라구짜장은 유니짜장을 재해석한 요리였는데, 그 짜장은 헤비한 고기짜장의 끝이었다. 잘게 다진 고기가 넘쳐흐르고 짜장엔 기름기로 번쩍거렸다. 충화반점이 언제가 다시 문을 열면 좋겠다. 그날 먹었던 라구짜장이 아직도 소화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신승반점의 유니짜장도 좋았지만, 춘장이 엄청 맛있다.

  • 신승반점
  •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로44번길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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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