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디에디트에 디자인, 건축, 공간, 예술 등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에 대해 열심히 쓰는 객원 에디터 전종현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지난 9월 6일 공식 오픈한 성수동의 핫스폿, 아이아이컴바인드(IICombined) 신사옥이다. “아이아이컴바인드가 뭐 하는 곳이지?” 고개를 갸웃거린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젠몬! (샤우팅) 매번 신기한 선글라스와 안경을 선보이는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가 바로 아이아이컴바인드가 전개하는 대표 브랜드다.
지난 2011년 런칭한 젠틀몬스터가 엄청난 성공을 거둔 후, 아이아이컴바인드는 2017년 뷰티 브랜드 탬버린즈(TAMBURINS), 2018년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NUDAKE)를 연이어 선보이며 MZ세대 소비자들이 열광하고, 수많은 브랜드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는 회사로 우뚝 섰다. 알고 보니 여기는 부동산 투자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2017년 홍대 앞에 있던 사옥을 옮기려고 부지를 물색하다 최종적으로 정한 곳이 바로 성수동이었던 것! 팬데믹 이후 현재의 성수동이 울트라 슈퍼급 황금 상권으로 커진 걸 보면, 잘되는 집은 뭘 해도 잘되는 것 같다. (부러워…)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성수 신사옥은 작년부터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는데, 그간 서울에서 듣도 보도 못한 형태의 예상 조감도 덕분이다. 지금까지의 기사들을 찾아보면 ‘우주선’, ‘불시착’, ‘괴물’ 등 자극적인 표현이 자주 나온다. 깍두기 건물에 길들여진 우리의 현실 감응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에서는 유독 예상 조감도와 완공 건축물 간에 급격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흔한데, 이번 신사옥은 의도한 바와 거의 동일하게 나왔다는 점에서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를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건축주가 돈이 많아야 하고, 돈을 아끼지 않아야 하고, 대범해야 하고, 무엇보다 주관이 뚜렷해야 한다. 아이아이컴바인드가 전개하는 브랜드를 살펴보면, 제품은 물론이고 공간을 중심으로 아트워크, 조형물과 오브제 등을 통해 경험을 만들어내는 일에 엄청난 투자를 해왔다. 회사에서는 이를 두고 예술, 테크, 커머셜을 결합한 미래형 브랜드 공간 ‘퓨처 리테일(future retail)’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노력이 집대성된 결과가 ‘하우스 노웨어(HAUS NOWHERE)’이다. ‘어디에도 없는 공간’을 콘셉트로 아이아이컴바인드 산하 브랜드를 모아놓은 복합 공간. 서울 도산을 시작으로 중국 상하이, 선전에 세 곳이 생겼고 이번 신사옥이 들어선 곳에 전 세계 네 번째 하우스 노웨어가 문을 열었다.
‘성수동 젠몬 신사옥’이란 별칭으로 오픈 전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고, 실제 오픈 후에는 ‘하우스 노웨어 서울(HAUS NOWHERE Seoul)’로 불리며 엄청난 사람을 흡입해 개장 몇 주 만에 성수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우뚝 선 아이아이컴바인드 성수 신사옥. 그런데 이런 화제성에 비해 정보에 대한 교통정리가 미흡한 느낌이다. 미디어, 소셜 미디어 할 거 없이 각자 말이 다르고, 너무 단선적으로 끼워 맞춰 정리해 맥락을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보였다. 그래서 직접 다녀왔다.
현장을 방문한 후, 아이아이컴바인드 측에 공식 질의를 넣어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도 살펴보면서, 외국인, 한국인 할 것 없이 사람으로 넘치는 이곳을 거시적인 시각으로 정리했다. 이는 일종의 ‘오해 풀기’이기도 한데, 물론 내가 정답이라 확언할 순 없다. 다만 향후 방문할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매우 기쁘겠다. 시작해 볼까?
Q. 이번에 새로 지은 신사옥이
곧 하우스 노웨어 서울인 걸까?
지금까지 확인한 거의 모든 정보에 따르면 지상 14층 규모로 지은 신사옥과 하우스 노웨어 서울을 동일시하고 있는데, 이건 사실 관계가 틀렸다. 사옥 건물은 조형적으로 뚜렷하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완만하면서도 군데군데 풍만한 면모를 슬쩍 내보이는 터라 우주선, 고래 등의 단어로 표현되는 하층부(지상 1층~5층), 유리 커튼월로 깔끔하게 처리한 겉면에 수많은 콘크리트 보(beam)가 동일한 길이로 삐죽삐죽 튀어나와 콘크리트 고슴도치를 연상케 하는 중층부(지상 6층~11층), 하층부와 중층부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돌출된 형태로 동서남북 네 곳을 통해 도시를 360도로 지켜보는 올빼미 눈 같은 상층부(지상 12층~14층)다.
하층부는 리테일, 중층부는 오피스, 상층부는 사내 카페테리아와 회의실 등 임직원 공용 공간으로 쓰인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하층부다. 현재 4층은 개방하지 않기에, 임직원이나 협력사가 아닌 이상 일반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은 지상 1층부터 3층, 그리고 5층까지 총 4개 층이다. 젠틀몬스터, 탬버린즈, 누데이크를 비롯해 올해 런칭한 헤드웨어 브랜드 어티슈(ATiiSSU)와 테이블웨어 브랜드 누플랏(Nuflaat)까지 아이아이컴바인드 산하 모든 브랜드가 퓨처 리테일을 표방하며 한 곳에 모인 하층부가 바로 명실상부 하우스 노웨어 서울의 본진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기존에 존재하는 하우스 노웨어 도산, 상하이, 선전은 브랜드를 프로모션하는 커머셜 공간이다. 새로 지은 신사옥이 아무리 눈길을 끄는 모습이라지만 여긴 기본적으로 임직원이 일하는 일터, 즉 본사로서의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 일반인이 접근하지 못하는 중층부와 상층부까지 합쳐서 신사옥 건물 전체를 하우스 노웨어 서울이라고 지칭하면 그거야말로 진짜 이상하지 않을까?
흥미롭게도 하우스 노웨어 서울은 신사옥 건물 하층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신사옥과 좁은 차선을 두고 마주 본 오른쪽 지점에는 독일계 아티스트 아티스트 막스 지덴도프(Max Siedentopf)의 작업 <More Is More>가 설치돼 있다. 수많은 검은 비닐봉지가 쌓여 있는 공간 중심에 다른 세계로 통할 것만 같은 문짝과 난간이 갑툭튀하고, 거기에 노인 한 명이 번쩍이는 황금빛 봉지를 쥐고 있는 게 아이아이컴바인드가 강점을 보이는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이 생각나는 광경이다.
여기는 원래 신축 건물이 들어선 후 임차인을 구하고 있었는데, 아이아이컴바인드 측에서는 대지와 건물을 인수하길 원했다. 소유주 측에서 거부하면서 결국 10년짜리 건물 임대차 계약을 맺고 상호 협의로 기존 건물을 해체했다. 즉, 음~청 비싼 돈을 내고 빌린 곳이다. 스트리트 뷰로 과거 상태를 확인해 보니 신사옥 초입에 위치한 건물이 뷰를 애매하게 가려서 7년 동안 애써 지은 건물에 시각적인 혼선을 주더라. 멀쩡히 있던 신축 건물을 해체하고 플랫하게 만든 부지를 캠페인에 활용하는 대범함은 아이아이컴바인드가 브랜드와 공간을 대하는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바로 여기까지 합쳐서 하우스 노웨어 서울이 완성된다.
Q. 노출 콘크리트로 외벽을 마감한 신사옥은
소문대로 브루탈리즘 양식인 걸까?
요즘 계속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많은 이를 헷갈리게 만드는 브루탈리즘에 대해 논해보자. 다소 폭력적이지만 단선적으로 말한다면, 이는 브루탈리즘이 아니다. 하지만 브루탈리즘을 추구미로 삼은 건물이다.
브루탈리즘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프랑스, 스웨덴, 영국부터 시작해서 미국, 이탈리아, 브라질, 일본, 소비에트 연방 등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한 20년을 잡고 전 세계의 다양한 양상을 추적해야 한다. 그래도 기초 지식을 말하면, 브루탈리즘은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건물 외벽을 보기 좋게 마감하는 대신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하는 방식을 선택하며 이를 ‘베통 브뤼(béton brut)’라고 부른 것에서 시작한다. (깊게 들어가면 스웨덴과 영국 건축가의 언어유희까지 연결해야 하는데 더 말하면 멈출 수가 없다222)
전후 쑥대밭이 된 도시를 효율적으로 재건하기 위해서, 기존의 겉치레에서 벗어나 정직한 건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지금은 정반대로 인식되지만) 평등과 공정을 지향하는 공공 건축의 아젠다를 구현하는 방법으로서, 시공 기술의 발달로 콘크리트를 활용한 조형 실험이 자유로워지면서, 건축이 지닌 힘을 이용해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도구로서 등등 지역의 특성과 건축가의 의지, 클라이언트의 니즈에 맞춰 오만 갈래로 다양해진 게 모두 브루탈리즘에 속한다. 중요한 건 ‘노출 콘크리트=브루탈리즘’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렇게 치면 노출 콘크리트로 유명한 건축물이 모두 브루탈리즘이게? 세상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21세기 들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부활한 브루탈리즘의 매력은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거친 질감, 깔끔하고 정돈된 현대적 공간에서 느끼기 힘든 기이한 야생성, 특유의 덩어리진 조형미에 기반을 둔다. 이를 트렌디하게 구현한 게 요즘 창궐하는 브루탈리즘 느낌의 건물이고, 이를 두고 혹자는 네오브루탈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암튼 하우스 노웨어 서울을 품은 14층짜리 신사옥은 브루탈리즘 양식은 아니되 브루탈리즘을 좋아하는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듬뿍 담아서, 겉보기엔 브루탈리즘 느낌이 충만하지만 자세히 보면 브루탈리즘의 핵심인 ‘싼마이’가 존재하지 않는 ‘돈덩어리’라고 말할 수 있다.
Q. 신사옥 건물은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인 걸까?
누군가는 신사옥이 브루탈리즘이란 껍데기를 씌워 노이즈 마케팅으로 쓰는 도구라고 오인할 수 있다. 필자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먼저 아이아이컴바인드 측에서 신사옥과 관련해 ‘브루탈리즘’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사람들이 인터넷이 공개된 사진과 틸다 스윈튼이 나온 프로모션 영상을 보고서, 브루탈리즘이라고 해석하고 정의 내리며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태그가 붙은 것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이번 신사옥 건물은 클라이언트의 취향, 니즈, 그리고 건축가의 개성과 아이디어가 고르게 섞인 합의의 산물로 다가온다.
물론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브루탈리즘 건축물이 지닌 특성을 애정하고 동경한다는 점은 반박 불가다. 그게 아니라면 비싼 성수동 땅에 사옥으로 기능하는 건물의 형태를 이렇게 풀어내는 건 꽤나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건물을 살펴볼 때 정말 중요한 핵심은 건축물의 콘셉트와 이를 구현한 건축가의 특성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건축 콘셉트가 명확하다. 바로 ‘되돌아온 미래(Returned Future)’다.
아이아이컴바인드 측 답변에 따르면, 되돌아온 미래는 시간의 개념을 넘어 그들의 독창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키워드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보편화된 전형적인 미래상이 아니라 아이아이컴바인드가 이미 지니고 있던 상상력과 가능성이 그동안 축적한 실험과 도전, 고유한 감각을 통해 현재의 공간으로 돌아와서 이를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한, 미래에 대한 제안에 가깝다. 여기에는 회사의 철학이 단단하게 박혀 있는데, 다름 아닌 ‘새로움’이다. 젠틀몬스터, 탬버린즈, 누데이크를 비롯해 올해 런칭한 두 개의 브랜드까지 각자의 콘셉트와 추구미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태도가 새로움이란 점을 염두에 두자.
새로움에 대한 정의는 각자 다르기에, 그에 대한 시각적, 조형적, 맥락적 표현 또한 수도 없이 달라진다. 이번 성수 신사옥은 아이아이컴바인드가 그동안 고민해 온 ‘새로움’이란 회사의 핵심 철학을 제품이나 쇼룸을 넘어 하나의 물리적 세계로 통합했다는 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를 코어 삼아 브루탈리즘을 주요 맛으로 설정하고 이에 더불어 <블레이드 러너>, <프로메테우스>, <매드 맥스>, <듄>과 같은 SF 영화의 시각 요소와 감각들을 취사선택해 혼융시킨 결과물이 이번 신사옥 건물이다.
Q. 그럼 신사옥을 기괴하게 지은 이유는
대체 뭐지?
지금 외부로 공개된 이미지와 영상은 색 보정을 한 건지 디스토피아적 분위기가 강하고, 카메라 구도 때문인지 스케일도 뭔가 익숙지 않게 왜곡된 느낌이다. 근데 막상 현장에 가면 사뭇 다르다. 일단 생각보다 거대하지 않고 아담하다. 장난꾸러기 꼬마를 보는 기분이랄까? (믿을 수 없겠지만!)
하층부의 곡면은 단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잘 정리돼 있다. 거친 퓨처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중층부를 살펴보면 건물의 구조를 뚫고 바깥으로 튀어나온 수십 개의 콘크리트 보가 심리적 불편감을 안긴다. 전문 용어로 ‘내민보(overhanging beam)’라고 하는데, 이 신스틸러를 무시하고 건물만 파악하면 유리 커튼월로 깔끔하게 마감한 오피스 빌딩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풍부한 채광이 필요한 오피스 영역이라 수십 개의 ‘내민보’ 길이를 짧게 조절한 덕분에, 전체적인 비율상으로는 귀여운 느낌마저 든다. (믿을 수 없겠지만222) 내민보의 끝부분 단면도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이 아니라 정사다리꼴로 디테일을 챙겨서 기계적으로 삭막하지 않다.
혹여 옥외광고물이나 커다란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마케팅 기능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문의해 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신사옥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몇 가지 목표를 세웠다. 건축물은 본질적으로 목적성을 따질 수밖에 없지만, 최대 면적 확보, 수익성 등 수치적 가치에만 매몰돼 흔한 네모 박스 빌딩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건축을 해석하는 시선에 회사와 브랜드의 철학을 투영하고, 방문자가 조금이라도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하고 싶었다. 건축적 다양성을 제시하고, 용기 있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에 대한 의지가 실제 방문객에게 조금이라도 전달되면 좋겠다.” 오 멋져.
더불어 이런 이야기도 함께. “해외의 다양한 건축물을 접하면서, 서울에는 왜 다른 나라처럼 상징적이고 영감을 주는 건물이 부족한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다. ‘우리가 스스로 서울에 영감을 줄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란 질문으로 이어졌고 이에 신사옥의 방향성과 콘셉트가 결정됐다. 신사옥은 본사 기능에 그치지 않고 하층부의 하우스 노웨어 서울을 통해 퓨쳐 리테일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한다. 예술, 건축, 브랜드 경험이 결합된 무대이자, 신사옥이 지향하는 철학과 미학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결국 여러 질문에 대한 의지의 결실이자 용기 있고 새로운 감정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건물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완성한 곳이다.”
여기서 건축가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길어져서 미안하다!!) 이번 설계를 맡은 더시스템랩의 수장인 김찬중 건축가는 유니크한 작업을 하기로 유명하다. 이번 건물에도 그만의 특성이 잘 묻어나 있다. 클라이언트 말만 무작정 듣고 기계적으로 구현한 게 아니란 뜻이다. 예를 들어 우주선을 닮았다는 하층부를 전경 사진으로 보면 완만한 곡선이지만, 실제 건물 입구에서 윗부분을 올려다보면 비정형적 곡면이 넘실대며 만들어내는 풍성함이 굉장하다. 그의 초기작 중 하나인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현 헤리티크뉴욕)을 비롯해 한남동 오피스, 울릉도 코스모스 리조트 등에서 곡선을 다루던 감각이 돋보인다. (특수 거푸집을 사용해서 더욱더 그럴지도?)
더불어 그가 애호하는 소재가 노출 콘크리트인데, 이게 그냥 콘크리트가 아니다. 철근을 넣지 않고 콘크리트만으로도 건물의 하중을 지탱할 수 있는 초고성능 콘크리트(UHPC)를 자주 쓴다. 울릉도 코스모스 리조트의 말도 안 되게 얇은 외벽을 가능케 한 주인공으로, 이번 신사옥 상층부에 약간 불안할 정도로 불쑥 튀어나온 사방의 전망대들이 UHPC를 활용한 결과물이다. UHPC이란 새로운 콘크리트로 형상을 구축하는 모습에서 과거 반세기 전 도시 속 조형 실험으로 치닫던 브루탈리즘의 특징이 겹쳐 보였다면 너무 과도한 상상일까. (맞아. 나 김찬중 건축가 작업 좋아해.)
아, 지금 건축 전문지도 아닌데 신사옥 건축 이야기를 따라오느라 고생이 많은 디에디트 독자들. 정작 제일 궁금해하는 하우스 노웨어 서울 설명을 빼먹고 이대로 글을 끝내면 아마 나는 천벌을 받겠지. 유튜브, 인스타그램, 뉴스, 블로그 등에 하우스 노웨어 서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수도 없이 많으니 나는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바라본 부분을 공유하겠다. 일종의 던전 공략 팁으로 삼아 실제 현장에 써먹어 보시길.
입장
웨이팅을 즐길 줄 아는 자
놀랍고 슬프게도, 여기는 웨이팅을 해야 한다. 키오스크 예약도 없어서 그냥 서서 기다리는데 입구에서 스태프가 활짝 웃으면서 조금씩 인원을 들여보내는 상황이 무척 감질난다. 사람이 몰릴 때 합류하면 얼마나 기다릴지 아무도 모르므로 타이밍을 잘 잡고 가길 권한다. 우리는 뭔가 기다릴 때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에 빠지는데, 여기서는 주변을 잘 살펴보자. 웨이팅 지점 근처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하층부의 주된 특성인 곡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놓인 벤치가 너무 예쁘다. (대체 누구 작업일까?) 조경도 잘해놔서 기다리는 과정이 그리 지겹지만은 않다. 공간을 마주하는 첫 경험과 연결되니 웨이팅할 때부터 구경꾼 모드를 켜 놓자.
1층
프로젝트 공간에서 티하우스 예약부터
거의 놀이동산 급으로 만든 하우스 노웨어 서울은 지상 1층, 2층, 3층, 5층으로 구성된다. 거기다가 외부에 설치한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 작업까지 합친다면 공략해야 하는 곳이 최소 5곳이다. 그래서 실제 공간 구성을 제대로 알면 좀 더 여유롭게 경험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1층이다. 현재 탬버린즈로 가득 차 있어서 탬버린즈 구역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실은 주인공이 계속 바뀌는 프로젝트 공간이다. 탬버린즈 본진은 3층에 있다.
현재 1층에는 탬버린즈에서 새로 출시한 ‘선샤인’ 라인을 홍보 중이다. 선샤인은 쿨쿨 자고 있는 거대한 닥스훈트의 이름이다. 닥스훈트가 낮잠을 자면서 갑옷을 입고 용맹해지는 개꿈을 꾸는 게 선샤인의 콘셉트다. 이런 스토리를 얼핏 파악할 수 있는 영상이 있는데, 궁금하면 스태프 아무나 잡고 물어보자. 엄청나게 친절하고 설명도 잘해준다. 선샤인 향수를 시향할 때 살짝 풍기던 쇠맛이 갑옷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스태프가 알려준 사실.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장기인 애니매트로닉스를 적용한 거대한 닥스훈트의 새근거리는 몸, 꼬물거리는 귀가 딱 동영상 감이다. 몸에 착용한 갑옷의 디테일까지 구경하면서 시향도 놓치지 말자. 닥스훈트의 털을 빗질하는 스태프의 시크한 몸짓도 함께.
더불어 5층에 위치한 누데이크 티 하우스에 들를 요량이라면, 1층 어딘가에 덩그러니 있는 예약 키오스크를 빠르게 찾아서 전화번호를 누르자. 들어가려는 사람이 한가득이라 기본이 웨이팅 2시간이다. (평일 오후에 겪은 1인 여기 있음.) 일단 예약부터 걸어 놓고 구경하다가 카톡 알람이 오면 누데이크 티 하우스로 이동해서 먹고 마시고 쉬고 구경하다가 다시 공략에 나서자. 참고로 공간과 제품은 도망치지 않지만, 디저트는 도망치더라. (Sold Out 한가득 당함)
2층
근본의 맛, 젠틀몬스터
2층은 젠틀몬스터를 위한 영역이다. 브랜드 이름값만큼이나 곳곳에 볼거리가 다양하다. 지금 파악한 바로는 2층에서 오래 살아남을 것 같은 대표 조형물은 크게 두 개다. 공간 중간에 위치해 아래위로 움직이는 우주선 같은 동글이와 공간 한쪽에 있는 아령이다. (아래층 닥스훈트처럼 여기에도 이름이 있다. 동글이는 ‘시그넷’, 아령이는 ‘발발’이다. 이 미친 세계관…) 정교한 메커니즘으로 움직이는 키네틱 조각이라 멍때리며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군데군데 신사옥 하층부 외벽에 있는 패턴과 상호조응하는 면모가 있다. (그래서 일찍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젠틀몬스터를 상징하는 거인과 론 뮤익의 조각 작업이 연상되는 덩치 큰 친구들은 인간적인 터치감을 살린 화사한 색감이 돋보이는데, 그래서인지 영구성이 떨어져 버린다. 금방 사라지진 않겠지만, 공간을 재정비할 때 교체 1순위로 다가온달까. (거인 안녕) 더불어 지금 2층에는 젠틀몬스터가 최근 출시한 ‘볼드’ 컬렉션과 연관된 장식물과 조형물이 벽과 바닥에 산재해 있다. 금속 재질의 쇠맛이 나니 구분하기 편하다. 분명 없어질 테니 있을 때 잘 보고 나중에 헤어져도 서운해하지 말자.
3층
탬버린즈부터 어티슈, 누플랏까지
3층에는 탬버린즈, 어티슈, 누플랏 브랜드 3개가 각자의 영역에서 방문객을 기다린다. 실제 공간 크기를 면밀히 비교해 보진 않았는데, 느낌상 제일 공들인 곳이 어티슈 같았다. 그럴 만도 한 게, 어티슈 매장은 도산 플래그십 스토어와 하우스 노웨어 서울 딱 두 곳뿐이다. 탬버린즈는 플래그십 스토어가 곳곳에 있고, 누플랏은 런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젠틀몬스터와 함께 시너지를 내는 패션 카테고리로 묶어 공간에 힘을 준 듯싶다. 이번에 어티슈를 처음 알았는데, 의외로 인기 많더라. 어티슈 도산 플래그십 스토어에 갈 예정이 아니라면 여기에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을 듯?
탬버린즈는 1층 프로젝트 공간에서 진하게 봐서 그런지, 혹은 꽤 익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와우 이펙트가 좀 덜했다, 그래도 이름값은 한다. 아, 그리고 이건 탬버린즈를 비롯한 모든 브랜드에 해당하는 점인데, 제품 구경도 중요하지만 물건을 올려놓는 거치대도 꼭 함께 살펴보자. 정말 다양하고 신박하고 아름답다. 혹시 신사업으로 가구 브랜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거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들 정도였다.
누플랏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는 브랜드인 데다, 테이블웨어라는 특성 때문에 쇼케이스로만 접하면 감이 잘 안 온다. 물론 빨간 손톱을 활용한 ‘네일’ 컬렉션을 밀고 있어서 사람들이 다 그쪽에 시선을 집중해서 왔다 갔다 하는데, 누플랏의 묘미는 빨간 손톱뿐만이 아니다. 돈 버는 법을 잘 아는 곳이라 그런지, 5층에 있는 누데이크 티 하우스 식기를 모두 누플랏 제품으로 깔아놨다. 나는 2층을 구경하다 누데이크 티 하우스 예약 알림이 뜨는 바람에 5층으로 직행해 티와 디저트를 먼저 경험했다. 당연히 다양한 누플랏 제품도 직접 사용했다. 실제 써본 사람 입장에서 쇼케이스를 보는 것과 아무런 경험 없이 흥미로운 제품을 눈으로 훑고 지나가는 건 천지 차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네일 컬렉션보다 다른 기기묘묘한 아이템에 더욱 흥미가 가더라.
5층
하우스 노웨어 서울의 하이라이트
누데이크 티 하우스는 하우스 노웨어 서울의 백미다. 디저트 브랜드로 알려진 기존의 누데이크와 딴 세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단 5층으로 이동할 때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그 느낌이 아주 그냥… 새로운 세상으로 운반되는 것 같다. 아래에서 위로 문이 측측 열리며 펼쳐지는 세계는 아랫층과 사뭇 다르다. 일단 개방감이 굉장하고, 분위기가 조용하다. 입구와 제일 가까운 쪽에서는 누데이크 티 하우스에서 판매하는 티 라인을 시향하고 구입할 수 있는데, 티 콘셉트와 블렌딩 종류가 꽤나 방대하다. 누데이크 티 하우스만을 위한 준비치고는 공력을 너무 들여서 수상하다. (시린 눈) 고로 누데이크 티 하우스가 99.9999%로 테스트베드의 장이라는 데 500원 건다. 여기서 고객 반응을 본 후, 기존 누데이크 매장에서 티 서비스를 전개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전체 공간을 널찍하게 둘러싼 옥색 융단 커튼 안에 마련된 티 하우스는 가구부터 심상치 않다. 보라색과 검은색을 조합해 색도 독특하고 생김새도 신기한데, 실제 자리에 앉으니 부티크 호텔의 F&B 시설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테이블 간 넓은 간격, 디저트 플레이트와 티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테이블 사이즈가 온유함을 짙게 만든다. 유니폼을 입은 스태프가 조용히 트롤리를 끌고 다니며 서빙하는데, 긴장이 스르륵 풀리고 융숭하게 대접받는 느낌이었다. (물론 돈을 썼으니… ) 양쪽에서 스태프가 들락날락하는데, 그중 제일 안쪽에는 프라이빗 좌석이 있다. 흰색과 붉은색을 사용했고, 좌석이 모인 형태가 마치 꽃봉오리를 연상시키는데, 내가 들렀을 때는 아직 정식 운영을 시작하지 않는 상태였다. 일반 좌석과 비교해 어떤 점에서 다른지, 혹 특별한 서비스가 추가되는지 궁금했다. (가격도)
앞서 말한 대로 모든 테이블웨어는 누플랏이다. 커틀러리, 접시, 티팟, 유리잔 등등 몽땅! 특히 좌석마다 티 향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배치한 장치가 탐났다. 나는 네일 컬렉션 티팟과 티컵으로 서빙하는 프로모션 티를 선택했는데, 향과 맛이 꽤나 괜찮아서 놀랐다. 무엇보다 네일 컬렉션을 직접 써보니, 뜨거운 액체를 담았을 때 ‘실용성이 떨어지는 간지 아이템’이라는 점을 확인해서 좋았다. (뜨거워.) 오히려 기본적으로 세팅한 각종 테이블웨어의 그립감, 무게감, 사용감 등이 굉장히 좋아서 몇 개 장만하고 싶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므로 누플랏에 관심이 있다면 누데이크 티 하우스에 꼭 들려서 체험해 보길 바란다.
참고로 누데이크 특유의 개성 강한 디저트는 티와 어울리는 페어링을 염두에 둬서 그런지 파인 레스토랑에서 파티시에가 만들 법한 종류로 구성됐다. 대부분 매진이라 그나마 주문가능한 메뉴로 골랐는데, 고메 느낌이 났다. 여러모로 방문할 의지가 있다면 꼭 1층에서 미리 예약하길 권한다.
아이아이컴바인드 성수 신사옥과 하우스 노웨어 서울을 방문한 후 미적 지능(Aesthetic Intelligence)이란 단어가 스르륵 떠올랐다. LVMH 북미 지역 회장을 지낸 후, 현재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강의하는 폴린 브라운이 주창한 용어다.
그는 품질 때문에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15%에 불과하고 나머지 85%의 소비자는 성능이 아닌 다른 무언가 때문에 해당 제품을 선택한다며, 그 결정적 요인이 미학(Aesthetics)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서 말하는 미학은 단순히 시각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디자인을 넘어, 오감을 자극하는 모든 경험이 포함된다. 경험에서 끝나지도 않는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회상하고 상상하는 것까지 미학의 영역이다.
“미학은 그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며, 경영 전략에서 결정적인 요소다.
이미 안정된 사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상관없이 모든 회사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업에서(그리고 그 너머의 것들에서도) 미학은 중요하다.
누구나 미적 지능을 개발할 수 있으며,
사실은 우리 모두가 실제로 구현해내는 결과물에 비해 훨씬 더 대단한 능력을 품고 있다.
미적 비전과 리더십은 기업들을 넘어 사회의 전 부문까지도 변형시킬 수 있는 힘을 갖는다.
미학이 없다면, 대부분의 기업은 치명타가 될 수 있는 변화에 쉽게 영향 받는다.
다시 말하면, 기업의 미학이 실패하는 순간 회사 전체가 무너진다.”
<사고 싶게 만드는 것들>(원제: Aesthetic Intelligence) 중에서
젠틀몬스터가 해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수많은 브랜드 및 셀러브리티와 협업하는 위치로 성장한 비결, 탬버린즈와 누데이크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 새로 런칭한 브랜드에 집중되는 관심 등 아이아이컴바인드를 둘러싼 요란스러움에는 분명 미적 지능이 큰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미적 지능을 공간에 구현하는 게 퓨쳐 리테일이고, 그에 대한 대표적인 산물이 하우스 노웨어이며, 이를 통합적으로 묶어낸 가장 최신의 예가 이번 신사옥과 하우스 노웨어 서울 아닐까.
약간의 목표가 생겼다. 하층부를 살펴봤으니, 증층부, 그리고 대망의 상층부까지 훑어보고 싶다는, 일종의 신사옥 공략이랄까. 이 글을 읽은 사람 중 지인이 아이아이컴바인드에서 콧김 좀 부리는 사람이라면 공유를 부탁한다. 그리고 몰래 신사옥 공략에 도움을 주길 청해본다. 아모레퍼시픽 사옥 이후 공략하고픈 사옥이 생긴 건 오랜만이다. 아이고, 선생님. 13층 올빼미 전망대와 14층 정원 층에 꼭 좀 올라가고 싶습니다. harry.jun.writer@gmail.com 여기로 연락을… 기약 없는 뻐꾸기를 날려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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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디자인, 건축, 예술 관련 글을 기고한다.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손기술로 먹고산다'는 사주 아저씨의 말을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