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book] 팍팍한 세상 서바이벌 가이드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퍼블리를 위해 남이 쓴 글을 읽고,...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2021. 05. 23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필자 기명균이다. 평일엔 퍼블리를 위해 남이 쓴 글을 읽고, 주말엔 디에디트를 위해 내가 읽은 것에 대해 쓰고 있다.

이번 달에 고른 다섯 권은 팍팍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남의 말을 ‘헛소리’라고 의심부터 해본다거나, 변화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대처한다거나, 의지가 되는 사람과 대화를 한다거나, 비트코인에 뛰어든다거나, 일기를 쓴다거나. 이 책들을 가이드 삼아 당신도 당신의 길을 찾기를.


[1]
<똑똑하게 생존하기>

“우리 세대 최고의 지성인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광고를 클릭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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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에서 내가 하는 주 업무는 글 편집이지만, 발행 전 제목을 정할 때 의견을 내기도 한다. 몇 달 전에 편집한 글의 주제는 ‘노션으로 업무일지 쓰는 법’이었는데, 글의 퀄리티가 좋아서 많이 읽히기만 하면 직장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붙인 제목이 ‘이 글을 읽으면 업무일지를 쓰게 됩니다(feat.노션)’이다. 제목 덕분인지는 몰라도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고 읽은 독자들의 만족도도 높아서 나름 뿌듯했다. <똑똑하게 생존하기>를 읽다가 이 기억이 난 이유는…

책에 소개된 한 연구 결과 때문이다. 널리 퍼지는 페이스북 게시물에는 어떤 문구가 많이 쓰일까? 1위는 ‘~하게 될 것이다’였다. ‘깜짝 놀랄 것이다’, ‘사랑에 빠질 것이다’ 같은 제목에 사용자들이 강하게 반응했다는 것이다. ‘업무일지를 쓰게 될 것이다’라는 제목을 지었던 나는 잠시 뿌듯했지만, 이 책의 부제를 떠올리고는 착잡해졌다. ‘거짓과 기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한 헛소리 까발리기의 기술.’

인정. 내가 지은 제목이 헛소리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헬스 등록만 해도 살이 빠집니다’가 거짓말이듯, 그 글을 읽고도 업무일지를 아직 쓰지 않은 분들이 적지 않으리라. ‘글을 읽는 것’과 ‘업무일지를 쓰는 것’ 사이엔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니까.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살짝 뒤섞은 것이다(맹세코 독자 여러분을 기만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책은 이런 식으로 다양한 유형의 헛소리를 잡아내는 기술을 알려준다. 특히 숫자, 그래프, 이미지 등에 쉽게 혹하는 분이라면 추천.

  • <똑똑하게 생존하기> 칼 벅스트롬/제빈 웨스트 | 안드로메디안 | 19,800원

[2]
<일기시대>

“일기를 쓰는 자들은 얼마간 자신을 위한 둥지를 틀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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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떡씨는 2019년 가을부터 같이 일하게 된 회사 동료다. 2019년 여름에 <신입사원 빵떡씨의 극비 일기>라는 책을 냈다. 빵떡씨가 입사할 당시 이 책의 존재를 알았지만 일부러 읽지 않았다. 읽기 싫어서는 아니다. 솔직히 재밌을 줄은 알고 있었다. 빵떡씨는 회사에서 업무상 쓰는 짤막한 글도 재밌게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읽지 않았다. 극비로 취급될 만큼 솔직한 신입사원의 마음을 엿보고 나면, 괜한 지레짐작이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을 것 같았다. ‘책에서처럼 지금 나를 욕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다 최근 들어서야 <극비 일기>를 조금씩 읽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빵떡씨의 예전 동료들보다는 내가 낫지 않나 하는 마음 반, 까짓거 욕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 반으로. 역시나 ‘극비 일기’는 회사에서 업무상 쓰는 짤막한 글보다 훨씬 재밌었다. 나는 조금 후회를 했다. 이 재밌는 책을 왜 이제야 읽었을까 하는 마음 반, 진작 읽었더라면 좀 더 친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반.

문보영 시인의 <일기시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1년 반 동안 빵떡씨의 탁월하고 합리적인 면을 수없이 발견했으나, 인간적이고 선한 면은 <극비 일기>에서만큼 자주 보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쉽다. 지금이라도 읽었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빵떡씨의 다음 책을 기다리며, 뒤늦게 쓴 일기를 마친다.

  • <일기시대> 문보영 | 민음사 | 14,500원

[3]
<달까지 가자>

“오직 이것만이, 우리 같은 애들한테 아주 잠깐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 같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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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3000을 돌파한 올해 초까지가 주식시대였다면, 지금은 코인시대다. 데뷔작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스타트업 세계의 리얼리티로 처음 주목받았던 장류진 작가는, 이번에도 요즘 직장인들의 기쁨과 슬픔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냈다. 소설에 등장하는 ‘마론제과 3인방’처럼 다들 연봉인상보다는 코인 떡상을, 평생 직장보다는 조기 은퇴를 꿈꾸는 것이 현실이니까.

코인 등락을 확인하느라 한시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지하철만 타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최소 한두 명은 꼭 붉거나 푸른 숫자가 깜빡거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숫자와 그래프로 점철된 투자시대에도 인간적인 면(선하지는 않다)이 있다. 누군가의 떡상한 주식 얘기를 들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좋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고로 투자 썰이 재밌으려면 수익이 나면 안 된다. 노홍철이 <개미는 오늘도 뚠뚠>의 고정 패널이 된 이유 또한 투자를 잘해서가 아니라, 손대는 족족 말아먹었기 때문이다.

코인에 명운을 건 ‘마론제과 3인방’은 달까지 갔을까, 아님 대기권도 못 가보고 추락해버렸을까. 펴자마자 단숨에 끝까지 읽어내려가게 되는 이 재밌는 소설을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결말을 밝히진 않겠다. 다만, 기존의 ‘망한 투자 썰’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는 귀띔 정도는 즐거운 독서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정세랑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입체적인 유쾌함과 있을 법한 불쾌함’이 공존한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다. “한푼 두푼 모은 전 재산을 가상화폐에 걸어두고 퇴사를 꿈꾸며 점쟁이에게 미래를 물어보려는 내 인생… 대체 실체가 있는 게 하나도 없잖아?”

  • <달까지 가자> 장류진 | 창비 | 14,000원

[4]
<키키 키린의 말>

“제대로 느껴주는 연출가를 만난다는 건 배우로서는 행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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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영화 <걸어도 걸어도>로 처음 만난 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배우 키키 키린과 12년간 6편의 작품을 함께했다. 그 시간 동안 두 사람이 나눈 대화들이 쌓여 책 한 권이 나왔다. 묻고 듣는 건 주로 감독이다. 철저히 팬의 입장에서 ‘그 작품 찍을 땐 어떠셨어요?’, ‘그 장면에서 그런 연기는 대체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질문에 답하는 사이사이, 배우는 감독의 마음을 슬쩍 떠본다. ‘내 어떤 점이 좋아서 나를 자꾸 캐스팅하는 거야?’ 간질간질. 감독이 이 책을 두고 연애편지라 말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두 사람이 함께 찍은 마지막 작품은 2018년 <어느 가족>이다. 이 영화가 개봉하고 채 몇 달 지나지 않아 배우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들릴 듯 말 듯 배우가 읖조리는 대사 “고마웠어”가 감독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가 된 셈이다. 실제로 영화 개봉 후 감독은 몇 번이나 배우를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남겨질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었겠지만, ‘한번쯤 만나주시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챙겨봤다. 키키 키린이 세상을 떠난 후 감독이 찍은 첫 영화로, 프랑스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해서 재밌게 봤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새삼 감독이 걱정된다. 키키 키린 없이 괜찮았을까. 아무리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있어도 외롭지 않았을까. 그만큼 떠난 배우에 대한 감독의 마음이 절절하다.

  • <키키 키린의 말> 고레에다 히로카즈 | 마음산책 | 18,000원

[5]
<모든 것이 달라지는 순간>

“처음에는 천천히 다가오지. 그러다 갑자기 나타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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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버핏은 1999년 이렇게 말했다. “투자의 관건은 해당 기업의 경쟁우위, 무엇보다도 그 경쟁우위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는 데 있다. 폭넓고 지속가능한 *해자를 가진 제품이나 서비스는 투자자에게 보상을 가져다준다.” 다른 기업들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경쟁우위, 즉 ‘경제적 해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말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해자: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성 둘레에 판 연못으로, 워렌 버핏은 기업이 신규 참여자들에 대한 진입 장벽을 구축하여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점한다는 의미로 경제적 해자라는 용어를 썼다.

2013년에는 <경쟁우위의 종말>이란 책이 출간됐다. 혁신 전문가 리타 맥그래스의 결론은, 사업환경이 수시로 바뀌는 시장에 ‘지속가능한 경제적 해자’ 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경쟁우위를 만들고, 더 이상 효과가 없는 기존 경쟁우위는 빠르게 버리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이제 모든 기업들이 가져야 할 경쟁우위는 단 하나, 변화를 알아차리고 빠르게 대응하는 능력뿐이다. 그렇다면, 이 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리타 맥그래스가 8년 만에 내놓은 책이 <모든 것이 달라지는 순간>이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왜 우리는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는가. 불안과 편견 때문이다. 다가올 변화는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하다. 그래서 익숙한 기존 방식을 버리지 못한다. 기존 방식이 잘 통했다면 ‘내 생각이 맞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기가 더더욱 어렵다. 불안과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현장 실무자의 목소리를 듣고, 의사결정에 적극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 입장에서 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안과 편견을 해소해야겠지. 나를 지배해온 불안과 편견에 대해 정리해보자. 혼자 하는 것보다는, 나를 잘 아는 주위 지인들에게 물어보는 걸 추천한다. 리더가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 조직의 미래는 없다.

  • <모든 것이 달라지는 순간> 리타 맥그래스 | 청림출판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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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균

매달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기이할 기, 밝을 명, 고를 균, 이름처럼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