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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거의 모든 호빵

안녕, 리뷰 쓰느라 평생 먹을 호빵을 다 먹은 에디터B다. 호빵의 뿌리는 찐빵이다. 삼립식품의 창업주가 겨울에 잘 팔리는 빵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안녕, 리뷰 쓰느라 평생 먹을 호빵을 다 먹은 에디터B다. 호빵의 뿌리는 찐빵이다.…

2020. 11. 18

안녕, 리뷰 쓰느라 평생 먹을 호빵을 다 먹은 에디터B다. 호빵의 뿌리는 찐빵이다. 삼립식품의 창업주가 겨울에 잘 팔리는 빵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내놓은 식품이 바로 호빵이었다. 그러니까 호빵이라는 단어는 원래 제품명인 거다. 지금은 둥그렇고 하얀 빵에 소가 들어간 그 빵을 모두가 호빵이라고 부른다. 그러다 보니 호빵은 보통명사가 되었다. 상표권과 관련한 법적 논의가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호빵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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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호빵이 출시된 지 50년이 지났다. 그래서 삼립이 요즘 아주 열일 중이다. 초코호빵, 짜장호빵 등 이색적인 호빵을 많이도 출시했다. 오늘은 그 호빵들을 하나씩 먹어보고 리뷰할 예정이다. 장황한 설명은 생략하고 미니멀한 나의 소비 습관처럼 미니멀하게 쓰겠다. 순서는 맛있었던 순서다. 1등은 단팥 왕호빵이다.


[1]
부드러운 단팥 왕호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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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된 상태의 호빵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자.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4개의 호빵이 옹기종기 들어간 패키지를 떠올릴 거다. 하지만 요즘 출시되는 호빵은 조금 다르다. 한 봉지에 한 개씩 들어가 있다. 바로 전자레인지용으로 나온 제품이다. 봉지를 뜯지 않고 전자레인지에 넣어 45초만 돌리면 된다. 간편하기도 하고 수분은 빠져나가지 않아서 촉촉한 편. 내가 1등으로 뽑은 단팥 왕호빵 역시 이런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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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판 왕호빵을 먹으며 생각했다. 역시 오리지널을 이길 수가 없다. 뒤에서 언급할 크림치즈 호빵, 초코 호빵도 맛있었지만 누구도 단팥을 이길 수는 없었다. 왕호빵은 4개입 호빵과 비교했을 때 사이즈만 더 큰 게 아니다. 호밀이 들어가서 식감이 다르고, 통단팥이 들어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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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단팥 어디 꼭꼭 숨었나 찾아볼 필요도 없다. 한눈에 봐도 가득 차 있다. 굉장한 밀도다. 가격은 1,700원. 4개입 단팥호빵이 3,400원인 것을 감안하면 가성비가 좋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두 제품은 팥소가 들어갔다는 것만 같을 뿐 퀄리티 차이는 아주 크다. 단팥 왕호빵은 올겨울 꼭 먹어봐야 할 간식이다.


[2]
크림치즈 호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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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치즈 호빵이라… 처음엔 기분 좋은 장난처럼 생각했다. “팥 대신에 크림치즈 넣어보는 건 어떨까? 크림치즈 맛있잖아요. 하하하” 회의 때 이런 대사가 오가지 않았을까. 한입 먹고 나서야 이 호빵은 실험적인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뭐야, 이거 엄청 맛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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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맛’이라고 적혀 있지만 막상 먹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가공식품이 있지 않나. 과자도 그렇고 아이스크림도 그렇고. 재료의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 재료를 아낀 그런 맛 말이다. 크림치즈 호빵은 그렇지 않다. 진하다. 아주 진하다.

크림치즈와 호빵의 조화는 생각보다 훌륭하다. 동서양의 화합이 비로소 호빵에서 이루어졌다. 밀가루와 크림치즈가 입안에서 뒤섞이며 꾸덕한 치즈를 먹는다는 착각을 준다. 기분 좋은 착각이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맛있다는 표현은 좋은 크림치즈를 써서 깊은 맛을 낸다는 뜻은 아니다. 편의점에 쉽게 먹는 가공식품으로서 맛있다는 뜻이다. 올겨울 반드시 먹어봐야 할 디저트다. 가격은 4,200원(3개입).


[3]
매콤 고추잡채만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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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고추? 잡채? 다 아는 맛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매콤 고추잡채만빵’은 꽤 맛있었다. 이번에 삼립에서 출시한 제품 중에는 ‘만빵(만두+호빵)’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제품이 몇 개 있는데, 호빵보다는 만두에 가깝다. 아니, 길거리에서 파는 찐빵 같은 느낌이다.

호빵 소로는 돼지고기, 청양고추 등이 들어갔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소의 양이 정말 많다. 맛은 고추참치의 맛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름처럼 매콤한 맛이지만 맛있게 매콤하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디에디트의 권PD는 매워하면서도 끝까지 다 먹었고, 심지어는 신제품 호빵 중 고추잡채만빵이 제일 맛있다고 말할 정도. 많은 사람들이 고추잡채만빵의 매콤함을 좋아할 거다. 가격은 1,700원.


[4]
이천쌀 호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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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천쌀을 사용했다. 물론 이걸 먹고 이천쌀 맛인지 강화도 쌀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천쌀을 사용되기는 했다. 맛은 아침햇살로 빚은 빵을 연유에 찍어먹는 듯한 느낌이다. 적당히 달아서  하나를 다 먹었을 때 물리는 느낌이 없었다. 무엇보다 빵의 쫄깃함이 상당해서 제대로 된 빵을 먹는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니 한 번쯤 먹어보면 좋겠다. 괜찮은 간식이다. 가격은 1,300원.


[5]
고기부추 왕호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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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츄가 진화하면 라이츄가 되고, 고라파덕이 진화하면 골덕이 된다. 라이츄가 되면 강해지는 대신 피카츄의 귀여움은 온데간데없다. 왕호빵 시리즈도 비슷하다. 왕호빵은 호빵의 진화 버전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고기부추 왕호빵의 속은 아주 푸짐하고, 고기가 크게 씹히지만, 내가 알던 그 호빵을 먹는다는 느낌은 나지 않는다. 에디터M 역시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동안 호빵을 먹을 때마다 소가 많길 바랬지만 역시 다 이유가 있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기부추 왕호빵은 맛있다. 고기찐빵이 그리울 땐 이걸 대신 먹어도 좋겠다. 식사 대용으로 생각하면 꽤 괜찮다. 가격은 1,700원.


[6]
허쉬초코 호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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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의 질감부터가 다르다. 다른 호빵이 부드럽고 폭신폭신하다면, 초코호빵은 상대적으로 딱딱하고 울퉁불퉁하다. 전혀 다른 장르의 빵을 보는 기분이다. 누군가 호빵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면, 전주 초코파이의 진화된 버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포장지를 벗긴 순간부터 초코 향이 코를 때린다.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척 좋아할 맛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하나는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두 개 이상을 먹기엔 달다. 저렇게 많은 양의 초코가 들어갔을니 달 수밖에.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입맛이 그렇다는 것뿐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호빵이 최고의 디저트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격은 4,200원(3개입).


[7]
에그커스터드 호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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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반으로 잘랐을 때 마치 달걀 노른자처럼 보여서 귀엽고 재밌다. 하지만 맛은 다소 아쉽다. 맛이 없는 건 아닌데, 에그커스터드의 맛이 아니다. 에그커스터드보다는 옥수수 맛이 나서, 내가 혹시 에그커스터드의 맛을 잘못 알고 있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원재료를 보니 난황분(달걀을 말려서 빻은 가루)이 들어가서 달걀 맛이 날 만도 한데,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맛은 있다. 달걀 맛이 미미해서 아쉬울 뿐이다. 그냥 계란을 닮은 맛있는 호빵이라고 생각하자. 그럼 된다. 가격은 4,200원(3개입).


[8]
숯불갈비 왕호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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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크게 씹힌다. 고기는 돼지갈비살이 사용되었고, 숯불갈비맛 소스, 양념불고기맛 엑기스 등으로 숯불갈비 맛을 냈다. 들어간 고기의 양이 상당하다 보니 ‘뭐 이런 호빵이 다 있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에게 이런 호빵을 선물해준다면 “요즘 세상 참 먹을 것도 많고 좋아졌군”하며 껄껄 웃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을 몇 가지 꼽자면, 후추향이 조금 강했다. 갈비에서 느낄 수 있는 단맛을 후추향이 방해하는 듯해서 조금 아쉬웠다. 고기가 먹고 싶다면 이거말고 고기부추 왕호빵을 먹자. 가격 1,700원.


[9]
쎈사천짜장호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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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짜장면을 좋아하고, 짜파게티를 사랑하며, 짜장떡볶이를 애정한다. 춘장으로부터 탄생한 수많은 음식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쎈사천짜장호빵에 큰 기대를 했다. 짜장 맛은 괜찮은 편이다. 소에서는 3분 짜장과 비슷한 맛이 나는데 약간 매콤한 편.

소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의외로 큰 고기가 들어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다른 디에디트 직원들도 시식했는데, 대부분 호평이었다. 짜장맛의 개성이 강해서 호빵에게 묻히지 않아 좋다는 평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호빵과 시너지가 약해서 굳이 이걸 빵에 넣어서 먹어야 할까 생각은 들었다. 짜장소스와 탄수화물은 본디 짝꿍과 같은 것이라 웬만하면 잘 어울리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소의 양이 적기 때문은 아닐까. 가격은 5,600원(4개입).


[10]
쎈불닭 호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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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다. 혀에 닿자마자 맵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 스파크가 번쩍하고 튀는 사랑이 이런 느낌일까. 만난 지 10분 만에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강렬함이 쎈불닭호빵에 있었다. 하지만 오로지 매움으로 점철된 한 입을 꿀떡하고 넘기면 언제 매웠냐는듯 금새 사라져버리고 없다. 역시 쉽게 오는 사랑은 쉽게 사라지는건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불닭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호빵도 좋아할까? 아닐 것 같다. 매움의 정도가 애매하다. 차라리 매움의 끝이라도 보여준다면 매니아들의 마음은 훔칠 수 있었을 텐데. 포지션이 애매하다. 가격은 5,600원(4개입).


[11]
피자호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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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피자호빵을 먹었을 때는 ‘피자에 호빵이라니…대단해…’라고 생각했다. 그게 몇 년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최소 10년은 더 지났다. 요즘 출시한 신박한 호빵을 먹다 보니 피자호빵은 이제 시시하게 느껴진다(피자호빵 미안). 게다가 소가 가득 들어간 왕호빵을 먹다가 4개입 패키지를 먹으니 내용물도 상대적으로 부실하다고 느껴진다(정말 미안). 삼립이 피자호빵을 리뉴얼해서 왕호빵으로 출시해주면 좋겠다. 가격은 3,900원(4개입).


[12]
공주밤 호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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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단맛만 있는 게 아니다. 고소함도 함께 있다. 바밤바를 비롯해 대부분의 밤맛 가공식품은 그걸 살리지 못한다. 단맛에만 너무 집중했다는 불만이 있었다. 공주밤 호빵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은근한 맛이 없다. 대놓고 “밤!!”이라고 외치는 듯 단맛만 강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입맛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밤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즐겨 먹을 만하다. 밤껍질의 갈색을 표현한 호빵 표면의 색깔도 재미있다. 밤 매니아들에게는 공주밤 호빵을 추천할 수 있다. 가격은 1,300원.


“우리 동네에는 크림치즈 호빵이 없어요” “허쉬초코 호빵을 도대체 어디 파는 거죠?!” 이런 아우성이 들린다. 나같은 경우에는 정말 먹고 싶은 제품이 있을 때 단골 편의점 매니저에게 부탁을 한다. 발주 하나만 넣어주시면 안되냐고. 이 자리를 빌어 연희동 세븐일레븐 매니저님과 명지대 씨유 점장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단, 입고 되는 시간에 맞춰서 가지 못하면 솔드 아웃이 될 수도 있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