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반짝이는 것들을 찾아서

안녕, 한 달에 한 번 전시 소개하는 객원필자 김은아야. 언제가 끝일지 모르는 빗줄기로 지난하고 축축 쳐지는 날들이야. 그렇지만 이럴 때일수록...
안녕, 한 달에 한 번 전시 소개하는 객원필자 김은아야. 언제가 끝일지 모르는…

2020. 08. 03

안녕, 한 달에 한 번 전시 소개하는 객원필자 김은아야. 언제가 끝일지 모르는 빗줄기로 지난하고 축축 쳐지는 날들이야. 그렇지만 이럴 때일수록 기분이라도 산뜻하고 뽀송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 아니겠어. 저기압일 때는 고기 앞으로 향해야 하듯이, 눅눅하고 잿빛인 하루에는 반짝이고 컬러풀한 전시라는 처방전을 내려주자구. 오늘 소개하는 갤러리들은 대부분 코로나19로 한참 동안 굳게 걸어두었던 빗장을 간만에 푼 곳이니까, 더욱 반갑게 맞아주자.


[1]
<새 보물 납시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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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하면 역시 보물 아니겠어. 마침 여기에 딱 맞는 전시가 있어.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한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이야.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국보와 보물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인데, 특별한 점이 있어. 그전에 잠깐 퀴즈. 우리나라 국보1호와 보물1호가 뭐게? 그래, 생각해볼 시간도 필요 없이 숭례문과 흥인지문이라는 답이 나오지. 여기서 다시 한 번 질문. 그럼 제일 마지막 번호(?)의 국보와 보물은 뭐게? 아마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거야. 그런데 그게 어쩌면 정답일 수도 있다는 사실. 국보와 보물 리스트에는 끝이라는 게 없거든.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문화유산이 있다면 문화재청에 의해서 국보와 보물로 새롭게 지정된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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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바로 이렇게 새롭게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을 모아놓은 자리야. 일종의 데뷔 무대랄까?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새로 국보·보물이 된 유산은 총 157건인데, 이중 건축물이거나 너무 무거워서 이동이 어려운 것들을 뺀 83건의 문화재를 만나볼 수 있어. 이 규모는 지금까지 국보와 보물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으로는 역대 최대라고 해. 다시 말하면, 이번 전시가 아니면 이 보물들을 한자리에서 다시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 국보라고 해서 모두 국가의 소유가 아니라 개인과 기관, 사찰 등 저마다 소속이 다르거든. 싹쓰리, 아님 워너원을 생각해 봐. 소속사가 다른 아티스트들이 계속해서 한 그룹으로 활동하는 건 쉽지 않다구. 흑.

아무튼 한국이가 새롭게 보물상자에 추가한 ‘잇템’들은 뭘까. 멤버들을 좀 소개해 볼게. 우선 기록멤. (편집자주: 멤은 멤버라는 뜻. 비주얼멤, 보컬멤 이런 식으로 사용. 편집자도 몰라서 주변에 물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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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국보로 승격된 <삼국사기>를 비롯해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등 이미 연습생(?)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던 다양한 역사 기록물을 만날 수 있어. 특히 조선은 ‘기록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꼼꼼하고 체계적인 기록 시스템을 자랑했거든. 그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이 어떻게 쓰이고 보관되어 지금 우리에게 전해졌는지를 알 수 있도록 그 의미도 자세하게 해설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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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예술멤. 아름답기로 소문난 고려청자들과 수려한 강산을 고스란히 남긴 산수화와 풍속화가 가득해. ‘네임드’ 아티스트 정선, 김정희, 신윤복, 김홍도의 작품도 공개되거든. 다만 작품의 보존을 위해 전시 기간 내내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스케줄에 따라 교체되어 전시되니까, 꼭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방문 전에 일정을 확인하는 것이 좋겠어. 어때, 국보와 보물이 ‘귀하신 몸’이라는 거, 실감 나지?

📍국립중앙박물관
📅7.21-9.27


[2]
김홍석 개인전
<작은 사람들>

1400_[Kukje Gallery] Gimhongsok_installation view_5

혹시 바다를 찾아 부산행을 계획 중인 사람이 있을지 몰라 부산에서 열리는 전시를 준비해 봤어. 누가 “여행 가서 뭐 했어?”라고 물었을 때 “해운대 바다 좀 보고 광안리에서 회 먹었지 뭐”하는 뻔한 대답보다 “요즘 괜찮은 전시가 있어서 작품 좀 감상하고 왔지”하면… 너무 작위적이라고? 미안…

그래도 부산의 새로운 스폿을 찾아헤멘 여행자라면 들러볼 만 할 거야. 갤러리가 있는 ‘F1963’이라는 복합문화공간이 제법 근사하거든. 이곳은 폐공장이었던 곳을 새롭게 꾸민 곳인데, 산책하기에도 사진찍기에도 매력적인 곳이야. 테라로사도 있으니 차가운 아메리카노로 더위를 달래기도 좋고. 오늘 소개할 곳은 국제갤러리 부산점. 이곳에서 김홍석 작가의 <작은 사람들>이 열리고 있거든.

1400_[Kukje Gallery] Gimhongsok_installation view_4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이 가는 건 알록달록 색색의 풍선이 쌓여있는 광경이야. 이 작품의 제목은 ‘MATERIAL’인데, 배경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있어. 작가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풍선을 나누어주고 크게 불어달라고 주문했대. 하나의 조건이 있다면, 숨을 푸우 불어넣을 때 하나의 소망도 같이 풍선에 담아달라고. 가족들이 풍선에 넣은 소망은 총 8개. 어머니(mother)·성취(achievement)·여행(travel)·일상의 기적(everyday wonders)·정의(rightness)·재미(interest)·매력(attraction)·사랑(love). 이 여덟 단어의 앞글자를 따서 작품 제목(MATERIAL)이 된 거지.

1400_[Kukje Gallery] Gimhongsok_Untitled (Short People) Red, Beige, Orange, Red, Pink

그런데 이 풍선은 사실 풍선이 아니야(?). 브론즈나 스테인리스 스틸 등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조각이거든. 이 작품 외에도 15명 공장 노동자의 숨을 담은 <15 Breaths> , 작가의 학창 시절 친구, 친척 등 지인 100여 명의 숨을 담은 <Untitled (작은 사람들)> 등을 만날 수 있어. 소망이 숨결이 되고, 공기가 금속으로 바뀌는 반전의 작품들, 직접 보면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지 궁금하지 않아?

📍국제갤러리 부산점
📅6.26-8.16 


[3]
시오타 치하루 개인전
<Between Us>

14001_Shiota Chiharu, Beetween Us, 2020, red wool, wooden chairs installation view, Gana Art, Photo by Lee Dong Yeop, Copyright Gana Art and the artist_2

우리가 2월부터 매일 접하는 그래프가 있지. 자가격리자, 확진자 그리고 사망자. 이렇게까지 일상에 ‘죽음’이 가깝게 자리 잡은 적이 있을까. 이 두 글자는 우리에게 타인과의 연결, 삶의 불확실함, 불안함 같은 모호한 느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것 같아. 이렇게 죽음과 삶의 경계에 대한 남다른 시선이 궁금하다면 시오타 치하루의 전시를 추천해.

1400_Shiota Chiharu, State of Being, 2020, Metal frame, keys, thread, 20 x 20 x 20 cm, Gana Art Photo by Lee Dong Yeop, Copyright Gana Art and the artist

삶과 죽음은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야. 어린 시절에 할머니의 무덤을 보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자각한 작가는 두 번의 암투병을 겪으면서 인간의 유한함, 생의 불안함을 피부로 느꼈다고 해. 그리고 작업에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투영하기 시작했지. 작가는 작품에 일상적인 소품을 사용해. 의자, 열쇠, 책… 평범해 보이는 물건이지만 그 평범함이야말로 불완전한 인간 존재를 상기시킨다고 여기거든.

1400_Shiota Chiharu, In the hand, 2020, Bronze, brass wire,32 x 26 x 28 cm, Gana Art Photo by Lee Dong Yeop, Copyright Gana Art and the artist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의자가 많이 등장하는데, 작업을 위해 새로 제작하거나 구입한 것이 아니라 누군간의 손때가 그대로 묻어있는 의자라고 해. 작가는 물건을 사용한 누군가의 기억과 의식이 의자에 그대로 남아있다고 믿는데, 죽음 이후에도 영혼과 기억이 남아있다는 작가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지.

1400_Shiota Chiharu, Beetween Us, 2020, red wool, wooden chairs installation view, Gana Art, Photo by Lee Dong Yeop, Copyright Gana Art and the artist_3

이번 전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붉은 실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야. 개인적으로 이런 설치 작품에 대해서는 미리 자세한 정보를 알기보다 현장에서 그대로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들어서는 순간 자신을 압도하는 어떤 에너지를 직접 느껴보기를 바라.

📍가나아트센터
📅7.16-8.23


[4]
<Layered 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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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타 치하루가 평범한 소품으로 삶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화두를 끌어낸 것처럼, 일상의 풍경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예술가들의 힘 아닐까. 세 명의 젊은 작가-권봄이, 유리, 황원해 작가의 그룹전 <Layered Space> 도 이 ‘낯설게하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전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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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봄이 작가는 반복적으로 종이를 마는 행위에서 ‘순환과 회귀’라는 과정을 발견해. 선(線)에 그쳤던 종이가 반복적으로 말리면서 단단한 면이 되고, 또 면이 모여서 원이 되는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거지. 그런가하면 거울이라는 소재를 기하학적인 설치 위에 슬쩍 놓는 것으로 추상을 완성시키기도 하고(유리), 각기 다른 형태와 질감을 가진 건축 소재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사용함으로써 이미지와 기억이 뒤섞인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기도 해(황원해).

각기 다른 소재와 주제, 작업 방식을 가진 세 명의 작가가 한 공간에서 세 개의 이야기를 펼쳐낸다는 것, 그리고 그 전시의 이름이 ‘나뉘어진 우주’라는 것, 그 자체로 벌써 하나의 작품 같지 않니.

📍히든엠갤러리
📅7.9-8.20

kim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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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전시, 공연, 와인에 대한 글을 씁니다. 뉴스레터 '뉴술레터' 운영자. 뭐든 잘 타요. 계절도, 분위기도, 쏘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