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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개소리, Bark

요즘 내 아이폰 알림센터엔 개 짖는 소리가 절반이다. 왈, 왈왈! 재밌어 보여서 ‘바크(Bark)’라는 앱을 다운로드했더니 생긴 일이다. 이 요상한 앱을...
요즘 내 아이폰 알림센터엔 개 짖는 소리가 절반이다. 왈, 왈왈! 재밌어 보여서…

2016. 10. 12

요즘 내 아이폰 알림센터엔 개 짖는 소리가 절반이다. 왈, 왈왈! 재밌어 보여서 ‘바크(Bark)’라는 앱을 다운로드했더니 생긴 일이다.

이 요상한 앱을 뭐라고 규명해야 할까. 소셜 미디어라고 하기엔 사용자 간의 관계가 너무 담백하고, 채팅앱이라고 하기엔 대화의 규모가 작다. 심지어 사람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앱 속에 있는 건 오직 개뿐. 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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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좋게 말하면 깔끔해서 쿨하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심플해서 어리둥절할 정도다. 처음엔 어떻게 써야 할 지 몰라 다운로드해둔 채 한달을 묵혀놨다. 근데 알람을 켜놨더니 하루종일 개들이 짖어댄다. 다들 뭘 바라고 이렇게 짖는걸까. 그래, 한 번 제대로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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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크는 이상할 만큼 내게 원하는 개인정보가 없다. 내 이름도 궁금해하지 않고, 생년월일도 묻지 않는다. 그냥 8종류의 멍멍이 캐릭터 중 하나를 고르게 한다. 당연히 제일 귀여운 애로 골랐다. 제일 귀엽다는 것의 기준은 머리에 달린 리본이다. 난 액세서리를 좋아하니까. 이쯤 되면 거의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앱인 셈이다.

바크가 수집하는 정보는 오직 하나. 현재위치다. 사용자들의 취미나 성별, 관심사로 그룹을 구분짓지 않고 오직 ‘Territory(영역)’ 기반으로 굴러간다. 내 구역에서 내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짖어대는 행위는 개들의 영역표시와 일맥상통한다. 공허한 화이트 벌판에 홀로 남겨진 내 캐릭터를 가볍게 터치하면, 짖을 수 있다. ‘왈!’ 핑크색 원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내가 짖으면 반경 1마일 이내의 바크 유저들에게 내 짖음이 전달된다. 내가 짖으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화답하듯 연달아 짖기도 한다. 심지어 전세계 유저들이 실시간으로 왈왈대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궁금하면 여기를 클릭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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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짖냐고? 짖으면 뭐하냐고? 글쎄. 나도 처음엔 그런 의문을 가졌지만, 짖는데 이유는 없다. 그냥 아침먹고 왈! 식후땡하고 왈! 야근하다 왈! 이런 느낌이다. 아주 함축적인 소통이다. 한 번의 짖음으로 지금 여기, 당신 가까이에, 내가 살아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호불호가 갈릴 앱이다. 누군가는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르겠다고 삭제해버릴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개의 언어에 중독돼 하루종일 왈왈거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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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화도 가능하다. 내 캐릭터를 길게 누르면 10글자 이하의 단문 메시지를 쓸 수 있다. 개인과 주고받는 메시지는 아니고, 같은 구역의 모든 이들이 볼 수 있게 게시하는 형태다. 10글자가 워낙 짧아서 긴 대화가 이루어지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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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여자친구랑 어제 헤어져서 힘들다는 얘기를 털어놓고 있다. 술 먹고 잊어버리라는 따뜻한 충고글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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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13303이 나다. 여러분 여의도 가지마. 바크가 허락하는 글자수를 맞추려다보면 반말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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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몇 가지 대화를 시도해봤다. 어젯밤엔 ‘여러분 / 이 앱을 어떻게 / 생각해요? 궁금’ 이라고 세번에 걸쳐 메시지를 띄웠다. 한 명이 대답해줬다. 시간 죽이는 앱이라고, 1등 되면 기분이 좋다고. 누군지 모를 사람과 이렇게 불편하게 소통하려니 기분이 묘하다.

말이 나온 김에 설명하자면 이 앱에는 각 구역의 ‘짱(촌스러운 표현이지만 갑자기 너무 쓰고 싶었다)’이 있다. 그 동네에서 가장 많이 짖은 개가 1등을 차지하는 방식이다. Top Dog이 되면 그 구역의 이름을 맘대로 바꿀 수 있다. 우리 동네의 이름은 ‘힘내자ㅋ’다. 내가 사는 동네의 타이틀로는 너무 시시하다. 내가 일등이 되어 바꿔버리고 싶다. ‘이 구역의 미친개는 너’로.

이런 식으로 약간의 정복욕도 자극한다. 새로운 구역을 방문할 때마다 ‘바크’를 하면 내 영역이 넓어진다. 나는 현재 서울 시내에 5개의 영역을 확보했다. 내일은 더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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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설명한 것이 바크의 거의 모든 기능이라고 할 정도로 이 앱은 심플하다. 신선하고 이상하다. 하긴, 원래 우리가 하는 말은 대부분이 개소리니까. 개의 언어를 빌려 소통한다고해도 이상할 건 없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짖어나보자. 개소리가 당기는 나날이다.

에브리바디 짖어봐, 밬! 밬!


BARK
Point
: 가장 세련된 방법으로 개가 되는 법
Price : Free
Download : iOS / Android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