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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라이, 샤퀴테리

안녕, 디에디트의 객원필자 김은아다. 차례상에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규칙이 있다면 한국인의 밥상, 아니 술상에는 이보다 준엄한 규칙이 존재한다. 모름지기 ‘한 잔’을 즐길...
안녕, 디에디트의 객원필자 김은아다. 차례상에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규칙이 있다면 한국인의 밥상, 아니…

2019. 11. 07

안녕, 디에디트의 객원필자 김은아다. 차례상에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규칙이 있다면 한국인의 밥상, 아니 술상에는 이보다 준엄한 규칙이 존재한다. 모름지기 즐길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을 단어는 바로치맥그리고삼쏘’. 이것이 무슨 뜻인고 하니, 자고로 술에는 고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술자리마다 고기를 튀기고 구울 수는 없는 . 매일 수십 가지 일들이 나에게 술을 권하는데, 그때마다 잔치를 벌였다가는 원치 않은 듬직한 체격을 얻게 테니까. 건강한 방식으로 육식주의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되는 곳이 샤퀴테리아다.

샤퀴테리는 다양한 육가공품을 통칭하는 말인데, 이러한 샤퀴테리를 직접 만들고 판매하는 곳을 샤퀴테리아라고 부른다. , 유럽 배경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천장에 각종 소시지 등을 걸어놓고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자리를 지키는 가게, 번쯤 있지 않나. 최근 들어 한국에도 부쩍 샤퀴테리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곳곳에 개성 있는 가게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오늘 소개할 곳은 문을 연 지 달이 되지 않은 새내기 샤퀴테리아. 바로 한남동의 미트로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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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기대하던 것과는 다른 풍경이다. 주렁주렁 투박하게 매달린 묶음이나 커다란 다리 짝이 아니라 모던한 분위기가 나를 맞이한다. 샤퀴테리 초심자라도 길을 걷다 카페에 들어서듯 부담 없이 들어설 있을 같은 느낌이랄까.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물음표. , 소시지를 만들기에는 너무 세련된 공간인데. 다른 곳에서 만든 제품을 가져와서 팔기만 하는 건가. 그렇지만 이런 의구심은 이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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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샤퀴테리아의 심장부(?)라고 있는 쇼케이스에 다가갔다. 다양한 크기와 색상으로 진열되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마트에서 흔히 접할 있는 길쭉한 소시지 모양이다. 다만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주었을 , 소시지들은 꽃이 것이 아니라 혀를 꼬이게 만들었다. 모르타델라, 복부어스트, .. 훌라.. 훌라이쉬케제…?

내면의 낯가림을 눈치챈 듯한 사장님이 친절하게 다가와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신다. 제조법부터 재료, 먹는 방법까지.. 나를 당황하게 만든 훌라이쉬케제는 일명브레드 소시지인데 소시지 고기 반죽을 빵틀에 구운 모양 소시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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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를 받는 김에 공간의 시작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미트로칼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슬로푸드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온 이들은 NGO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에 출장을 오가면서 현지에서 샤퀴테리 문화를 눈여겨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샤퀴테리가 우리의 육류 소비문화를 건강하게 바꿀 있는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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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고기를 소비하는 방식이 구이 중심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구이에 적합한 삼겹살·목살과 그 밖의 부위의 수요에 차이가 있어요. 삼겹살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도 이러한 이유죠. 샤퀴테리는 지방이 적은 뒷다릿살, 돼지에서 가장 양질의 지방을 함유한 등살 다양한 부위를 사용하기 때문에 샤퀴테리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이런 가격적인 문제에서도 안정을 찾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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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퀴테리아는 육가공품을 손수 만드는 일종의 공방이라고 있다. 말은 가게마다 분명한 개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똑같은 크루아상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파티쉐의 손에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맛을 띄는 것처럼, 소시지 역시 샤퀴테리아마다의 개성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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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로칼의 개성을 가장 담고 있는 것은 바로 생소시지다. 가장 전통방식에 가깝게 만들어지는 소시지인데, 실제로 미트로칼은 유럽의 샤퀴테리들과 교류하면서 현지의 맛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 밖에도 브랏부어스트, 갈릭칠리를 포함해 총 세 종류를 매일 매장에서 만들어 신선한 상태로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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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샤퀴테리아와 구별되는 미트로칼의 자부심은 바로로컬 있다. 전국의 농축산물 생산자들과 협업해서 우리나라의 뛰어난 농산물로 제품을 만든다. 천일염이나 고춧가루, 오이, 마늘, 양파 같은 부재료는 물론이고 돼지고기는 국내산 무항생제 등급(non-GMO) 인증을 받은 제품을 사용한다고. 슬로푸드 운동을 해온 사장님 부부와 철학을 같이하는 생산자가 운영하는 농장인 만큼, 스트레스 적은 환경에서 인도주의적인 방식으로 돼지를 기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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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건강을 고려해도 안심하고 먹을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지갑이 가벼운 손님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다. 장기간 안정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해놓은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구입할 있으니까. 끼에 개면 충분할 같은 두툼한 소시지 3, 가벼운 간식거리로 일주일 정도는 너끈히 먹을 있는 분량의 한우와 돼지고기를 넣은 복부어스트 소시지가 전부 8,000 안팎이니까. 이름이 초면이면 어떤가. 친근한 가격 덕분에 가까워질 기회가 많을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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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매장에 들어올 때부터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술이 진열된 냉장고다. 문에 쓰인 가격이 너무나 저렴했기 때문. 블루문 맥주는 6,000, 문베어 브루잉의 크래프트 맥주 백두산·한라산도 5,500원이다. 심지어 하우스 와인도 겨우 오천 ! 여기에는 ‘샤퀴테리의 술은 싸야 한다’ 사장님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한국에도 반주 문화가 있는 것처럼, 샤퀴테리도 맥주나 와인과 함께 즐길 훨씬 풍부한 맛을 느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맥주나 와인뿐만 아니라 점차 전통술 라인업도 확장해나갈 계획이라고 하니 기대해봐도 좋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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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에서는 다양한 수제햄으로 만든 따뜻한 음식도 즐길 있다. 우선 미트로칼 트레이드 마크라는 생소시지 종류가 함께 나오는 그릴드 프레시 소시지 트레이를 주문했다. 노릇하게 구워진 소시지가 탱글탱글해 보인다 싶더니, 나이프를 살짝 넣자마자 흥건한 육즙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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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하면서도 고기의 묵직함은 그대로 품고 있는 식감이 입부터 든든함을 준다. 샤퀴테리와 궁합이 좋다고 추천받은 체코 맥주를 마셨더니 소시지와 맥주, 양쪽의 감칠맛이 살아나는 같다플레이트에 곁들여지는 사우어크라우트 역시 매장에서 직접 만든 것인데, 사우어크라우트는 ‘독일의 김치’라고 할 수 있는 양배추 절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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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샤퀴테리의 꽃은 역시 콜드컷 플레이트 아닌가. 작은 사이즈의 콜드컷 트레이를 주문했더니 알차게 차려진 상이 나왔다. 뒷다릿살로 만든 담백한 레그햄, 육포처럼 쫄깃한 훈연 소시지 카바노치, 그리고 부드럽고 고소한 모르타델라. 식감과 풍미가 고르게 구성된 플레이트는 매일 새로운 구성으로 꾸려진다. 하우스 와인 잔을 곁들여 하나씩 맛보는데, ‘담백하다 느낌에 덧붙여 이런 생각이 든다. 고기를 먹으면서 이렇게 깔끔하고 단정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던가, 하는. 몸에도 미안하고, 지속가능한 육식주의를 지향한다면, 부디 샤퀴테리를츄라이해보시길.


미트로칼 Meat lokaal

  • 서울시 용산구 독서당로 39 한남신성미소시티 1
  • 매일 11:00 – 20:00 월요일 휴무
  • 070-4420-3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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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김은아

전시, 공연, 와인에 대한 글을 씁니다. 뉴스레터 '뉴술레터' 운영자. 뭐든 잘 타요. 계절도, 분위기도, 쏘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