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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는 왜 지금 ‘나우’?

안녕, 디에디트 필자의 평균 연령 상승에 크게 기여하는 중년의 TMI 필자 차우진이야. 옛날 사람 인증이겠지만, [NOW]라는 히트곡 모음집이 유행하던 때가...
안녕, 디에디트 필자의 평균 연령 상승에 크게 기여하는 중년의 TMI 필자 차우진이야.…

2019. 09. 09

안녕, 디에디트 필자의 평균 연령 상승에 크게 기여하는 중년의 TMI 필자 차우진이야. 옛날 사람 인증이겠지만, [NOW]라는 히트곡 모음집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어.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반에 이 앨범은 흔하다 못해 미니 컴포넌트 오디오 같은 걸 사면 공짜로 끼워주던 물건이었지만, 한때 음반 판매량 1위를 기록했던 물건이기도 했지. 정확한 명칭은 ‘Now That’s What I Call Music!’으로, 1983년부터 현재까지 세계 곳곳에서 판매되고 있어.

그래 맞아! 놀랍게도 이 앨범은 아직도 발매될 뿐 아니라 (미국 계정에 한해) 무료 앱으로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어. 회원 가입을 하면 수록곡을 라디오 개념으로 모두 들을 수 있다는 게 특징. 유튜브 계정도 있으니 추억 팔이 겸 한 번 들러보시든가. 참고로 최근 앨범은 2019년 7월에 발매된 103집!

그래서 오늘은 ‘나우’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하는데… 아, 앨범 나우 말고 네이버의 나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8월 말 쯤 네이버 모바일 첫 화면에 ‘NOW’라는 탭이 새로 생겼거든. 네이버 앱을 업데이트했다면 보일 거야. 네이버 모바일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24시간 라이브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인데, 다양한 음악과 디제이가 진행하는 콘텐츠를 24시간 생방송으로 즐길 수 있다고 해.

이게 뭐가 특이하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네이버가 이런 ‘라디오스러운’ 서비스를 대체 왜 하필 2019년에 시작한 걸까, 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특이한 건 사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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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의 ‘나우’에는 아이돌·힙합·알앤비 등 장르를 불문한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호스트로 참여했어. 호스트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라디오 디제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라인업이 좀 화려해. 하성운,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박재범, 더콰이엇·염따·이진우, 기리보이·한요한 등등 요즘 핫한 래퍼와 아이돌 멤버의 이름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들어. 먼저, 네이버는 정말 돈이 많은가 봐… 그리고 또, 라디오 방송국은 어쩔… 

1400_MV5BMTQ3MjYwNzA2NV5BMl5BanBnXkFtZTgwNzEzODc1MjE@._V1_SY1000_SX1500_AL_[영화 <라디오 스타> 스틸컷]

아닌 게 아니라 나우는 그야말로 모바일 시대의 라디오 같아. 아이돌과 유명 래퍼들이 진행자를 맡아서만은 아니야. 사용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이게 정말 전화 연결이나 실시간 게시판을 통해 사연을 읽어주는 라디오 같거든. 다만 좀 더 젊고 어린 사람들이 등장하는 게 차이라면 차이.

데니안과 손호영의 <점심어택>은 점심시간에 길거리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과 온갖 대화를 하는 프로그램이고, 에이티즈가 진행하는 <스쿨로드>는 아이돌이 아침 등교길에서 학생들과 만나는 모닝쇼, 페퍼톤스의 이장원이 진행하는 <6시 5분전>은 라이브 토크쇼 그리고 <들려주고 싶어서>는 매주 다른 셀럽 호스트들이 출연해 최애곡을 소개하는 플레이리스트 쇼야. 심지어 9월 6일 금요일 저녁 8시에 내한공연을 한 체인스모커스를 밤 11시에 단독 인터뷰로 섭외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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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진행자의 목소리가 나오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음악만 24시간 나오는 채널도 있어. 올데이 뮤직 채널에는 시간대별로 24시간 논스톱 음악 채널이 나뉘는데, 가요와 팝이 4:6 정도의 비율로 섞여서 그 시간대에 어울리는 음악이 적절히 흐르지. 시대 구분도 없고 장르 구분도 없어. 그저 ‘듣기 좋은 음악’이라는 게 기준인 것처럼 낯선 음악과 낯익은 음악이 골고루 섞여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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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무료야. 대신 다시 듣기가 되지 않지. 이 점도 라디오와 닮았어. 듣는 방법은 그저 네이버 메인 화면 아래의 탭을 터치하기만 하면 돼. 이렇게 공짜인데다 접근성이 높다는 점은, 다른 음악 서비스 입장에서는 너무나 위협적인 사건일 것 같아. 나우는 네이버의 음악 서비스인 바이브와도 연동되거든. 바로 이 점 때문에 네이버가 음악 서비스에 사활을 걸었다는 인상도 주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나우가 바이브를 띄우기 위한 미끼라는 얘기도 하지.

그런데 실제로 써보면 바이브와의 연결 고리는 제한적이야. 나우를 듣다가 지금 나오는 뮤지션이 궁금해도 바이브에서 정보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인데, 바이브가 제공하는 것은 관련 플레이리스트 정도뿐이야. 물론 나중엔 나우를 들으면서 ‘좋아요’도 누를 수 있고, 그 결과는 추천 알고리즘에 반영된다곤 하지만, 바이브와 나우가 보다 밀접하게 연결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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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바로 이 점 덕분에 나우의 역할과 정체성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되는 것 같아.

사용자 입장에서는 네이버가 교묘하게 나우를 이용해 바이브의 결제를 유도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사용자에게 무료로 좋은 음악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통큰 기업으로 보이게 만들어. 이런 관점에서 나우는 네이버의 이미지를 친근하게 만드는 서비스지. 그런데 네이버는 누구나 알고 있는 포털인데, 이 새삼 친근함이 필요할까?

최근 1-2년의 인터넷 트렌드를 상기할 필요가 있어. PC 검색 시장에서 네이버는 구글과 유튜브에 밀리고 있는 게 사실이거든. 20대 이하 사용자들에게 네이버는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에 비해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서비스야. 달리 말해 현재 20대 이하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네이버는 존재감 자체가 희미하다는 거지. 나우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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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시절, 네이버와 같은 검색 포털의 메인 화면을 되새겨보면, 검색창을 기준으로 크게 광고 영역과 서비스 영역으로 나뉘었어. 왜 그럴까?

포털의 수익 모델은 사용자 규모에 기반한 광고 영업이었어.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는다는 것은 곧 검색을 한다는 의미이고, 이 검색 결과가 만족스러울수록 사용자는 그곳만 반복적으로 찾아올 것이니까. 그런데 오직 검색 기능만 제공하면 사용자가 이 사이트에 오래 머물 이유가 없잖아? 그래서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 사이트들은 검색만 하고 나가는 사용자를 붙잡기 위해 검색 창 주변에 여러 미디어와 서비스 탭을 배치했지. (메인 화면에 검색창만 붙인 구글은 영어권 사용자를 대상으로 했으니 애초에 그 규모가 달랐던 거고…)

1400_ 4.28.35[2006년의 네이버 메인]

이런 서비스는 이메일을 시작으로 뉴스, 영화, 증권·부동산, 블로그·카페, VOD, 책, 뮤직 등으로 확장되었고 다시 각 서비스 내에는 고퀄리티의 미디어 콘텐츠가 기획·제작되었어. 특히 2009년 무렵에 시작된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지식인의 서재, 황석영 작가의 ‘개밥바라기별’의 독점 연재, 네이버뮤직의 이주의 발견 등등 네이버의 ‘무료’ 콘텐츠는 타사 대비 높은 퀄리티로 충분히 화제가 되었어. 그만큼 서비스 퀄리티를 위해 돈을 쓴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지. 네이버는 왜 그랬을까?

네이버에게 서비스의 목적은 전환율(사용자가 결제하는 비율)이 아니라 점유율(사용자가 머무는 시간)이 우선이기 때문이었을 거야. 바로 그 점 때문에 네이버는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네이버 사용자를 묶어두고 광고 영업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겠지. 네이버의 브랜딩 강화는 곧 네이버의 영업력 강화로 이어지고, 이것은 두 개의 지표로 측정될 수 있었어. 검색 품질의 향상과 서비스의 하이 퀄리티.

그런데 최근 몇 년간 급변한 모바일 환경에서 이런 전략은 잘 먹히지 않았어. 네이버 사용성이 약화되는 것과 별개로 사람들이 네이버 앱 자체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였을 거야. 네이버의 브랜딩이라든가, 영업력이라든가, 검색 및 서비스 퀄리티를 논하기 이전에 접근성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것은 무슨 수를 쓰든 해결해야 할 치명적인 문제였을 것이고. 그리고 네이버 나우는 바로 이 점을 해결해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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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이나 힙합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 나우는 네이버의 신규 서비스라기보다는 ‘인기 스타들의 생방송을 공짜로 들을 수 있는 방송’에 가까울 거야. 다시 듣기가 되지 않는 불편함은 오히려 제시간에 맞춰 네이버 앱을 열어야 하는 습관을 만들 수 있고.

굳이 셀럽들의 방송을 듣지 않는다 해도, 24시간 언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은 다양한 정체성의 사용자에게 아무 때나 네이버 앱을 반복적으로 열게 만들겠지. 사용자가 뭔가를 기록하거나 스크롤 해야 하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달리 네이버 나우는 켜자마자 흐르는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해. 요컨대 목적 없이 시간을 죽이는 데 SNS만큼 혹은 그보다 더 효과적이랄까. 이런 과정을 통해 사용자는 네이버 앱 자체에 익숙해질 수도 있겠지.

또한 이렇게 음악과 음성 기반의 서비스는 이어폰(과 마이크)을 인터페이스로 여기게 만들 가능성도 높은데, 이 과정을 통해 사용자가 네이버 앱을 열고 귀로 듣는 루틴이 자연스레 형성될 수도 있어. 짐작건대 얼마 후 네이버는 이런 루틴에 익숙해진 사용자에게 음성 검색, 음성 콘텐츠, 음성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가설을 실험하게 될 것 같아. 그러니까 네이버의 나우는 단지 바이브를 키우기 위한 수혈도 아니고, 레거시 미디어를 위협하는 인터넷 방송도 아닌, 네이버의 미래를 건 승부수인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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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네이버가 바라는 것은 PC 시절과 마찬가지로, 네이버라는 브랜드가 사용자의 일상에 자연스레 자리 잡는 것이고, 그 선도적 역할을 나우가 맡고 있다는 게 내 의견. 그를 위해선 좋은 선곡뿐 아니라 화제성 있는 셀럽 진행자, 출연자 섭외가 반드시 필요했을 거야. 그게 바로 네이버가 이 ‘쓸고퀄’처럼 보이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 꽤 많은 힘을 쓰는 이유 아닐까. 그리고 이 모든 것에는 돈이 들지. 그것도 꽤 많이 들겠지. 그러니까 만약 이런 짐작이 맞다면, 본사 직원 3570명(2019년 6월 기준) 규모의 거대 기업이 이렇게 모험적인 의사결정을 저질러버린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네이버는 여전히 무서운 존재로 느껴지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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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차우진

음악/콘텐츠 산업에 대한 뉴스레터 '차우진의 TMI.FM'을 발행하고 있다. 팬덤에 대한 책 [마음의 비즈니스], 티빙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을 제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