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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칵테일 바 도장깨고 왔어요

“이 기사는 지독한 숙취 속에서 쓰여졌다.” 술 못하는 여자, 에디터M의 술리뷰. 오늘은 이태원, 경리단 지역의 다섯개 바를 도장(道場) 깨듯 하나씩...
“이 기사는 지독한 숙취 속에서 쓰여졌다.” 술 못하는 여자, 에디터M의 술리뷰. 오늘은…

2016. 08. 27

“이 기사는 지독한 숙취 속에서 쓰여졌다.”

술 못하는 여자, 에디터M의 술리뷰. 오늘은 이태원, 경리단 지역의 다섯개 바를 도장(道場) 깨듯 하나씩 격파했다. 바를 돌 때마다 ‘앱솔루트 미’앱에 전자 도장(stamp)을 찍었으니, 진짜 도장을 격파한 셈이다. 분명 시작할 땐 두 발이었는데, 마지막 바를 나서는 순간에 네 발로 기어 나온 것 같다.

collage_111_12[자제 해야 했지만, 눈앞에 이것들이 있는데 어떻게 안 마셔^^]

취재(라고 쓰고 마신다고 읽는다)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나에게는 다섯 곳의 아지트가 생겼다. 행복하다. 혹시 이태원 근방에서 괜찮은 바를 찾고 계신 분? 저한테 연락 주세요. 제가 취향에 맞춰 추천해드림.

0_0[그림은 에디터H가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펜슬로 그려줬다]

자, 지금부터 차근차근 따라오시길. 맛있는 술을 찾는 당신에게 천국을 보여주겠다.


도장1. 미국 남부 스타일의 흥겨움
사우스사이드 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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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번 취재가 아니었다면, 이곳은 평생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사우스사이드 팔러는 내가 수 백 번은 더 다녔던, 경리단의 초입 4층에 있는 곳이다. 정통 텍사스 스타일을 지향하는 이곳은 주말이 되면 플란넨 셔츠에 야구모자를 쓰고 주말을 즐기기 위해 찾은 외국인들로 북적인다. 바텐더의 스타일도 자유롭다. 어떤 바텐더가 만들어 주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개성 있는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한 손에 두 개의 지거를 들고 자유롭게 칵테일을 제조하는 필립의 모습을 보니, 벌써부터 흥이 난다. 들썩들썩.

이곳의 특징은 칵테일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재료를 핸드메이드로 만든다는 것. 직접 만들었다는 진저 비어는 투박하지만, 할머니의 손맛처럼 정겨움과 개성이 묻어난다.


[위) 오션 워터 / 아래) 오미자 뮬]

칵테일 투어의 시작은 필립이 텍사스의 한 패스트푸드 소다샵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오션 워터였다. 럼을 베이스로 코코넛 주스와 라임 시럽을 넣어, 여름 해변에 누워 마시고 싶은 칵테일이다. 오미자 뮬은 텍사스와 한국의 만남이다. 텍사스에서 오직 소량만 수제로 만들어진 티토스 보드카에 한국의 오미자 홍초와 진저 비어로 맛을 냈다. 우리 집 냉장고에도 있는 홍초로 이런 근사한 칵테일을 만들 수 있다니, 집에 가서 당장 시도해 봐야지. 베이스가 된 티토스 보드카는 100% 옥수수로 만든 미국 최초 글루텐 프리 인증을 받았다. 고급 증류주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단식증류기로 무려 6회의 증류 과정을 거쳐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을 낸다.

사우스사이드 팔러 Southside Parlor
주소: 용산구 이태원동 527 4층
영업시간: 화-일(월요일 휴무)
문의: 02-749-9522

도장2. 나만 알고 싶어,
쓰리섹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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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부터 음험한 이곳은 오늘 소개할 바 중 유일한 원맨 바다. 플라톤의 <향연>엔 고대 그리스 시민들이 모여 사랑의 기원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은 원래 네 팔에 네 다리 그리고 양성이 하나로 합쳐진 온전한 존재였지만, 신이 번개로 둘로 갈라놓는 바람에 평생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매게 된다는 이야기가 바로 사랑의 기원이자, 쓰리섹시즈의 골자다. 이곳은 친구들과 함께 지나간 구남친들과 당췌 어디 있는지 모를 내 반쪽에 대한 이야기를 안줏거리 삼아 주절주절 떠들고 싶은 곳이랄까. 아, 물론 바텐더가 권하는 맛있는 술도 함께 말이다.

경리단 등산으로 지친 우리에게 바텐더는 워터멜론 서프를 권했다. 보드카에 미도리와 제철 과일인 수박을 갈아 넣은 여름 느낌 물씬 나는 칵테일이다. 서프란 이름에 걸맞게 산호초가 나무 보드와 말린 산호초가 멋스럽게 장식되어 나오는데, 꽤 근사하다. 도수가 많이 높지 않아 꿀꺽꿀꺽 넘기면,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시원하다.

마마리타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칵테일은 마가리타를 변형했다. 테킬라를 베이스로 만드는 마가리타와 달리 레드와인을 기본으로 라임주스를 넣어 입맛을 돋운다. 새빨간 색감과 새콤한 맛이 좋아서 내 술도 아닌데 홀랑 다 마셔버리고 말았다. 할짝. 어느새 바닥을 보인 마마리타가 아쉬워 입술을 핥았는데, 미간이 약간 찡그려질 정도로 새콤한 칵테일이다.

쓰리쎅시즈 Three Sexes
주소: 용산구 이태원동 225-164
영업시간: 화-일(월요일 휴무)
문의:010-9947-5960

도장3. 남미의 열정을 당신에게,
칼로 엔 디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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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노랑과 파랑의 강렬한 색조합이 인상적인 칼로 엔 디에고다. 장진우 거리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건물 안에 들어서면 정글을 연상케하는 무성한 식물이 우리를 먼저 반긴다. 남미의 햇살처럼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너무 달랐던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처럼 이곳도 두 파트로 나뉜다. 한쪽에선 칵테일을 다른 한쪽에선 위스키를 판매하고 있다.

더 워스트 트로피칼은 혁명 이후 쿠바의 대표 럼으로 자리잡은 아바나클럽을 베이스로 했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구아바 주스로 맛을 내고, 팔각을 태워 가니시로 올려서 마치 향처러 묘한 향을 더한 칵테일이다. 투명한 잔이 아닌, 우리나라 하루방을 연상케 하는 잔에 담아냈는데, 덕분에 이국적인 흥취를 한껏 돋운다.

아도보 씨엘로는 피클 쥬스와 머스타드 씨앗이 들어간 다소 생소한 칵테일이다. 소량의 피클주스에 머스타드 씨앗을 우려내 피클의 맛을 중화시켰다. 그리고 머스타드 씨앗의 씹는 맛을 위해 물에 삶아내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마치 아주 작은 타피오카처럼 씹는 맛이 있는 재미있는 재료가 된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재미있는 식감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마는 위험한 술이다.

더 테이스트 오브 자매손(Jameson)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사랑하는 아이리시 위스키를 제임슨을 베이스로 했다. 하얀 거품은 계란 흰자다. 자칫 비릴 수 있는 이재료의 맛을 끌어올리는 것이 바로 김현철 바텐더의 실력이다. 얼그레이와 체리 맛이 나는 페이쇼드 비터를 넣어 복합적인 풍미를 끌어올리고, 독하게 치고 들어오는 위스키의 맛을 부드러운 계란 흰자가 잘 잡아주어 사치스러운 맛을 낸다.

칼로 엔 디에고 Kahlo & Diego
주소: 용산구 이태원동 260-101번지
영업시간: 월-일
문의: 02-794-0872

이제 경리단 지나 이태원으로! 세 개의 바를 돌면서 7잔의 칵테일을 마셨는데, 의외로 나 꽤 잘 버티고 있잖아? 역시 맛있는 술을 마셔서 그런가? 이제 두 개 남았다. 좀 더 달려보자.


도장4.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
버뮤다 트라이 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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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미 이곳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인스타그램에서였던 것 같다. 레몬껍질에 새겨진 Bermuda란 던어가 아로새긴 것처럼 강렬한 이미지를 뇌리에 남겼었다. 해밀턴 호텔의 뒷골목의 노란 벽돌 건물이 바로 버뮤다 트라이앵글이다. 적당히 떠들썩한 분위기의 이곳은 오늘 갔던 바중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느낌의 바다. 버뮤다 트라이앵글은 직접 키운 꽃과 허브로 화려하게 장식한 모히또가 가장 인기가 좋다. 지금이야 우리에게 모히또가 꽤 익숙한 칵테일이지만, 십여 년 전, 모히또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당시, 이쪽 업계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리큐르에 시럽을 넣는 것이 전부였던 칵테일에 생허브와 생과일로 맛을 낸 모히또는 혁명이라 부를만했으니까. 그 이후, 우리나라 칵테일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좌) 복숭아 모히또 / 우) 장미 모히또]

어림잡아도 족히 스무 개는 되는 수많은 모히또 중 무엇을 고를지 몰라 고민하고 있던 찰나, 장훈상 바텐더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을 물었다. 난 베어물면 과즙이 손목과 팔뚝을 타고 흐르는 달고 주시한 복숭아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맛을 고르면 된다기에 복숭아 모히또로 결정. 복숭아의 향긋함이 살아있지만, 고급스러운 복숭아의 맛이다. 장미 시럽과 장미 잎을 넣은 장미 모히또는 여심저격. 장미는 보는 것도 즐겁지만, 마시면 더 즐거운 법이구나.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맛있는 장미는 아마도 이런 맛이겠지. 진득한 단맛에 장미향이 더해져 세련된 맛을 낸다.

[좌) 올드 패션 / 우) 테킬라 슬래머 슬러시 칵테일]

우리나라에선 쉽게 마시기 힘들다는 슬러시 칵테일도 마셨다. 실제로 이곳 버뮤다 트라이앵글 입구엔 초등학교 문방구 앞에서 보던 슬러시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올드패션은 위스키의 맛과 달콤함이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 남성적인 맛이다. 테킬라에 레모네이드를 섞은 테킬라 슬래머는 어렸을 적에 먹던 아이셔가 떠오른다. 아, 이 슬러시 칵테일은 테이크 아웃도 가능하다. 벌써 여름이 끝났다는 게 아쉽다. 저것만 있으면 올여름 이태원 거리를 행복하게 취한 상태로 다닐 수 있었을 텐데.

더 버뮤다 트라이앵글 Bermuda Triangle
주소: 용산구 이태원동 116-22 2층
영업시간: 월-일
문의: 02-749-0427

도장5. 펭귄맨의 살롱
12 스테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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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의 계단. 12 스테어스다. 맛있는 술로 향하는 12개의 계단이란 뜻일까? 가게의 이름의 뜻을 물었더니(가게로 올라가는 계단 수는 아이러니 하게도 13개였다), 아무 의미 없다는 싱거운 대답만 들었다. 하긴 가게 뜻이야 아무렴 어때. 술맛만 좋으면 되지. 이곳 12스테어스에서는 기본적인 재료를 가지고 전혀 새로운 맛을 내는 칵테일을 맛볼 수 있다.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펭귄맨을 닮은 외모의 김경섭 바텐더는 라스베거스에서 7년 동안 활동한 경험이 있는 노련한 기술자다. 그의 실력은 가게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상패가 말해준다. 뒤로 보이는 화려한 거울과 안락한 소파 그리고 이태원이 내려다 보이는 루프탑까지 갖춘 이곳은 마치 개츠비가 시가를 피우며 술을 마시고 있을 것 같은 공간이다.

바질의 맛은 이미 나에게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바질 스매시를 마시기 전까지는. 그동안 파스타나 피자를 통해 충분히 맛본 바질인데, 으깨서 칵테일에 넣으니 전혀 다른 풍미를 낸다. 들어간 재료도 간단한다. 런던의 프리미엄 진인 비터 24를 베이스로, 라임주스와 오이 가니시 정도를 했을 뿐이다. 하지만 한 입 마시는 순간, 익숙한 듯 새로운 맛과 향이 입천장을 타고 코를 통해 팡! 팡! 팡!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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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 뮬도 마찬가지. 칼로 엔 디에고에서 마셨던 제임스 아이리시 위스키를 베이스로 하지만, 전혀 다른 맛을 낸다. 라임과 레몬 비터, 그리고 진저 에일처럼 단순한 재료에 시나몬 스틱을 태워 올렸을 뿐인데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술을 입에 갖다 대기도 전에 시나몬 스틱의 알싸한 향이 코를 간지럽히면서 뮬을 전혀 다른 풍미로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크게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재료를 어떤 순서로, 어떤 방식으로 섞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칵테일이었다.

내가 워낙 재미있어했더니 몇 가지 더 보여줬다. 아, 이곳은 각지고 큰 얼음을 사용한다. 동그란 구형태의 얼음이 고급스러운 느낌이라면, 사각형의 얼음은 훨씬 마초적인 느낌을 풍긴다. 평범한 위스키도 팔각을 태워 그 향을 잔에 가둔 뒤에 따라내면 전혀 다른 차원의 위스키가 된다. 아, 재밌어. 무슨 과학시간 같다. 펭귄맨 아저씨와 함께하는 신나는 과학시간.

12 스테어즈 12 Stairs
주소: 용산구 이태원동 64-56 3층
영업시간: 월-일
문의: 02-792-2410

 

S__24387633-side[얼굴이 빨개요, 나는 취해요]

내 마음에 쏙 드는 바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디든 다니고 마셔보면 되는 거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인생엔 그리 많은 여유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태원한남 섬머칵테일위크는 좋은 기회다. 경리단부터 한남까지 검증된 30여 개 바가 64개의 시그니처 칵테일을 준비하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칵테일 위크 기간동안엔 30% 할인까지 해주니,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셔보자. ‘앱솔루트 미’ 앱을 통해 도장을 찍으면 개수에 따라 옥타곤 클럽 초대권이나 칵테일 무료 쿠폰도 준다. 무엇보다 이번 기회를 통애 내 마음에 쏙 들어오는 평생 함께 갈 수있는 바와 바텐더를 고를 수 있다는 거다. 칵테일 위크는 8월 27일(토)까지 진행된다.

여러분 오늘이다. 달리자. 이태원으로.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