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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카메라의 세계

여러분, 다들 살면서 이런 대사 한 번 쯤 해보지 않았어요? 아침에 옷장을 열고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요. “아, 입을...
여러분, 다들 살면서 이런 대사 한 번 쯤 해보지 않았어요? 아침에 옷장을…

2018. 08. 13

여러분, 다들 살면서 이런 대사 한 번 쯤 해보지 않았어요? 아침에 옷장을 열고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요.

“아, 입을 옷이 하나도 없네….”

이상하죠. 옷장 안엔 옷이 그득그득 차 있고, 그것도 모자라 의자 위에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말이에요. 작년 여름엔 대체 뭘 입고 다닌 걸까요? 전 이걸 ‘옷없어 증후군’이라고 불러요. 이상한 말이죠. 방금 지어 냈으니까요. 이 옷없어 증후군은 여러 군데 응용할 수 있어요. 냉장고가 가득 차 있는데 당장 먹을 건 없을 때, 카톡창은 하루 종일 울리는데 당장 술 마실 친구는 없을 때. 그리고 카메라는 많은데 당장 들고 나갈 카메라가 없을 때!

카메라가 많은데 들고나갈 카메라가 없다는 게 무슨 멍멍이 소리냐구요? 그러게 말이에요. 솔직히 제 옷장을 보시면 옷이 없다고 하는 것부터가 개의 언어라는 걸 아실 거예요. 옷없어 증후군 자체가 우리의 엇나간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인걸요.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우리에겐 필요한 모든 게 있습니다. 다만 더 갖고 싶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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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가 꽤 오랫동안 갖고 싶어 했던 카메라의 리뷰를 준비했습니다. 손바닥만한 카메라, 소니 RX100 시리즈의 신제품이 나왔거든요. 바로 RX100 M6. 출시 소식을 듣고 살까 말까 정말 엄청나게 고민했답니다. 디에디트 사무실엔 이미 3대의 카메라가 있어요. 풀프레임 바디가 3개나 있는데 똑딱이를 갖고 싶어 하는 심보가 뭘까요. 당연히 가볍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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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X100 시리즈는 정말 매력적인 카메라예요. 오버 좀 보태자면 깃털처럼 가볍죠. 가끔 디에디트 영상에 출연하는 J양도 캐논 5D 마크4를 메인으로 쓰면서 RX100 시리즈를 세컨드 카메라로 사용중이에요. 천하의 구두쇠 에디터M이 그녀가 들고 온 쪼꼬만 카메라를 보자마자 “헐, 저거 뭐야? 우리도 저런 거 사면 안돼??”라고 징징댔을 정도랍니다.

숨 막히는 휴대성과 다르게 성능은 꽤 강력합니다. 소니가 그렇게 입 아프게 말하는 ‘프리미엄 콤팩트 카메라’니까요. 프리미엄이라는 부분이 중요해요. 가격도 비싸다는 뜻이니까요. 참고로 오늘 주인공인 RX100 M6는 139만 9,000원에 출시됐답니다. 어지간한 똑딱이를 2개 사고도 남을 가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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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미러리스라고 해도 A7 시리즈 같은 렌즈 교체식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보면 몸이 지치게 됩니다. 그나마 가벼운 편인거지, 정말 가벼운 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카메라가 커지면 아무 데서나 꺼내서 촬영하기 부담스럽죠. 작은 카메라의 장점은 가벼워서 들고다니니 편하다는 것도 있지만, 언제 어디서든 요란스럽지 않게 촬영할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계속 오랜 세월 고민해온거죠. 우리도 이런 콤팩트 카메라 하나 사서, 야외에서 촬영할 때마다 가볍게 들고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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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내기 위해 RX100을 꼬박 3주 동안 들고 다니며 써봤습니다. 애석하게도 결론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카메라는 아니라는 거였어요. 하지만 객관적으로 정말 좋은 제품이었고, 이 제품에 관심 갖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용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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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X100 M6는 전작과 완전히 다른 카메라가 됐다고 해도 뻥이 아닐 만큼 엄청난 변화가 있었어요. 렌즈를 갈아버렸거든요. 이전 모델까지는 24-70mm 줌렌즈를 내장하고 있었어요. 사실 콤팩트 카메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화각이에요. 적당한 광각부터 70mm 망원까지 커버할 수 있으니까요. 저희도 제일 자주 쓰는 렌즈가 24-70mm 거든요. 근데 신제품엔 무려 24-200mm 렌즈가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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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에 제품 보도자료를 받았을 땐 눈을 의심했어요. RX100에 200mm 줌 렌즈를?? 끼요오? 하지만 직접 써보니 진짜였죠. 200mm면 꽤 엄청난 망원줌을 지원하는 편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도 정말 멀리 있는 것까지 가까이 당겨서 촬영할 수 있어요. 어느 정도인지 사진으로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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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24mm로 촬영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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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똑같은 장소에서 200mm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엄청난 차이죠? 렌즈 교체가 불가능한 카메라의 특성상 내장된 렌즈로 더 다양한 화각을 커버할 수 있다면 무조건 이득입니다.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이 많아지고, 활용도도 높아지니까요. 이렇게 작은 카메라에 24-70mm 렌즈랑 70-200mm 렌즈를 같이 넣어준 것 같아서 이득 본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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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게 다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전작까지는 F/1.8-f2.8의 가변 조리개가 적용됐었어요. 똑딱이 카메라 치고는 엄청난 스펙이죠. 이 조리개값이 낮을수록 밝은 렌즈라는 뜻이에요. F/1.8 조리개라는 것 자체가 RX100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습니다. 애석하게도 신제품은 F/2.8-f4.5의 조리개값을 가집니다. 초점거리를 늘리면서 조리개값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정도 화각에서 조리개값까지 확보하기 위해선 렌즈 직경을 키워야 하는데, 휴대성이 생명인 제품이니 그럴 수도 없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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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감한 결정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립니다. 슈퍼 줌렌즈가 들어가며 더 다양한 화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고, 아웃포커싱이 유리해졌지만, F/1.8이라는 챠밍 포인트를 잃은 것은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광량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줌렌즈의 편리함에 감탄하며 사용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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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감도 촬영에서의 노이즈 억제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역광이라 ISO를 4000에 두고 찍어봤는데 노이즈가 제법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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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사진이 별로였단 얘기는 아닙니다. 이 카메라의 가장 큰 장점이 이 정도 사이즈의 바디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진이 잘 나온다는 거예요. 포커스도 정확하게 맞고, 선예도도 끝내주죠. 사진의 느낌이라는 게 바디가 구현할 수 있는 ‘공간감’과 무관하지 않은데, 이 제품은 몸집에 비해 아주 깊이 있는 사진을 찍어줍니다.

기동성 면에서도 칭찬할만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빠르게 촬영 준비를 마치고, 빠르게 초점을 잡고 셔터를 누를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가벼운 스냅을 찍기 위함이라면 바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빠릿함만큼 고마운 건 없습니다. 솔직히 이 제품을 사용하던 당시에 너무 더워서 실내에서 사진을 더 많이 찍어봤는데, 에디터M이 시원하게 말아온 여름 칵테일 사진이 섹시하게 잘 나왔네요. 디테일과 색감 보이시나요. 좋은 카메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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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용으로도 찍기에 부족함이 없어요. 4K 영상의 화질도 만족스럽고, 셀카 형식으로 촬영할 수 있는 플립 LCD도 편리합니다. 다만, 사람 얼굴이 예쁘게 나오는 카메라는 아니에요. 얄짤없이 나온다고 할까요? 브이로그용 카메라로 들고 다니며 세 차례 정도 영상을 찍어봤는데, 가볍고 작으니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바로바로 촬영하긴 좋더군요. 하지만 우리 얼굴이 이상하게 나왔어요. 범인은 카메라일까요, 얼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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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960fps에 초고속 촬영과 Slog를 지원하는 똑딱이 카메라. 프로와 귀요미의 경계를 마구 넘나드는 반전 매력이 엄청납니다. 써볼수록 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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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같은 기능들을 100% 활용할 때마다 한 가지 걸림돌이 있어요. 바로 배터리죠. 바디가 작아서 발열을 막기 힘든 구조고, 배터리 자체의 사용 시간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4K 촬영 시에는 한 클립을 5분 이상 찍을 수 없다는 것도 문제였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부분이 제가 쓰기엔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디에디트는 한 클립당 10분 이상으로 찍는 경우가 많아서 세컨드 카메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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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나가기가 너무 싫어서, 생각보다 자주 RX100 M6로 영상을 찍었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 제품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어요. 이래서 다들 작은 카메라를 하나 쯤 갖고 싶어하는 거겠죠.

저의 옷장(?)에 들이는 건 보류됐지만, 한 번쯤 걸쳐보고 싶은 근사한 의상이었습니다. 이 카메라가요. 가격에 대한 내적 갈등이 끝난 분이라면, 이 제품을 추천합니다. 특히 여행을 자주 다니는 분이라면 사진 찍을 때 좋은 친구가 될 거예요. 신나게 써내리고 났더니 저도 사야하는 건 아닌가 다시 한 번 고민이 되네요. 안일한 저란 사람. 더 단호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영상 리뷰를 보러 가시죠!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