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흑심을 품고

안녕,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디에디트 외고 노예 김작가다. 일단 내가 아날로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해주고 싶다. 집에는 실제로 사용 가능한 타자기가 있고, 그 옆에는...
안녕,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디에디트 외고 노예 김작가다. 일단 내가 아날로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해주고 싶다.…

2018. 05. 24

안녕,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디에디트 외고 노예 김작가다. 일단 내가 아날로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해주고 싶다. 집에는 실제로 사용 가능한 타자기가 있고, 옆에는 CD플레이어가 있으며, 뒤로는 15 전에 라디오 방송을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가 쌓여있다. 그리고생각해보니 그렇게 많진 않지만, 그래도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히 말할 있다. 나는 연필을 자주 쓴다. 사실, 타자기나 CD플레이어는 사용성이 별로 없어서 거의 방치해놓았지만, 연필은 매일 쓰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연필 가게를 하나 소개해볼까 한다. 연남동에 있는 흑심이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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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심’은 250 종의 연필을 판매하는 빈티지 연필샵이다. 간판도 없어서 찾기 쉽지 않은데, 태국음식이 맛있는 소이연남 건너편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흑심이 있는 공간의 이름은 누벨바그125인데, 땅별메들리라는 디자인 소품을 파는 곳과 함께 매장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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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다양한 연필을 써봤겠지만,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연필을 일이 별로 없다. 익숙하지 않고 관심이 없는 당연하다. 하긴, 요즘에는 일기 때도 키보드 하나만 있으면 되니깐. 그래도 꼭 연필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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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남한산성>으로 유명한 김훈 작가가 연필에 대해 했던 말이 있다. 연필로 글을 쓰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 나는 느낌 없이는 줄도 쓰지 못한다.” 김훈 작가는 2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도 원고지에 쓰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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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밀고 나가는 느낌이 뭔지 몰라도, 낙서를 하든 아무 말이나 끄적이든 연필로 사각사각 쓰면 마음이 차분해지곤 한다. 단지 느낌이 좋을 뿐이다나름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다. 플래너를 알차게 쓰는 편인데 썼다가 지우는 경우가 많아서 볼펜은 적합하지 않더라. 그럼 샤프를 쓰면 편한, 굳이 연필이냐고 묻는다면그건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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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그냥 간지가 나서 그렇다. 하지만 간지도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간지를 뿜어내는 이야기다. <무한도전>이나 애플이 다른 브랜드보다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기능적으로 뛰어나서가 번째 이유겠지만, 10 그리고 42 동안 쌓아놓은 굴곡의 시나리오도 한몫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필 역시 그런 같다. 오늘 구입한 연필은 1960, 70년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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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드 파버에서 만든 1934년에 출시한 블랙윙은 헤밍웨이 당대의 유명한 작가들에게 사랑받다가 1998년에 단종되었다. 12 , 팔로미노라는 회사에서 블랙윙을 다시 만들었다. 우리가 해피해킹이나 리얼포스 같이 키감이 좋은 키보드를 계속 찾듯이 옛날의 작가들도 그랬던 같다. 1962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분노의 포도> 스타인벡은 자신에게 맞는 연필을 찾기 위해 헤매다가 블랙윙602 모델을 쓰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연필을 찾아냈어. 지금껏 써본 최고야. 물론 값이 세 배는 비싸지만 검고 부드러운데도 잘 부러지지 않아. 아마 이걸 항상 같아. 이름은 블랙윙인데 정말로 종이 위에서 활강하며 미끄러진다니깐.”
<
문구의 모험> 발췌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진 않지만, 좋은 도구에 대한 욕심은 누구나 있는 같다. 게다가 도구가 생산성과 직결된다면 말이다. 뒤에는 납작한 지우개가 달려있는 특징인데, 지우개를 쓰면 쉽게 교체할 있어서 실용적이기도 하다. 내가 제품은 아쉽게도 602 아니고, 한정판으로 출시된 블랙윙54라는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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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기법 중에 Exquisite Corpse(우아한 시체)라는 있는데, 사람이 그림이나 문장의 일부를 만들면 그다음 사람이 나머지를 완성해나가는 방식이다. 블랙윙54 흑연, 바디, 로고, 지우개, 지우개를 끼우는 부분 다섯 가지로 나눠서 각각 디자인하고 합쳐서 완성한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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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슨은 생소한 브랜드일 같다. 역시 이번 연필가게를 방문하기 전까지는 스테들러, 파버카스텔 정도밖에 몰랐으니까. 그런데 딕슨은 미국에서는 유명한 정도가 아니라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연필’ ‘국민 연필 불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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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의 초콜릿공장> 작가 로알드 달도 딕슨을 애용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딕슨 타이콘데로가 연필을 6자루를 깎은 후에야 일을 시작했다고. 아래 검은색 연필은 일반 연필보다 두꺼운데, 처음 연필을 잡는 어린이들은 연필이 두꺼워야 잡기 편해서 이런 식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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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구입한 딕슨 타이콘데로가1388 70년대에 나온 제품이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케이스에 그려진 밝은 표정의 아저씨가 누군지 궁금했는데, Ethan Allen이라는 미국 독립 전쟁에서 활약한 영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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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일본 연필을 소개해볼까. 톰보우는 아마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을까. 문방구에서 잠자리가 그려진 파란색 지우개를 번쯤은 봤을 같다. 일본에는 3 연필 브랜드가 있었는데, 톰보우, 미츠비시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코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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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나온 톰보우 제품이고 오른쪽 끝에 동그라미는 품질을 인증하는 마크다. 50년대에 일본 연필의 품질 향상을 위해 도입되었다가 90년대 말에 기술이 향상되면서 사용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마크가 있으면 연필의 나이가 최소 20 이상은 되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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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에 나온 미츠비시 제품이다. 디자인 그대로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데 프린트되어 있는 문구가 조금 다르다. 특허가 있다는 뜻의 ‘patented’라고 적혀 있는데, 지금 생산되는 연필은 특허가 만료되었다고(matured) 나온다.

연필 얘기를 한참 했지만 더 소개하고 싶은 게 있다. 이 가게는 연필 이외에 주변기기(?)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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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을 끼워서 연필의 길이를 연장시킬 있는 도구도 있고, 빈티지한 디자인의 지우개도 있다. 코끼리가 그려진 지우개는 체코의 Koh-i-Noor에서 만들고 있는데, 무려 100년이 넘은 디자인이라고 한다. 오래된 디자인뿐만이 아니라 재질도 마찬가지다. 요즘 지우개는 대부분 플라스틱 지우개인데 반해, 지우개는 아직도 예전처럼 고무로 생산하고 있다고 하니, 100 사람들과 완전히 똑같은 지우개를 쓰는 기분이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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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권을 추천할까 한다. 흑심에서는 <연필 깎기의 정석>이라는 책도 판매하고 있다. 책의 저자 데이비드 리스는 작가이면서최고의 HB 연필 깎기 장인이라고 자부하는데, 연필을 깎기 전에 해야 하는 스트레칭과 연필 깎기 기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연필과 함께 책을 사면 헛웃음 나면서 유쾌한 취미가 하나 생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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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