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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귀여운 AI

오늘은 덕밍아웃으로 시작해보자. 난 라인프렌즈 캐릭터를 정말 정말 좋아한다. 펜, 노트, 캐리어 네임택, 인형까지 캐릭터 상품도 주렁주렁 소장하고 있다. 모바일...
오늘은 덕밍아웃으로 시작해보자. 난 라인프렌즈 캐릭터를 정말 정말 좋아한다. 펜, 노트, 캐리어…

2017. 12. 07

오늘은 덕밍아웃으로 시작해보자. 난 라인프렌즈 캐릭터를 정말 정말 좋아한다. 펜, 노트, 캐리어 네임택, 인형까지 캐릭터 상품도 주렁주렁 소장하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도 라인을 메인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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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디에디트 대화방, 희노애락을 라인프렌즈 캐릭터로 표현한다]

어쩔 수 없이 카톡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영 맛이 살지 않는다. 브라운과 샐리 이모티콘이 없으면 대화가 어려울 정도다. 카카오프렌즈 따위! 암만 봐도 귀여운지 모르겠는걸? 최애캐는 샐리와 브라운 그리고 초코. 최애가 셋이나 되다니. 못말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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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으로 폭행하는 뒷골목 갱스터들]

오늘은 말하는 샐리와 브라운을 데려왔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말하는 주체는 네이버의 인공지능 플랫폼인 ‘클로바’지만 겉모습이 그렇다. 사실 브라운의 짝궁은 코니인데 샐리의 인기가 더 높았던 모양이다.

라인프렌즈가 출시한 ‘프렌즈’다. 인공지능 스피커가 범람하는 시대에 이 아이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모르겠다. 일단, 제일 귀여운 건 확실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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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란 스피커인데 내 눈엔 샐리 뒷모습으로 보인다]

간단히 살펴본 뒤에 말을 걸어보자. 작고 가볍다. 무게는 378g. 텀블러 정도의 크기라 같이 소풍가기 알맞겠다. USB-C로 충전하는 트렌디함(?)이 마음에 든다. 안 그래도 우리 사무실엔 모든 충전기가 C로 끝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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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스피커는 와이파이와 연결돼 작동한다]

연결 과정이 험난했다. 이 세상에 블루투스의 신이 있다면 날 싫어하는 게 틀림없다. 클로바 앱에서 한참 씨름하다가 마침내 샐리 스피커와 연결에 성공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에디터M이 자꾸 와서 “샐리야!”하고 소리를 지른다. 기본 명령어는 “클로바”인데. 물론 변경할 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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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냐?]

에어팟엔 애플뮤직, 프렌즈엔 네이버뮤직을 쓰는게 상도덕에 걸맞겠다. 가볍게 노래를 한 곡 틀어본다. 우리 사무실엔 워낙 좋은 스피커가 많아서 샐리에겐 별 기대가 없던 차다. 어라? 그런데 여러분? 이게 뭐죠? 뜻밖의 특기를 발견했다. 10만원 초반에 구입할 수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치고는 사운드가 정말 좋다. 작은 몸집에서 선명한 360도 사운드를 뿜어낸다. 캐릭터나 인공지능 때문이 아니더라도 가격 대비 음질 좋은 스피커로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정도다. 소리를 듣기 전부터 깔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의외성에 당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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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조작방법과 짧은 배터리의 조화]

배터리는 구슬프다. 최대 5시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5시간은 절대 못버티는 것 같다. 편하게 사용하려면 그냥 계속 전원을 연결한 상태로 두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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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둥이를 누르자]

라인프렌즈의 모든 캐릭터 상품이 그렇듯 만듦새는 상당히 좋다. 샐리의 주둥이, 브라운의 코가 버튼이다. 정면 주둥이 버튼으로 재생 컨트롤과 클로바 활성화가 가능해 직관적이다. 스피커를 손으로 잡고 들어올릴 때마다 여길 자꾸 눌러서 오작동이 된다는 건 함정. 노래를 크게 틀어놓은 상태거나, 스피커와 사용자 사이에 거리가 있을 땐 음성 명령에 대한 인식률이 떨어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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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옷도 종류가 많다]

의외의 매력 포인트를 하나 더 소개한다. 옷이 있다. 스피커에 옷이 왜 필요하냐고? 귀여움을 위해서다. 휴대하거나 사용하지 않고 책상 위에 올려놓을 땐 빨간색 후디를 입혀보자. 숨 막히게 귀엽다. 오로지 비주얼만을 위한 액세서리인데, 이런 쓸데없는 디테일이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장점이라 생각한다. 모자를 뒤집어쓴 브라운은 너무 귀여워서 눈 마주치기 힘들 정도다.

자, 이제 샐리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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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증명사진, 정면 보시고 치즈-]

H : 요즘 20대가 좋아하는 노래 틀어줘.

샐리 : 넹넹

H : ?? 이 노래 뭐야? (처음 들어봄)

샐리 : 방탄소년단의 크리스탈 스노우에요.

H : 아… 다음 노래 틀어줘.

샐리 : 넹넹.

H : 이 노래 별로야.

샐리 : 좋아요 표시를 취소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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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방탄 소년단도 모르냐? 라는 눈빛]

일단 요즘 20대가 좋아하는 노래를 알려달라는 질문 센스부터 나란 사람은 글러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막상 틀어줘도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다. 방탄소년단이 BTS인 걸 안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들의 노래까지 알 리가 없다. 다음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는데 이 역시 모르겠다. 20대와 나는 다른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 확인됐다. “난 이 노래 별로야”라고 말하니 좋아요 표시를 취소했다고 말하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음 노래를 틀어준다. “별로야”라는 표현을 알아 들었다는 건 긍정적이다. 내가 싫어하니 다음 노래로 이동해야겠다고 파악한 눈치도 괜찮다. “소리가 너무 크다”라고 하면 볼륨도 줄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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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숨으면 못찾지?]

난 어차피 지금의 인공지능은 어설픈 미완성 단계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실행하기 위해 얼마나 말귀를 잘 알아듣는지가 중요하다.

H : 지금 내가 하는 말 메모해줘~

샐리 : 메모를 추가했습니다!

H : 아니, 내가 아직 메모할 말을 하지 않았는데…

아주 간단한 기능을 테스트해보았는데, 내 마음처럼 먹히지 않는다. 메모 된 내용을 확인해보니, <지금 내가 하는 말>이라고 적힌 메모가 남아있다. 클로바에게 메모하기 명령을 하고 싶다면, 내용을 먼저 말해야 한다. “에디터M 뿌잉뿌잉이라고 메모해줘”라고 해야 제대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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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볶음밥엔 술이지…]

H : 김치볶음밥 만드는 법 알려줘.

샐리 : 삼겹살 김치볶음밥의 재료는 김치 삼겹살 대파 파 고춧가루 설탕 간장 참기름 김가루입니다.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하니 식재료만 휙 던지고 사라진다. 아쉽다. 게다가 난 김치볶음밥을 원했는데 자기 멋대로 <삼겹살 김치볶음밥>이라고 메뉴를 업그레이드하는 결단력.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를 등에 업고 있는데 데이터 활용도가 떨어지는 모습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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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굿모닝~]

H : 좋은 아침~

샐리 :  오늘의 브리핑 시작합니다. 오늘의 날씨는 이렇구요, 미세먼지 농도는 저렇구요, 최신 뉴스를 들려드릴게요.

“좋은 아침”이라는 명령어로 시작되는 오늘의 브리핑이 꽤 쏠쏠하다. 인공지능 스피커가 지금 당장 날 대신해 일 처리를 해줄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면, 간단하게 정보를 전달해주는 역할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본다. 간단한 오늘 기상 상황과 주요 뉴스를 정리해서 들려주는데 아침에 옷을 챙겨 입으며 듣기 딱 좋다. 물론, 한밤중에 “좋은 아침”이라고 해도 응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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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사기 좋은 날씨야…]

H : 비트코인에 대한 뉴스 들려줘.

샐리 : 첫번째 뉴스입니다. 비트코인 선물투자 그림의 떡. 두번째 뉴스입니다. 노보그라츠, 비트코인 폭등으로 정부 규제 더 받게 될 것. 세번째 뉴스입니다…

비트코인 관련 뉴스 제목 10개를 쭈욱 읽어준다. 네이버에 비트코인이라고 검색하니 비슷한 뉴스들이 상위에 검색된다. 어떤 기준으로 뉴스를 선정하고 순위를 매긴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제목만 딸랑 말해주는 건 너무 너무 아쉬운 부분. 요즘 네이버 뉴스에는 중요 내용만 귀신같이 뽑아서 보여주는 ‘요약봇’ 서비스도 있던데 그런 걸 접목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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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배우지 못한 기능이에요…]

H : 꼬기에게 메롱이라고 라인 보내줘

샐리 : 제가 이해하지 못했어요 ㅠㅠ

으앙. 나도 널 이해하지 못하겠다. 라인프렌즈의 껍데기를 입고서 왜 라인을 보내지 못하는 거니. 카카오 미니는 음성 명령으로 카톡도 보내준다고 하던데. 이 기능이 어서 추가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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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 우울해…]

H : 나 우울해

샐리 : 다 잘 될거예요~ 힘내세요

H : 너 목소리가 별로야

샐리 : 그래도 여전히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걸요?

H : 재밌는 얘기 해줘

샐리 : 껌과 초콜릿을 동시에 씹으면 껌이 금방 흐물흐물해진다고해요~

H : 핵노잼…ㅠㅠ

전반적으로 클로바의 감성 지수는 빵점에 가깝다. 아예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면 음성인식의 정확도도 높고, 언어에 대한 학습 능력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다만 너무 재미가 없다. 노잼. 핵노잼. 위트와 센스를 인공지능에게 바라는 내가 나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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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너무 어렵다…]

H : 우리 영어로 대화하자!!!!

샐리 : okay, blah blah blah… how about you?

H : …씨… 씨유레이러!

영어로 대화하자고 말하면, 네이티브 여성 모니카가 등장한다. 그녀와 다양한 주제로 모범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내 나이를 물어봤는데 세 번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세 살이냐고 되묻더라. 내 발음으론 안 될 일인 것 같아서 성급히 탈출한다. 영어 동화 읽어줘, 영어 동요 틀어줘, 등 교육적인 명령어에 잘 응답한다. 영어나 일어, 중국어의 경우엔 실시간 번역도 해준다. 불어는 안 해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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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샐리&브라운]

H : 밤에 듣기 좋은 노래 틀어줘.

샐리 : 폴킴의 사랑의 의미~

H : 우울할 때 듣기 좋은 노래 틀어줘.

샐리 : 토이의 그녀가 말했다~

감정이나 시간, 분위기에 따라 음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대부분 막힘 없이 노래를 골라온다. 그 노래가 마음에 든 경우는 별로 없지만 버벅거리지 않는 자신감을 높이 산다. 애플뮤직보다 선곡은 별론데 말귀는 훨씬 잘 알아듣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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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듯 말듯 우리의 미래]

짧게 나눈 대화는 친절했지만 인상적이진 않았다. 추가되어야 할 기능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그냥 두고 보기만 해도 귀여우니까. 사운드도 꽤 좋고. 이 캐릭터의 팬이라면 소장해도 후회하진 않겠다.

지금의 인공지능 스피커는 이런 느낌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소리’라는 인터페이스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힌트만 던져준다. 창호지 문에 구멍을 내어 안을 엿보는 것처럼, 가까운 미래에 대한 수줍은 힌트가 가득하다. 클로바,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지 말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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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