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PLAYLIST] 제1회 장마뮤직페스티벌

어디에나 내리는 비, 어디에도 없는 페스티벌
어디에나 내리는 비, 어디에도 없는 페스티벌

2026. 07. 06

페스티벌과 장마는 상극이다. 매년 여름, 주최자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을 졸이고, 관객들은 우비를 챙기며 일기예보를 새로고침한다. 비는 페스티벌의 가장 오래된 불청객이다. 그래서 거꾸로 가보기로 했다. 비가 와야 열리는 페스티벌. 취소될 걱정이 없는, 애초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페스티벌을 하나 상상해서 개최해 보는 거다!

이 페스티벌의 베뉴는 각자의 방. 입장권은 창밖의 빗소리, 스피커가 메인 스테이지, 헤드폰이 서브 스테이지, 그리고 어두운 새벽의 방이 지하 클럽이 된다. 타임테이블은 진짜 페스티벌처럼 짰다. 낮 열두 시에 문을 열어 자정에 닫는 메인과 서브, 그리고 오후 세 시부터 자정까지 이어지는 보너스 클럽 스테이지까지. 무대 위에는 인디애나의 소울 밴드부터 잠비아의 사이키델릭, 리우의 거장, 서울의 싱어송라이터, 도쿄의 하우스까지, 시대를 상징하고, 살아가는 음악가들이 오른다. 페스티벌은 가상이지만, 음악은 전부 진짜다.

라인업을 짜며 기준을 하나 두었다. 사라졌다가 돌아온 음악일 것. 1970년대 잠비아의 사이키델릭은 레코드 디거들의 손에서 되살아났고, 리우의 삼바 훵크는 런던의 클럽 플로어에서 다시 돌았으며, 90년대 도쿄의 하우스는 사반세기 만에 암스테르담의 컴필레이션으로 돌아왔다. 어디선가 사라진 음악이 다른 시대, 다른 자리에 다시 내리는 일. 이것은 생각해보면 비와 닮았다. 그리고 이 순환의 한가운데에, 작년 봄 우리 곁을 떠난 한 사람이 있다. 이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는 그의 몫이다.

듣는 법은 자유다. 타임테이블 순서대로 하루를 통째로 보내도 좋고, 내키는 무대만 골라 들어도 좋다. 다만 한 가지만 권하고 싶다. 비 오는 날 들을 것. 빗소리는 이 페스티벌의 유일한 입장 조건이자, 가장 중요한 악기이니까. 마지막 무대가 끝날 때쯤, 창밖의 비가 그쳤는지 한번 확인해보시길. 그쳤다면 페스티벌이 끝난 것이고, 아직 내리고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들으면 된다.

*재생목록으로도 만들어놓았으니 음악부터 먼저 쭉 듣고 싶다면 [여기]로.


올해는 유독 레트로 소울, 그러니까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음악처럼 1960년대 알앤비/소울의 향취를 한껏 머금은 밴드들이 한국 가까이로 다가온 해였다. 일단, 서울재즈페스티벌과 아시안 팝 페스티벌에 샌디에이고의 디 새크리드 소울즈(Thee Sacred Souls)와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의 디 말로에스(Thee Marloes)가 차례로 올랐다. 이들이 각각 몸담은 레이블, 댑톤(Daptone)과 빅 크라운(Big Crown)이 사실상 이 부흥의 두 본산이라 할 만하다. 와인하우스 [Back to Black]의 빈티지한 질감을 빚어낸 댑킹스가 댑톤의 하우스 밴드였다는 점만 떠올려도, 이 부흥의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듀란드 존스 앤 디 인디케이션스 역시 그 흐름 위에 자리 잡은 밴드다.

낮 열두 시,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첫 무대부터 1968년이 걸어 들어온다. 인디애나 블루밍턴에서 만난 친구들이 함께 시작한 이 밴드의 사운드는 당황스러울 만큼 옛것에 가깝다. 따뜻하게 뭉개진 녹음, 끈적이는 베이스, 드럼을 치다 뒤에서 슬쩍 팔세토를 흘리는 에런 프레이저(Aaron Frazer)의 보컬까지. 복고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 시절을 껴안고 들어가는 밴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의 문을 여는 카드로 이만한 선택이 없다. 축축한 공기 위에 따뜻한 소울 한 겹을 깔아주는 시작이니까. 들을 때는 가사보다 프레이저의 팔세토가 끼어드는 그 순간을 기다려보시길. 이 밴드가 왜 특별한지가, 거기서 다 드러난다.


메인이 야외에서 비를 맞으며 달아오를 때, 실내에선 전혀 다른 온도의 무대가 열린다. 장마 페스티벌의 서브 스테이지는 목소리와 기타가 주인공인, 한결 내밀한 자리. 그 문을 메이 세모네스가 연다. 미시간에서 태어나 브루클린에 자리 잡은 일본계 싱어송라이터로, 버클리에서 재즈 기타를 공부한 사람답게 그의 음악엔 보사노바와 재즈, 거기에 매스록의 까다로운 박자까지 태연하게 섞여 있다. 가사는 영어와 일본어 사이를 자유로이 오간다. 그런 만큼, 듣다 보면 이게 어느 나라의 음악인지를 묻는 일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그냥 메이 세모네스의 음악이다.

신기한 건, 이렇게 머리가 아플 만큼 정교한 음악이 하나도 무겁게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악기가 부드럽게 감싸고, 숨결 같은 보컬이 그 위를 가볍게 미끄러진다. 이처럼 복잡한 것을 복잡하지 않게 들려주는 일이 이 사람의 진짜 재능에 가깝다. 비 내리는 낮 열두 시 반, 창밖으로 빗줄기를 보며 듣기에 이만한 음악이 없다. 들을 때는 기타가 갑자기 방향을 트는 그 순간들을 놓치지 마시길. 그 까다로운 전환을 아무렇지 않게 바람처럼 흘려보내는 자리에서, 이 젊은 연주자의 내공이 또렷이 드러난다.


이름부터 풀이가 필요하다. 위치(WITCH)는 ‘We Intend To Cause Havoc(우리는 난장을 일으킬 작정이다)’의 약자다. 1970년대, 영국에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잠비아의 젊은이들은 지미 헨드릭스와 블랙 사바스를 자기들 식으로 되받아쳤다. 사이키델릭 록에 아프리카 리듬을 섞은 그 사운드는 잠록(Zamrock)이라는 명칭을 얻었고, 위치는 그 정점에 자리한 밴드였다. 이들은 ‘잠비아의 비틀즈’로 불리며 한 시대를 뒤집어놓았다. 다만 1980년대로 들어서며 나라의 경제가 무너지고 에이즈가 도시를 휩쓸자, 잠록은 그 뮤지션들과 함께 잊혀갔다. 밴드의 프론트맨 자가리 찬다(Jagari Chanda)는 교사를 거쳐 보석 광부가 됐다.

이들의 역사가 여기까지였다면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2010년대에 서구의 레코드 디거들이 잊힌 음반을 다시 파내면서 위치는 되살아났고, 칠순을 넘긴 자가리는 자신보다 서른 살 넘게 어린 유럽 뮤지션들과 함께 밴드를 다시 꾸려 40년 만의 신보 [Zango]를, 작년에는 그 후속작 [Sogolo]까지 내놓는다. 올해엔 런던 레이블 BBE 뮤직의 토킹 헤즈 트리뷰트에서, “어쩌다 내가 여기 왔을까?”를 끊임없이 되묻는 ‘Once In A Lifetime’을 부르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비 오는 오후 두 시, 첫 무대의 따뜻한 소울이 가라앉을 즈음 이 밴드가 눅눅한 공기를 사이키델릭 기타와 펑키한 리듬으로 한 번 찢어놓을 것이다. 이 밴드의 노래를 들을 때는 ‘이게 정말 1970년대 잠비아의 사운드인가?’를 한 번 의심해보시길.


한국에도 팝과 알앤비로 분류할 만한, 흑인 음악에 뿌리를 둔 싱어송라이터들이 무궁무진하다. 다만 그에 걸맞은 조명이 늘 부족한 게 아쉬운 지점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기보다 나부터 잘하자는 마음으로, 음악가들을 만날 때마다 요즘 무엇을 듣는지 묻곤 한다. 얼마 전엔 이태원의 한 베뉴에서 우연히 수민을 만나, 브라질과 MPB를 자기 색으로 녹여내는 주혜린, 최정윤, 그리고 차울이 만들어가는 세계를 두고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그중에서도 차울을 꼭 적어둔다. 올해 아시안 팝 페스티벌 무대에 서긴 했지만, 훨씬 더 많이 알려져야 할 사람이라서. 임금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2024년 ‘차울’로 새출발한 그는, 뉴욕에서 재즈 보컬을 전공한 싱어송라이터다. 첫 정규 [Everything Bagel]은 코로나 시절 뉴욕을 향한 그리움에서 출발한 앨범으로, 재즈를 뿌리에 두고 R&B와 포크 사이를 자유로이 오간다. 크러쉬와 소금(sogumm)을 비롯한 쟁쟁한 동료들, 그리고 지윤해·글로잉독의 프로듀싱이 그 사운드를 단단히 받친다. 흥미로운 건, 바로 앞 무대를 연 메이 세모네스 역시 뉴욕(브루클린)에서 자기 음악을 빚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비 오는 오후,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도시를 그리워한 두 사람이 같은 무대에 나란히 서는 셈이다.


잠깐 첫 무대로 돌아가 보자. 듀란드 존스를 키운 레이블이 콜마인(Colemine)인데, 세이 셰이 셰이도 그 산하 카마 치프(Karma Chief)에서 앨범을 낸다. 비 오는 메인 스테이지가 한 바퀴 돌아 다시 한 핏줄로 묶이는 셈이다. 어찌 되었건 뉴욕에서 모인 세 여성이 이끄는 이 밴드는, 자기 음악을 ‘디스코델릭 소울(Discodelic Soul)’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디스코에 사이키델릭을 한 스푼 넣은, 1979년 뉴욕 댄스플로어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마치 나일 로저스의 시크(Chic)처럼 말이다. 사실 이들의 이름부터가 프랑스어 ‘C’est chi-chi(이건 시크해)!’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만큼, 시크에 바치는 농담 같은 경의이기도 하다.

이 밴드의 심장은 세 사람이 쌓아 올리는 3부 하모니에 있다. 정교하게 겹치는 이들의 목소리는 디스코의 들뜨는 에너지와 소울의 깊이를 동시에 담아낸다. 화사한 화음 아래엔 단단한 메시지가 깔려 있는 것도 이 밴드의 결이다. 이들에게 댄스플로어는 모두가 자유로워지는 해방구이고, 춤은 그 자체로 작은 저항에 가깝다. 비 내리는 오후 네 시, 잠록의 광기가 한 차례 지나간 뒤 이 무대가 올라온다. 빗소리 위로 세 목소리가 포개지는 순간, 흐린 하늘이 잠깐 디스코 볼처럼 반짝일지도 모르겠다. 들을 때는 가사보다, 세 사람의 목소리가 어떻게 갈라지고 다시 만나는지를 따라가 보시길 권한다.


서브 스테이지의 세 번째 손님은, 바로 비를 노래해온 사람 리아나 플로레스다. 그의 데뷔 앨범 첫 싱글 제목이 ‘I Wish for the Rain’인 만큼, 이 정도면 장마 페스티벌을 위해 예약된 무대라 해도 좋겠다. 잉글랜드 시골 노퍽에서 자라 지금은 런던에 자리 잡은 영국-브라질 혼혈 싱어송라이터인 그는, 몸에 흐르는 브라질의 보사노바와 영국의 60년대 포크를 한 몸에 지녔다. 런던의 우울한 무드와 리우의 햇살을 몽환적인 세계관 안에 녹여낸, 자기만의 결이 분명한 음악을 한다.

원래 그는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동물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그러다 2019년에 발표한 ‘rises the moon’이 뒤늦게 틱톡에서 터지며 인생의 궤도가 바뀌었고, 졸업 후 전설적인 버브(Verve) 레이블과 계약해 2024년 [Flower of the Soul]을 내놓는다. 닉 드레이크와 아스트루드 질베르토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충분한 음악. 흥미로운 사실은, 리아나 플로레스가 앞 무대에 오른 메이 세모네스와 실제로 함께 투어를 돌아온 사이라는 점이다. 비 내리는 오후, 두 친구가 같은 무대를 이어받는 셈. 그런 만큼 들을 때는, 나른하게 풀린 그의 목소리가 어떻게 빗소리와 포개지는지를 느껴보시길.


해가 기울 무렵, 메인 스테이지가 처음으로 거장 아지무스를 무대로 모신다. 1970년대 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결성된 이들은 자기 음악을 ‘삼바 도이두(samba doido)’, 곧 미친 삼바라 불렀다. 삼바와 보사노바에 일렉트릭 재즈와 훵크를 들이부은 이들의 사운드는, 50년 전에 이미 시대를 앞질러 간 소리에 가깝다. 1979년 ‘Jazz Carnival’ 한 곡으로 브라질을 넘어 전 세계 클럽 플로어를 점령했고, 이후 런던의 레이블 파 아웃(Far Out)에 둥지를 틀며 포히어로(4hero), 테오 패리시(Theo Parrish) 같은 후배들에게 끝없이 리믹스되고 추앙받았다.

다만 지금의 아지무스는 온전한 원년 트리오가 아니다. 건반의 호세 호베르토 베르트라미(2012)도, 드럼의 이반 콘티 ‘마망'(2023)도 차례로 세상을 떠났고, 베이스의 알렉스 말례이루스가 떠난 두 동료의 사운드를 짊어진 채 무대에 선다. 그래서 이 무대엔 그루브와 애도가 함께 흐른다. 포르투갈어로 ‘사우다지(saudade)’라 부르는, 그 달콤하고 쓸쓸한 그리움 말이다. 비 내리는 저녁 다섯 시 반, 신스가 빗줄기처럼 흘러내리고 베이스가 바닥을 단단히 받칠 때, 리우의 카니발과 한국의 장마가 한 무대 위에서 만난다. 마침 올해 한국에 두 번째로 내한도 이루어지는 만큼, 들을 때는 사운드의 화려함보다 그 밑에 깔린 멜랑콜리를 느껴보시길. 그 안에 떠난 두 사람의 자리가 함께 있으니.


이름 표기부터 봐야 한다. ‘Σtella’의 맨 앞 글자가 알파벳 S가 아니라 그리스 문자 시그마(Σ)다. 읽기는 그저 ‘스텔라’지만, 저 한 글자 안에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가 박혀 있다. 본명 스텔라 크로노풀루, 그리스 아테네에서 미술을 전공한 화가이자 싱어송라이터로, 그리스 아티스트로서 너바나와 사운드가든을 배출한 전설적인 레이블 서브 팝(Sub Pop)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음악은 나일론 스트링 기타와 사이키델릭한 신스 위로 옛 유럽 팝의 우아함이 흐르는, 빈티지하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결의 사운드다. 2025년 발매된 최신작 [Adagio]는 개인적인 혼란을 겪던 시기, 아나피 섬으로 향하는 열한 시간의 배 위에서 휴대폰에 멜로디를 쌓으며 시작된 앨범이다. 그렇게 지중해 위에서 출발한 음악은 그를 처음으로 모국어인 그리스어 노래로 데려갔다.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끝내 끌어안은 만큼, 이 앨범의 음악은 마치 담요처럼 따스한 온기를 담는다. 비 내리는 밤, 담요를 끌어다 덮고 듣기에 이만한 게 없다. 들을 때는 영어 노래들 사이에서 문득 그리스어 노래가 흘러나오는 그 순간을 기다려보시길. 멀리 지중해에서 불어온 바람이, 잠시 장마의 밤을 달래줄 것이다.


메인 스테이지에 어울리는 가장 뜨거운 이름. 화려한 이력을 지녔지만 한국에선 아직 그 이름이 낯선 디종은, 2025년 음악계에서 가장 바빴던 사람 중 하나에 가깝다. 저스틴 비버의 컴백 앨범 [SWAG]을 프로듀싱해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프로듀서〉와 〈올해의 앨범〉 두 부문 후보에 올랐고, 본 이베어의 신보에도 참여했으며, 본인의 새 앨범 [Baby]까지 내놓았다. 심지어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로 배우 데뷔까지 했으니, 말 그대로 어디에나 있던 한 해였다. 디종의 매력을 한 줄로 적어두면 이렇다. 방 안에서 함께 듣는 것 같은 음악. 실제로 그의 라이브는 거실에서 친구들과 악기를 들고 즉흥으로 터뜨리는 자리에서 출발했고, 매 공연 셋리스트가 다르고,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여 거의 영적인 무아지경에 닿는 식으로 무대를 빚는다.

그런 만큼 곰곰이 생각해보면, 디종만큼 ‘집에서 트는 페스티벌’이라는 기획에 어울리는 아티스트가 없다. 그의 음악 자체가, 누군가의 방에 몰래 끼어든 듯한 친밀함과 닿아 있으니까. 특히 비 내리는 밤 일곱 시 이십 분, 메인 스테이지가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이 폭발이 가라앉는 그 자리에, 곧 마지막 무대가 기다린다. 들을 때는 완성도보다, 그가 무너지기 직전까지 자신과 이 모든 소리를 밀어붙이는 그 순간을 느껴보시길. 그 위태로움이 디종이라는 음악가의 거의 전부다.


서브 스테이지의 마지막은, 목소리 하나로 충분한 사람에게 맡긴다. 클레오 솔을 모르는 사람도 그의 목소리는 들어본 일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몇 년간 영국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익명의 음악 집단 솔트(SAULT). 얼굴도 잘 드러내지 않고, 인터뷰도 거의 안 하며, 그저 음악만 쏟아내는 이 컬렉티브의 중심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바로 클레오 솔이다. 런던 노팅힐의 재즈 뮤지션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남편이자 프로듀서인 인플로(Inflo)와 함께 솔로작 다섯 장을 내며 영국 소울의 한 중심을 묵묵히 지켜왔다.

그의 음악을 한마디로 적어두면, ‘촛불을 켜고 하루를 가라앉히기에 완벽한’ 소울이라 할 만하다. 화려하게 내지르는 법이 거의 없다. 대신 샤데이와 디안젤로의 계보를 잇는 나직하고 영적인 목소리로, 사랑과 믿음과 어머니에 대해 조용히 노래한다. 비가 종일 내린 긴 하루의 끝, 밤 아홉 시 반에 이 무대가 선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메인이 떠난 거장 로이 에이어스에게 인사를 건네며 닫힐 때, 이곳 서브에서는 그 네오소울의 핏줄을 이어받은 목소리가 하루를 감싸안는다. 들을 때는 가사를 따라가기보다, 그 목소리에 그저 기대보시길. 오늘 하루치의 비가, 그 위에서 천천히 마를 것이다.


이 무대는 조금 다르다. 비브라폰을 든 한 거장이, 작년 봄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로이 에이어스(Roy Ayers, 1940–2025)는 재즈에 펑크와 소울을 녹여 애시드재즈와 네오소울의 길을 연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를 ‘네오소울의 대부’라 불렀고, 1976년 그가 만든 ‘Everybody Loves the Sunshine’은 100번이 넘게 샘플링되며 세대를 건너 흘러왔다. 사실 오늘 이 페스티벌에 오른 리우의 아지무스부터 언더그라운드 DJ들까지, 모두가 알게 모르게 그의 그늘 아래서 자랐다. 그러니 이 무대는 헤드라이너 자리라기보다 뿌리를 향한 헌정에 가깝다고 봐도 좋겠다.

떠난 사람을 어떻게 무대에 세울까. 그래서 한 사람을 불렀다. 자미로콰이의 키보디스트 매트 존슨(Matt Johnson)이다. 그는 로이 에이어스를 자기 음악의 영웅으로 꼽으며 그의 곡을 무대에서 꾸준히 연주해온 사람이다. 스승의 사운드를 가장 깊이 이해한 후배가, 떠난 거장을 대신해 건반 앞에 앉는다. 밤이 가장 깊어진 시각, 빗소리 사이로 ‘Everybody Loves the Sunshine’이 흐른다. 모두가 햇살을 사랑한다는 그 노래가, 하필 비 오는 밤에 울려 퍼진다. 어쩌면 그게 더 어울리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햇살은, 사라진 자리에서 가장 또렷이 기억되는 법이니까. 오늘 우리가 종일 들은 모든 소리가, 결국 이 한 사람에게로 흘러든다.


여기서 잠깐, 오늘 하루를 다시 돌아보자. 잊혔던 위치(WITCH)를 되살린 것은 레코드 디거들이었고, 아지무스를 브라질 바깥으로 데려간 것은 클럽 플로어였으며, 로이 에이어스를 세대 너머로 흘려보낸 것은 샘플링과 턴테이블이었다. 말하자면 오늘 무대에 오른 음악의 절반은, 클럽과 레코드 가게 지하에서 발굴되고 살아남은 음악이다. 그래서 그 공로의 자리를 따로 마련했다. 무대 위가 노래와 목소리의 자리라면, 클럽 스테이지는 그루브와 디깅, 그리고 재즈의 자리. 오후 세 시에 문을 열어 메인이 닫힌 뒤에도 자정까지 이어지는, 장마 페스티벌의 가장 깊은 층이다.

이곳의 라인업은 멜버른에서 탈린, 도쿄, 퀘벡, 취리히, 나폴리, 런던, 뉴저지까지, 지도의 변방을 따라 흐른다. 라이브러리 뮤직과 잠들어 있던 사운드트랙, 브로큰비트와 딥하우스처럼, 차트보다 댄스플로어가 먼저 알아본 음악들. 그리고 지하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빗소리가 닿지 않는 유일한 공간에서, 대신 베이스가 비처럼 내린다. 긴 하루의 끝, 듣는 일이 어느새 어깨춤을 만들어 내는 자리다.

클럽 스테이지 15:00–16:00
Surprise Chef 〈멜버른〉

비 내리는 클럽 스테이지의 문은, 멜버른에서 온 다섯 명의 ‘시네마틱 소울 장인들’이 연다. 2017년 결성된 서프라이즈 셰프는 데이비드 액설로드와 아이작 헤이즈로 대표되는 1970년대 영화음악과 라이브러리 뮤직, 그리고 힙합 샘플의 미감을 한 그릇에 담아내는 인스트루멘털 밴드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오늘 첫 무대에서 레트로 소울 부흥의 두 본산으로 댑톤과 빅 크라운을 언급했는데, 이들이 바로 그 빅 크라운 소속이다. 메인의 첫 무대와 지하의 첫 무대가 같은 핏줄로 이어지는 셈. 더 루츠의 퀘스트러브와 저래식 5의 DJ 누마크가 아꼈고, 리치 브라이언과 고스트페이스 킬라의 합작 트랙에 샘플링됐으며, 작년엔 70년대 호주 컬트 영화 〈웨이크 인 프라이트〉의 상영에 라이브 스코어를 직접 입히기도 했다. 무디한 인스트루멘털 재즈훵크가 첫 곡부터 깔리는 순간, 비 오는 지하는 어느 70년대 영화의 한 장면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것이다.


클럽 스테이지 16:00–17:00
Misha Panfilov 〈탈린〉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온 미샤 판필로프는, ‘다작 음악가’라는 말로도 부족한 사람이다. 한 해에 앨범 서너 장은 우습게 내놓는 이 작곡가는 사이키델릭 재즈와 크라우트록, 보사노바, 라이브러리 뮤직 사이를 자유로이 떠돈다. 특히 펜자 펜자(Penza Penza), 에스트라다 오케스트라(Estrada Orchestra), 미샤 판필로프 셉텟 같은 여러 이름으로 갈아입으며, 선 라(Sun Ra)의 우주적 재즈와 시네마틱한 소울 사이를 오간다. 따뜻한 아날로그 사운드와 최면 같은 루프가 그의 음악적 지문이라 할 만하다. 앞서 메인의 위치(WITCH)가 참여한 토킹 헤즈 트리뷰트 [Naive Melodies]에 그도 이름을 올렸으니, 무대와 무대가 또 한 번 보이지 않게 이어진다. 한 곡 안에 우주 하나가 들어 있는 그의 음악은, 비 오는 지하 무대 위에서 둥둥 떠다니기에 더없이 좋다.


클럽 스테이지 17:00–18:00
Soichi Terada 〈도쿄〉

이 무대야말로 클럽 스테이지의 정신 그 자체라 할 만하다. 데라다 소이치는 1989년 도쿄에서 레이블 파 이스트 레코딩(Far East Recording)을 세우고, 90년대 내내 본인 표현으로 ‘아시아의 억양을 가진 하우스’를 만들던 사람이다. 다만 그 시절 그의 레코드는 바다 건너에 거의 닿지 못했고, 그는 오랫동안 비디오게임 〈에이프 이스케이프〉의 음악가로 더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 2015년, 디제이 후니가 큐레이션한 러시 아워의 컴필레이션 [Sounds From The Far East]가 그의 90년대 작업을 다시 파냈고, 레이블을 세운 지 사반세기가 지나서야 데라다는 전 세계 클럽 무대로 불려 나가기 시작한다. 클럽과 레코드 가게 지하에서 발굴되고 살아남은 음악. 지하 무대의 첫머리에 적어둔 그 문장을, 한 사람의 인생으로 증명하는 사례인 셈이다. 신스 앞에서 환하게 웃는 그 유명한 미소와 함께 통통 튀는 하우스가 깔리면, 비 오는 지하는 잠시 도쿄의 맑은 아침으로 바뀐다.


클럽 스테이지 18:00–19:00
Angine de Poitrine 〈퀘벡〉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앙진 드 푸아트린’은 프랑스어로 협심증을 뜻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퀘벡 사그네에서 온 이 2인조는 거대한 파피에마셰 가면을 뒤집어쓰고, 자기들이 만든 외계 언어로만 노래하는 정체불명의 밴드다. 시작은 농담이었다. 같은 베뉴에서 두 주 연속 공연할 수 없다는 말에, 한 주는 본인들로, 다음 주는 코스튬을 쓰고 무대에 오른 것. 그 가면이 이제 이들의 얼굴이 됐다. 음악도 이름 그대로 긴장이 끝까지 조여졌다 터지는 결인데, 미분음 프렛을 단 더블넥 기타로 음과 음 사이를 파고드는 매스록 위에 디스코 그루브와 애시드 테크노의 맥박이 얹힌다. 선 라(Sun Ra)와 훵크가 만난 듯한 이 사운드에 데드마우스와 데이브 그롤 같은 거물들이 먼저 반했고, 올해 초 KEXP 세션 영상이 수백만 조회수를 터뜨리며 전 세계가 뒤따라 빠져들었다. 비 내리는 지하, 가면 쓴 외계인들이 펼치는 이 무대는 예술과 꿈 사이 어딘가에 떨어질 것이다.


클럽 스테이지 19:00–20:00
Okvsho 〈취리히〉

스위스 취리히의 형제 게오르크와 크리스토프가 꾸린 듀오, 오쿠쇼. 힙합 비트메이킹과 일렉트로닉에서 출발한 이들은, 제이 딜라(J Dilla)식 비트와 유럽 모던 재즈, 훵크, 네오소울을 한 그릇 안에 버무려낸다. 전환점은 2016년, 유세프 카말(Yussef Kamaal)의 [Black Focus]였다. 그 앨범과 함께 떠오른 UK 재즈 씬에 영감을 받아 샘플을 내려놓고 라이브 밴드를 꾸리기 시작했으니, 질레스 피터슨의 브라운스우드 카탈로그 옆에 나란히 놓일 만한 클럽 재즈를 만드는 데는 다 계보가 있는 셈이다. 지금은 자체 레이블까지 세워 취리히에 모던 재즈 씬을 심으려는 중이기도 하다. 디제이로도, 밴드로도 서는 이들이라 지하 클럽 무대의 성격에 더없이 잘 맞는다. 색소폰과 플루트가 베이스 위로 떠오르는 순간, 비 오는 밤은 어느새 나른한 새벽으로 미끄러진다.


클럽 스테이지 20:00–21:00
Flea 〈LA〉

그렇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그 플리(마이클 발자리)다. 평생 베이스로 스타디움을 뒤흔든 이 사람의 진짜 첫사랑은, 사실 트럼펫과 재즈였다.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가 재즈 베이시스트였고, 디지 길레스피와 마일스 데이비스를 우상으로 삼던 소년은 베이스를 잡기 전부터 트럼펫을 먼저 불었다. 예순을 앞둔 어느 날, 지금 다시 잡지 않으면 영영 못 잡는다는 생각에 그는 스타디움 투어 중에도 매일 트럼펫을 연습하겠다고 결심했고, 그렇게 2년을 보낸 끝에 2026년 마침내 첫 솔로 재즈 앨범 [Honora]를 트럼펫 연주를 전면에 내세워 발표한다. 제프 파커, 애나 버터스 같은 LA 재즈 신의 동료들이 곁을 받치고, 톰 요크와 닉 케이브가 목소리를 보탠 이 앨범은, 록스타가 사십 년 만에 돌아간 자기 자리를 보여준다. 가장 유명한 얼굴이 가장 뜻밖의 악기를 드는, 오늘 지하에서 가장 놀라운 반전이다.


클럽 스테이지 21:00–22:00
Nu Genea 〈나폴리〉

밤 아홉 시, 지하에 지중해의 바람이 분다. 누 제네아는 나폴리에서 나고 자라 베를린에서 활동한 마시모 디 레나와 루치오 아퀼리나의 듀오다. 테크노에서 출발한 이들은 펠라 쿠티의 드러머 토니 알렌과의 협업을 거쳐, 1970~80년대 나폴리의 디스코와 부기, 재즈훵크를 통째로 발굴해 되살렸다. 벼룩시장에서 파낸 옛 나폴리 레코드들을 [Napoli Segreta]라는 컴필레이션으로 묶어낸 디거이기도 하니, 오늘 이 지하 무대의 정신과 정확히 같은 결의 사람들인 셈이다. 대표작 [Nuova Napoli]와 [Bar Mediterraneo]는 나폴리 방언으로 노래하며, 항구도시 특유의 문화 뒤섞임을 신스 위에 펼쳐 보인다. 밴드 이름의 ‘제네아’가 그리스어로 탄생을 뜻하는 만큼, 이들의 음악은 나폴리 만을 거쳐간 모든 사운드의 새로운 태어남이기도 하다. 비 내리는 한국의 밤에 나폴리 골목의 햇살과 빨래 널린 풍경을 데려오는, 오늘 밤 가장 따뜻한 그루브에 가깝다.


클럽 스테이지 22:00–23:00
Dego 〈런던〉

밤이 깊어가는 지하, 영국 언더그라운드의 산증인이 턴테이블 앞에 선다. 본명 데니스 맥팔레인, 자메이카계 런던 출신의 데고는 1989년 동료들과 함께 전설적인 레이블 리인포스드(Reinforced)를 세우고 포히어로(4hero)로 정글과 드럼앤베이스의 길을 열었다. 이후 웨스트 런던에서 ‘브로큰비트’라는 장르 자체를 빚어낸 인물이며, 질레스 피터슨의 레이블에서 나온 명반 [Two Pages]는 머큐리 프라이즈 후보에 오르며 영국 흑인 음악의 위대한 선언이 됐다.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메인 스테이지에 오른 아지무스를 리믹스한 4hero의 절반이 바로 이 데고다. 재즈와 소울, 일렉트로닉을 잘게 부순 그의 리듬은 한 시대를 통째로 흔들었다. 무대 위 거장과 무대 아래 디제이가, 끝내 이 한 사람의 손 안에서 한 줄로 묶이는 자리.


클럽 스테이지 23:00–00:00
Kerri Chandler 〈뉴저지〉

그리고 자정, 모든 것을 닫는 사람은 하우스 뮤직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뉴저지 이스트 오렌지 출신의 케리 챈들러는 재즈 가수 할아버지와 디제이 아버지를 둔 음악가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몰래 장비를 만지며 디제잉을 익히다 어느 날 들켜버렸는데, “그래,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줘봐”라는 아버지의 말에 실력을 증명하고는, 열세 살에 클럽의 고정 오프닝 디제이가 됐다. 그렇게 시작한 소년은 가스펠이 배어든 ‘뉴저지 사운드’의 본거지 잔지바 클럽을 거치며, 딥하우스라는 장르의 토대를 놓은 사람으로 자랐다. 밤을 통째로 책임지는 그의 올나이트 셋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설에 가깝다. 빗소리가 어느새 베이스 드럼으로 바뀌고 지하의 사람들이 같은 박자로 흔들릴 때, 긴 하루가 비로소 새벽으로 넘어간다. 비가 그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음악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About Author
최승인

음악을 듣고, 쓰고, 떠드는 일을 한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도 활동하며, 넋매거진을 운영 중이다. 힙합과 R&B부터 재즈, 인디, 팝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