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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브랜드는 왜 찻집을 열까?

패션 그리고 향 브랜드가 만든 티룸, 직접 가봤다
패션 그리고 향 브랜드가 만든 티룸, 직접 가봤다

2026. 06. 18

안녕, 커피보다 차를 선호하는 객원 에디터 길보경이다. 그렇다고 커피를 안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차를 더욱 일상적으로 즐길 뿐. 하루 한 잔의 커피가 기본값이라면, 차는 많게는 세 잔까지 마시니까. 그만큼 차에 진심이고, 친밀한 존재라 여긴다.

때때로 찻집을 검색하는 습관이 있다. 서울에서 조금 다른 하루를 보내고 싶거나, 낯선 도시로 향할 때 주로 찾곤 한다. 그러던 중 흥미로운 흐름이 눈에 띄었다. 잘 나가는 브랜드들이 하나둘 ‘티룸’을 연다는 것. 이제는 글로벌 체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누데이크 티 하우스를 필두로, 아더 에러의 팟리추얼, 퍼퓨머 H의 세계 최초 티룸까지. 패션과 향을 다루는 브랜드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차’를 테마로 한 공간을 만들고 있다. 소위 ‘느좋’ 브랜드들은 커피가 아닌 차를 택했을까. 내 나름대로 분석한 이유가 조금 길어서, 글의 말미에서 마저 풀겠다.

아무튼 궁금한 건 못 참는 편이라 최근 문을 연 두 공간에 다녀왔다. ‘퍼퓨머 에이치 도산 더 티룸’과 ‘팟 리추얼 신사’.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예약이 필요 없다는 것과 느리고 의식적인 행위를 자연스레 경험케 한다는 것. 도심 속 오아시스가 되어준 두 티룸 탐방기, 함께해 보시라. 


더 티룸

먼저, 퍼퓨머 에이치라는 브랜드가 생소한 이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하겠다. 런던에서 시작된 퍼퓨머 에이치는 자연의 세계를 후각적 풍경으로 구현하는 향수 브랜드다. 스코틀랜드와 요크셔에서 자라 프랑스 그라스의 명성 높은 향수 하우스 ‘로베르테’에서 수련한 린 해리스가 이끈다. ‘로즈 위드 인섹트’, ‘레인 우드’, ‘스팀’ 등 향수의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자연에 얽힌 감정과 기억을 맑고 정제된 감각으로 전한다. 

지난 3월, 전 세계 퍼퓨머 에이치 스토어 중 최초로 도산 ‘더 티룸’을 론칭했다. 이곳의 입지를 보면, 더없이 탁월한 행보라는 생각이 든다. 티룸 좀 다녀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차경(借景)’. 바깥 풍경을 끌어들여 공간의 일부로 쓰는 방식이다. 여기서는 그게 아주 탁월하게 구현된다. 바로 맞은편이 도산공원이니까. 설명이 더 필요 없다.

플래그십 스토어로 향하기 전, 오른편의 유리 온실처럼 꾸며진 별채가 먼저 시선을 끈다. 일종의 예고편 같은 공간일까. 그 옆을 지나 스토어 입구로 들어서면 1층 아름답고 검박한 분위기의 프래그런스 존이 있다. 티룸만 이용하고 싶다면 즉시 우측의 엘리베이터로 향할 것.

2층에 내리는 순간, 커다란 창 너머로 도산공원의 푸릇한 전망이 펼쳐진다. 여기선 물만 마셔도 괜히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옅은 테라코타 톤의 마감재, 따스한 질감의 나무 가구, 다구와 차통이 정갈하게 정리된 선반. ‘보이지 않는 것을 다뤄온 브랜드가 이제는 맛과 시간, 그리고 공간을 통해 또 하나의 감각을 조용히 펼쳐 보입니다.’라는 설명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이곳의 차 메뉴는 꽤 흥미롭다. 단순히 티 브랜드의 차를 셀렉한 수준에 머물지 않고, 모두 전문가와 협업한 자체 제작 상품이었다. 차의 종류는 네 가지. 오렌지 리프, 요크셔, 오렌지, 모로코. 마치 향수처럼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한 블렌딩 티다. 이중 시그니처 티인 오렌지 리프는 한국의 차 연구소 로해(@rohae.seoul)와 함께 만들었다. 우롱차에 오렌지 블라썸, 으깬 깻잎, 귀리 우유, 넛맥을 더한 조합. 나머지는 영국의 티 컬렉터 팀 도페이와 협업해 완성했다. 

티를 즐기는 방식은 두 가지다. 차 한 잔과 함께 달콤하고 가벼운 다과를 곁들이는 ‘일레븐시스(Elevenses)’와 여러 가지 차를 테이스팅한 뒤, 계절 다과와 함께 즐기는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디저트의 경우, 쿠키와 스콘, 마들렌 등 중 선택 가능하다. (일레븐시스를 이용할 시, 디저트는 천 원 할인 혜택이 있으니 참고할 것) 나의 선택은 오렌지 리프와 모로코 티 아이스, 그리고 마들렌과 모노그램 쿠키였다. 따듯하게 한 잔, 차갑게 한 잔 맛보고 싶어 직원분께 두 종류의 차를 추천받았다.

오렌지 리프가 향 좋은 율무차의 느낌이라면, 모로코는 청량한 민트 티에 가까웠다. 쉽게 맛볼 수 없는 특별하고도 아주 섬세한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렌지 리프티는 우롱차의 맑고 부드러운 바디 위로 허브와 플로럴 아로마가 은은하게 퍼진다. 끝에 가볍게 감도는 스파이스가 매력적이었다. 모로코 티는 훨씬 산뜻하고, 또렷하다. 흔히 아는 민트 티보다 훨씬 입체적이다. 프랑스 남부의 페퍼민트, 대만 우롱, 베르가모트 오일을 블렌딩했다고 한다. 단순히 화한 느낌이 아니라, 살짝 단맛이 돌면서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비주얼의 디저트는 차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작은 크기임에도 입안에 퍼지는 깊고 진한 달콤함이 예사롭지 않다 싶었는데, 역시 차차이테(@chachaithe)에서 만든 차 과자라고. 담백하고 단정한 형태의 백자 다구는 히어리(@herereceramics) 제품이다. 티와 디저트, 테이블웨어 모두 국내 창작자의 손길이 묻어 있어서 좋았다.

가격대는 조금 높은 편이다. 티 두 잔에 디저트까지 해서 약 4만 원대 중반. 그렇지만 차의 퀄리티나 공간적 측면에서 충분히 가치 있다고 느껴진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데려오고 싶을 만큼. 햇살이 내려앉은 날도 좋지만, 의외로 비 오는 날도 운치가 끝내줄 것 같다. 다음 방문이 기다려진다. 

info. 
주소 |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46길 55 2층
인스타그램 | @perfumerh_dosan 
메뉴/가격 | 오렌지 리프 1만 5,000원, 모로코 민트 티 1만 5,000원, 디저트 9,000원, 일레븐시스(올데이 디저트 1세트 추가) 변경 시 1,000원 할인


팟 리추얼

팟 리추얼은 서울에 두 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3월과 5월, 각각 신사와 성수에 문을 열었다. 그중 에디터가 찾은 곳은 팟 리추얼 신사. 이곳은 바쁘고 소란스러운 도심 한복판에서 잠시 숨을 고르게 만드는 공간이다. 신사역에서 가로수길로 접어드는 골목 초입. ‘이 번잡한 곳에 정말 힐링 공간이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잠시, 한 블록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결이 달라진다. 도심의 소음은 한층 멀어지고, 호젓한 분위기가 감돈다.

아더에러 신사 스페이스에 들어선 팟 리추얼은 아더에러 플래그십 스토어와 바로 인접해 있다. 동선상으로는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만, 공간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실험적인 무드가 강한 아더에러와 달리, 이곳은 ‘저자극의 미학’을 택한다. 색도 소리도 장식도 절제되어 있다. 대신 자연의 질감과 여백, 균형으로 공간을 채운다. 숨을 고르고, 흐트러진 감각을 정돈하고 싶게 만드는 편안하고 따스한 분위기다.

사실, 팟 리추얼은 상하이에서 먼저 선보인 바 있다. 상하이 지점과 마찬가지로 신사점 역시 내부 디자인팀에서 공간 디자인 및 가구를 맞춤 제작했다. 동양적 정서를 현대적으로 번역하는 방식 역시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미니멀한 스케일, 유기적인 형태와 소재로 만든 가구, 차분한 색감으로 통일한 직원들의 유니폼까지. 자극을 최소화한 인테리어가 차를 중심으로 한 리추얼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차의 종류는 꽤 다양하다. 녹차, 호지차, 말차, 호지 말차, 미숫가루 등 익숙한 이름이 중심을 이룬다. 그중 우전 녹차는 곡우 이전, 가장 이른 시기에 채엽한 어린 찻잎으로 완성한 프리미엄 티다. 맑고 투명한 수색 위로 은은한 단맛과 부드러운 질감, 그리고 섬세한 감칠맛을 지녔다. 호지차는 하동 지리산 자락에서 자란 차나무 줄기를 정성스럽게 볶아 완성한다. 고소한 견과의 뉘앙스와 담백한 풍미, 부드러운 질감이 조용히 이어지며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그중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메뉴는 단연 그린 세레모니다. 맑은 녹차를 베이스로 보리순과 돼지감자를 더한 블렌드 티다.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조합. 직원분께 여쭤보니, 모든 차는 연우제다와 함께 만든다고. 연우제다는 3대째 대를 이어 전통방식인 가마솥 덖음 방식을 고집하는 하동의 역사 깊은 다원이다.

디저트 라인업은 간결하다. 다섯 가지 씨드 파운드 케이크가 있다. 말차, 호지 말차, 미숫가루, 플레인, 카카오 등 차와 곡물을 원료로 구성했다. 부드러운 파운드 케이크인가 싶은데, 재료에 반전이 숨어 있었다. 찹쌀떡과 보니밤, 잣 등을 더해 쫄깃하면서도 달콤한 식감이 특징.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호불호 없이 좋아하는 구성이 아닐까 싶다.

차가 나오기 전, 공간을 천천히 한 바퀴 둘러봤다. 연우제다의 차와 국내 도예가의 다구가 진열되어 있는데, 모두 구매가 가능하다.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허무는 커다란 창이 퍽 인상적이다. 외부에는 식물과 가구를 여유롭게 배치한 점이 돋보였다. 과하지도, 그렇다고 비어 보이지도 않는 균형이 이곳의 인상을 완성한다. 

나는 그린 세레모니와 호지 말차 라떼, 그리고 씨드 파운드 케이크 말차 맛을 주문했다. 그린 세레모니는 설명만 보면 독특하지만 마셔보면 꽤 편안하고 친근하다. 녹차의 선명함 위에 곡물의 담백함이 얇게 겹쳐지면서 부담 없이 이어진다. 호지 말차 라떼는 조금 더 직관적이다. 고소하고 따뜻하다. 볶은 차 특유의 견과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끝은 부드럽게 정리된다. 디저트는 생각보다도 훨씬 맛있었다. 말차의 쌉쌀함과 찹쌀떡의 질감, 견과류가 차맛을 더욱 증폭시켰다. 차 두 잔과 말차 케이크 한 조합, 총 2만 8,000원. 일반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시켰을 때 나오는 금액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팟 리추얼은 캐주얼하게 차를 즐길 수 있으면서, 찰나의 여유를 즐기기 위한 곳으로 손색없다. 아더에러에서 쇼핑을 마친 뒤, 이곳으로 넘어와 차 한 잔을 곁들여도 좋겠다. 어찌 보면 음료 한 잔을 소비하는 것이지만, 쉼에 최적화된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의 힘은 그 이상일 테다. 이곳에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남은 하루를 한층 부드럽게 만들어줄 것이다.

info.
주소 |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11길 31 1층 
인스타그램 | @pod_ritual
메뉴/가격 | 녹차(세작) 1만 5,000원, 호지차 1만 4,000원, 그린 세레모니 1만 1,000원, 말차 1만 1,000원, 말차 라떼 1만 2,000원, 플레인 파운드 케이크 7,000원 (차 주문시, 디저트 일부 할인 적용)


그들이 티룸을 만드는 이유

브랜드가 ‘차’를 탐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해 봤다. 먼저, 커피보다 차가 서사를 입히고, 감각적인 경험을 이끌어내기에 훨씬 유리하다. 오감을 자극하는 음료이기 때문이다.

색과 향, 맛은 물론이고 차를 내리는 사람의 세레모니까지 감상의 대상이 된다. 찻잎이 물속에서 서서히 풀리며 색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바라보는 일 그 자체로 즐겁다. 또한, ‘향’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향수 브랜드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이 모든 과정에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찻잎을 고르고, 물의 온도를 맞추고, 찻물의 색과 맛을 살피고, 때로는 주변 사람과 나누는 일까지. 한 번, 두 번 우릴 때마다 풍성하게 변하는 차맛도 매력적이다. 차는 그저 마시는 데서 끝나지 않고, ‘행위’를 동반하는 음료이며, 그 과정은 꽤 능동적이다. 더 나아가, 테이블 웨어를 비롯해 다양한 차 도구로의 확장 역시 가능하다. 

또 하나, 차는 ‘휴식’과 ‘회복’의 이미지를 품고 있다. 몸에 좋다는 효능을 떠나, 차가 만들어내는 분위기 자체가 그렇다. 조용하고 느린, 회복의 시간. 요즘 말로 하면 ‘웰니스’에 가깝다. 따라서 브랜드 입장에서는 더없이 매력적인 소재일 것이다. 요즘 브랜드들이 차에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꽤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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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보경

걷고 뛰며 바라본 세상을 글로 풀어내는 매거진 에디터. 언제나 자유롭고 여유롭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