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객원 에디터 지정현이다. 작년, 제니가 신어 화제가 됐던 ‘파이브 핑거스’를 기억하는가? ‘최악의 패션’을 꼽을 때 단골로 등장하는 발가락 양말과 샌들의 조합을 떠올리게 하는 파이브 핑거스가 유행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더 많은 도파민이 필요한 사회라지만, 나의 미감 기준에서 파이브 핑거스는 숭할 정도로 로우한 디자인이었기에, 내심 ‘그것만은…’ 싶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법하다. “네 기준에 적당히 로우한 신발은 뭔데?” 그럼 나는 주저 없이 ‘타비’를 고를 것이다. 일본의 전통 복식에서 유래한 타비는 우리에게 익숙한 쪼리와 착용 방식이 비슷하다. 엄지를 따로 넣고, 나머지 발가락을 쏙 수납하면 그만이다. 발가락 양말에 가까운 파이브 핑거스와 비교하면, 타비는 그래도 신발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해되는 디자인이지 않은가.

물론 타비 역시 만만한 신발은 아니다. 발끝이 갈라진 모양새부터 눈에 띄지 않는가. 대충 신으면 ‘타비 신은 사람’으로 비출 정도로, 옷차림은 물론 당신의 개성마저 집어삼킬지 모른다. 그래서 타비는 생각보다 높은 패션력이 필요하다. 그에 준하는 경제력도(우선 나는 아니다). 그런데 또, 그 정도 수고를 감수하게 만드는 신발이 바로 타비다. 마르지엘라를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오래 살아남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올해, 타비를 신기 위해 당신의 스타일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마르지엘라를 비롯한 하이패션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타비가 조금씩 다른 디자인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 반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브랜드에서 타비 스타일의 슈즈 발매를 예고하고 있다. 과연 타비의 대중화는 가능할까. 타비의 역사부터 대표적인 제품, 눈여겨볼 만한 발매 소식까지, 4가지 질문과 함께 정리해 봤다.
[1]
타비가 도대체 뭔데?
다들 알다시피 일본 전통 신발인 조리(草履)와 게타(下駄)는 발가락 사이에 끈이 있다. 이 특수한 신발을 신기 위해 만들어진 양말이 바로 타비(足袋). 이전에도 발을 감싸는 ‘발싸개’ 형태의 물건은 있었지만, 엄지발가락만 따로 나뉜 타비는 신발의 구조에 맞춰 생겨난 복식인 셈. 이처럼 타비는 본래 ‘신발’이 아니라, 발 안쪽에 착용하는 ‘속옷’으로 분류됐다.

타비가 ‘신발’로 취급되기 시작한 건 바로 지카타비(地下足袋)다. 흔히 ‘닌자’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부츠 형태가 바로 이 지카타비인데, 정작 닌자들은 이 신발을 신은 적이 없다. 지카타비는 닌자의 시대가 아닌, 20세기 초에 등장한 근대적 작업화이기 때문(실제 닌자들은 타비 양말 위에 짚신이나 조리를 덧신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타비 슈즈는 현장에서 사용하는 작업화였다. 그렇다면 보다 일상적인 영역에서 신었던 건 언제부터일까.
이쯤에서 마르지엘라의 이름이 나와야 할 것 같지만, 신발로서의 타비는 오니츠카 타이거(Onitsuka Tiger)가 먼저다. 바로 1951년 열린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 다나카 시게키(Shigeki Tanaka)가 신은 러닝화. 지카타비처럼 타비의 형태에 고무 밑창과 갑피를 더한 러닝화로, 이후 상용화된 모델 ‘마라톤 타비’의 시초였다. 하지만, ‘타비’하면 ‘마라톤 타비’를 떠올리는 이가 적은 것처럼, 출시 당시엔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현대 패션에서 말하는 ‘타비 슈즈’의 이미지를 만든 건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의 타비 부츠다. 마르탱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가 타비 부츠를 처음 선보인 건 첫 컬렉션이 열린 1988년. 마르지엘라는 흰 타비 부츠의 밑창을 붉은 페인트에 담근 뒤, 모델들이 흰 런웨이를 걷게 했다. 생각해보라. 말발굽처럼 갈라진 부츠가 남긴 붉은 흔적을. 타비 부츠의 강렬한 인상을 뇌리에 새기기엔 차고 넘쳤을 것이다.
[2]
어떤 브랜드들이 타비 슈즈를 만들까?
마르지엘라
타비 슈즈를 사기 위해 핀터레스트에 ‘타비’를 검색해보면, 멋쟁이들이 한가득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중 80%는 마르지엘라의 타비 슈즈를 신고 있다고 해도 좋다. 오리지널 타비 부츠부터 로퍼, 플랫, 스니커즈, 발레리나 슈즈까지. 오랜 시간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 만큼 종류도 많다. 이 타비 슈즈만 모으는 마니아층도 적지 않은데, 자이언티도 그중 한 명. 그는 무대 위에서도 타비를 신을 만큼 마르지엘라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마르지엘라 타비 슈즈를 산다면, 첫 선택지로는 로퍼가 가장 무난할 것이다. 타비 부츠가 아이코닉한 아이템인 건 분명하지만, 범용성이 떨어지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굽이 있어 적지 않은 용기도 필요하고. 반면 타비 로퍼는 캐주얼하게 신기에도 좋고, 포멀한 차림에도 제법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유행을 크게 타지 않는다. 중요한 자리나, 옷으로 꿀리지 않아야 하는 약속이 있다면 마음 편히 고를 수 있지 않은가?
아식스
앞서 언급했듯, 타비형 신발은 오니츠카 타이거에 의해 시도된 적 있다. 마르지엘라의 타비 부츠보다 30여 년이나 앞선 시점인 1953년에 발매된 ‘마라톤 타비’가 바로 그 모델. 하지만 마라톤 타비는 일본 국내 스포츠 대회와 내국인 마라토너를 겨냥한 내수 전용 제품이었을뿐더러, 장기 레이스에 쓰기엔 마찰이 잦고, 물집이 생기는 등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이후, 오니츠카 타이거는 이를 개량한 모델’ 매직 러너’를 출시했는데, 이 신발은 타비 형태가 아닌 우리가 익히 아는 고전적인 러닝화의 모습이었다.
지금이야 러닝화가 패션화로도 받아들여지지만, 당시의 러닝화는 ‘달리기 위한 신발’이었다. 그런데 마라톤 타비를 신으려면 타비 양말을 따로 구비해야 했다. 기능적으로도 일반 러닝화보다 월등히 뛰어났다고 보기는 어려웠으니, 꽤 번거로운 신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지엘라 타비 부츠 이후, ‘타비 러닝화’라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복각과 협업을 거치며, 마라톤 타비는 오니츠카 타이거의 혁신적인 디자인을 상징하는 모델이 됐다.
나이키 에어리프트
나이키도 타비 슈즈를 만들고 있으니, 바로 1996년에 출시된 에어 리프트다. 오니츠카 타이거가 대중화하지 못한 ‘스플릿 토’ 구조를 보다 성공적으로 스니커즈에 접목한 사례라 볼 수 있다. 다만 나이키의 설명에 따르면, 에어 리프트는 일본의 타비에서 영감을 받은 모델은 아니다. 케냐 장거리 러너들의 맨발 주법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이름 역시 케냐의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에서 따왔다고.
‘맨발로 달리는 느낌을 신발 안에서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으니, 파이브 핑거스의 목적과 비슷할지도. 엄지를 따로 빼둔 덕분에 지면을 딛고 나아갈 때 발의 움직임도 조금 더 자유롭다. 실전 러닝화처럼 신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스트랩과 에어 쿠셔닝을 더해 착화감에도 꽤 신경을 쓴 모델. 여름에 신을 특이한 샌들이 필요한데, 그게 타비였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에어 리프트도 충분히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3]
왜 ‘타비 슈즈’를 만드는 거야?
이처럼 타비는 브랜드의 실험 정신과 아이디어가 모이는 신발이었다. 갈라진 앞코는 기능성이 되기도 하고, 브랜드의 철학을 보여주는 디테일이기도 했다. 미의 기준을 비튼 마르지엘라와 오니츠카와 나이키가 편한 신발을 고안했던 것처럼. 그래서 타비는 그저 독특한 신발이 아닌, 신는 사람의 취향과 태도를 드러내는 아이템이 됐다.
이런 이유로 타비는 코디하기 쉬운 신발이 아니다. 발끝이 갈라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특이하고, 대충 신었다간 신발만 동동 떠 보이기 쉽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이 까다로운 타비 슈즈가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점점 낮아지고, 얇아지고 있는 신발 트렌드와도 무관하지 않다.
한동안 스니커즈는 크고 두꺼웠다. 발렌시아가의 ‘어글리 슈즈’ 열풍 이후, 많은 스니커즈들이 청키하고 오버 디테일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어글리 슈즈의 기세가 한풀 꺾이면서, 요즘엔 다시 미니멀해지고 있다. 발등은 낮아지고 밑창은 얇아졌으며 발볼은 좁아졌다. 발레 플랫과 메리제인처럼 발에 납작하게 붙는 슈즈는 물론, 나이키 트레이너나 아디다스 도쿄 같은 날렵한 스니커즈가 ‘트렌드’로 떠올랐다.
디테일을 덜어낸 신발일수록 결국 실루엣과 쉐입으로 승부해야 하는 법. 그런 점에서 타비는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포인트를 줄 수 있는 디자인이다.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신발을 무심코 봤는데, 앞코가 말발굽처럼 갈라져 있다면 한 번쯤 다시 보게 되지 않겠는가. 납작하고 얇은 신발이 다시 주목받는 지금, 괴상한 앞코는 꽤 효과적인 셀링 포인트가 됐다. 그렇다면 올해 눈여겨볼 타비 슈즈에는 무엇이 있을까?
당신은 왜 타비를 신어요?
그럼, 멋쟁이들은 왜 타비를 신는 걸까? 주변 혹은 건너 아는 지인들 중 타비 슈즈를 신는 이들에게 물어봤다. 이들 모두 마르지엘라 타비를 애용한다.
*한 명이 가명을 요청해서, 모두 가명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
Juno. (40세, 자영업자)
“타비는 남성화인지, 여성화인지 딱 잘라 말하기 어렵잖아요. 그 애매함이 좋아요. 오묘~한 매력이 있죠. 자꾸 눈길이 가게 하는 오묘함.”
Sue. (29세, PR매니저)
“흰 티에 슬랙스만 입어도, 타비를 신고 있으면 신경 쓴 사람처럼 보이죠? 사실 그거 엄청 신경 쓴 거 맞아요.”
Ko. (31세, 디자이너)
솔직히 저도 이상하다 생각했거든요. 근데 들어봐요. 원래 우리 발가락은 갈라져 있잖아요. 타비를 신는 게 발모양이 자연스럽다니까요. 인체공학적이에요.”
Rio. (27세, 대학생)
“하나의 아이콘 같아요. ‘전위적’이고, ‘패션을 얼만큼 좋아하냐’를 보여줄 수도 있고. 자주 신지는 않는데, 오브제처럼 전시해 놓아도 예쁘죠.”
[4]
그렇다면, 지금 주목해야 할 타비 슈즈는?
2026 키코 코스타디노브 x 아식스
올해 스니커 신에서 주목할 타비 슈즈를 꼽는다면, 키코 코스타디노브(Kiko Kostadinov)와 아식스(ASICS)가 전개하는 타비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까지 공개된 모델은 총 두 가지. 1953년 오니츠카 타이거의 마라톤 타비를 재해석한 ILARGI FF와 슬립온으로 더 납작하게 디자인 된 LYASA FF 두 모델로, 모두 마라톤 타비의 앞코를 계승하면서, 키코 특유의 유틸리티를 스니커즈라는 플랫폼에 절묘히 녹여 냈다.
ILARGI FF 타비는 마라톤 타비의 러닝화 특성을 살려 입체적인 패턴과 최신 쿠셔닝이 들어가 착화감을 높였다. 두 번째 모델인 LYASA FF 타비는 신축성 있는 소재가 적용된 슬립온으로, 데일리하게 신을 수 있는 게 특징. 지금까지 발매된 타비 슈즈를 포함해 총 4개의 컬렉션을 발매할 예정이라고.
FDMTL x 반스 어센틱 타비
반스(Vans)는 변신의 귀재다. 담백한 디자인에 여러 가지 변주를 준 디자인을 많이 선보여 왔다. 이번 FDMTL과의 협업 컬렉션은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사례로 남을 듯하다. 어센틱의 앞코를 타비 스타일로 갈라버렸으니까. 2026 F/W 런웨이에서 FDMTL의 모델들이 신은 이 신발은 패션 커뮤니티에서 화제였다. ‘데일리 슈즈인 반스가 타비 스타일로 나온다면?’이라는 상상이 실제로 구현됐다.
FDMTL은 못 쓰게 된 천을 덧대어 꿰매는 일본의 전통 수선 방식인 보로와 자수 기법인 사시코를 적용한 데님 기반의 디자인이 특징인 브랜드다. 이번 패션 위크에 선보인 반스와의 협업 모델도, 타비 스타일에 블루 데님을 믹스하거나, 블루 미드솔을 배치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살렸다. 올해 하반기 발매 예정으로, 타비 슈즈의 대중화를 보여주는 가장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가 될 것.
뉴 암스테르담 서프 어소시에이션 x 수이코크 부츠 & 슬라이드
수이코크는 비브람과 협력 개발한 풋베드의 안락한 착용감과 다양한 디자이너 브랜드와의 협업한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번에는 암스테르담의 서프 브랜드 뉴 암스테르담 서프 어소시에이션(New Amsterdam Surf Association)과 손잡고 부츠와 슬라이드를 만들었다. 그중 눈에 띄는 건, 타비 스타일의 서프 부츠.
서프 부츠는 차가운 물 속에서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는 신발로, 잠수복에 쓰이는 네오프렌 소재로 만든다. 보드 위에서는 발의 감각을 살려야 하기에, 일부 서프 부츠는 앞코가 갈라진 형태를 띤다. 이는 일본의 작업화인 자카타비와 비슷하다. 두 신발의 공통점에서 착안해 ‘서퍼들이 신는 타비 부츠’를 고안해냈다는 게 재치있는 지점.
패션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타비’가 상징적인 위치에 있는 신발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마르지엘라라는 이름의 힘도 있다. 대개 발 모양을 감추는 형태로 제작되던 신발을 굳이 둘로 가르며 새로운 미의 영역을 개척한 디자인 하우스니까. 중요한 건 그 모양이 흉하든 아름답든, 마르지엘라의 것이든 다른 브랜드의 것이든, 타비가 이제 ‘유니크’와 ‘개성’을 아우르는 뾰족한 취향의 대명사가 됐다는 점이다.
동시에 타비는 여전히 ‘니치’한 아이템이다. 나는 타비 신발을 신고 지하철을 탈 자신이 없다. 아니, 애초에 타비와 어울리는 옷도 없다. 내 머릿속 타비는 오직 마르지엘라의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타비를 신는 이들을 내심 동경했다. 그들의 패션 센스와 옷가지들을!
하지만 스플릿 토 형태의 반스 어센틱이라면? 발끝이 갈라진 아식스 러닝화라면? 나도 한 번쯤은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저 신발은 뭐지?’ 하는 시선도 조금은 즐길 수 있지 않을지 상상해본다.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둘 타비를 신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렇다면 ‘타비’의 아이코닉함은 옅어지려나. 그건 또 싫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반스 타비는 갖고 싶다는 이중적인 마음이 든다. 여러 브랜드가 타비 버전 슈즈를 내놓는 지금, 타비의 대중화는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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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브랜드와 라이프스타일을 탐구하는 에디터.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마땅히 조명받아야 할 사람과 사물을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