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졸업을 눈앞에 둔 스물다섯 막학기 대학생 권서진이다. 디에디트의 첫 번째 대학생 에디터로 활동했고, 그 인연으로 인턴 에디터로 4개월 동안 일했다. 지금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중. 학업과 취준, 그리고 대학생 신분이 주는 자유로움 속에서 살고 있다.

4년 전, 파릇파릇한 새내기로 입학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지친 얼굴로 구석 자리를 먼저 찾는 화석이 되었다. ‘22학번’이 대문짝만하게 적힌 과잠은 이제 입기 머쓱하고, 공강 시간에는 맘 편히 쉴 곳을 찾아 학교를 비척비척 떠돌곤 한다.
이렇게 소개하니 고학번이 굉장히 안쓰러워 보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잔뜩 채워둔 학점 덕에 학교는 이틀만 가도 되고, 평일 낮 시간대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으며, 예전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을 듣는 것도 재밌으니까.
그렇게 별거 없는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나의 선배였던 에디터B가 막학기 대학생의 일주일에 대한 아티클을 써달라고 제안했다. 큰 이벤트 없이 슴슴하게 흘러가는 고학번의 하루가 과연 재밌을까 싶지만 날것 그대로의 일주일을 솔직하게 담았다.
‘월요일’에는 카공을

요즘은 시험기간이라 학교에 가지 않거나, 약속도 없는 날이면 주로 카페에서 공부를 한다. 요즘 자주 발도장을 찍는 아지트는 집 근처 투썸플레이스. 개인적으로 스타벅스보다 아메리카노가 맛있고, 좌석이 넓고 편안하다. 공부가 목적인 친구들과 수다가 목적인 친구들이 적당히 섞여 집중하기 딱 좋은 환경이 된다.

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벚꽃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나들이는커녕 시험 공부라니 억울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투정 부릴 시험기간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애틋해진다.

최근 요가를 다시 시작했다. 요가는 생각이 많고 속 시끄러운 나 같은 타입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운동이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 가벼운 명상 시간에는 머릿속이 딴 생각으로 가득하지만, 본격적인 수련이 시작되고 선생님을 따라 하나씩 동작을 만들다 보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잊어버리게 된다(나마스떼…). 요가가 주는 개운함과 짜릿함에 중독되어 일주일에 3번 꾸준히 출석하고 있다.
‘화요일’은 평일의 여유를 만끽

오늘도 요가로 하루를 시작한다(어제와 같은 사진 아님). 어제보다 난이도가 있는 수업이라 땀을 두 배로 흘렸다. 움직이지 않으려 애쓰지 말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의 감각을 느끼며 나만의 중심을 찾아보라는 선생님의 말이 요가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에 해당되는 말처럼 들려 괜히 울컥한다. 옆 사람과의 비교는 멈추고 나에게 가장 편안한 자세를 찾아보며 집중한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 외출했다. 약속 장소 근처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시험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크고 높은 통창에서 가득 들어오는 자연광과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흥미로운 서적들이 가득해서 마음에 들었다. 작업공간은 크진 않지만 쾌적했고, 이 모든 걸 서울에서 무료로 누릴 수 있다는 점에 감격했다. 작업하기 좋은 스팟을 찾고 있다면 추천! 고즈넉한 부암동과도 가까워 함께 둘러보기 좋은 코스이다.
- 서울 종로구 평창문화로 101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 화-일 10:00 – 20:00(월요일 휴무, 주말은 19:00까지 운영)
‘수요일’은 학교 가는 날

이번 학기에는 5개의 수업을 듣는다. 공강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수업을 이틀에 몽땅 몰아넣었더니 학교에 가는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꼼짝없이 갇혀있게 되었다. 수요일은 9시 수업이 있는 날이라 경기도민인 나는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7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쉽지 않은 통학생의 삶. 오늘은 간단한 퀴즈를 보는 날이라 내용 정리한 것을 들고 중얼중얼 외우며 등교한다.

아차차, 하마터면 셋로그를 까먹을 뻔 했다. 요즘 친구들과 재밌게 하고 있는 ‘셋로그’는 한 시간 간격으로 1초 분량의 영상을 찍으며 일상을 공유하는 앱이다. 벌써 출근해 모닝 커피를 마시는 직장인 친구와 등교하며 공부하는 대학생인 나. 매일 연락하지 않아도 서로의 근황을 알 수 있어서 좋은 요즘의 소소한 재미 콘텐츠다. iOS에서만 다운 받을 수 있다가 최근에는 구글 플레이스토어에도 출시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 간단한 아침을 먹는다. 오늘의 메뉴는 아몬드 브리즈에 유행 중인 창억떡. 코스트코에서 산 제품인데 본점에서 먹었던 맛과 큰 차이가 없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 흘리며 바나나를 먹던 검정고무신 기영이가 된다.

점심 먹고 커피 한 잔 들고 도착한 곳은 바로 운동장. 과방이나 학회실에 가기엔 눈치가 보여 갈 곳 잃은 고학번들의 안식처다. 따사로운 햇빛 아래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학우들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가방을 베개로 삼고 누우면 안방이 따로 없다. 덥지 않고 선선한 3월부터 4월 초까지만 즐길 수 있는 이 계절의 특권이다. 노곤노곤해지는 기분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목요일’은 학교에서 9 to 6

추적추적 비가 오는 목요일. 오늘도 오전 수업이 있는 날이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김에 학교 카페에서 바닐라 라떼를 사며 여유를 즐겨본다. 강의실에 도착해 곧장 나의 애착 자리, 1분단 벽 끝 구석으로 향한다. 구석 자리를 찾는 건 고학번의 본능이다.

점심으로 학교 분식집에서 파는 김밥을 먹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돈가스 김밥이 품절이라 아쉽지만 스팸김치김밥도 나쁘지 않다. 같이 먹을 카구리를 샀는데 면이 뻑뻑하고 양념이 잘 배어있지 않아 맛이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방금 전 사용했던 정수기에 고장 표시가 붙어 있는 거 아닌가. 이럴 수가. 어쩐지 뜨거운 물이 아니라 미적지근한 물이었다. 기분 탓으로 넘겼는데, 진짜 고장이 난 정수기였다니! 갑자기 맛없다고 욕한 카구리에게 미안해진다.

비도 오고 길이 막히기 전에 빨리 집에 가라는 교수님의 은혜에 15분이나 일찍 수업이 끝났다. (땡스 투 교수님.) 있는 힘껏 전력질주하면 사람이 별로 없는 오이도행 4호선 열차를 탈 수 있다. 운 좋게 맨 끝자리를 얻어내 편하게 자며 집까지 도착했다. 보통은 지하철에서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는데 요즘은 너무 피곤해서 자리에만 앉으면 까무룩 잠에 들곤 한다.
금공강의 특권, ‘금요일’

금공강의 특권을 만끽하러 평일 오후, 성수동으로 향했다. 무비랜드는 구작 영화를 큐레이션해 상영하는 작은 영화관이다. 구석구석 디테일이 많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었다.

오늘 볼 영화는 <델마와 루이스>. 궁금했던 영화인데 무비랜드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티켓을 예매했다. 2층 라운지에서 같은 영화 동아리 친구를 운명처럼 마주쳤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상영관으로 입장했다. 주황빛이 가득한 아늑한 공간, 특히나 의자가 넓고 부드러워서 편안했다.

영화 역시 시원하고 재미있었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근사하게 남기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만, 굳이 글로 기록하지 않아도 영화가 마음속에 남는 기분을 좋아한다. 문득 어떤 장면이 불쑥 떠오르면 나를 구성하는 일부가 된 것만 같다. 어쩌면 영원히 날고 있을 두 주인공의 엔딩 장면은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
- 서울 성동구 연무장길 5-5 무비랜드
- 목-일 13:30 – 21:00(월-수 휴무)
미뤄둔 업보 청산, ‘토요일’

오픽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활활 타오르다 못해 아주 잿더미만 남았다… 이제는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며 월요일에도 방문했던 투썸플레이스로 향했다. 주말이라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연습해도 내 목소리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픽 응시료는 왜 이리 비싼 걸까? 한국어로도 바로 답하기 어려운 문장들을 영어로 자연스럽게 내뱉으려니 아주 죽을 맛이다.

스트레스를 풀어줄 오늘의 메뉴는 왕뚜껑 라볶이. 최근에 SNS에서 화제였던 레시피를 보고 궁금해서 구매했다. 액상스프만 넣고 렌지에 3분 돌린 다음, 치즈와 분말스프를 넣고 2분을 더 돌린다. 마지막 킥인 참기름까지 추가해 주면, 꾸덕하고 맛있는 김밥천국 스타일의 라볶이가 탄생한다! 삶은 계란과 소시지를 꼭 곁들이라는 친구의 말이 생각나서 추가해 보았지만 내 입맛엔 소시지 없이 계란만 있어도 되겠다. 간만에 눈이 번쩍 뜨이는 라면이었다.
동숲 주민을 만난 ‘일요일’

집 밖에서 공부하면 집중이 더 잘 되긴 하지만, 매일 카페로 출석하기엔 내 지갑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렇기에 오늘은 집에서 없는 집중력까지 싹싹 끌어모아 본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을 때는 산책을 한다. 다음 주에 비 예보가 있어 봄꽃이 떨어지기 전에 봄을 더 즐기고 싶어 근처 산책로로 떠났다.

오늘의 산책 메이트는 포카리스웨트와 초코칩 쿠키. 나는 먹고 싶은 음식이 신내림 받듯 떠오르는 편은 아닌데,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초코칩 쿠키가 먹고 싶어졌다. 먹다 보면 입이 텁텁해지고 마실 것을 찾게 되는 그 퍽퍽함이 매력이다.

벤치에 앉아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등장했다. 마치 원래 알던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걸며 내 옆자리에 앉으셨다. 마치 동물의 숲 세계관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말동무를 해드렸고, 잠깐 동안 단짝친구가 된 할머니와 초코칩 쿠키도 나눠 먹었다. 다행히 입에 맞으셨는지 꽤 많은 쿠키를 드신 할머니는 고맙다며 목캔디를 주고 가셨다. 괜히 웃기고 귀여웠던 에피소드.

막학기가 되니 최근 들어 자주 싱숭생숭해져 일기장을 펴는 일이 잦아졌다. 매일 쓰진 않지만 마음이 불안하면 일기장에 더 의존하게 된다. 샤워를 마치고 바디로션을 듬뿍 바른 뒤 잠옷을 입고 책상 앞에 앉으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그리고는 두서없이 적는다. 누가 볼 것도 아니니 문장이 뚝뚝 끊기거나 글이 터프하게 느껴져도 상관없다.
빨간색 몰스킨 다이어리 맨 앞에는 직접 그린 말 스티커를 붙였다. 말의 해를 맞아 말띠인 내가 힘찬 기운을 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적처럼 두었다. 파릇파릇했던 새내기가 어느새 마음이 복잡해진 화석이 되어버렸지만, 이 씩씩한 말이 마지막 학기도, 졸업도 무사히 데려다줄 거라 믿어본다.
일기나 블로그에 간간히 일상을 남기곤 하지만, 이렇게 세세하게 기록을 남겨보는 건 처음이다. 일주일을 돌아보며 아티클을 쓰다 보니 막학기 라이프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화석의 삶은 비슷하고 단조롭다며 활기찼던 새내기로 돌아가고 싶다는 푸념만 늘어놨던 것 같은데, 누구보다 고학번을 즐기고 있었다. 4학년이 주는 여유와 너무 가볍지만은 않은 적당한 무게감, 자유롭게 조립해서 쓰는 시간들이 좋다. 어쩌면 내가 앞으로 가장 그리워할 대학시절일지도 모른다. 이번 주는 또 뭐 하지? 갑자기 또 신이 난다. 아 고학번 너무 좋다.
About Author
권서진
2002년생 재미주의자 에디터. 재미는 나의 원동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