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LIFE

가위 수집가의 가위 큐레이션 5

마음이 힘들 땐 가위질을 합니다
마음이 힘들 땐 가위질을 합니다

2026. 04. 23

안녕, 가위를 좋아하는 객원 에디터 김고운이다. 교복을 입던 시절부터 문구를 좋아했다. 당시 유행하던 하이테크를 사러 옆 동네 문구점까지 가고, 펜텔 스메쉬 샤프가 가지고 싶어서 친구에게 웃돈을 주고 사기도 했다. 요즘은 가위를 좋아한다. 내가 가위를 좋아한다는 건 아내가 말해줘서 알게 됐다. 손으로 뜯어도 되는 택배 봉투를 꼭 가위로 자른다고 했다. 그뿐 아니었다. 택배 봉투에 붙은 송장을 가위로 자르는 일에 집착한다고도 했다. 나는 집착이라는 단어에 기분이 약간 상해서 분리배출하려고 위해서 자르는 것이라고 항변하려 했지만, 라면이나 봉지 과자도 가위로 자르는 내 모습이 생각나 수긍하고야 말았다. 

생각해보니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법인카드 영수증을 이면지에 붙여 결재 올리는 시간을 무척 좋아한다. 영수증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가위로 서걱서걱 자르고, 풀을 발라 이면지에 붙이다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루틴에는 도구가 중요한 법. 이때 쓰는 가위도 따로 있다. 누군가 이 가위를 빌려서 박스 테이프를 자르거나 해서 날이 더러워지면 반드시 닦았다. “어디에 쓰시게요?”라고 빌려주기 전에 물어보기도 겸연쩍었다. 가위 하나 가지고 깐깐하게 구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 아닌가. 애초에 ‘아끼는 가위’가 있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하는 눈치기도 했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가위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생각하는 가위의 매력은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 무엇인가를 자르는 상황이 아니라면 가위는 필요하지 않다. 예쁘지만 불편한 옷은 입을 수 있어도, 예쁘지만 잘 들지 않는 가위는 당최 쓸모가 없다. 태생적으로 미니멀한 도구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기능에 집중한 디자인의 가위를 특히 좋아한다. 오늘은 좋아하는 마음을 따라 하나씩 구매한 가위들을 소개하려 한다. 수집 목적으로 일부러 구매한 것이 아니라서 컬렉션이라고 하기엔 민망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하나같이 소중한 가위들이다. 


[1]
평화 M-601S 가위

피스코리아

내가 사무실에서 영수증을 자를 때 사용하는 가위는 피스코리아의 601S. 내가 이 가위를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위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 가위는 지렛대 원리로 작동한다. 지렛대 원리에 따라 회전축을 기준으로 손잡이가 길고 클수록 두 날에 강하게 힘이 실린다. 또 가위의 양날은 미세하게 어긋나서 서로 한 점에서 만난다. 만약 두 날이 완벽하게 평행하다면 아무것도 자를 수 없을 것이다. 두 날이 교차하면서 회전축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만나게 되고, 바로 그 지점에서 바로 절삭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두 날 사이에 유격이 생기면 힘점이 강하게 형성 되지 않는다. 아무리 날이 움직인들 제대로 잘리지 않는다. 자르려는 물체가 잘리지 않고 가위 날에 끼게 된다. 피스코리아의 601S는 나사로 두 날을 고정한다. 일반적인 가위처럼 리벳으로 되어 있지 않아 유격이 생겼을 때 드라이버로 조일 수 있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짱짱해진다. 나사를 너무 세게 조이면 뻑뻑해서 손아귀가 아플 수 있으니 주의하자. 가격은 3,500원 정도이고, 대형 문구점이나 온라인에서 어렵지 않게 구매 가능하다. 모델명에 ‘S’가 없는 M-601은 일반 리벳 버전이니 제품명이 ‘601S’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2]
일본 마트 가위
(?)

여행에서 은근히 필요한 물건이 가위다. 매번 필요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할 때 없다. 몇 년 전 일본 여행에서 가방을 샀다. 너무 예쁜 나머지 다음날부터 바로 매고 싶었다. 그런데 큼지막하게 걸린 택이 도저히 뜯어지지 않았다. ‘이 가방 새로 산 거예요’라고 떠벌리며 다닐 수는 없는 일. 플라스틱 끈을 끊어보겠다고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손바닥엔 빨간 줄이 새겨졌다. 결국 숙소 앞 마트에서 가위를 샀다. 급했지만 그 와중에도 마음에 드는 가위를 골랐다. 흰색 플라스틱 손잡이는 큰 데 비해 날은 짧고 두꺼운 가위였다. 너무 올바르게 생긴 가위는 재미없다. 이제까지 너무 오래 봐오지 않았던가. 이렇게 대칭이 맞지 않는 가위가 아름답다. 

이 비대칭은 기능적으로도 이유가 있다. 날에 비해 손잡이가 크면 가위의 힘이 좋다. 구매한 날 저녁 야키토리 꼬치를 자를 때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잘 사용하고 있다. 까딱이는 가구 다리를 받칠 박스를 자를 때나, 케이블 타이를 끊을 때에도 이 가위를 사용했다. 험하게 쓴 덕에 검정 코팅이 벗겨지고, 날의 이도 조금 나갔지만 아직까지는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다. 브랜드를 확인할 길이 없어 매우 아쉽다. 포장지도 구매하자마자 버린 데다 가위에도 이름이 적혀있지 않다. 나중에 일본 마트에서 우람한 손잡이의 이 가위를 발견한다면 무척 반갑겠다.


[3]
무인양품 가위

무인양품

한때 다꾸를 열심히 했다. 패션처럼 다꾸 세계에도 유행하는 캐릭터나 아이템이 있다. 당시에는 인쇄소 스티커가 유행했다. 칼선이 나 있지 않아 가위로 잘라서 사용하는 스티커를 인쇄소 스티커라고 한다. 줄여서 인스라고도 부른다. 광화문 교보문고 핫트랙스 스티커 코너를 점령한 학생들 사이에서 양손에 캐릭터가 인쇄된 인스를 들고 신중히 고르곤 했다. 귀여운 인스는 아무래도 귀여운 가위로 잘라야 했다. 그러던 중 무인양품 가위가 눈에 들어왔다.

무인양품 가위는 손잡이와 날의 비율로만 보자면 일반적인 가위의 형태다. 하지만 손바닥 정도로 작은 크기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뭐든 그렇지만 문구는 작을수록 특히 귀엽다. 인스(인쇄 스티커)를 자르기엔 절삭력도 부족함이 없다. 작아서 오히려 더 섬세하게 자를 수 있다. 무인양품은 눈썹 가위부터 주방가위, 심지어 미용 가위까지 판매할 정도로 가위에 일가견이 있다. 스티커와 함께 가방 속에 들어가는 가위라는 것을 고려해 캡을 씌워 날이 벌어지지 않게 디자인됐다. 무인양품의 섬세한 배려가 느껴진다. 다꾸나 문구 인플루언서의 책상에서 아직까지 심심치 않게 보이는 스테디셀러. 가격은 2,500원. 구매는 여기에서.


[4]
펜코 스테인리스 가위

펜코

펜코는 오래된 미국 문구를 캐주얼하게 해석하여 제품을 만드는 일본의 문구 브랜드다. 펜코의 스테인리스 가위를 보면 펜코가 지향하는 이미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무로 코팅된 손잡이에 날은 반짝반짝 광이 난다. 미국 시골 동네의 바버샵에서 사용하는 큼지막한 가위가 연상된다. 하지만 펜코의 이 가위는 무인양품 가위와 일반 사무용 가위의 중간 정도 크기. 빈티지한 작은 가위라는 발상이 재미있지 않나. 기능적인 디자인으로만 구성된 미니멀한 가위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빈티지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에겐 이야기가 다르다. 게다가 케이스에 담겨 있었으니 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좋은 가위는 허공에 가위질을 해보면 알 수 있다. 헐겁지 않고 종이를 자르는 듯 묵직한 촉감이 느껴져야 한다. 펜코 스테인리스 가위는 두 날이 기름을 바른 듯 부드러우면서 무게감 있게 미끄러진다. 그래서 몇 번 손을 오므리다 보니 종이를 오리고 싶어졌다. 허공을 자를 때의 촉감과 서걱서걱 종이를 오리는 촉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쉽게 잘린다는 것. 펜코는 국내에서도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어 쉽게 구매 가능하다. 펜코 스테인리스 가위, 혹은 펜코 빈티지 가위라고 검색해보자. 가격은 만 원 중반대.


[5]
PLUS 165TR

플러스

얼마 전 다녀온 도쿄 여행에서도 가위를 구매했다. 발걸음을 붙잡는 귀여운 문구로 가득한 긴자 이토야에서 나는 두 가지 아이템을 구매했다. 미도리의 무지 공책과 PLUS의 165TR이라는 가위였다. 미도리 무지 공책은 국내 문구점에서도 많이 본 공책이라 고민했지만, 이 가위는 보자마자 구매를 결심했다. 서로 다른 두 날의 형상이 독특하면서 우아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가위질할 때 검지와 중지를 손잡이에 끼고, 검지는 손잡이의 바깥에 두어 가위가 흔들리지 않게 고정한다. 165TR은 타원형의 손잡이 모양을 손 모양에 맞게 기울인 트위스트 링 구조가 적용됐다. 그래서 형성된 가위의 유려한 곡선은 가위질 피로를 줄이고 미적으로도 탁월하다.

촉감이 좋은 가위는 소리도 다르다. 가위질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크게 두 가지다. 날이 교차하면서 나는 소리와 손잡이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 좋은 가위는 이 두 소리가 매끄럽게 연결된다. 품질이 좋지 않은 플라스틱 손잡이의 경우 손잡이가 맞닿을 때 날과 플라스틱 사이 틈에서 크고 날카로운 딱딱 소리가 난다. PLUS의 165TR은 손잡이 안쪽에만 고무로 처리가 되어 있다. 손잡이와 날의 재질이 스테인리스로 동일하니 소리가 자연스러울 수밖에. 한국에 돌아와서 포장을 뜯고 가위질을 했을 때 얼마나 짜릿하던지. 나는 PLUS라는 브랜드를 잘 몰랐지만 PLUS 165TR이라 검색하면 국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만 원 중반대. 일본 현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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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운

패션 관련 글을 씁니다. 헛바람이 단단히 들었습니다. 누가 좀 말려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