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1월마다 올해 기대작 리스트를 들고 오는 영화평론가 김철홍이다. 돌이켜 보면 2025년은 혼돈의 해였다. 모두의 관심이 쏠렸던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 생각만큼의 호응을 받지 못했으며, 대신 <귀멸의 칼날>, <체인소맨>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깜짝 흥행했다. 기다리던 영화가 기대에 못 미칠 때 늘 가슴이 쓰리긴 하지만,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본 영화가 나의 뇌를 흔들어놓을 때 더 짜릿한 것도 맞다. 올해는 과연 어떤 혼란으로 기억될지, 벌써 설렌다.
<휴민트>
부지런한 창작자가 좋다. 결과물까지 뒷받침된다면 더 좋다. 한국 영화계에 이제 정말로 그런 휴먼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류승완 감독이 신작 <휴민트>로 돌아온다. 2021년 <모가디슈>, 2022년 <밀수>, 2024년 <베테랑2>까지 이 힘든 시기에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 그다. 휴민트는 휴먼+인텔리전스의 합성어로, 인간 정보원이나 비밀 첩보원 정도의 뉘앙스를 품고 있는 제목이다. 장르와 로케이션의 유사성을 들어 감독의 전작인 <베를린>과의 연결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대세 배우인 박정민을 포함하여 조인성, 박해준, 신세경 등 캐스팅도 기대가 된다. 물론 한발 떨어져서 보면 전형적인 한국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구도와 “선수 입장!”과 같은 익숙한 대사들이 우리를 코웃음치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보고 싶다. 엄청나게 새로운 영화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부지런한 창작자는 분명, 다시 또 흥미로운 소식과 함께 나타날 것이다. 관객과 극장이 남아 있다면 말이다.
개봉일: 2월 11일
감독: 류승완
출연: 조인성, 박정민, 박해준, 신세경
<피키 블라인더스: 불멸의 남자>
넷플릭스의 근본 히트작이자 마성의 배우 킬리언 머피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시리즈 <피키 블라인더스>가 영화로 만들어진다. <피키 블라인더스>는 2013년 첫 시즌이 공개된 영국 드라마로,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영국 땅에서 ‘피키 블라인더스’라는 범죄 조직을 이끄는 쉘비 가문을 위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줄거리도 흥미진진하지만 무엇보다 호평받은 것은 작품의 스타일이다. 감각적인 연출과 더불어 등장인물들의 머리 스타일과 아웃핏 등이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했다. 올해 새로 공개되는 영화는 시즌 6의 마지막과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한다. 다른 무엇보다 <오펜하이머>로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배우의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좋다.
개봉일: 3월 20일
감독: 톰 하퍼
출연: 킬리언 머피, 레베카 페르구손, 배리 키오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이 영화의 속편이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좋은 의미에서 다음 이야기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패션 업계의 민낯과 종사자들의 고충을 다루는 균형감이 좋았다. 판타지스러움과 현실성의 비율이 적절했다. 어쩌면 20년 전이었기에 적당히 수긍하면서 즐길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지금 봐도 불편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일까? 물론 스크린에 영원히 다시 소환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앤 헤서웨이가 연기한 앤드리아와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미란다의 티격태격이 그립다. 심지어 이번에 그들이 대립할 무대도 예사롭지 않다. 아날로그 패션 잡지가 이제 더 이상 예전만큼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아이콘이 된 두 여성의 멋진 선의의 경쟁이 기대된다.
개봉일: 4월
감독: 데이비드 프랭클
출연: 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에밀리 블런트, 스탠리 투치
<군체>
제일 부지런한 또 한 명의 창작자 연상호 감독의 신작은 좀비 영화다. 작품 수가 많은 만큼 그 작품 간 호불호의 편차가 심한 감독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연상호의 인간 이야기를 좋아하고, 또 누군가는 연상호가 연출하는 판타지 장르를 선호한다. 나 같은 경우는 그의 좀비 영화를 좋아한다. 좀비 세계관에선 인간들이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막 나가도 납득된달까. 연상호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구교환 배우가 연기한 <군체>의 빌런을 두고 이렇게 소개한 바 있다. “영화사에 남을 만한 빌런이 될 거라고 자부한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일 많이 하는 사람의 말이라 신뢰가 생긴다.
개봉일: 5월
감독: 연상호
출연: 전지현, 구교환, 지창욱, 신현빈, 김신록, 고수
<디스클로저 데이>
‘영화의 신’이라는 타이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거장 스티브 스필버그가 4년 만에 돌아온다. 자서전 격인 <파벨만스>를 완성시킨 후련함 때문일까. 이번 영화는 감독 자신보다는 관객을 위한, 영화와 극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르다. 예고편을 보면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프렌들리한 방문보다는 침략 쪽으로 진행되어야 보는 재미가 있겠지만, 사실 스필버그는 어느 쪽이어도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낼 것이다. <미지와의 조우>, <E.T.> 등 SF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만들었던 그다. 그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외계인을 소환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개봉일: 6월 10일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에밀리 블런트, 조쉬 오코너, 콜린 퍼스
<호프>

10년 전 사진 올리기가 유행이던데 그걸 나홍진이 하면 <곡성>이다. <곡성> 이후 10년 동안의 공백 후 나홍진의 신작이 드디어 실체를 드러낼 예정이다. 오래 걸리는 편이지만 나왔다 하면 전국 시네필들을 흥분시키는 감독이다. 강산이 바뀐 만큼 이번엔 세계적으로 간다. 알리시아 비칸데르, 마이클 패스빈더 등 할리우드 대배우들의 캐스팅이 눈에 띈다. 황정민과 조인성, 정호연의 조합도 신선하다. <호프> 역시 외계인을 소재로 한 영화다. 고립된 항구 마을에서 펼쳐진다. 아주 지독하고 험한 영화가 나올 것 같다. 2026년은 <호프>의 해로 기억될 수도 있다.
개봉일: 7월
감독: 나홍진
출연: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알리시아 비칸데르, 마이클 패스빈더
<오디세이>
2026년은 무슨 해일까. 아이맥스 대장군 크리스토퍼 놀란이 <오디세이>로 귀환한다. 이번엔 정말로 모든 장면을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하였다고 한다. 이 형식에 가장 어울리는 배경이 그리스 신화일 것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대지를 떠올려보라. 그 위에서 CG가 아닌 진짜 인간 육체의 액션이 펼쳐진다니. 주요 줄거리는 긴 전쟁을 마친 병사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고국에 돌아가는 고된 여정이라고 한다. 그들은 운동 많이 되고 스트레스 받겠지만, 놀란 관장님의 코칭과 함께라면 멋진 결과물이 나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개봉일: 7월 15일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맷 데이먼, 톰 홀랜드, 앤 해서웨이, 로버트 패틴슨, 젠데이야
<가능한 사랑>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이 전 세계 영화제를 휩쓸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던 근 몇 년 간, 거기에 이창동의 자리는 없었다. ‘봉박 대전(봉준호냐 박찬욱이냐 / <기생충>이냐 <헤어질 결심>이냐)‘이 영화 이야기하는 자리의 단골 질문으로 굳어진 것도 최근의 일이다. 이창동이 곧 한국 영화였던 시절이 있다. 혹은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8년 만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전도연, 설경구 등 최고로 믿음직한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것도 의미 있지만, 결국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이창동이라는 이름이다. 아직 영화와 관련 많은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사랑하는 게 가능할 것만 같다.
개봉일: 4분기
감독: 이창동
출연: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디거>
<버드맨>, <레버넌트> 등으로 국내 영화팬들에게 자신의 외우기 어려운 이름을 각인시킨 이냐리투 감독의 신작이다.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았지만 예고편엔 그의 얼굴보다 삽이 먼저 나오며, ‘대재앙급 코미디’라는 자막이 적혀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유명한 톰 크루즈의 찐한 삽질 코미디를 볼 수 있는 것이 기대된다. 최근 몇 년 동안 <탑건>과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연달아 찍으며 심한 몸 고생을 했을 그다. 이번엔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편히 놀아 주셨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배우다.
개봉일: 9월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출연: 톰 크루즈, 산드라 휠러, 제시 플레먼스
<룩 백>
2024년 소규모로 개봉하여 깜짝 흥행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룩 백>이 실사화된다. 57분이라는 짧은 상영 시간을 가진 작품이었지만, 그 어떤 긴 영화보다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애니메이션이다. 실사 영화 연출을 맡은 감독은 무려 고레에다 히로카즈. 좋은 프로젝트와 그에 걸맞은 감독이 잘 만났다는 사실에 많은 영화팬들이 안도의 반응을 보였다. <룩 백>은 만화 작가가 꿈인 두 학생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최근작 <괴물>을 본 사람이라면, 그가 두 어린 존재들의 관계를 그리는 것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잘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으뜸 창작자가 표현한 창작자(만화 작가)의 이야기라는 점도 또 하나의 기대 포인트다. 촬영은 아키타현의 니카호시라는 작은 해안 도시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개봉일: 미정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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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홍
제25회 씨네21 영화평론상에서 최우수상 수상. 영화 글과 평론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