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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렇게 섹시하게 입고 어디 가? 그래놀라 코어

올겨울 핫하게 떠오른 그래놀라 코어
올겨울 핫하게 떠오른 그래놀라 코어

2025. 11. 20

안녕? 드디어 날이 추워졌다. 즐겨 입던 플리스를 주섬주섬 꺼내게 되어 기쁜 객원 에디터 조서형이다. 때마침 어디서 그래놀라코어가 나타났다. 그 시작은 한 틱톡 영상으로 알려진다. 

헐렁헐렁한 플리스 상의에 레깅스를 입은 여자가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My boyfriend just asked me where I was going looking so sexy 남친이 방금 그렇게 섹시하게 입고 어디 가냐 물어봄’이라는 자막이 뜬다. 이 밈으로 캐나다와 미국 북부 알래스카에서는 포근한 아웃도어 활동가 바이브의 ‘그래놀라 걸’, ‘그래놀라 가이’들이 인기라는 사실을 전 세계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스타일은 금세 모두의 공감을 얻어 유행하고 있다.


그래놀라코어는 무엇인가

@holliemercedes

자연친화적이고 편안하며 지속가능한 아웃도어 무드를 지향하는 패션이다. 근 10년 간 유행해 온 고프코어와 맞닿아 있다. 고프코어가 야외 활동하는 사람들이 즐겨먹는 간식 그래놀라(G), 오트밀(O), 건포도(Raisin), 땅콩(Peanut)의 약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난 이번에 알았다) 그래놀라는 그 맨 앞자리를 담당하고 있다. 이 스타일은 ‘그래놀라를 먹을 것 같은’ 건강하고 자유로운 사람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반면 고기능성, 무채색, 차가운 고프코어와 확실히 다른 점도 있다. 투박한 실루엣, 물려 입은 듯 빈티지한 분위기와 따뜻한 색감까지. 패스트 패션의 반대를 상상하면 거기에 그래놀라가 있다.

@jaylungo
@jaylungo

무엇보다 그래놀라코어의 핵심은 도시의 삶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이킹, 달리기, 자전거, 야영, 클라이밍, 스키, 배낭 여행과 로드 트립 등 야외 활동을 즐기며 자연과 가까운 삶을 담아 내는 게 포인트다. 

그래놀라 걸과 그래놀라 가이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일에 딱딱하고 까칠게 군다. 대신 그들은 비건 식단에 도전하고 쓰레기 퇴비화, 제로 웨이스트, 텃밭 가꾸기, 냉난방 줄이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1970년대 히피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그래놀라는 SNS 시대에 맞춰 비주얼 친화적이라는 점. 그냥 아웃도어 활동가 룩이 아니라 매우 신경써서 꾸민 버전의 스타일링을 선보인다. 이들은 트렌드에 관심을 기울이고 심지어 잘 알고 있다. 그저 따라하기 싫을 뿐이다.


그래놀라코어 핵심 아이템

@albertvicente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플리스다. 부드럽고 풍성한 질감에 보온성을 갖췄다. 플란넬 셔츠도 좋다. 도톰한 재질에 오버사이즈를 선택해 아우터 겸 레이어드로 활용한다. 체크 패턴 덕에 때가 타도 눈에 띄지 않고, 낡을수록 빈티지한 맛이 더해진다. 당장이라도 나무를 패러 갈 것 같다. 또는 방금 패온 장작으로 불을 지펴 그 앞에 앉아 있거나. 그 외에도 두꺼운 울 스웨터, 기능성 바람막이나 쉘, 초어 재킷, 추운 날엔 프리마로프트 아우터를 덧입는 식이다. 컬러는 카키, 브라운, 베이지, 올리브 등 지구의 것과 가까운 것을 택한다. 

하의는 데님, 코듀로이 등 짙은 계열의 내구성 좋은 바지가 어울린다. 이때 실루엣은 역시 살짝 넉넉하게, 주머니는 많을 수록 좋다. 와이드핏 카고 팬츠나 클라이밍 브랜드, 워크웨어의 오버올 아이템을 둘러보자. 신발은 튼튼한 블런드스톤이나 버켄스탁, 여름에는 차코를 신는다. 해외에서는 샌들 자국을 남기고 태운 발등을 ‘Chaco tan’이라 부른다. 근사한 여름을 보냈다는 증거다. 

@jaylungo

액세서리류는 비니가 중요하다. 손으로 뜬 것처럼 울퉁불퉁하고 따뜻한 색감일수록 좋다. 마음에 드는 실버 액세서리를 몇 개 착용하고 경량 백팩을 등에 멘다. 카라비너로 작은 아이템을 주렁주렁 달면 더 귀엽다. 아웃도어용 선글라스를 끼고 손에는 날진이나 스탠리의 물병을 들어 마무리한다. 사진의 배경은 산이나 바다, 강이나 숲, 들판으로 한다.

@iamverycozy

마음가짐도 빼 먹을 수 없다.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그것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 기본이다. 버섯, 고양이와 강아지, 곤충, 나무, 야생동물과 야생화를 사랑하는 다정함이 필요하다. 패션 아이템을 선택할 때는 물론 SNS에 사진을 업로드할 때도 이를 고려한다. 스무 개의 슬라이드 사진 사이에 자연 풍경을 너댓 개 끼워넣는 식이다. 명품 브랜드 로고, 얇고 섬세한 옷,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유명한 팝업 스토어 앞에서 찍는 OOTD와는 아무튼 반대 선상에 있다.


그래놀라 코어 입문 아이템 5가지

[1]
프린트 플리스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 신칠라가 대표적이다. 1985년에 첫 출시해 매 시즌 다른 패턴을 선보이는 이 아이템은 내구성까지 좋아 빈티지로도 많이 찾아 입는다. 파타고니아의 WornWear 사이트에서 마음에 드는 중고 제품을 골라보자. 이번 시즌 아이템으로는 클래식 레트로-X 재킷라이트웨이트 신칠라 스냅-티 풀오버를 추천한다. 입고 또 입다가 닳아지면 파타고니아 퀄리티랩에서 수선해 입을 수 있다. 

컬럼비아

파타고니아 코리아 마케팅팀 이정은 차장이 스타일링 팁을 남겼다 “많이 입어서 핏이 자연스러운 데님 진에 플리스를 입어 보세요. 여기에 어그 부츠를 더하면 자연스러운 그래놀라 무드가 됩니다.” 컬럼비아 코리아의 익명의 담당자 ‘동동이 아빠’ 역시 그래놀라코어의 핵심으로 플리스 풀오버를 꼽았다. “객관적인 소비자 입장에서도 컬럼비아의 헬베시아 프린티드 풀오버는 살만 합니다. 누빔 바지에 뮬 형태의 신발, 또는 스트레이트 진에 로우컷 트레일 러닝화와 플리스 모자로 스타일링하면 좋겠네요.”

[2]
알록달록 비니

랩
스투시

검정과 네이비 볼캡에 익숙한 한국 사람이라도 그래놀라코어에 색깔 비니는 놓칠 수 없다. 작은 방울이 달렸거나 도톰한 짜임이 특히 잘 어울린다. 헤어밴드나 반다나, 스카프도 활용하기 좋다.

[3]
하이킹 슈즈

머렐

클라이밍 브랜드 그라미치와 머렐의 하이킹 신발 모압 2가 협업해 만든 신발. 산과 도시에서 모두 신을 수 있다. 접지력과 내구성이 좋아 대체로 모든 아웃도어 활동을 소화할 수 있고 무엇보다 예쁘다. 방수되는 신발 중에는 가장 발이 편한 호주 브랜드 블런드스톤도 추천한다. 데님, 오버올, 파라슈트 팬츠, 레깅스 등 무엇과도 잘 어울린다. 니트 양말에 앞 코가 동그란 버켄스탁을 신는 것도 좋다.

[4]
인디안 실버 주얼리

네이티브선

팔찌와 반지, 귀걸이는 많을수록 좋다. 금이나 다이아몬드, 진주나 명품 시계보다는 실버 주얼리와 비즈 아이템이 잘 어울린다. 네이티브선의 아이템을 추천한다. 해마, 뱀, 구름을 헤치고 나온 태양 등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모양들이 그래놀라코어에 딱이다. 

[5]
날진

날진

날진은 오래 전부터 아웃도어 활동가들이 애용해 온 물병이다. 병째 물을 얼려도 되고,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을 부어도 된다. 입구가 커서 세척이 쉽고 용량과 컬러, 디자인도 다양하다. 추운 밤 텐트 안에서 밤을 보내야 할 때는, 날진에 뜨거운 물을 담아 침낭 안에 두면 핫팩처럼 사용할 수도 있다. 북미의 그래놀라 걸은 방문한 국립공원 스티커를 날진에 붙여 그 감성을 자랑한다. 보온과 보냉 기능이 필요하다면 스탠리나 클린켄틴, 하이드로플라스크도 좋은 대안이다. 


한국에서 그래놀라 걸이 되는 방법

오늘날 도시에 사는 내가 그래놀라 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알래스카에 살지 않고 카약이나 스키 같은 활동을 즐길 여력이 없는데? 눈 덮인 자연을 찾아 비행기 티켓을 끊을 필요는 없다. 

❶ 서울숲, 한강, 북촌 정도의 자연이나 뒷산, 동네 공원만으로 좋다. 심지어 아파트 단지 내 황토 맨발 걷기 산책로도 충분하다.

❷ 엄마한테 물려 입었다거나, 중고 매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낡은 아우터는 그래놀라 걸에게 진짜 멋이다.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이 핵심인 이들에게 중고 쇼핑은 물건을 사는 최고의 방법이다. 장비는 세심하게 관리하고 잘 수선해서 오래 쓰고, 새 물건을 산다면 환경 의식을 가진 브랜드의 것을 선택한다.

❸ 파운데이션을 꼼꼼하게 발라 잡티 하나 없는 뽀얀 피부 대신 볕에 그을린 피부를 그대로 노출한다. 뺨과 콧잔등을 살짝 붉게 연출한 다음 주근깨를 찍어보는 것도 좋다.

❹ 성수동의 아웃도어 편집숍 ‘더 기어샵’의 이태윤 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유행이 고기능성의 장비와 의류를 앞세운 고프코어와 다른 점은 사람들이 그래놀라 걸의 자연친화적인 느낌과 라이프스타일에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보여지는 것에서 생활 자체의 동경으로 옮겨간 것이죠.”

기후위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연의 소중함과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쏟아지는 팝업, 디지털 광고, 숏폼 밖의 자연 환경이 아름답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 유행은 건강, 마음챙김, 자기돌봄, 웰니스 같은 요즘 키워드와도 맞물린다. 그래놀라코어는 트렌디한 패션을 넘어 시대의 감성이다. 이 감성을 이해한다면 그래놀라 걸이 되는 것이다.

❺ 그래놀라코어의 진짜 핵심 아이템은 겉이 아닌 속에 있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친절할 것.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와 내 주변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자연을 찾아 떠나고, 스크린타임은 줄여나가는 데 그 멋이 있다. 우리 현재를 살고, 내 정신과 몸을 돌보고, 활동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며, 몸에 좋은 음식을 잘 먹고, 친절하자.

About Author
조서형

GQ 코리아 디지털팀 에디터. 산과 바다에 텐트를 치고 자면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