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이브, 날 궁금해해요

이브(Yves)를 보며 생각한다. 그룹을 벗어난 솔로 아이돌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이브(Yves)를 보며 생각한다. 그룹을 벗어난 솔로 아이돌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2025. 09. 30

“제가 Yves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해 줬으면 좋겠어요”

안녕, 대중음악평론가 김윤하다. 케이팝 지겹지 않냐는 이야기를 들은 지도 어언 십수 년. 그렇게 볼멘소리를 하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곳에 케이팝은 여전히 보란 듯 살아 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라는 위기 상황은 번번이 새로운 바람과 흐름 속에 케이팝을 흔들리게 했다. 그리고 매번, 마치 기적처럼 항해를 계속 이어가게 해줄 지원군이 등장했다. 하나 같이 달랐고, 하나 같이 예측할 수 없었다. 

이브(Yves)라는 가수가 있다. 그룹 이달의소녀로 활동하던 시절, 그는 춤과 노래 모두에 능한 건 물론 무려 12명의 멤버를 이끄는 리더로서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다. 그룹 활동에 쉼표가 찍힌 뒤, 이브(Yves)는 지금까지 솔로를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게 놀라울 만큼 앞만 보며 달리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번 마음을 정하면 오직 앞만 보는 사람.

파익스 퍼 밀(PAIX PER MIL)에서 솔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그를 사로 잡은 단어는 ‘미래’다. 이브(Yves)를 중심으로 개성 넘치는 프로듀서가 모여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한 그 미래 속에서 ‘얼터너티브 케이팝’이라는 호칭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케이팝 음반상’ 후보라는 성과가 따랐다. 이브(Yves)를 보며 생각한다. 그룹을 벗어난 솔로 아이돌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동시에 케이팝을 벗어나지 않은 케이팝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디에디트 스튜디오에서 가수 이브를 만났다.


솔로로 활동을 시작한지도 벌써 1년 반이 넘었어요. 질문 많이 받았겠지만, 솔로는 확실히 그룹하고 다르죠?

너무너무 달라요. 무대를 쓰는 범위, 필요한 체력과 에너지 전부 다요. 무대로 예를 들면, 12명으로 활동할 때는 곡이 끝나면 마실 물 늦게 찾는 친구가 자연스럽게 멘트 하고 나머지는 좀 쉬고 했거든요. 지금은 곡이 끝나는 순간 무대에 오로지 저만 남아요. 노래도, 얘기도, 물 마시는 것도요. 저만 보고 있는 이 분들을 매 순간 재미있게 해드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요. 저 선배님들 무대에서 어떻게 물 드시는지도 다 따로 찾아봤잖아요.

매 순간이 새롭겠네요. 어렵진 않아요?

재미있어요. 원래 그룹에서도 리더여서 각종 난관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자주 고민했거든요. 다행히 생각하고 고민하는 걸 즐기는 편이에요.

이브 하면 확실히 ‘12명의 소녀를 이끄는 리더’라는 이미지가 강했죠. 퍼포먼스가 강한 팀이라 메인 댄서라는 포지션도 눈에 띄었고요. 그래서 오히려 솔로가 쉽게 상상되지 않았어요. 그룹 내 존재감이 크다 보니까, 개인에 대한 물음표가 미처 생길 틈이 없었던 거죠.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는 이애기를 듣고 그래서 더 놀라기도, 반갑기도 했어요. 

저도 그룹 때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전혀 솔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단 한 번도요. 그룹으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어떤 이미지로 가는 게 좋을지 그런 고민만 했어요. 솔로는 저에게는 너무 먼 일이었어요. 적어도 10년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단 한 번도 없다니 놀랍네요. 그럼 어떤 계기로 솔로로 독립하겠다는 생각이 든걸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저를 둘러싼 상황이 갑자기 크게 바뀌었잖아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는데 문득, 정말 갑자기 솔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제가 뭐 하나에 꽂히면 멈출 수가 없는 타입이거든요. ‘솔로, 해볼까?’, ‘내가 솔로를 하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하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요. 이 서툴고 부족한 나를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같이 만들어 나갈 파트너를 꼭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당시에 회사 미팅도 정말 많이 하고, 주위 분들에게 조언도 수없이 구했어요.

새 회사 찾는 게 정말 쉽지 않죠. 

정말요. 정말 다양한 회사를 만났어요. 미팅이 이어지면서 답답했던 게, 과거 수치만 얘기하는 곳이 많았어요. 저는 서로 부족한 걸 맞춰 가면서 미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계속 과거만 얘기하는 거에요. 그룹 때 앨범 판매량 수치를 가지고 와서 ‘솔로는 어렵다. 무조건 그룹을 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일본이 잘되니까 일본부터 가야 된다’는 곳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의욕은 가득한데 현실에서 마주치는 말들이 전부 그렇다 보니까 솔로로 하겠다고 한 결정이 너무 성급했나 싶기도 하고 솔직히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자책도 하게 되고요.

그러다 운명처럼 지금 레이블인 ‘파익스 퍼 밀’을 만나게 됐죠.

미팅 전에 당시 대표였던 밀릭(millic)님께 제가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먼저 전달드렸어요. 그걸 들어보고 연락을 주신 거라 더 기뻤던 것 같아요. 설레는 마음으로 갔는데 별 얘기를 안 하시는 거예요. 혹시 만들어놓은 노래가 있냐고 하셔서 마침 써뒀던 곡을 들려드렸는데 1분 정도 듣더니 ‘좋은데요’ 하고 끝. (웃음) 한 30분 만났나. ‘다음 미팅 때 봅시다’ 하시길래 ‘혹시 나만 설렜나’ 했거든요. 약간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며칠 지나고 부산 집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더 보기’ 카톡 메시지가 왔어요. ‘다른 회사는 과거를 보지만 저는 이브 님과 함께 미래를 보고 싶다’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가진 밝음도 좋지만, 그만큼 숨어 있는 우울한 느낌도 좋다면서 ‘그런 것들이 음악과 결합했을 때 어떤 시너지가 날지 궁금하다’고 하셨거든요. 머리가 띵 울리는 것 같았어요. 드디어 찾았구나, 나도 잘 모르는 내 모습을 같이 조각 모음해줄 회사를! 집에 내려가자마자 엄마한테 ‘나 여기 계약하고 싶어’라고 했어요.

전 참 신기한 게, 지금까지 이브와 파익스 퍼 밀이 만들어 온 것들이 방금 얘기하신 카톡 메시지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예요. 저도 이브 님 앨범을 들으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게 ‘미래’였거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케이팝의 미래’요. 요즘 케이팝이 너무 안전지향적이잖아요. 사업 규모도 커지고, 그만큼 리스크도 커지니까 아무래도 몸을 사리게 되죠. 그렇게 심심한 와중에 이브 님과 파익스 퍼 밀이 ‘우린 그런 건 모르겠고, 다음으로 간다’ 같은 작업들을 계속 내줘서 정말 반갑고 좋았어요.

작업하는 과정 자체가 이전과 완전히 달랐어요. 아이돌 시스템 안에 있을 때는 제가 신경 써야 할 부분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이 확실했거든요. 회사에 새로 들어오고 나서도 한동안 어느 이상 의견을 내면 예의가 없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일종의 습관이었죠. 그게 작업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너무 이상한 거예요. 얘가 할 말이 없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말을 다 안 해. 그래서 초기에 한 번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어요. 대표님이랑 A&R 분들까지 한 마음이 돼서 ‘나중에 후회 안 남게 하고 싶은 거, 싫은 거 다 얘기해라. 우리는 네 의견을 다 받아줄 준비가 돼있다’고 엄청 설득을 하셨어요. 저도 그렇게 계속 세뇌 수준으로 얘기를 들으니까 어느 순간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어요. 더 찾아보고, 더 공부하고, 더 자신감 있게 의견을 나누게 됐죠. 

그렇게 높은 자유도를 얻은 뒤에도 음악 쪽에는 아직 섣불리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어요.

사실 ‘LOOP’로 데뷔할 당시에는 파익스 퍼 밀에 완전히 맡기기로 했어요. 아직 저 스스로도 제 캐릭터나 제 음악에 대해 완전한 확신을 가진 게 아니었거든요. 남이 보는 게 더 정확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활동 이후로 욕심이 생겨서 열심히 배우고는 있어요. 다만 지금 급하게 크레딧에 이름 올려서 ‘아티스트’라고 불리고 싶다는 욕심은 없어요. 차근차근 활동하면서 내 음악도 스펙트럼도 자연스럽게 넓히고 공부하다가 때가 되면 참여하자. 그런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음악에 진짜 진심인가 봐요. 

맞아요. 사실 곡 써놓은 것도 꽤 있거든요. ‘앞으로 음악 길게 할 건데’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어요. 제 곡 싣고 싶은 욕심보다 앨범 전체적인 색깔과 통일성이 더 중요해요.

그렇게 천천히 성장하는 와중에 세 번째 앨범 [Soft Error]가 세상에 나왔어요. 

제 안에 쌓아왔던 것들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보여드리는 앨범 같아요. 앨범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일정이 넉넉하지는 않았거든요. 작업실 출퇴근 하면서 같이 작업하는 IOAH(아이오아)랑 얘기하다가 재미있는 키워드가 떠오르면 앨범 작업 잠깐 제쳐두고 그 자리에서 바로 멜로디 써서 새로운 곡 만들다가 다시 곡 작업으로 돌아가는 일이 잦았어요. 덕분에 음악 만드는 과정을 다 즐기게 됐어요. IOAH랑은 동갑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도 비슷해서 음악 얘기 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를 모르거든요. 스포티파이에서 공유 플레이리스트도 만들었어요. 리스트 보다가 ‘너 요즘 이런 장르 좋아하는 거 같은데 이거 어때?’하면서 새로운 곡 들려줄 때 정말 신나요.

《Soft Error에서 새롭게 만나는 이름도 있어요. 특히 작사에는 0JAE(영재)님이 눈에 띄던데요. 전 작사 작업도 궁금하더라고요. 특히 솔로 활동 시작한 이후에는 이전보다 훨씬 내밀하고 섬세한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잖아요. 이브의 솔로를 그래서 좋아하는 분도 적지 않고요.

기본적으로 작곡이나 작사 작업 방식이 크게 다르진 않아요. 앨범 들어가기 전 작업에 참여하는 분들과 제 요즘 생각이나 좋아하는 장르,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같은 것들을 충분히 시간을 두고 이야기 나누려고 해요. 가사도 똑같아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눠요. 그 내용을 바탕으로 가이드가 만들어지면 전 제가 추가하고 싶은 내용이나 바뀌었으면 하는 것들에 대해 또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요. 곡도 가사도 그렇게 탄생해요.

이번 앨범에서 그렇게 이브 님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가사가 있을까요?

‘Soap’는 원래 영어 가사 비중이 굉장히 컸어요. 그런데 한국어 가사도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팀과 함께 논의한 끝에 지금의 버전으로 바뀌게 됐습니다. 반대로 ‘White Cat’은 내부에서 한국어를 넣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제 생각도 더해져 최종적으로는 지금의 버전 그대로 가기로 했어요. 첫 가사가 ‘Can’t reach me yet / Another type, babe’인데 한국어로 바꾸면 ‘Can’t reach me yet / 난 좀 다른 타입, babe’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바꾸고 나니 오히려 가사에 집중이 확 쏠리는 느낌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 곡은 분위기와 스타일 자체가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곡을 들으면 곡에 대한 이미지가 확실히 떠오르는 타입인가 봐요. ‘Soap’를 타이틀 곡으로 상당히 밀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요. 

회사에서 처음 타이틀로 ‘Soap’와 ‘White Cat’을 들려주셨어요. 더블 타이틀이었지만, 선공개곡을 어떤 곡으로 할지 한참 고민했죠. 그러던 중 마이애미 베이스 위에 레베카 블랙(Rebecca Black) 샘플이 얹히는 순간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안무도 재미있게 잘 나왔고요. 보통 노래만 들으면 힙한 동작이 많을 거라 예상하기 쉬운데, 이번에는 재즈댄스나 현대무용의 요소들을 활용한 동작이 많이 들어가서 훨씬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본 공개곡으로는 ‘Soap’이 더 잘 어울린다고 의견을 냈었고, 지금도 그 선택이 마음에 들어요.

음악을 듣고 여러 가지를 상상하면서 디렉팅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완전 좋아해요. 제가 이달의소녀 활동 떼 ‘퀸덤’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갔거든요. 라운드마다 새로운 무대를 준비해야 했는데, 매번 멤버들이랑 상의한 뒤에 PPT 만들어서 대표님이랑 따로 면담했어요. 그 때부터 디렉팅하는 게 좋아진 거 같아요. 전 기본적으로 특정한 이미지가 바로 연상되지 않는 곡을 좋아해요. 곡을 계속 파고 들어서 색다르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게 재미있어요. 

수록곡 얘기도 좀 더 해보고 싶어요. 앨범 발매 쇼케이스에서 ‘Aibo’에 애착이 있다고 했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ibo’는 귀여운 강아지 얘기면서도 일방적인 사랑으로 인해 느끼게 되는 배신감이나 쓸쓸함을 담은 노래거든요. 그런 언밸런스를 신나는 록 사운드에 녹여낸 게 재미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보컬도 마음에 들어요. 제가 노래를 좀 예쁘게 부르려고 하는 편이거든요. 발음이랑 톤을 정돈해서 노래를 ‘만드는’ 습관이 있는데, 이 곡은 그런 습관을 다 버리고 노래방에서 술 마시고 노는 것처럼 불러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전 술 마셔도 노래를 또박또박 부르는 사람이거든요. (웃음) 도저히 느낌이 안 나서 새벽까지 목을 짜내면서 녹음했어요. 덕분에 제 보컬의 벽을 좀 깬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애착이 가나 봐요.

‘자유롭게 해봐’라는 요청이 은근히 어렵죠.

자유롭고 싶어요. 전 자유로워야 행복한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지난 수 년 간 몸 담아온 시스템이라는 틀이 저의 어딘가를 무의식 중에 막아 서요. 지금 그걸 하나씩 깨 나가는 중 같아요. ‘너 그 선 넘어도 돼’, ‘그렇게 해도 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 단계씩 더 자유로워져요. 디렉팅에 집중하는 것도 그래요. 그땐 몰랐지만, 욕심은 전부터 되게 많았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활동에서 소화해야 하는 가이드라인이 뚜렷하다 보니까 그런 상황에서 저도 모르게 억눌려 있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정말 제가 하고 싶으면 다 하거든요. 의상을 비롯해서 비주얼도 좋아하는 컬렉션에서 이미지 모아서 무드 보드 만들고 이 노래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대본을 막 짜요. 그렇게 완성한 자료로 비주얼 디렉터 님과 상의하면서 실현가능한 형태로 합의점을 찾아가며 작업하고 있어요.

크레딧에 이름만 안 올라가 있지 앨범과 관련한 곳곳에 이브 님의 흔적이 있네요. 뭔가 이제 자유를 찾아서 힘든 줄도 모르고 막 달려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사실 제가 요즘 이브 님의 작업을 보면서 자주 하는 말이 ‘얼터너티브 케이팝’이거든요. ‘넥스트’나 ‘안티’가 아닌 ‘얼터너티브’라는 단어를 택한 건, 이브 님이 하는 음악이 케이팝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시작점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고요. 

듣다 보니 갑자기 하나 기억난 게 있어요. 첫 앨범에서 ‘LOOP’ 만들 때, 제 목소리를 기계적으로 톤 업 했거든요. 팝에서야 자주 쓰지만 케이팝에서는 잘 안 쓰는 방식이잖아요. 처음엔 ‘이렇게 열심히 녹음했는데 목소리를 바꾼다고? 아까워!’하는 마음이었는데, 다음 앨범에서 ‘Viola’로 레벨을 하나 더 올려서 아예 파괴적인 느낌의 글리치로 갔어요. 만들고 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세 번째 EP에 와서는 아예 제 보컬이 따로 없고 목소리를 악기로 쓴 ‘Study’라는 곡까지 수록하게 됐는데요, 앨범을 듣고 보니 왜 이 트랙이 있어야 하는 지 납득이 갔어요. 그렇게 조금씩 한계를 없애고, 레벨과 자유도를 높여가고 있는 게 지금의 저 같아요.

마침 ‘Study’ 얘기가 나왔네요. 《Soft Error 발표 후에 이 곡에 대한 반응이 적지 않더라고요. ‘이브가 없는데 이게 어떻게 이브의 곡이냐’는 반응도 있고요.

저도 그 글 봤어요. (웃음) 보고 나서 제가 엄청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거든요. 결론적으로 저는 이런 시도도 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계속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어서 뻔하지 않은 선택을 이어온 와중에 드디어 저와 IOAH가 아슬아슬한 경계선 앞에 선 거죠. 보컬로 채워진 곡은 아니지만, 제 목소리를 악기처럼 사용해서 만든 재미있는 놀이 같은 곡이에요. 생각보다 제가 상당히 많이 녹아 있는 곡이기도 하고요. 이 곡을 통해서 앞으로 이브라는 이름 아래 제가 어디까지 갈 지 사람들이 궁금해 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보컬을 뺀다고? 그럼 넌 뭘 보여줄 건데?’하고요.

선을 넘고, 틀을 깨고 싶어하는 의지가 보통이 아니네요. 혹시, ‘아이돌’이나 ‘아티스트’라는 말 같은 거, 의식하나요.

사실 지금까지 인터뷰하면서 그런 질문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아이돌 이미지를 지우고 싶은 거냐’, ‘이제 아티스트를 하고 싶은 거냐’하고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런 질문이 좀 유치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돌도 아티스트잖아요. 전 케이팝으로 음악을 시작했고, 제가 케이팝을 안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전 오히려 케이팝의 스펙트럼을 넓혀 나가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제가 이브 님에게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을 마침 해주시네요. (웃음) 댓글은 많이 찾아보는 편인가요.

찾아보는 편이에요. 추천순은 대부분 좋은 내용이지만 최신순으로 들어가면 안 좋은 내용이 많거든요. 가끔 캡쳐해 놨다가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써요. ‘나를 왜 이렇게 싫어할까? 좋아하게 만들고 싶다’하면서요. 저도 사람인데 당연히 상처 받지만, 그래도 마냥 상처받기보다 그걸 계기로 독기를 품는 타입 같아요.

자 그럼 이쯤에서 조금 가벼운 질문으로 가볼게요. 저희가 지금 이야기 나누고 있는 ‘디에디트’가 ‘취향’을 중심으로 다루는 매거진이거든요. 이브 님의 소소한 취향이 궁금합니다. 사실 오늘 오시기 전에 원하시는 차 종류를 여쭤봤는데 커피가 없더라고요. 카페인 안 드세요?

잘 안 받는 몸이에요. 졸리거나 생기가 필요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마시긴 해요. 생존용이죠. 차는 마음 고생이 많았던 시기 마음 수련을 위해서 찾다가 좋아졌어요. 우연히 다도 세트를 구매했는데,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어요. 차 종류가 정말 많더라고요. 집에 차가 이만큼 쌓여 있어요. 특히 홍차 중에 커다랗고 동그랗게 뭉쳐진 게 있어요. 쿠팡에서도 쉽게 파는 건데, 그거 정말 맛있거든요. 아 이거 제품을 직접 링크해서 알려드릴 수도 없고.

마음은 고맙게 받을게요. (웃음) 꽃이나 디저트 종류도 좋아하시는 게 있나 물어봤는데 꽃은 장미랑 물망초, 디저트는 에그타르트, 초코케이크, 크림치즈케이크를 얘기했어요. 

저 꽃 좋아해요. 꽃은 한 송이일 때 제일 매력 있는 것 같요. 축하할 일이 있을 때 한 송이씩 사서 편지랑 주는 거 엄청 좋아해요. 제가 집에 식물이 많거든요. 화분 말고 꽃 꽂아두는 것도 좋아해서 주말에 괜히 기분 울적해지면 언니랑 같이 나가서 한아름 사와요. 식물이나 꽃이 주는 에너지가 있어요. 

동물보다 식물을 좋아하는 편이세요?

원래 동물을 정말 좋아했는데 오래 키우던 강아지를 한 번 보내고 나니까 생명이 주는 무게가 너무 무겁고 어렵더라고요. 본가에서 키운 강아지였는데, 엄마가 일하러 나가실 때마다 매일 데리고 출근하셨거든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치매가 왔는데도 츨근 시간을 몸으로 기억하더라고요. 엄마가 출근하려고 하면 마비가 와서 못 움직이는 데도 외출 가방에 넣어 달라고 애쓰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나마 요즘 타협해서 키우는 게 금붕어거든요. 그런데 금붕어도 요즘 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 큰일이에요. 금붕어도 사람 다 알아보는 거 아세요? 제가 문 열고 집에 들어오면 바로 제 쪽으로 와요. 집에 가면 금붕어 생사부터 확인해요.

혼자 있을 땐 주로 뭐해요?

자요. 잠을 진짜 좋아해요. 스케줄 없는 날에는 15, 6시간도 자요. 눈만 감으면 영원히 잘 수 있어요. 한창 잘 때는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자서 언니가 살았나 죽었나 확인한 적도 있었어요. 

영화 취향은 어때요?

일본 작품 좋아해요. 일본 영화 특유의 약간 어두운 느낌이랑, 분명 해피 엔딩 같은데 행복하지만은 않은 묘한 여운 같은 게 좋더라고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같은 영화 있잖아요. 악취미지만 보고 나서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더라고요.

덕질 해본 적 있어요?

저 원더걸스 선배님 정말 좋아했어요. 선예 선배님이 최애였거든요. 처음 노래를 따라 불러본 게 선예 선배님이었어요. 목소리가 너무 예쁘신 거에요. 양산에 살던 시골 소녀라 콘서트는 못 가봤지만, 앨범을 사거나 음악 방송 보는 것처럼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새 앨범도 나오고, 아시아&호주 투어도 무사히 마쳤어요. 하반기도 바쁘게 보낼 텐데요, 그렇게 바쁠 이브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너를 잃지 마.’ 요즘 제가 너무 작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기분 탓이라는 걸 알면서도, 순간 스치는 관객이나 팬 분들의 작은 표정이나 지나가는 말 하나에 민감해지더라고요. 솔로 활동하면서 제가 전부 컨트롤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해지다 보니까 생긴 버릇 같아요. 그럴 때마다 저에게 ‘너를 잃지 말고, 그냥 자신 있게 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About Author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케이팝에서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을 다룹니다. 어떻게 음악을 더 선명한 말과 글로 풀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