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세상이 모두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이 기분에 엉거주춤 동네를 뛰고 있는 객원 에디터 조서형이다. 달리는 건 힘들다. 재미도 별로 없고. 다들 어떻게 이렇게 잘 뛰는지 모르겠다. 종종 내 말에 공감해주는 러너들이 있다. 그들은 이내 “달리기가 너랑 안 맞나 보다. 그럼 트레일 러닝을 해봐.”라고 조언한다. 아니, 내가 지금 말하고 있잖아. 달리는 거 힘들기만 하고 재미가 없다고. 평평한 바닥에서 뛰는데도 이 모양인데 무슨 수로 산 뛰기를 하라는 거야?
그러다 내게도 ‘무슨 수’가 생겼다. 성수동의 편집숍 튠(Tune)에서 나이키와 남산을 가로지르는 커뮤니티 개더링 참가자 모집 공고가 뜬 것. ‘남산을 관통하며 트레일 요소가 가미된 업힐 코스’라고 쓰여 있었다. 맛보기 수준의 트레일 러닝 체험으로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아침 7시, 한남동 나이키 랩에 도착했다. 나이키 러닝을 대표하는 페가수스 시리즈의 최상위 모델 ‘페가수스 프리미엄’을 제공받아 신었다. 신발 끈을 공들여 묶으며 힐끔힐끔 주변을 살폈다. ‘러닝에 숙련된 사람만 지원하라’는 요건이 있었던 만큼, 모두 러너처럼 보였다. 예전에는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이 달리기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안다. 달리기에 길고 짧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덩치가 크고 작은 것도 마찬가지. 다른 것은 눈빛이다. 달려본 사람이 가진 저 눈빛. 이른 아침부터 달릴 생각에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저 눈들 사이에서 내 불안한 시선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8km 정도 달릴 거니까 몸은 따로 풀지 않아도 되겠죠? 각자 간단히 스트레칭 하세요.” 평소 3km도 못 뛰고 돌아오는 날이 많은 나는 부랴부랴 허벅지를 늘리고 발목을 돌렸다. 한남동을 지나 남산을 올랐다. 처음엔 나만 땀이 쏟아지는 것 같아 민망하더니 나중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웨이트 트레이닝 한 것처럼 다리 근육이 마구 펌핑되었다. 종아리, 허벅지, 햄스트링까지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다.
힘들수록 보폭을 마구 넓혔다. 쓸 수 있는 체력이 많지 않으니, 한걸음에 최대한 많이 갈 생각이었다. 부족한 숨을 가득 채울 수 있도록 어깨와 상체를 크게 폈다. 이내 허리가 뻣뻣해져 왔다. 지나가는 누군가가 포기하지 말라고 화이팅을 외쳤다. “상체를 숙이고 보폭을 최대한 짧게 뛰세요. 그게 덜 힘들어요.” 뜀을 작게 하니 리듬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무릎에 가해지는 충격과 에너지 소비도 줄었다. 생각해 보니 원리는 자전거 기어랑 똑같다. 가뜩이나 부족한 체력을 겅중겅중 뛰며 소비하고 있는 셈이었다. 안 해보면 이렇게 모른다.
음수대에 도착해 턱까지 찬 숨을 허겁지겁 삼켰다. 기념사진을 찍고 산길로 뛰어 내려갔다. 허정허정한 다리를 애써 붙들고 발목을 삐지 않도록 집중했다. 숲에서 액션 영화 도주씬이라도 찍는 기분이다. 작은 기미라도 느끼면 풀숲에 뛰어들어 몸을 숨길 수 있을 것 같다. 그 정도의 긴장감이었다.
이내 스무 명 남짓의 발소리만 들린다. 착, 착, 착, 착. 고요한 새벽의 연습실에서 칼군무 추는 아이돌이 된 것 같다. 같은 춤을 수없이 춰서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다음 발은 어디에 디딜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알아서 내디뎌진다. 한번 속도가 붙으니 멈출 수 없다.
남산 정도는 콧노래 부르며 뛰는 사람들과 섞여 뛰었다. 매번 뒤처지고 당연히 티도 났겠지만 쫓겨나거나 중도 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위안 삼는다. 땀에 젖은 티셔츠 차림으로 저춤거리며 집에 오는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집으로 가려다가 단골 카페로 발을 돌렸다. 아침 운동을 마친 러너와 라이더가 앉아 있을 ‘hbc 커피’에 굳이 들러 오늘의 기분을 떠들고 싶어서.
트레일 러닝이라고 산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산악 지형을 포함해 포장도로, 비포장도로, 해변은 물론 계곡도 달린다. 고르지 않은 지형을 달리므로 로드 마라톤처럼 규칙적인 속도로 뛰기 어렵다. 심한 오르막, 폭우, 돌길을 만나면 페이스가 느려진다. 걷기도 한다. 트레일 러닝 대회에서는 거리만큼이나 획득 고도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얼마나 많은 오르막을 오르는가’가 대회의 난이도를 만든다. 트레일 러너는 강인한 하체 근육뿐 아니라, 높은 균형 감각과 지구력을 기르게 된다.
썬더버드러닝클럽 김주현과 입문자를 위한 Q&A
이날의 페이스메이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트레일 러닝 기사를 쓰고 있는데, 부디 이 재미를 모르지만 알고 싶은 초심자를 위해 알고 있는 것을 나눠달라고. 썬더버드러닝클럽은 트레일 러닝을 기반으로 한 러닝 크루. 김주현은 이 클럽 소속 러너이자 회사원이다.
Q. 트레일 러닝, 어떻게 시작했나요?
등산과 백패킹에 빠져 지내다가 산악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 트레일 러닝을 알게 되었어요. 집에서 가까운 산에서 걷다가 ‘이 구간에선 뛰어도 되겠는데?’ 싶은 마음이 들면 조금씩 뛰기 시작했어요. 뛰는 거리를 점점 늘려 자연스럽게 트레일 러닝에 빠져들었어요.
Q. 초급자를 코스를 추천해 주세요.
서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둘레길이 많아요. 어느 동네에나 뒷산 하나쯤은 있고, 조금만 가면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도 만날 수 있어요. 가장 좋은 것은 집에서 가까운 둘레길이에요. 고도차가 낮은 공원 같은 완만한 코스에서 시작하세요. 지명 + 둘레길을 검색해서 찾을 수 있어요. 나들길, 누리길, 산책로 등 찾으면 나올 거예요. 제가 가장 자주 찾는 곳 역시 집 바로 뒤의 구로 올레길 2코스에요. 거의 데일리로 뛰어요. 서울에서는 아차-용마산 코스가 좋아요. 고도는 낮은데 서울 풍경이 잘 보여요. 야경도 예쁘고요. 오늘 다녀온 남산 둘레길도 좋죠. 남산 타워를 기점으로 산길이 많아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거든요.
Q. 가장 좋았던 코스가 궁금해요.
영덕의 블루로드 트레일 러닝 B코스 되게 유명한데 진짜 좋아요. 산길과 바닷길이 섞인 코스예요. 바다를 끼고 해안길을 걷다가 더우면 수영도 하고 다시 산으로 들어가서 나무 아래 뛰다가 다시 바닷길로 나오고.
Q. 트레일 러닝, 어떤 사람한테 추천해요?
저는 러닝하던 사람보다는 오히려 등산하던 사람이 잘 맞을 것 같아요. 백패킹처럼 산에서 아웃도어 활동하던 사람이면 트레일 러닝이 즐거울 거예요. 단, 걷기가 되어야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체력이 없다면 등산부터 하길 추천합니다. 트레일 러닝 후에는 폼 롤러로 꼭 몸을 풀어주고요.
Q. 트레일 러닝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물과 최대한의 준비물이 있다면?
최소 트레일 러닝화요. 미끄럽지 않고 발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해요. 최대라면 GPS 기능이 있는 스마트 워치. 훈련 목적으로 심박수 기록 활용하기도 하고, 사전에 파일을 다운 받아 시계에 넣어가면 초행길이라도 코스를 찾기 쉬워요. 주변엔 가민이나 코로스 스마트워치 많이 사용합니다.
Q. 참고하는 SNS도 있나요?
심재덕 선수 블로그, 김지섭 선수 블로그요. 훈련 일지, 영양 정보, 대회 후기, 신발 후기 같은 게 올라와요. 인스타그램에서는 UTMB 공식 계정, 유튜브로는 ‘Trail running gear review’ 이런 거 검색해서 봐요.
Q. 초심자가 목표로 삼으면 좋을 대회를 추천해주세요.
이건 운탄고도 레이스죠. 트레일 러닝 대회에 가면 마라톤 대회 급수대처럼 체크포인트라는 걸 운영해요. 줄여서 CP라고 하는데,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는 다른 대회에 비해 CP 수가 많아요. 먹고 마실 것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고요. 대회 분위기 자체가 좀 더 가볍고 즐기기 좋은 축제 같아요.
트레일 러닝 신기해 선수와의 Q&A
트레일 러닝을 살짝 찍어 맛본 입문자는 침이 줄줄 흘렀다. 얘기를 더 듣고 싶었다. 국내 첫 노말(Nnormal)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기해 트레일 러닝 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말은 트레일 러닝의 레전드 선수 킬리안 조넷이 스페인 브랜드 캠퍼와 만나 탄생시킨 브랜드다.
Q. 트레일 러닝 시작은 어떻게 했나요?
2022년 11월이었어요. 원주 시부모님 댁에 갔다가 마침 치악산에서 10K 트레일 러닝 대회가 열리길래 한번 나가봤어요. 그때 2등을 했어요. 다음 달에 나간 대회에선 우승했고요. 그 다음부턴 대회에서 초청이 왔어요.
Q. 육상 선수 출신인가요?
아니에요. 달리기를 2020년부터 하고 있긴 했는데 선수 출신은 아니에요. 오래전에 대학교 태권도 선수였어요.
Q. 인간 자체가 강한, ‘인자강’의 분위기가 풍기네요. 트레일 러닝에 쓰는 아이템이 궁금해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신발이요. 국제대회에서는 전용화가 없으면 참가 자격을 제한할 정도예요. 다양한 지면을 뛰어야 하기 때문에 러닝화처럼 가볍고 쿠션이 있으면서도 등산화 수준의 견고함과 접지력이 필요해요.
그다음으론 스마트워치, 비상식량과 휴대전화를 넣을 러닝 벨트 또는 러닝 베스트, 모자, 고글 정도 있으면 멋있어 보이죠. 저는 특히 고글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결승점을 통과할 때 지친 표정을 가리고 사진 속에서 프로페셔널해 보이거든요.
Q. 트레일 러닝화는 어떻게 골라야 하나요?
로드랑 산은 정말 달라요. 평소 달리기라면 발 모양에 맞춰 편안한 것을 고르면 되지만, 트레일 러닝화는 길에 맞춰야 합니다. 국내 대회만 해도 암벽, 숲, 임도, 자갈, 아스팔트 등 지형이 다 달라요. 계절과 날씨에 따라 또 다르고요. 계속 변해서 예측할 수 없는 자연에 맞는 신발을 선택하는 것도 실력이에요. 선수들이 대회 전 사전 답사를 가는 이유죠. 최근 제주와 치악산 대회 모두 비가 정말 많이 왔는데요. 노말의 브루트가 좋은 선택이었어요. 미끄러지지 않는 밑창과 발을 보호하는 견고한 중창 덕에 대회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Q. 초심자가 트레일 러닝화를 고르는 팁이 있을까요?
요즘 로드는 말할 것도 없고 트레일 러닝까지 맥시멀 쿠션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이건 주의해야 할 것 같아요. 특히 돌길에서 반발력 좋은 신발은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오히려 자연을 더 가까이 느끼고 감각을 깨울 수 있는 신발을 추천해요.
Q. 훈련하는 방법도 알려주세요.
러닝에 심폐지구력이 필요하다면, 트레일 러닝은 근력과 근전환 능력이 중요해요. 육아를 하고 있어 시간이 넉넉지 않지만, 러닝머신만 뛰는 것으로는 부족해요. 짧게라도 왕복 7km 거리의 집 앞 산을 자주 뛰어요.
Q. 트레일 러닝은 쓰이는 근육이 다른가요?
울퉁불퉁한 산을 달리다 보면 코어와 하체 근육이 많이 필요해요. 방향을 바꾸고 돌을 뛰어넘고, 나무뿌리를 피해야 하니까요. 오르막을 오를 때는 종아리가 터질 것 같고 내리막에서는 속도를 제어하느라 앞 허벅지가 팽팽해져요. 근데 이걸 수십 번 반복해야 해요. 오르막에서 힘을 다 써버리면 내리막에서 다리가 다 풀려버리죠. 로드 러닝과 달리 균형 감각과 조정력을 길러야 해요. 대회 준비도 달라요. 마라톤 서브 3(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것)가 목표라면 트랙에서 혼자 뛰면서도 가늠할 수 있지만, 산은 당일에도 몰라요. 끝까지 뛰어봐야 내가 얼마나 준비되었는지 알 수 있죠.
Q. 로드 러닝과는 다른 트레일 러닝의 기쁨은 뭐가 있을까요? 저처럼 달리기가 재미없는 사람도 트레일 러닝을 할 수 있을까요?
아, 물론이죠. 농담으로 이런 얘기 종종 해요. “1등하려고 트레일 러닝 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건 저한테 양보해 주시고 즐겁게 뛰세요.” 트레일 러닝은 축제예요. 천천히 걷고 싶을 때는 그렇게 하고 마구 달리고 싶을 땐 흙탕물을 튕겨가며 뛰세요. 대회에 나갔다면 C.P에서 컵냉면도 먹고 자연에서 멋진 사진도 찍히고요.
Q. 목표로 삼고 있는 대회가 있을까요?
모든 트레일 러너들의 목표일 걸요? UTMB. 프랑스 샤모니부터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경유하는 176km, 누적 고도 10,000m 상승의 대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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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형
GQ 코리아 디지털팀 에디터. 산과 바다에 텐트를 치고 자면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