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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 시장 입문자를 위한 쇼핑 가이드

빈티지샵 이전에 동묘시장이 있었다
빈티지샵 이전에 동묘시장이 있었다

2025. 04. 16

안녕, 동묘시장 쇼핑 가이드를 준비한 객원 에디터 김정년이다. 에디터B가 내게 원고를 청탁했을 때 솔직히 망설였다. 나보다 ‘동묘 빈티지’를 잘 아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으니까. “보법이 남다른 빈티지 패션 마니아들이 리뷰글과 하울 영상을 만들고 있는데… 제가 ​감히 다뤄도 될 주제일까요…”

“빈티지 마니아가 아니라, 이제 막 동묘라는 곳을 알게 된 20대, 빈티지 마켓에 흥미를 붙인 30대가 읽을 쇼핑 가이드를 쓴다고 생각해 주세요 .”

그 말을 듣고 설득됐다. 동묘에서 내돈내산 쇼핑하며 느낀 것을 차근차근 되짚어보기로 결심했다. 이번 쇼핑 가이드는 무언가를 싸게 잘 사는 법을 공략하는 리뷰는 아니다. 그런 건 유튜브 콘텐츠가 훨씬 더 잘 알려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묘는 빈티지 아이템을 싸게 사는 곳이 아니다. 속된 말로 고인물에게 유리한 중고품 거래 시장이다.

동묘시장

그럼에도 동묘 구제시장이 매력적인 이유는 시장에 모인 사람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에너지다. 동묘는 남녀노소 누구나, 외국인과 내국인이 허물없이 뒤엉키는 활기찬 장터다. 그 속에서 기묘한 물건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흥미를 느낀 물건은 몇 점 갖고 싶어지는 법. 그런 물건을 놓고 셀러와 흥정하는 즐거움을 전해드리고 싶었다. 나도 어느새 동묘 빈티지 컬렉터가 됐다. 계절마다 들러 호기심 어린 물건에 지갑을 열고 있다.

동묘
빈티지

동묘시장 답사기를 쓰려고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주말마다 동묘를 갔다. 마음에 드는 물건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직접 발품 팔아 확인한 2025 동묘 벼룩시장에 대한 기록이 빈티지 마켓에 느슨한 관심을 쥔 여러분에게 쓸모 있길 바란다. 이번 기사는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작성했다.

​-동묘란 무엇인가?
-무엇을 사면 좋을까? : 세컨핸드보다 빈티지
-Level 1. 동묘 담벼락 근처 빈티지 샵에서 흥정을
-Level 2. 좌판 위 옷더미 속을 헤엄치다
-Level 3. 새벽 네 시, 헤드랜턴 차고 돌격
-별책부록 : 동묘 앞 먹거리 추천


동묘란 무엇인가?

주소는 서울 종로구 숭인동 동관왕묘. 동묘는 ‘동관왕묘’의 줄임말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장군,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들이 조선에 관우를 섬기는 신앙을 전파했다. 조정에서 동맹군을 배려해 한양도성 근처에 적절한 터를 골라 관우를 기리는 사당을 지었으니, 이게 바로 동묘의 시작이다.

국가유산 근처 허름한 골목길이 벼룩시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0년대 초였다. DDP 건설과 동대문 운동장 철거의 영향을 받았다. 동대문 운동장 부지에서 장사하던 만물상들이 DDP 건립 후, 서울시에서 마련한 황학동 서울풍물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상설시장에 들어가지 않은 셀러들이 동관왕묘 담벼락 근처에 노점 좌판을 깔고 중고품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동묘에 흘러들어온 셀러들은 예나 지금이나 주로 의류나 가방, 신발 등을 다룬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테리어용 골동품이나 가전제품을 다루는 셀러도 있지만, 마켓 주류는 패션 아이템. 동관왕묘 담벼락 주변에서 소소하게 열리던 플리마켓은 상권이 청계천까지 뻗어 나갈 정도로 기세가 오르기 시작한다.

2010년대 중후반, 동관왕묘 근처 상가건물에 빈티지 패션 아이템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셀러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며, 노점 좌판과 상설매장이 공존하는 오늘의 동묘 빈티지씬이 만들어졌다. 여러분도 모두 알고 있듯, 데프콘이 데일리룩을 꾸미고, 지드래곤이 예능을 찍고, 거물 패션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인스타그램에 동묘 패션을 샤라웃하고, 입소문이 또 다른 입소문을 모은 끝에!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플리마켓으로 이름을 널리 떨치고 있다


무엇을 사면 좋을까?
세컨 핸즈보다 빈티지

동묘시장은 세컨 핸즈 아이템과 빈티지 아이템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게 특징이다. 우리의 쇼핑 목적은 세컨 핸즈를 솎아내고, 그 속에서 빈티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먼저 세컨 핸즈(Second Hands)와 빈티지(Vintage)의 차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두 개념을 같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필자는 세컨 핸즈와 빈티지를 구분 짓는 편이다. 세컨 핸즈는 말 그대로 두 번 이상 남의 손을 탄 물건이다. 개인적으로 중고품을 거룩하게 부르는 표현 중 하나라 생각한다.

빈티지는 세컨 핸즈 중에서도 희소가치가 남다른 물건이다. 내 눈에 곱고, 다른 사람 눈에도 고와 보이는 아름다운 중고품. 오늘날 추가 생산이 안 되기 때문에 앞으로 더 귀해질 컬렉션. 물건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끼리 웃돈을 얹어 거래할 물건에 ‘빈티지’라는 이름이 얹힐 자격이 주어진다.

예컨대 ‘코위찬(cowichan)’은 어떨까. 동묘시장 같은 곳에서 찾아보면 좋을 패션 아이템 중 하나라 생각한다. 옷의 기원은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짠 스웨터로 알려져 있으며, 색과 문양이 아름다운 외투다. 많은 패션 브랜드가 옛날 옷에서 발견한 니트 패턴이나 그래픽 디자인에 영감을 얻어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코위찬을 비롯한 빈티지 니트웨어는 전세계 플리마켓에 쏟아지듯 유통되고 있다.

남이 입던 니트 스웨터는 기본적으로 세컨 핸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특정 브랜드, 특정 시대, 특정 원산지에서 생산된 물건에 신화적인 아름다움이 달라붙는다. 미국에서 생산했던 90년대 가디건이 요즘 물건보다 품질이 더 낫거나, 요즘 옷에서 찾기 힘든 공예적인 그래픽 자수가 새겨져 있다. 동묘 시장에서는 이런 물건이 의외의 장소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상태로 잠들어있다. 동묘에서 우리는 이런 중고품을 노려야 한다.


Level 1. 골목 빈티지 샵에서 흥정을

동묘를 처음 방문하거나 시장 분위기가 낯선 사람은 레벨 1 챕터 공략을 추천한다. 동묘앞역 근처 담벼락 노점이나 동관왕묘 입구 근처 좌판은 나중에 들러도 괜찮다. 동묘에서 재미 삼아 경험 삼아 물건을 구입하고 싶다면, 골목 속 빈티지 샵을 탐구하시길 바란다.

동묘 골목은 중고거래 사업을 하는 사장님들의 창고형 매장이 성업 중이다. 골목 속 빈티지 샵 아이템은 노점 좌판에 널린 물건에 비해 값이 비싸지만, 희귀한 물건이 눈에 띄기 쉬운 자리에 걸려있다는 점에서 디깅 난이도를 낮추는 곳이다. 그래서 입문자에게 추천한다. 생활잡화를 다루는 샵에 가면, 유리컵이나 가방처럼 현장에서 상태 확인이 손쉬운 제품을 살피는 게 좋다.

옷 가게에서는 가죽, 데님, 나일론처럼 시간이 지나도 물성이 크게 변하지 않는 소재로 만든 의류를 주목하는 게 좋다. 행거에 손가락을 감고 옷을 쓱쓱 넘기며 동묘 패션을 오감으로 느껴보자. 동묘 상가 속 빈티지 샵 물건은 좌판에 깔린 물건보다 가격이 세긴 하나, 사장님의 손길을 거친 물건이라 컨디션이 보장되는 경우가 많다. 말 그대로 벼룩이 붙어있을지 모를 노점 좌판 속 물건보다 깔끔하고 양호하다.

그리고 골목 속 상설매장 빈티지 샵은 사장님마다 특별한 거래처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른 매장에 없는 희귀 매물이 많다거나, 시간을 들여 일관성 있는 수집을 마친 경우가 많다. 예컨대 A 가게는 미국발 세컨 핸즈 의류, B 가게는 상업공간 창업자를 위한 인테리어용 오브제를 모은다.

그래서 취향 저격 빈티지 샵은 사장님과 안면을 트고 정기적으로 들르는 게 좋다. 단골 가게 사장님에게 내심 원했던 물건을 설명하는 게 장기적으로 보면 소비자에게 유리하다. 빈티지 샵 오너와 친해지면, 내심 원했던 물건을 비교적 저렴한 값에 얻을 확률이 높다. 동묘 상가 골목을 돌면서 말 붙이고 정을 붙일 단골가게를 마련해 보자.

하나 더. 동묘시장 골목의 빈티지 샵은 우리에게 협상의 기술을 단련하게 만든다. 빈티지 샵 물건값은 대부분 태그에 가격이 적혀있지만, 최종 판매가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셀러가 맨 처음 제시한 가격은 물건을 사려는 내 마음과 같지 않을 때가 대부분. 고로 가격 흥정은 동묘 쇼핑의 패시브 스킬이다.

동묘 빈티지 샵에서 쇼핑할 때, 협상은 내가 원하는 값에 무조건 맞춰달라고 셀러에게 강짜를 부리는 일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물건값 A와 사장님이 생각한 물건값 B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 밀당하는 거라 생각하는 게 좋다.

이번 취재 때 어느 동묘 빈티지 샵에서 인상적인 레더 재킷을 발견했다. 검색창에 ‘월드 머니 레더 재킷’이라고 치면 나오는 디자인이다. 세계 각국의 화폐 도안을 새겼는데 가죽 상태가 깔끔했고 만듦새도 훌륭했다. 입었을 때 거울에 비친 내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현행 패션 브랜드는 잘 안 만드는 컬렉션. 마치 기다리고 있다는 듯 등장한 고품질 중고품. 이런 게 빈티지다. 나는 동묘에 갈 때마다 이런 만남을 기대한다. 문제는 가격. 내가 생각한 값은 10만 원, 사장님이 부른 값은 20만 원이었다.

나는 최대 13만 원까지 배팅했으나, 맨 처음 20만 원을 부른 빈티지 숍 사장님의 마지노선은 최종 판매가 15만 원이었다. 우리의 협상은 결국 어긋났다. 다음 주에 같은 사장님을 찾아가니 내 마음에 쏙 든 레더 재킷은 이미 팔리고 없었다. 사장님은 내 얼굴을 기억했고, 내가 떠나고 며칠 뒤 온라인 빈티지 샵을 운영하는 젊은 사장이 15만 원에 가져갔다는 소식을 전했다.

“인연이 또 오겠죠. 다음에 뵙겠습니다~” 넉살 좋게 인사하고 가게를 빠져나왔는데 솔직히 속이 쓰렸다. 아쉬운 마음을 품고 다른 가게를 돌았는데, 샵에서 놓친 레더 재킷보다 더 마음에 드는 재킷을 만날 수 있었다. 내 체형에 착 감기는 오버사이즈 핏 셔츠 재킷이다.

간절기에 딱 좋은 얇은 면 소재. 체크 패턴의 컬러 배색과 희뿌연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옷값은 3만 5천 원. 내 눈에도 그쯤 하면 적당해 보였다. 곧바로 쇼핑을 마치고 휘파람을 불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유 없이 본능적으로 마음에 끌린 물건에 대해 생각해 보기.
내가 옳다 믿는 값과 사장님이 팔고자 하는 값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흥정하기.

두 가지 쇼핑 기준을 갖고 들어간 동묘 쇼핑 경험은 내게 큰 교훈을 선사했다. “세상에 물건은 많고, 대체품은 많다.” “중고품과 맺는 인연은 내가 감히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중했기 때문에 소중해진다.”같은 깨달음을 메모장에 적어뒀다.

우리는 업자가 아니다. 입기 위한 옷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기 위해 동묘에 왔다. 순간 마음이 와르르 흔들려 겁에 질린 채 패닉 바잉을 할 필요가 없다. 동묘 빈티지 샵에서 신중하게 고른 물건은 백화점 편집샵 최애 브랜드 신상품만큼 예뻐 보일 수도 있다.


Level 2. 좌판 위 옷더미 속을 헤엄치다

“2천 원~ 3천 원 2천 원~3~처~~~너 어언~” 동관왕묘 정문에 가까워질수록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 동관왕묘 정문은 중고품이 길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천 원 단위 현금거래가 기본이며 옷, 가방, 신발, 생필품을 싼값에 많이 파려는 셀러가 모이는 곳이다. 동묘 분위기가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쇼핑 플레이스.

노점 쇼핑할 때 준비물은 마스크와 현금, 그리고 옷을 담을 봉다리. 특히 옷을 고를 경우, 먼지가 풀풀 날리는 옷 무더기 속을 직접 헤집어야 하기에 마스크가 필수. 먼저 줍는 사람이 물건 임자라, 이른 시간에 들를수록 양품을 건질 확률이 높다. 동묘시장을 대표하는 쇼핑 스팟이긴 하나, 솔직히 들이는 노력에 비해 좋은 물건을 건질 확률이 낮다.

이곳에서 건질 만한 아이템은 무게가 가벼운 S/S시즌 의류다. 오염이 없는 셔츠와 바지. 나일론 소재 바람막이, 내 발에 맞는 신발을 저렴한 가격에 낚을 생각으로 가는 게 좋다. 아주 드문 확률로 유명 브랜드의 레어 컬렉션이 손에 걸리기도 한다. 나만 알고 싶은 브랜드를 옷무더기 속에서 건져 올려 깔끔하게 세탁해 입으면 의외로 기분이 좋다. 레벨 2 구역에 시간을 쏟을 여러분에게 행운을 빈다.


Level 3. 새벽 네 시, 헤드랜턴 차고 돌격

동묘시장 쇼핑에 제법 익숙해졌다면, 새벽시장을 도전해 보는 게 좋다. 동묘 장사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최근 몇몇 한국 패션 유튜버가 ‘토일 새벽’ 동묘시장 쇼핑 하울 영상을 찍어 올렸는데, 이른 새벽에 가면 빈티지 아이템을 좋은 가격에 얻을 수 있다는 후기 영상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필자도 정말 그런지 궁금해서 새벽에 동묘를 방문했다. 2025년 3월 15일 토요일 새벽, 동묘앞역 맥도날드에서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밤을 새웠다.

새벽 네 시. 메인 상권인 동관왕묘 정문이 아니라 신설동역 방향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작은 트럭에서 천막을 꺼내 좌판을 까는 셀러들이 나타나자 쇼퍼들이 모인다. 헤드랜턴을 차고 전동 킥보드를 타고 도는 사람, 말없이 자루에 물건을 쓸어 담는 사람. 내공이 남달라 보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다섯 시부터 본격적으로 노점이 펼쳐지더니 여섯 시쯤 되니 공영주차장의 컨테이너형 마켓까지 문을 연다. 천막을 치던 상인에게 동묘 새벽시장 운영시간을 물어보니 “장대비가 내리지 않는 이상, 토요일 일요일마다 이런 식으로 이른 새벽에 열린다.”라고 응답했다.

나도 남들처럼 좌판을 떠돌기 시작했다. 플래시를 켜서 태그를 비추니 브랜드는 바버, 남성용 38사이즈. 컨디션 좋은 왁스 재킷을 발견했다. 옷 상태를 확인하는 내게 셀러가 내게 말했다.

“바버 왁스 재킷? 10만 원에 가져가~ 오늘 ‘나까마'(중간 도매) 칠 것만 가져온 거야.”

나.. 나까마? 상인들 은어인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는 사이에, 내 옆에 있던 사람이 바버 재킷 값으로 9만 원을 불렀다. 그는 계좌이체 입금도 빨랐다. 눈앞에 있던 양품 바버 재킷이 30초 만에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는 걸 보고 깨달았다. 새벽 동묘시장은 빈티지 거래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장터였다.

새벽 동묘시장의 장점은 브랜드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 빈티지로 여길 만한 중고품이 많았다. 특히 의류와 잡화는 명품 브랜드 라벨이 달린 물건부터 국내외 편집샵에서 다루는 디자이너 브랜드 컬렉션까지 의외성 넘치는 물건이 등장했다. 빈티지 샵 오너로 짐작되는 사람들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정가품 여부를 체크하고, 셀러와 당연하다는 듯 흥정에 나선다.

반면 브랜드의 빈티지 아이템 가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면 오히려 낡은 중고품을 비싼 가격에 집어올 확률이 높아 보였다. 새벽시장 셀러들도 물건을 팔기 전 태그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름 가격기준을 구체적으로 세운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B2C 마켓이 아니라 선수가 선수끼리 거래하는 B2B 마켓에 가까운 셈이다.

그러니 새벽 동묘시장은 큰 기대를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보거나, 빈티지에 도가 튼 지인과 업자 마인드를 품고 동행하는 걸 추천한다. 적은 예산을 들고 가서 옷을 사기에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건의 단가가 제법 셌다.


별책부록
동묘 앞 먹거리 추천

동묘를 돌다 배가 고플 때,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무한도전>같은 TV 예능을 통해 널리 알려진 먹거리는 ‘1천 원 토스트와 믹스커피’ ‘튀김과 호떡’ ‘꽈배기와 도나쓰’ 등이 있다. 핑거푸드가 많다. 이들은 저렴한 가격에 자극적인 맛을 지닌 간식이긴 하지만, 솔직히 업장 위생상태가 나쁜 편이라 호불호가 갈리는 먹거리다. 어쩌다 한두 번 경험 삼아 먹는 별미 정도로 생각하는 게 좋다.

필자는 그래서 동묘시장의 핑거푸드를 거르고, 테이블을 갖춘 식당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즐기는 편이다. 새벽에 여는 기사식당이나 청계천 너머 노포, 동대문과 신설동의 외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식당이 쇼핑하는데 의외로 큰 만족감을 선사했다. 추천 식당 4곳 정보는 다음과 같다.

킹수제만두
: 굳이 신설동역까지 걸어가서 밥 먹는 이유. 매콤한 마파두부 덮밥과 육즙이 가득한 고기 새우 군만두가 정석 PICK.
서울 동대문구 한빛로 3

할아버지 칼국수
: 청계천 방면 동묘시장 입구의 국수 노포. 요즘 시대에 면 요리 한 그릇이 5천 원이라니.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서울 중구 마장로9길 43-3

정읍식당·고향식당
: 두 가게가 쌍둥이처럼 붙어있다. 동묘 새벽시장 탐사를 마친 이에게 추천하는 곳. 든든한 한식과 함께 쇼핑을 마무리하자.
서울 종로구 난계로29길 72


동묘 시장을 와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보물찾기’ 게임을 기대하는 것 같다. 일단 내가 그랬다. 그런 마음으로 놀러 오면 실망할 가능성이 정말 큰 마켓이라 생각한다. 예전에는 적은 예산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중고품을 쓸어오는 게 가능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대놓고 짝퉁인 물건, 정품인척하는 가품, 당근마켓에서 사도 충분할 세컨 핸즈 아이템이 많다. 심지어 괜찮은 물건을 건져도, 비싼 값에 흥정할 확률이 높은 장터다.

그럼에도 동묘에서는 여전히 빈티지 아이템 디깅이 가능하다. 희소가치가 높은 중고품. 현행 브랜드가 더 이상 출시하지 않는 물건. 이런저런 시대적 배경에 브랜드의 여차저차한 속사정이 얽혀 디자인이 멈춘 빈티지 컬렉션이 동묘에 잠들어 있다.

이런 물건은 유행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물건 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경우가 많다. 나만의 소비 기준과 두둑한 배짱을 들고 가면, 나름 괜찮은 물건을 데려올 가능성이 높다. 그런 경험이 조금씩 쌓이며, 좋은 물건과 나쁜 물건을 구분하는 안목을 기르는 게 아닐까. 동묘에서의 빈티지 헌팅은 현명한 소비습관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빈티지 아이템을 얻으러 갈 여러분에게 행운이 가득하길 바라며, 2025 동묘 쇼핑 가이드 끝!

About Author
김정년

브랜드와 음식문화를 탐구하는 피처 에디터. 세계를 떠돌며 아름다운 논픽션을 쓰는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