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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다음은 여기? 효창동 카페 4

일찍 일어나는 자가 웨이팅을 피한다
일찍 일어나는 자가 웨이팅을 피한다

2025. 09. 02

안녕, 핫플레이스에 관심 없는 척하는 홍대병 객원 에디터 김정현이다. 사실 핫한 식당이나 카페에 진짜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핫한 기운을 견딜 자신이 없는 쪽에 가깝지. 만석으로 인해 헛걸음하는 게 두렵다는 이유도 크다. 서 있는 사람이나 앉아 있는 사람이나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인 그놈의 웨이팅! 그래서 나는 정말 궁금한 곳이 생기면 평일, 그것도 오전 시간을 이용해 방문하는 편이다. 일찍 일어나는 자만이 여유로운 분위기를 누리는 법이니까.

최근 들어 용산 효창공원 일대에 북마크 해둔 장소가 부쩍 늘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효창공원 나들이를 다녀왔다는 지인들 소식을 자주 접한다. 손 닿는 곳마다 핫플레이스를 만든다는 코요태 빽가도 몇 년 전 방송에서 이 동네를 유심히 보고 있다고 얘기했다지? 과연 성수동이나 한남동, 삼각지의 뒤를 효창동이 잇게 될까. 뜨는 상권 같은 건 잘 모르는 나는 그저 웨이팅이나 피하고 싶다. 그래서 이번에도 부지런 떨어대며 다녀왔다. 느긋하고 평화로운 모닝커피를 즐길 수 있는 효창공원 일대의 카페를. 알람 소리는 괴로웠으나 아침 햇살은 달콤했다. 게으른 필자를 얼리버드로 만든 4곳의 매장을 소개한다.


1. 코쿤

코쿤

임정로는 효창공원을 삥 둘러싼 도로다. 공원의 나무를 눈에 담으며 걷기 좋은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오래된 빌라와 신축 오피스 빌딩이 줄지어 서 있다. 브런치 카페 코쿤도 여기에 있다. 하얀색 타일과 푸르스름한 유리블록의 격자무늬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물 1층에. 커피를 좋아하는 요리사와 브런치를 좋아하는 바리스타가 함께 꾸려가는 코쿤은 오전 9시에 문을 열고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브런치는 10시부터 3시까지. 브런치 타임에 한해 네이버 예약을 받지만 나는 예약 없이 9시 반까지 매장에 도착하는 일정을 추천한다. 

먼저 드립 커피를 주문하고 내부를 둘러봤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고재 바닥과 톤이 비슷한 나무 가구, 여기저기 걸려 있는 식물들. 창을 통해 쏟아지는 자연광이 더해지니 효창공원의 짙은 녹음 풍경과 연결되는 하나의 시퀀스가 완성된다. 여기에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하는 건 주방 벽면의 스페인 포세린 타일과 각기 다른 형태의 빈티지 펜던트 조명 같은 디테일이다. 밝고 쾌적한 공간을 선호하는 분들도, 소위 힙한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분들도 두루 만족할 테다. 

샌드위치, 파스타, 버거, 샐러드, 수프까지 코쿤은 다양한 브런치 메뉴를 제공한다. 그중 내가 주문한 건 코쿤 버거와 고구마 프라이에 에티오피아 할로 와추 내추럴 원두로 내린 드립 커피다. 나름 수제버거 좀 먹어봤다고 생각했지만 일반적인 패티 대신 얇은 소고기를 층층이 쌓아 만든 코쿤 버거는 달랐다. 구운 파프리카의 단맛과 씁쓸하면서도 싱그러운 루콜라의 탁월한 궁합. 고구마 프라이는 안 시키면 서운할 정도로 강하게 추천하는 사이드 메뉴다. 고구마 맛탕의 고급스러운 버전이라고 하면 상상이 될까? 과하지 않은 단맛의 프라이를 은은한 산미가 감도는 딥에 푹 찍어 드시길.

코쿤
주소 | 서울 용산구 임정로 65-1 1층 카페 코쿤
영업시간 | 09:00-18:00 (브런치 10:00-15:00) *휴무 일정은 인스타그램 확인
인스타그램 | @cocoon__cafe


2. 파자마델리 효창공원점

파자마델리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 8인의 묘역이자 산책로와 운동 시설을 갖춘 시민공원인 용산 효창공원. 걷고 뛰고 공을 던지는 이들로 이른 아침부터 공원은 활기를 띤다. 조금 걷다 보면 배드민턴장 앞쪽으로 한옥 건물이 나타나는데, 초록색 파라솔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스 커피를 들이켜거나 갓 나온 샌드위치를 크게 한입 베어 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파자마델리는 직접 구운 빵과 직접 볶은 커피를 제공하는 작은 카페다. 잠옷을 입은 채 아침 일찍 요리하는 걸 즐기던 두 주인장이 파자마에 슬리퍼 끌고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동네 가게를 꾸려가는 중이다. 공원 바깥의 매장이 파자마델리 본점, 공원 안쪽의 매장이 지난 6월에 오픈한 파자마델리 효창공원점이다. 

처마와 서까래, 옥색의 격자문을 고스란히 간직한 한옥 건물은 한때 공원 매과 일반 창고 등으로 쓰였다고 한다. 용산구청의 정식 입찰 과정을 통해 매장을 얻은 파자마델리는 협소한 내부 면적의 한계를 마당 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극복했다. 공원의 나무와 꽃과 사람들을 원 없이 구경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로. 오전 시간대에 손님이 적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이 카페만의 독보적인 바이브를 누리고 싶다면, 먹고 싶었던 메뉴가 솔드아웃 됐다는 비보를 듣고 싶지 않다면, 늦어도 10시 전까지는 방문해 보자. 운동복 차림으로 어슬렁거리는 러너와 마당 스툴에 앉아 강아지 옆에서 아침 식사를 즐기는 견주들, 설레는 표정으로 캐리어를 끌고 찾아온 해외 관광객이 각자의 방식으로 아침을 즐긴다.

담백하면서도 감칠맛 넘치는 포카챠 샌드위치와 깔끔한 오늘의 커피는 더할 나위 없는 조합. 내가 먹은 치킨 시저 포카챠 샌드위치는 시저 드레싱을 바른 치킨 슬라이스 햄에 아삭한 로메인을 넣고 올리브오일과 후추, 그라노파다노 치즈까지 곁들여 짭조름한 풍미가 일품이었다. 출시하자마자 뜨거운 반응을 얻어 앞으로도 쭉 이어질 메뉴라고. 이 외에도 참외나 무화과처럼 제철 재료를 활용한 시즈널 샌드위치도 꾸준히 선보이는 중이다. 3,000원에 판매하는 오늘의 커피는 배치 브루로 제공한다. 주문 즉시 원두를 갈아 물을 부어주는 일반적인 브루잉 커피에 비해 향미가 약할지는 모르나,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산뜻한 스페셜티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일 공원을 찾는 이들의 데일리 커피로 손색이 없다. 

파자마델리 효창공원점
주소 |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 177-18
영업시간 | 08:00-16:00 (정기 휴무 : 목요일)
인스타그램 | @pajama.deli


3. 윗올커피샵

윗올커피샵은 지난 6월에 문을 열었다. 오늘 소개하는 카페 중 가장 앳된(?) 매장인 셈이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됐으니 한산할 거라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생각은 접어두자. 운 나쁘면 주중에 방문해도 웨이팅의 맛을 보게 될 테니. 빠르게 쌓이는 단골층과 7평 남짓이라는 작은 매장 규모에 밀리지 않는 방법은 하나다. 아침에 방문할 것. 8시 오픈 시간을 노렸으나 만성피로에 패배한 나는 가까스로 9시가 조금 넘어 카페에 도착했다.

밝은 톤의 목재와 어우러지는 화이트 ・ 블랙  ・ 실버 컬러의 가구와 집기들. 중앙 키친에서 커피를 내리는 주인장의 모습까지 더해져 매장 전반에 차분하고 정갈한 기운이 감돈다. 통창을 따라 배치한 검정 가죽 의자는 푹신한 데다 책상과의 높이 차이도 적절해 장시간 책을 읽거나 노트북 작업을 하기에도 편하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입장할 때와 앉아 있을 때의 시선이 달라진다는 것. 문을 열고 들어설 땐 키친에서 음료와 샌드위치를 만드는 사장님의 퍼포먼스가, 각 좌석에서는 창밖 골목의 풍경이 주인공이 된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필터 커피를 주문했다. 부드러운 질감과 기분 좋은 단맛이 돋보이는 에티오피아 시다마 벤사 무라고 내추럴. 노원구 공릉동의 ‘아카시아 커피 하우스’에서 로스팅한 원두다. 산미가 부담스럽지 않아 스페셜티 커피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곧잘 마신다고 한다. 식후에 방문한 게 아니라면 토마토잼 샌드위치를 곁들여도 좋다. 쫄깃한 치아바타에 직접 만든 잠봉과 토마토잼이 어우러져 심플하지만 든든한 요깃거리로 충분하다. 카페인에 약해 서러운 독자분들에게는 루이보스티를 우려 24시간 냉침해 내어주는 밀크티를 추천한다.

윗올커피샵
주소 |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62길 19
영업시간 | 08:00-18:00 (정기 휴무 : 금요일)
인스타그램 | @withalcoffeeshop


4. 토크메모리

효창공원역을 지나는 경의선숲길은 효창공원만큼이나 계절감을 느끼기 좋은 산책 코스다. 화창한 날에는 공덕역과 대흥역, 서강대역을 지나 홍대입구역까지 느긋하게 걸으며 조금씩 변하는 주변 풍경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본격적인 도심 속 숲길 산책을 계획하고 있다면 출발 전 모닝커피로 연료를 채워 보면 어떨까. 가볍게 들러 커피 한 잔 마시고 나오기 좋은 신생 로스터리 카페 토크메모리 같은 곳에서.

입구에서 반겨주는 귀여운 그림의 입간판. 매장 내부는 심플한 편이다. 길게 늘어선 우드 커피바와 육중한 부피의 검은색 로스터기가 보이고, 양쪽 벽면과 창가에는 셰어 테이블과 바 테이블을 배치한 채 중앙 공간은 텅 비워뒀다. 구석구석 주인장의 취향을 드러내는 물건들은 있지만 그 존재감이 압도적이지는 않다. 꽃이나 액자, 세라믹 컵, 주기적으로 바뀌는 레코드. 덕분에 시선은 커피에 집중된다. 그라인더가 돌아가는 소리와 천천히 푸어링(pouring)하는 손의 움직임, 선반 위의 원두 패키지 같은 것들에.

3종 내외의 싱글 오리진 원두를 상시 구비한 로스터리 카페이므로 필터 커피를 마셔보기를 권한다. 시원한 물 한 잔과 에어컨 바람으로 더위를 식힌 나는 따뜻한 에티오피아 구지 함벨라 고로 워시드를 주문했다. 첫 모금부터 진한 농도의 과일 단맛이 퍼지면서도, 뒤이어 올라오는 민트의 스파이시한 향이 마무리를 깔끔하게 책임지는 커피였다. 에스프레소는 자체 블렌드 원두인 ‘CALM’ 블렌드로 추출한다. 뛰어난 균형감과 부드러운 질감에 초점을 맞춰 볶는다고. 화려한 시그니처 커피 대신 기본에 충실한 데일리 커피가 여기 있다. 도쿄의 세라믹 아티스트 유키 와타나베Yuki Watanabe가 만든 아름다운 잔에 담겨 나와서일까. 똑같은 커피도 더 맛있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토크메모리
주소 |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55길 17 1층
영업시간 | 09:00-18:00 (정기 휴무 : 화요일)
인스타그램 | @talkmemory

About Author
김정현

라이프스타일 잡지부터 토크 프로그램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콘텐츠 에디터. 멋있는 사람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소개할 때 제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