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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 원짜리 가성비 향수? 다이소 향수 5종 리뷰

조향사가 평가하는 다이소 향수
조향사가 평가하는 다이소 향수

2025. 03. 06

안녕. 글 쓰고 향 만드는 사람, 아론이다. 최근 다이소 뷰티(?)의 명성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누가 스킨 케어 제품을 다이소에서 사겠어?’ 하는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몇몇 색조 제품들도 연일 품절이라 재고가 있는 매장을 찾아다녀야 할 지경.

최근 다이소에서 에이딕트와 손잡고 향수를 출시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그것도 무려 5천 원짜리 향수. 과연 5천 원으로 향수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대체 어떤 향으로 만들었을까? 어느 정도의 퀄리티일까? 솟아나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사방팔방 다이소를 찾아 헤멨다.

전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무려 다이소 4곳을 돌아다니면서 깨달았다. 아, 나만 궁금해하는 게 아니구나. 다들 이 제품에 관심이 많구나! 그래서 조금이나마 전문적인 시선으로 여러분의 호기심을 풀어주기 위해 이 리뷰를 적는다.


다이소 에이딕트 멜로우 오 드 퍼퓸 35ml
듀이 소피

첫 번째 향수는 듀이 소피다. 가장 인기가 많은 향인지 대부분의 매장에서 품절이었는데, 시향 해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향에서는 달달한 소다 향과 함께 섬유 유연제 향이 확 퍼진다. 향수라기보다는 섬유 유연제나 섬유 탈취제에서 날 것 같은 향에 가깝다.

탑 노트의 달달한 소다 뉘앙스는, 좀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캔디바 아이스크림의 파란색 부분 같은 소다 맛 향이다. 그리고 이 향이 가벼운 흰 꽃 향과 섞이면서 비누 혹은 섬유 유연제 같은 느낌을 준다. (바이레도의 블랑쉬에서도 비슷한 포인트를 찾을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탑 노트를 찾아보니 뮤게(은방울꽃)가 적혀 있었는데, 뮤게 특유의 시트러스하거나 그리너리한 느낌보다는 친숙하고 라이트한 흰 꽃 향에 가깝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꽃 향기가 점점 더 올라온다. 전반적으로 약간 코가 쨍한 비누 향이 나지만, 평소 비누 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다.

나에게는 이 향을 맡고나서 너무나 강력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스너글. 스너글 향을 좋아하지만 섬유 탈취제라서 피부에 직접 뿌릴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 제품은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옷에는 스너글을 뿌리고 피부에는 이 향수를 사용한다면? 그야말로 인간 섬유유연제 등극…!

잔향까지 향이 크게 변하지 않으면서 유지되는 편. 아무래도 이 제품이 가장 빠르게 품절된 이유는 다이소 뷰티의 주 구매층인 10대 후반~20대 초중반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향이라 그런 게 아닐까. 게다가 섬유 유연제 향은 블라인드로 구매해도 큰 실패가 없으니, 다이소 에이딕트 라인 중 가장 안전한(?) 향수라는 생각이 든다.


다이소 에이딕트 멜로우 오 드 퍼퓸 35ml
베베 피치

두 번째 향수 이름은 베베 피치. 이름에서 ‘아기아기한 복숭아 향’을 예상했지만… 첫 향에서는 다소 씁쓸한 향이 느껴졌다. 뭐랄까, 복숭아 맛 감기약 같은 느낌이었다. 다행인 건, 그 쌉싸래한 향은 금방 빠지고 복숭아 향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이다.복숭아도 종류가 많듯 복숭아 향도 참 종류가 많다. 베베 피치는 복숭아 맛 젤리나 마이츄 같은 데서 만나봤을 새콤달콤한 복숭아 향에 가깝다. 그리고 배경에는 투명한 플로럴 향이 깔려 있다. 보통 이런 프루티에 물기 어린 향이 매치되면 과즙 느낌이 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심플하게 복숭아 향과 꽃 향기가 섞여 있다는 정도로만 느껴졌다.

꽃향기 또한 텁텁하거나 짙은 뉘앙스가 아니라 가벼운 느낌이지만, 확산성이 좋은 대신 부드러운 뉘앙스는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방향제처럼 느껴질 지도. 그리고 나서 큰 트레일 변화 없이, 전체적인 향이 차분하게 가라 앉으면서 잔향에는 달달함만 남게 된다.

베이스 노트를 찾아보니 샌달우드가 적혀있던데, 나에겐 우디 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코스메틱 뉘앙스가 섞인 예쁘장한 머스크가 잔향의 주인공에 가까웠달까. 이름에 ‘피치’가 들어 있어서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블라인드 구매를 한 것 같던데. 과연 원했던 향이였을지… 후기가 궁금해지는 제품이다.


다이소 에이딕트 멜로우 오 드 퍼퓸 35ml
 말차 매그놀리아

세 번째 향수는 말차 매그놀리아다. 이름만 봤을 때 가장 궁금했던 향이었는데, 앞선 두 향수의 이름이 다소 직관적이었다면 이 제품은 좀 달랐기 때문이다. 말차와 매그놀리아를 왜, 어떻게 연결했을까? 말차 향은 어떻게 표현했을까? (+다이소에서 이게 먹힐 콘셉트인가?) 향을 맡기 전까지 질문이 퐁퐁 솟아났다.

첫 향에서는 쌉싸래하고 톤 다운된 그린 노트와 함께 청량하고 투명한 꽃 향기가 퍼진다. 그리고 곧바로 티(tea) 느낌의 향이 뒤섞인다. 이 부분에서 떠오른 향수가 있었는데, 바로 르 라보 떼누아 29다. (아쉽게도 떼누아 29 같은 향이 난다는 건 아니고.) 떼누아 29에서 홍차 혹은 위스키 같은 느낌을 내기 위해 사용된 특정 향료가 여기에서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약간 뽀얗고 탁한 느낌의 향이 흘러들어와 전체적인 구성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이 부분에서 말차의 담백하고 포근한 느낌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 같다. 짐작했던 것보다 향이 꽤 어른스러운 편이고, 호불호가 갈릴 부분도 많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다이소 에이딕트의 다른 향들보다 좀 더 특색이 있었거든.

잔향으로 넘어가면 중성적인 우디 향이 살짝 드러난다. 베이스 노트를 찾아보니 베티버가 적혀 있던데, 이 향이 세련된 느낌을 주는 포인트로 작용한다. 만약 중성적인 향수나 힙한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이소 에이딕트 향수 중에서 말차 매그놀리아가 가장 잘 맞을 것 같다.


다이소 에이딕트 멜로우 오 드 퍼퓸 35ml
블러리 페탈

네 번째 향수는 블러리 페탈이다. 자스민과 워터릴리 조합으로 구성되었다고 하지만, 실제 시향해보니 첫 향에서는 수박의 흰 부분에서 날 것 같은 시원하고 투명한 향과 흰 꽃 향이 뒤섞이며 느껴졌다. 촉촉하고 화사한 느낌의 꽃향기인데, 약간은 여성스러운 화장품 뉘앙스가 있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향이다.

특히 나에게는 자스민 향이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린한 느낌의 꽃향기가 더 강하게 다가와서 ‘신선한 꽃향기’를 표현한다고 받아들여졌다. 블러리 페탈을 맡으면 맡을 수록 떠오르는 익숙한 향수들이 있었는데, 바로 ‘자라(Zara) 향수’. 자라 매장에서 자주 맡아본 플로럴 향수들의 느낌과 꽤나 많이 닮아 있는 향이라 볼 수 있겠다.

시간이 지나면 촉촉한 물내음 더 올라오면서 꽃 향기 또한 강도가 세진다. 생각보다 발향력이 훌륭해서 마음에 들었지만 ‘화장품스러운 꽃향기’를 싫어하는 지인에게 구박을 받은 걸 보니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향은 맞는 것 같다. 잔향은 엘리자베스 아덴의 그린티와 비슷한 결로 투명한 연둣빛처럼 마무리 된다.

아무래도 MZ보다는 좀 더 성숙한 여성과 어울릴 법한 향이라, 다이소 에이딕트 향수 라인업에 들어오게 된 사연(?)이 무엇일지 궁금한 마음을 품게 하는 제품이었다.


다이소 에이딕트 멜로우 오 드 퍼퓸 35ml
뮤티드 우디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향수는 뮤티드 우디다. 이름에 ‘우디’가 들어있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혀 우디 향이 아니어서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제품이다. 후기를 찾아보면 다들 “부드러운 우디 향이에요.” “샌달우드 향이 너무 좋아요”라고 적혀있어서 진심으로 내가 잘못된 제품을 구매한 건가 고민에 휩싸였다.

일단 첫 향부터, 공식 홈페이지에 적힌 네롤리와 달리 나에게는 그리너리한 뉘앙스가 있는 장미 향이 메인으로 느껴졌다. 여기서 1차 당황.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 부드러운 질감과 달콤함이 더해지면서 피오니(작약)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공식 홈페이지에는 미들 노트에 패출리가 적혀있다! 여기서 2차 당황.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차분한 인디 핑크빛 작약 향기가 난다. 만약 장미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마음에 들 수 밖에 없는 향이기도 하다. 앞선 블러리 페탈보다 오히려 이 뮤티드 우디가 훨씬 호불호 덜 갈릴 플로럴 향수라는 생각이 드는데, 대체 왜 이런 페이크를 쓰셨죠…?!

베이스 노트에도 샌달우드가 적혀 있지만, 역시나 나에게는 우디향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앞선 꽃향기에 살짝 포근한 질감과 머스크 뉘앙스가 더해지면서 가라앉듯 마무리되는 스타일이다. 내 뒤통수를 너무 때려서 얼얼해질 정도지만, 향의 완성도만 보자면 뮤티드 우디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우디 향 아니니까 안심하고 사세요, 여러분(?).


사실 낮은 비용이라는 조건이 있기 때문에, 다이소 에이딕트 향수들의 향을 맡으면 처음에는 다소 매끄럽지 못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5천 원이라는 가격 안에서 귀여운 병도 만들고, 분사 잘 되는 스프레이도 만들고, 멀쩡한 패키지도 만들고, 향까지 잘 구성해서 완성했다는 것이…. 나로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 무한 박수가 절로 나왔다. 이런 재미있는 시도들이 더 많아지면, 향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선택권과 소소한 기쁨이 늘어나는 일 아닐까? 일단 나는 즐거웠다. 이 글을 본 여러분도 그 즐거움을 한 번 누려 보시길 바란다.

About Author
전아론

글쓰고 향 만드는 사람. 에세이스트, 프리랜서 에디터, 향수 브랜드 ahro의 조향사까지. 예술적 노가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