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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프라이드

얼마 전, 미국으로 출장갔을 때의 일이다. WWDC 2017 키노트가 끝난 뒤, 핸즈온 섹션에서 새로운 아이패드 프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얼마 전, 미국으로 출장갔을 때의 일이다. WWDC 2017 키노트가 끝난 뒤, 핸즈온…

2017. 06. 28

얼마 전, 미국으로 출장갔을 때의 일이다. WWDC 2017 키노트가 끝난 뒤, 핸즈온 섹션에서 새로운 아이패드 프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이패드 프로도 좋았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좀 더 알록달록한 물건이었다. 몇몇 애플 스텝들의 손목에 감겨있는 무지갯빛 애플 워치 밴드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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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에 씬스틸러]

사족이지만 애플 스텝들은 정말 쾌활했다. 미국인 특유의 붙임성인지 눈만 마주쳐도 마구마구 반갑게 인사하고, 마구마구 칭찬해준다. 훤칠한 키의 스텝중 하나가 인사말을 건네며 “오늘 네 의상 참 좋다”라고 말해주더라. 영어가 짧은 나는 “새로 산 옷인데 엄청 불편하지만 디자인은 예쁘지? 정말 고마워.”라고 대답하는 대신 “땡큐…”라며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물어볼 건 물어 봐야지. 더듬 거리며 물어봤다. “그 워치 밴드는 뭐야?” 그가 자부심이 묻어나는 미소로 답했다. “이건 프라이드(Pride)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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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상상한 그 의미가 맞았다.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그 컬러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에 있음을 상징하는 밴드였다. 이미 새로 나온 우븐 나일론 밴드를 차고 있었지만, 프라이드도 갖고 싶었다. 당장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내가 이 브랜드를 좋아하는 이유가 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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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가 LGBT를 비롯한 다양성의 상징이 된 건 꽤 오래된 일이다. 1978년, 미국의 성 소수자 인권운동가이자 화가였던 길버트 베이커가 무지개 깃발을 만들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초창기에는 무려 8가지 색을 사용했다더라. 온갖 색이 다 담겨있는 무지개 색깔로 성적 다양성을 대변하려 한 만큼, 분홍색까지 포함한 화려한 깃발이었다. 지금은 6색 무지개 깃발을 사용한다. 무지개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그 존재감 만큼이나 컬러풀한 이야기를 품게 됐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한 가지 컬러로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인생을 대변하기 시작했으니까.

지난해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LGBT를 위한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렸다. 애플은 이때 무지개 컬러의 우븐 나일론 밴드를 제작해 직원들에게 선물했다. 일종의 사내 캠페인이자 한정판 아이템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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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지나고 드디어 이 밴드가 프라이드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출시됐다. 의미도 좋지만 난 원래 무지개를 좋아한다. 예쁘니까. 우븐 나일론은 보기 보다 섬세한 소재다. 500가닥 이상의 실을 일정한 방식으로 엮어 컬러풀한 패턴을 완성하는 태피스트리 직물이다. 가볍고 견고하며, 다른 워치 밴드에 비해 가격도 합리적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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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목에도 무지개가 떴다. 세상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고, 우리는 때로 서로의 컬러가 무엇인지 짐작하지 못한다. 항상 한 가지 컬러만 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모두 무지갯빛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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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