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 유정이다. 아이폰, 아이패드, 에어팟, 맥북을 매일같이 사용하는 애플 생태계의 성실한 일원이지만, 애플 워치만은 구매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시계에 바라는 기능이 두 가지뿐이기 때문이다. 첫째, 시간을 알려줄 것. 둘째, 패션 아이템으로서 손목에 자리할 것. 이 정도면 일반 손목시계로도 충분하다.
중학생 때부터 저렴한 시계를 여러 개 사두고 그날의 옷과 기분에 따라 바꿔 차곤 했다. 양말 색깔에 맞춰 시계 스트랩을 고르는 건 나만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직장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옷에 맞춰 시계 고르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디자인과 가성비.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충족하는 브랜드가 바로 카시오다.
빌 게이츠, 축구선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모델 주우재, 아나운서 손석희, 그리고 트와이스의 채영.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카시오 시계를 착용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카시오의 가장 큰 매력이 여기서 나온다. 카시오는 누구에게나 잘 어울린다. 캐주얼부터 포멀한 룩까지 소화하는 다양한 디자인 덕분에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부터 사회 초년생, 중년 그 이상까지 어느 누가 착용해도 어색하지 않다.
오늘은 Y2K부터 클래식한 디자인까지, 다양한 매력을 가진 카시오 시계 5종을 소개하려 한다. 가격대는 3만 원대부터 20만 원대까지. ‘시알못’인 내 눈에 그저 예뻐 보이는 아이템으로 골라봤으니, 편하게 읽어주길 바란다.
‘애플워치 맛 카시오’
애플워치 디자인은 마음에 드는데, 스마트한 기능은 원치 않는 사람이라면 이 시계를 주목하자. 둥근 사각형으로 마무리된 모서리와 미니멀한 디자인에서 ‘애플워치 감성’이 물씬 느껴진다. 다이얼을 들여다보면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시, 분, 초뿐만 아니라 날짜와 요일, 그리고 ‘문페이즈’까지 표시한다.
하단에 배치된 ‘문페이즈’는 현재 달의 위상을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기능이다. 처음에는 음력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였지만 현대에는 주로 미관상 목적으로 사용된다. 무심코 시간을 확인하다 문페이즈가 보름달을 가리킬 때,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 짧은 낭만은 덤이다.
밴드는 메탈, 검은 가죽, 갈색 가죽까지 세 종류가 있고, 다이얼은 검은색, 파란색, 흰색, 연보라 등으로 선택지가 다양하다.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은 메탈 밴드에 흰색 다이얼의 조합(MTP-M305D-7A2V). 케이스와 스트랩이 모두 스테인리스 스틸이라 통일감이 있고, 어떤 옷에 매치해도 무난하게 어우러지는 도시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이다.
나의 원픽은 검은 가죽 밴드에 흰색 다이얼의 조합(MTP-M305L-7AV). 블랙 앤 화이트 조합이 주는 안정감과 단정한 느낌이 좋다. 좀 더 클래식한 느낌을 원한다면 빈티지한 느낌이 나는 따뜻한 브라운 컬러 밴드도 매력적이다.
가격은 16-17만 원대. 카시오치고는 비싼 편이지만 세련된 디자인과 활용도, 문페이즈 기능까지 갖춘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합리적이다.
주요 스펙
- 케이스 사이즈 (H × W × D) : 44.5 × 34 × 9.3 mm
- 무게 : 116g
- 5기압 방수
- 정확도 : 평균 월 오차 ±20초
- 배터리 수명 : 약 3년
‘Y2K 맛 카시오’
뉴진스가 하면 모두 트렌드가 된다. ‘Ditto’로 쏘아 올린 빈티지 캠코더 열풍부터 스쿠비두 매듭 키링, 일본 시티팝, ‘우라하라’ 패션까지. 뉴진스가 유행시킨 수많은 아이템 중에는 시계도 있다. 바로 나이키의 트라이엑스 시리즈다.
나이키 트라이엑스 시계는 2000년대 중반에 러닝용으로 출시된 디지털시계다. Y2K 트렌드와 함께 소소한 관심을 받다가, 올해 5월 ‘How sweet’ 응원법 영상에 뉴진스 멤버들이 차고 나오면서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트라이엑스 시계는 더 이상 출시되지 않기 때문에 중고로만 구할 수 있는데, 10만 원대는 기본이고 20만 원대에 거래되는 경우도 많다. 유행템이 분명해 보이는 중고 시계에 선뜻 지불하기 어려운 금액일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느낌은 내보고 싶다면, 카시오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카시오의 LW-200은 트라이엑스와 마찬가지로 2000년대 중반에 출시된 디지털시계다. 동시대에 출시되어 비슷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만큼 디자인도 비슷한 감성을 공유한다. 큼직하고 직관적인 숫자 표시와 LED 백라이트 기능, 스크린을 감싸는 두툼한 금속 느낌의 베젤까지 닮은 점이 많다.
무난한 블랙부터 좀 더 과감하지만 확실한 포인트가 되어주는 핑크, 레드, 블루 등 다양한 컬러가 있다. 강렬한 컬러를 선택하면 장난감 시계 같은 귀여운 느낌이 짙어진다. 어른이 차기에는 다소 유치해 보인다면, 그게 포인트다. 유치찬란한 게 아주 깜찍한 맛이 있다. 가방에 키링 달기를 좋아하는 어른이라면 이 정도 귀여움에 굴복하지 말자. 고프코어룩이나 캐주얼에 두루 잘 어울릴 거다. 가격은 4만 5,000원으로 트라이엑스 중고 거래가의 반의반에 불과하다. 공식 몰, 무신사 등에서 어렵지 않게 새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주요 스펙
- 케이스 사이즈(HxWxD) : 37.9 × 34.9 × 11.9mm
- 무게 : 20g
- 5기압 방수
- 정확도 : 평균 월오차 ± 20초
- 배터리 수명 : 약 10년
- 듀얼타임
- 스톱워치 (1/100초, 24시간 적산계, 스플릿 기능 포함)
- 알람 기능
- LED 라이트
‘동묘 맛 카시오’
앞선 시계가 2000년대를 떠오르게 했다면, 이번에는 더 과거로 돌아가 보자. 한눈에 레트로한 감성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디자인이다. 얼핏 보면 할아버지 벽장에 있을 법한 오래된 시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데, ‘개쩐다’ 혹은 ‘진짜 촌스럽다’는 반응이다. 이 시계는 1978년도 처음 출시된 카시오 52 QS-14B를 복각한 모델이다. 50년 가까이 된 디자인이니 취향이 갈릴 만도 하다.
“고도로 발달한 패션은 동묘 할아버지와 다름이 없다.”는 말이 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Kiko Kostadinov)는 동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세계 최고의 거리’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할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이 시계야말로 진정한 패셔너블의 극치가 아닐까.
전면부의 직관적인 네 개의 버튼 등 오리지널 모델의 자잘한 디테일을 충실히 재현했다. 케이스부터 브레이슬릿까지, 눈에 보이는 디자인은 거의 그대로다.
가장 큰 변화는 소재다. 1978년도에 출시된 오리지널 모델은 앞면에만 스틸을 덧대고, 나머지는 플라스틱에 크롬 도금을 한 레진 소재를 사용했다. 카시오의 빈티지 라인 시계들은 대부분 도금된 레진을 사용하는데, 이 복각판은 전체적으로 스테인리스 스틸을 적용해 확실한 차별점을 뒀다. 레진은 저렴하고 가볍지만 내구성이 약하다. 반면 스테인리스 스틸은 내구성이 강하고, 자연스러운 광택감과 묵직함으로 더욱 고급스러워 보인다.
백라이트에도 디테일이 살아있다. 실버와 골드에는 빈티지한 주황빛의 불이 들어오는데, 복각을 통해 새롭게 출시한 블랙 컬러에는 초록빛 라이트를 적용했다. 오리지널 모델이 출시된 70년대 흔히 사용되던 모노크롬 모니터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가격은 실버 모델이 21만 5,000원, 블랙과 골드 모델은 30만 원. 1~2만 원대 시계가 즐비한 카시오에서 10만 원 이상의 제품을 자꾸 추천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레트로를 흉내만 낸 것이 아닌, 진정한 레트로를 ‘업그레이드’해 복각한 모델이라는 점에 가산점을 주고 싶은 시계다.
주요 스펙
- 케이스 사이즈 (H × W × D) : 40 × 35 × 9.1 mm
- 무게 : 90g
- 생활방수
- 정확도 : 평균 월 오차 ± 30초
- 배터리 수명 : 약 3년
- 스톱워치(1/10초)
- 알람 기능
- LED 백라이트
‘까르띠에 맛 카시오’
완연한 가을이다. 이제부터는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질 일만 남았다. 이런 계절에는 메탈 시계보다 가죽 시계에 눈길이 간다. 추운 날씨에 메탈 시계를 차면 손목이 시리기도 하고, 부슬부슬한 겨울 소재 옷과 묘하게 따로 놀아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계는 명품 시계의 대명사, 까르띠에 탱크 컬렉션을 떠올리게 한다. 곡선 없이 직선미를 강조한 사각 프레임과 클래식함을 더해주는 로마 숫자 인덱스가 특징이다. 작은 다이얼과 얇은 스트랩 덕분에 면접이나 결혼식 같은 격식 있는 자리에서도 무난하게 착용할 수 있다. 여름철에는 뱅글이나 비즈 팔찌를 즐겨 찾는다면, 옷차림이 단조로워지는 겨울철에는 이 가죽 시계를 액세서리처럼 활용하기 좋다. 3만 원대의 가격이라 가죽 시계 입문용으로 추천한다.
어린 시절 상상했던 직장인의 모습 속에서 나는 언제나 이런 시계를 차고 있었다. 빳빳하게 다린 셔츠에 슬랙스, 자켓을 입고 어째선지 하이힐까지 신은 모습. 그런데 지금 사무실에서 이 글을 쓰는 나는 가방이 없어도 될 만큼 주머니가 많이 달린 카고 팬츠를 입고 있다.
주요 스펙
- 케이스 사이즈 (L × W × D) : 31 × 22 × 7.5 mm
- 무게 : 22g
- 방수
- 정확도 : 개월당 ±20초
- 배터리 수명 : 약 3년
‘투박한 맛 카시오’
앞서 소개한 시계가 니트나 롱코트 같은 단정한 겨울 코디와 어울린다면, 이번에는 투박한데 멋스러운 시계 하나 추천한다. 깔끔하고 스포티한 디자인이라, 힘주어 꾸민 느낌을 주기 싫을 때 오히려 힘을 뺀 듯한 코디를 연출할 수 있다. 가을에는 큼직한 실루엣의 야상이나 항공 점퍼와, 여름에는 널널한 카고 팬츠와 매치하면 좋겠다.
이 시계는 ‘군인 시계’, ‘서핑 시계’로도 유명하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에 37g의 가벼운 무게, 그리고 각종 편리한 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후기를 살펴보면 “정말 튼튼하다”는 평도 많다.
알람 기능을 기본 알람, 5분마다 반복되는 스누즈 알람, 정시마다 짧게 울리는 시보 알람까지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고, 스톱워치 기능도 지원한다. 배터리 수명은 약 10년. 방수가 무려 100m까지 가능해 웬만한 수상 스포츠를 할 때 무리 없이 착용할 수 있다. 가격은 4만 2,000원으로, 가성비가 뛰어난 것도 인기 요소 중 하나다. 2007년에 처음 출시된 제품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디자인이 출시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 올해 2월 새롭게 출시된 올블랙과 브라운 컬러가 특히 예뻐서 추천한다.
주요 스펙
- 케이스 사이즈 (L × W × H) : 44.2 × 36.8 × 13.4 mm
- 무게 : 37g
- 100m 방수
- 정확도: 개월당 ±30초
- 배터리 수명 : 약 10년
- 듀얼타임
- 스톱워치(1/100초, 스플릿 기능 포함)
- LED 백라이트
- 알람 기능
- 전자동 캘린더
About Author
손유정
98년생 막내 에디터. 디에디트 다니고 하고 싶은 거 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