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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찌빠 빼고 다 물어봤다, 최재림 인터뷰

복화술 얘기도 안 꺼냈습니다
복화술 얘기도 안 꺼냈습니다

2024. 09. 13

배우 최재림을 인터뷰했다고 하니 첫 번째 반응이 “아, 그 묵찌빠로 유학 다녀오신 분?” 두 번째 반응이 “아, 복화술 잘하는 분?”입니다. 신기합니다. 배우 최재림은 오랫동안 공연계에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자타공인 정상급 뮤지컬 배우니까요. 몇 개월 사이에 그의 대표작이 묵찌빠와 복화술이 되어버릴 때 저는 SNS의 강력함을 느낍니다. 혹시나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이런 현상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입덕의 계기가 되니까 좋은 거죠.

참고로 묵찌빠로 유학을 다녀왔다고 말하는 장면은 오페라 <리타>, 복화술은 뮤지컬 <시카고>의 한 장면입니다. 몇 년 전에 한 뮤덕 지인에게 “오, 시카고가 올해 돌아온다는데요?”라고 말하니 그의 대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너무 자주 돌아오는데, 그걸 돌아온다고 말해도 되나 모르겠어요.” 맞습니다. <시카고>는 분명 좋은 작품이지만 이렇게까지 예매가 힘들 정도로 핫해진 게 의외긴 하죠. 서론이 길었습니다. 오늘은 묵찌빠의 최재림이 아니라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최재림으로 만났습니다. 한 줄 평부터 짧게 해볼까요. 지금 꼭 봐야 할 한 가지 뮤지컬을 꼽는다면 무조건 <하데스타운>입니다. 막 내리기 전에 꼭 보세요.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뮤지컬입니다. 다들 이 이야기를 잘 아실 겁니다. 죽은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해 지옥으로 간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되살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데 성공하지만,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지상으로 나가기 전까지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 오르페우스는 마지막에 뒤를 돌아보고 결국 실패합니다. 그리스 신화를 미국 대공황 시대를 연상케 하는 배경으로 바꾼 게 <하데스타운>입니다. 배경이 바뀌어도 결론은 똑같습니다. 결국 오르페우스가 실패하는 이야기. 그런데 이상하게 슬프지 않습니다. <하데스타운>은 꽃이 피고 지고, 봄이 오고 겨울이 오는 순환에 대해서 말하거든요. 좀 더 자세한 건 인터뷰를 통해서 확인해 봅시다. 오늘의 인터뷰가 실패에 좌절한 분들에게 조금의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냥 틀어놓고 신경 끌 수 있는 영상을 주로 봐요. ASMR이라거나 다큐 아니면, 게임 쪽으로요. 예전에는 다양하게 봤는데, 갈수록 종류가 좀 줄어드는 것 같네요. 하나만 고르자면 고전 게임 많이 보는 거 같아요.

원래는 좋아했죠. 좋아했는데, 이제 어른이 되니까 만화책이나 게임을 마음껏 즐길 수 있잖아요. 어릴 때는 돈이 없어서 못 했던 것들인데… 그러니까 재미없더라구요. 이제는 직접 하진 않고 영상을 보는 것에서만 끝내고 있어요.

네 좋습니다.

음식이요? 이게 참 대답하려니 애매해요. 저는 집밥을 좋아하기는 해요. 어머니가 요리를 잘하셔서 그중에서도 몇 가지 좋아하는 게 있는데, 항상 언급하는 건 카레요. 어머니가 직접 만드는 카레. 그다음이 김치 국밥이라는 건데, 아실지 모르겠네요.

그렇죠. 사실 김칫국이죠. 평일에 김칫국을 끓여서 먹다가 주말쯤 되면 요리해먹기 귀찮잖아요. 그럼 거기에 밥을 넣고 끓여요. 그래서 국밥으로 만드는 거죠. 그것도 어릴 때 집에서 많이 먹었어요.

아, 이 질문은 제가 <시카고> 연습할 때 건형이 형이 “야, 재림아 살면서 딱 하나만 먹을 수 있으면 뭘 먹을래?”라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때도 카레를 골랐던 것 같은데… 돈가스 카레였나 그랬었고, 건형이 형은 제육덮밥이라고 했어요. 근데 사실 저는 꼭 카레일 필요는 없고 엄마가 가지고 오는 음식이면 다 좋을 것 같아요. 메뉴는 상관 없어요. 음식이 저한테는 그런 거예요. 취향이라기보다는 향수에 가까워요. 어차피 배고프면 입에 들어가면 다 맛있으니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어릴 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을 말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저에겐 가장 특별한 음식이니까.

네, 음악 많이 들었었습니다.

지금은 듣기 위해서 듣진 않아요. 운전할 때 배경으로 듣는 정도예요. 대학교 2학년 때까지는 음악이 하나의 즐거움이었는데, 지금은 음악이 워낙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직업이다 보니 즐기면서 듣는 게 안되더라고요. 음악을 들으면서 판단하게 돼요. 소리를 어떻게 내는지 분석하게 되고. 노래를 되게 잘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흉내 내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고. 이런 생각을 해서 즐기기 쉽지 않아요.

그건 없어요. 좋아하는 뮤지션은 아니고, 최근에 라디오에서 클래식 채널 틀어놓고 운전하는데, 성악곡이 나오면 반갑고 그 정도예요.

네, 쇼핑은 별로 안 좋아해요. 물건은 뭐 거의 안 사죠. 요리하기 위해서 식재료를 사는 것 말고는. 아, 최근에 쓸데없는 거 하나 사긴 했어요. 칼 가는 거.

네 근데 아직 써보진 않았어요. 그리고 마테차 아시죠? 마테차에 전용컵이랑 빨대 있는 거 아세요? 보통 차는 찻잎을 우려서 덜어내서 마시잖아요. 근데 마테차는 찻잎이 컵 안에 있는 상태에서 뜨거운 물을 부어서 리필하는 방식이거든요. 그래서 일반 빨대로 마시면 잎이 다 들어오니까 빨대에 거름망처럼 걸러주는 장치가 있어요. 그걸 샀습니다. 2만 6,000원 정도 했어요.

거의 쿠팡이죠. 최근에는 오아시스라는 앱으로 식재료를 사기는 했는데, 한동안 며칠 반짝 사다가 갑자기 귀찮아져서 안 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헬스죠. 지금 웨이트 시작한 지 5년 정도 됐는데요. 5년을 했다고 하기엔 부끄러운 몸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네 번에서 다섯 번 정도는 나가요. 요즘에는 공연 스케줄이 많아져서 두 번이나 세 번 정도 나가고 있고요.

이제… 생각을 하죠. 핸드폰을 켜고, 핸드폰을 보면서 생각을 하는 거죠. 유튜브 들어가서 쇼츠 보고.

네, 뭐 모든 인생이 똑같은 거 아니겠어요? 눈을 떴는데 급한 일이 없고 외출하기까지 3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면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침대에만 누워 있는 것 같고요.

그런 맥락이라면 저는 일어나지 않는 걸 가장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알람을 신경 쓰지 않고 자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걸 하고 싶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할 거예요. 언제까지 이렇게 쓰레기처럼, 패배자처럼 시간 낭비하며 누워 있을 거냐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일어나서 뭔가를 해 먹겠죠? 아니면 운동을 가거나. 그렇게 스스로와 싸우는 것 같아요.

일단 배우에게는 작품에 대한 기억이 되게 좋다는 게 첫 번째일 것 같고요. 그다음은 그만큼 작품이 좋다는 뜻, 세 번째는 제작사에서 다시 부를 만큼 잘했다는 뜻일 거예요. 1번과 2번이 아무리 좋았어도 3번에서 어긋나면 참여를 할 수가 없겠죠. 안 부를 거니까. 하고 싶은데 실제로 할 수 있다는 건 되게 축복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재연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1년 반에서 2년 정도가 걸리는데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을 수 있잖아요. 더 실력 좋은 배우가 나타날 수 있고, 최재림이라는 배우의 시간이 지나가 버릴 수도 있고, 피치 못한 사정으로 참여를 못할 수도 있고요. 그만큼 잘 맞아떨어졌다는 얘기니까 감사한 거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당연히 들어요. 사실 같은 작품을 여러 번 하게 되는 경우가 몇 번씩 생기는데,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모든 배우들이 해요.

좀 전에 말씀드린 답이랑 연결이 될 것 같아요. 어떤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배우로서 욕심을 부릴 것이냐, 작품의 향상을 위한 욕심을 부릴 것이냐,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개인의 욕심으로 시작을 하게 돼요. 같은 작품에 들어가면 지난번과는 다르게 하고 싶거든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더 잘하고 싶으니까. 두 욕심 사이에서 줄을 얼마나 잘 타느냐에 따라 관객분들이나 제작진에서 봤을 때 이 배우가 성장했는지가 보여요.

너무 갇혀 있으려고 하지 말고 조금 풀어주자는 마음으로 연습을 시작했고, 스태프들의 반응을 많이 살폈죠. 연출님이라든지 음악감독님이라든지. 내 선택이 맞는지 아닌지 항상 반응을 살펴요. 너무 과한 건 아닌지 좋았는지를 연습이 끝나면 듣게 되는데, 연습하면서 그게 쌓여가죠. 그게 쌓이면 과하지 않도록 절제하면서 선을 지키게 되고 그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좋은 모습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렇죠. 아주 많이 다르죠. 근데 초연했을 때는 저는 캐릭터 잡기가 어려웠어요. 헤르메스는 극을 해설해 주는 나레이터 역할이잖아요. 사건을 실제로 같이 겪는데, 가끔씩 빠져나와서 극을 진행시켜줘야 하니까 내가 어디까지 감정이입을 해야 할지 정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초연 때는 인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너무 개입하지 않고 감정 교류를 하기보다는 관찰자의 입장으로 임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재연을 하면서는 조금 달라졌어요. 내가 이들(인간들)의 이야기를 바라볼 때 아무것도 안 느끼려고 하진 말고, 관객의 입장에서 얘기를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요즘 들어서 좋아하는 장면이 생겼어요. 하데스가 에우리디케를 다시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말하고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을 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굳게 마음을 다지는 장면이 있는데, 마치 결혼식 같은 느낌이더라고요. 그때 제가 두 사람의 중간에 서는데 그 삼각형 구도가 결혼식 같고, 제가 주례를 서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더 애착이 생기더라고요. 근데 우리는 엔딩을 아니까, 되게 슬픈 결혼식인 거죠. 기분이 희한하더라고요.

그런 것 같아요. 사실 되게 많이 덜어낸 장면이잖아요. 크게 효과음도 없고 음악도 없고, 조명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말씀하신 것처럼 모두가 아는 결말을 어떻게 표현해야 두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을 것이고, 결국 다 덜어낸 게 아닐까 싶어요. 덜어낸 곳에 관객의 마음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었을지.

사실 뮤지컬에서 하는 얘기들이 결국에는 비슷해요. 두세 가지의 시나리오를 두고 다른 소재와 다른 인물, 다른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사랑 얘기, 실패한 사랑 얘기, 성공한 사랑 얘기, 권선징악, 아니면 결국 가장 중요한 건 행복이다, 아니면 아무리 큰 절망이 있어도 일어섭시다. <하데스타운>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아름다운 사랑이 있었지만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성공할 때까지 다시 할 겁니다. 인생은 힘듭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다시 일어나고 살아가면 되니까요. 이런 얘기 같아요. 그럼 관객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실패할 거 아는데 노래를 다시 불러서 뭐해’. 하지만 시도해서 우리가 손해 볼 건 없다는 거죠. 어차피 안 될 거라고 해도 도전하는 행위 자체에서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우린 슬펐지만 슬펐기 때문에 이 슬픔이 끝나고 난 뒤에 더 큰 행복이 있지 않을까 작은 위로를 건네는 거죠.

<하데스타운>에는 그런 메시지가 있죠. 결국 균형인 건데, 오르페우스도 이상만 찾다 보니까 현실을 생각하는 에우리티케의 소중함을 잊는 거고.

배우란 직업은 실패의 연속이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오디션을 보고 붙어야 하는데, 열 번 오디션을 보면 아홉 번은 떨어지니까요. 기본적으로 실패가 깔려 있는 직업이에요. 공연에서도 매번 모든 무대의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거든요. 연출과 작품이 요구하는 감정을 매번 똑같이 완벽하게 관객에게 전달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아요. 연기를 정확하게 했더라도 전달이 안 될 수 있고, 매번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모든 공연은 항상 실패를 하죠. 하지만 완벽하게 해낸 공연이 있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재미없는 공연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프닝을 보고 밝고 행복한 작품일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어둡냐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 작품은 어둡기 때문에 밝습니다. 슬픈 만큼 마지막에는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고, 다양한 입장을 가진 캐릭터가 있는 작품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나름대로의 공감을 찾을 수 있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아픔, 공허함 같은 감정을 충분히 해소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하실 수 있는 작품이니까 많이 관심 가져주세요. 그리고 뮤지컬인 만큼 노래가 되게 좋습니다. 신나는 넘버들이 많고요.

오프닝에 나오는 ‘로드 투 헬(Road to Hell)’을 제일 좋아하고, 오르페우스의 상징적인 넘버 ‘에픽 III(Epic III)’ 좋아합니다.

맞아요. <하데스타운> 가사가 조금 시적이에요. 친절하게 설명하는 가사는 아니에요. 그래서 저희가 MD로 출시한 가사집이 있는데…(호탕하게 웃음) 만약에 구매하시고 읽어보시면 ‘아, 이게 이런 가사였어?’ ‘이런 뜻이었구나!’ 이렇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