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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필름 X100VI 리뷰: 인스타에서 핫한 카메라의 진실

요즘 없어서 못 쓴다는 카메라를 써봤습니다
요즘 없어서 못 쓴다는 카메라를 써봤습니다

2024. 04. 16

안녕하세요, 디에디트의 숨은 사진광(?) 이주형입니다. 지난달에 신상 기사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제품이 바로 후지필름의 X100VI였습니다. 전 세대인 X100V가 틱톡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막 찍어도 스마트폰 카메라보다 잘 나오는 카메라’라는 홍보 아닌 홍보 덕분에 출시된 지 3년이 된 카메라가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었죠. 역시나 이번 X100VI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공식 예약판매를 시작한 지 몇 분만에 품절되기도 했고, 한국에서도 지금 X100VI를 구하려면 정가의 두 배에 가까운 웃돈을 줘야 할 정도입니다.

X100VI가 이 정도의 주목을 받을 만한 카메라인지 궁금해졌습니다. 2주 동안 써보면서 나름대로 그 답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물론 늘 그렇듯이, 완벽하게 맞다 아니다라고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죠.

x100vi

최근이 되어서야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지만, X100VI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리즈의 6세대입니다. 첫 X100은 무려 12년 전인 2011년에 출시되었습니다. 물론 세세한 디자인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전반적인 디자인의 레이아웃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습니다. 소니 RX1RII나 라이카의 Q3와 비슷하게 단렌즈가 붙박이로 달려있는 일종의 콤팩트 카메라입니다. 렌즈는 풀프레임 환산 35mm인 23mm F2.0 렌즈로, RX1RII와 비슷한 초점 거리이고, 발군의 화질을 발휘합니다.

X100V가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은 건 그냥 JPEG로 찍어도 잘 나온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저는 평소에 무조건 RAW 파일로 찍은 후 보정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보정하는 과정도 사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이번 리뷰를 위해서 JPEG로 설정해 놓고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1/500s, F7.1, ISO 250

후지필름 카메라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바로 필름 시뮬레이션이라는 기능입니다. 후지필름은 필름도 직접 제조해서 팔았던 회사인데, 필름 시뮬레이션은 자사의 필름 느낌을 이미지 프로파일로 구현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X100VI는 총 20가지의 필름 시뮬레이션을 제공합니다. 디지털의 정확한 색감을 담은 시뮬레이션도 있고, 옛날 필름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시뮬레이션도 있습니다.

다른 카메라 제조사들도 JPEG로 사진을 찍을 때 색감을 정해줄 수 있는 프로파일 옵션이 있긴 하지만, 필름 시뮬레이션은 거의 스마트폰 필터 앱 수준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물론 RAW로 촬영한 후 보정을 통해서 이 정도의 색감 보정을 하는 것이 가능하고 라이트룸 프리셋을 구매해서 사용할 수 있기도 하지만, JPEG 촬영 단계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보정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지는 초보 사진가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저는 이중 특히 Velvia와 Acros 흑백, 그리고 클래식 네거티브 등을 가장 많이 사용했습니다. 여기에 원하면 직접 커스텀으로 필름 시뮬레이션을 만드는 것도 가능한데, 후지필름 카메라 사용자들 사이에서 코닥과 같은 타사 필름의 느낌까지 살린 다양한 커스텀 시뮬레이션 공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에서는 이걸 ‘필름 시뮬레이션 레시피’라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필름 시뮬레이션 레시피들을 모아둔 앱도 있다고 하더군요.

RAW로 촬영하면 라이트룸에서 필름 시뮬레이션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RAW로 촬영하는 걸 선호하는 분들을 위해 JPEG 뿐만 아니라 RAW로 촬영했을 때도 필름 시뮬레이션을 사용할 수 있고, 카메라 프로파일에 내장돼 있어 라이트룸과 같은 보정 앱에서 원하는 시뮬레이션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RAW에서의 필름 시뮬레이션은 최종 보정이라기보단 보정의 좋은 출발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후지필름 카메라가 독특한 또 다른 부분은 바로 조작계입니다. ‘PASM’ 방식이라고 하는, 모드 다이얼이 주가 된 지금의 디지털 카메라들과 다르게 필름 카메라 시절을 연상하기 때문이죠. 사실 이건 후지필름이 전반적으로 카메라를 설계하는 방식과 어느 정도 맞물려 있습니다. 특히 위에 셔터 속도와 감도(ISO), 그리고 노출 보정 전용 다이얼이 있는 것, 그리고 렌즈에 조리개 조작 다이얼이 있는 것 모두 자동 노출계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던 과거의 카메라들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인데, X100VI는 그때의 다이얼들을 재현했습니다. 사진을 찍는 맛을 위해서죠. 물론 원한다면 이 다이얼들을 자동 모드로 설정해두는 것도 가능하지만, X100VI의 디자인이 뭘 노리고 있는지는 확실해 보입니다. 필름 때부터 사진을 찍었던 분들에게는 향수를 불어일으킬 수 있는 요소죠. 카메라 초보에게는 자칫 적응하기 힘든 설계일 수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사진을 찍는 법을 제대로 배우기에는 좋은 레이아웃이라는 생각입니다.

저 좁은 공간에 다이얼이 두 개나 들어가 있어서 조작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디지털 카메라에 익숙한 독자분들이라면 특이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파인더인데, RX1RII나 Q3처럼 전자식 뷰파인더(EVF)로도 활용하다가, 원하면 광학식 뷰파인더(OVF)로 바꿔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후지필름에서는 하이브리드 뷰파인더라고 부르죠.

처음에는 OVF로 촬영하는 것이 상당히 이질감이 들었습니다. SLR 카메라의 OVF나 센서가 보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EVF와 다르게 렌즈를 통해 보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아서 제가 의도했던 구도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도 하이브리드 뷰파인더라는 이름에 걸맞게 단순히 화상만 보는 것이 아닌, 간단한 촬영 정보와 초점 거리에 따라서 구도가 어느 정도로 잡힌다는 가이드를 자동차의 헤드업 디스플레이처럼 투사해 줘서 저 같은 OVF 초보자도 아예 접근이 불가능하진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좀 더 사진을 찍는 그 행위에 집중하고 싶을 때, OVF를 켰습니다. (OVF와 EVF 전환을 담당하는 전용 스위치가 카메라 앞쪽에 달려 있어서 빠른 전환이 가능합니다) 다만 몇 가지 초점 추적 기능이나 피사체의 배치를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3D 수준기 등의 몇 가지 기능을 OVF에서는 쓰지 못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실제로 사진이 어떻게 보일지를 정확히 가늠하거나 빠르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 순간에는 EVF가 더 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1/1400s, F2.8, ISO 250

X100VI로 촬영하면서 느낀 점은, 확실히 제가 이전에 썼던 다른 어떤 카메라들보다 보정을 거치지 않은 JPEG에서 만족스러울 만한 결과물을 낸다는 점입니다. X100VI에 들어간 화상처리 프로세서가 콤팩트 카메라치고는 상당한 성능을 발휘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화상처리 프로세서는 주로 센서가 읽은 데이터값(이 값을 그대로 저장하면 RAW 파일이 됩니다)을 해석해서 JPEG로 압축하는 일을 하는데, 위에 얘기한 필름 시뮬레이션뿐만 아니라 다양한 후처리 과정을 카메라 안에서 처리합니다. 그중에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서 HDR 사진으로 합치는 모드도 있고, 내부 후처리를 통해 어두운 부분의 밝기를 보정하여 저장하기도 합니다.

1/34s, F4.5, ISO 800

이번에 써본 X100VI는 후지필름에 대한 편견을 상당 부분 해소해 준 카메라였습니다. 사실 풀프레임 센서보다 더 작은 센서를 쓰기도 하고, 소셜 미디어에서 하도 화제를 몰고 다니는 카메라다 보니 약간의 반발 심리가 작용하기도 했었거든요. 하지만 실제로 사진을 찍어보니 왜 사랑받는지 알 수 있겠더군요.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결과물의 느낌도 비슷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아이폰 아니면 갤럭시를 쓰고 있고, 그 둘마저 서로 사진을 처리하는 방식이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나만의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후지필름의 필름 시뮬레이션이 절묘한 대안을 제공해 준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제가 X100VI를 추천할까요? X100VI 자체는 너무 좋은 카메라고, 저도 사용하면서 사진을 찍는 행위에 대해 다시금 큰 재미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유행하는 카메라라서 사려고 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X100VI는 사진에 진지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분들을 위한 카메라입니다. 조작계나 단렌즈 구성 등을 고려했을 때 그냥 막 찍기보다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생각하고 찍게 만드는 그런 카메라입니다. 물론 사진에 관심이 생기고, 본격적 취미로 만들어보고 싶은 분들이 입문하기에는 딱 좋기는 하지만, 그러기에는 209만 원이라는 가격이 발목을 잡습니다. 도리어 이런 용도로는 구형 X100 시리즈 카메라를 중고로 살펴보는 것도 좋을 거 같네요. (직전 모델인 X100V는 여전히 중고값이 좀 높긴 합니다.)

후지필름 XT-5

저라면 X100VI와 후지필름의 다른 미러리스 카메라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지난번 a7CR 리뷰를 통해 렌즈 교환이 가능한 것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다시금 체험하기도 했었지만, X100VI의 크기가 생각보다 꽤 컸던 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역시 후지필름이 판매하는 렌즈 교환이 가능한 비슷한 스펙(4,020만 화소 센서, 바디 손떨림 방지 시스템 내장)의 미러리스 카메라인 XT-5와 비교했을 때 크기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았고, 그보다 아랫급인 XT-30보다는 확실히 더 큽니다. 저라면 정가가 30만 원 더 비싸고, 렌즈도 따로 구매해야 하더라도 XT-5의 다재다능함과 X100VI의 어떤 렌즈를 물리고 가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심플함 사이에서 고민을 할 거 같습니다. 저같이 고화소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2,600만 화소 센서에 바디 가격 110만 원으로 반값인 XT-30도 괜찮은 선택입니다. 이 두 기종 모두 X100VI보단 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비록 X100VI의 타깃층이 좁긴 하지만, 그만큼 X100VI는 후지필름의 뚝심이 느껴지는 그런 카메라입니다. 첫 제품이 출시되고 11년 만에 재조명이 되기까지 기존의 폼 팩터를 그대로 유지했고, 지금 같은 선풍적 인기를 끌면 다음 세대에서는 좀 더 대중적인 변경을 할 법도 하지만 그대로 유지하는 선에서 다양한 개선 사항이 이뤄졌습니다. 자신이 X100VI와 맞다고 느낀다면,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을 카메라인 것은 확실합니다.

정말 이 세상에는 다양한 이유로 가지고 싶은 카메라들이 많군요.


X100VI로 찍은 사진들

1/35s, F7.1, ISO 2000

아직 카메라가 익숙하지 않을 때 신형 미니 공개 행사를 취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역시 일을 하러 갈 때는 익숙한 장비가 최고라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도 카메라가 잘 따라줘서 괜찮은 사진들을 찍어 왔습니다.

1/240s, F2.5, ISO 125
1/54s, F6.4, ISO 125
1/38s, F8, ISO 125
1/34s, F8, ISO 250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속초를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전 주에 뒤늦게 눈이 온 덕에 알프스 만년설 같은 비주얼이 연출됩니다. 흔치 않은 광경이었죠. 거의 비슷한 환경에서 필름 시뮬레이션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만으로 상당히 다른 느낌을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1/34s, F2, ISO 640
1/34s, F2, ISO 640
1/34s, F5.6, ISO 2000

하루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4시간 정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박물관은 조명 환경 때문에 저조도 환경에서의 고감도 노이즈가 중요하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새로운 4,020만 화소 센서는 꿀리지 않는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1/70s, F7.1, ISO 500
1/42s, F2.8, ISO 250
1/34s, F9, ISO 1600
1/200s, F8, ISO 250

X100VI에는 디지털 텔레컨버터 기능이 들어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디지털 줌인데요, 1.4배(50mm), 그리고 2배(70mm)까지 내부적으로 줌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4,020만 화소의 고화소 센서 덕분에 이 디지털 텔레컨버터가 유용합니다. 50mm로 설정해도 2,000만 화소 정도 크기의 사진을 뽑을 수 있고, 70mm로 설정하면 1,000만 화소 정도로 웹 게시용으로는 쓸만한 크기의 사진이 나옵니다. 실제로 많은 사진들을 50mm로 찍었고, 센서와 렌즈의 궁합이 워낙 좋아서 화질의 저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70mm는 개인적인 기호로는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주 쓰진 않았지만, 충분히 괜찮은 사진을 뽑아줍니다. (세 번째 BMW i7의 사진이 70mm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1/35s, F5, ISO 5000 (라이트룸 AI 노이즈 제거 사용)
1/35s, F2.8, ISO 1250
1/18s, F4, ISO 1600

지인의 음악 스튜디오 프로필 촬영에 도움을 주러 갔을 때 X100VI를 살짝 챙겨갔습니다. 결론적으로, 메인 카메라로 써도 됐을 정도로 괜찮은 사진들을 많이 건졌습니다. 아무래도 프로필 촬영이다보니 이 사진들은 모두 RAW로 촬영했고, 촬영에 사용한 다른 카메라와의 색감 매칭을 위해 필름 시뮬레이션 적용 없이 라이트룸에서 보정했습니다.

1/34s, F3.6, ISO 320
1/75s, F3.2, ISO 125
1/45s, F2.8, ISO 125
1/34s, F2.8, ISO 2000

카메라 샘플 사진의 꽃(?)인 음식 사진이 빠질 수 없죠.

1/120s, F2.8, ISO 125
1/250s, F2.2, ISO 250
1/34s, F3.2, ISO 2000
1/1300s, F2, ISO 500
1/56s, F2, ISO 250

마침 리뷰 기간이 벚꽃 시즌과 겹쳐 밖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봄의 풍경을 담느라 바빴던 거 같습니다. X100VI의 렌즈는 최소 초점 거리도 꽤 가까운 편이고, 거기에 디지털 텔레컨버터까지 합쳐지면 꽤나 괜찮은 접사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1/200s, F2, ISO 250

그래도 귀여운 강아지 사진으로 마무리합니다.

About Author
이주형

백수가 되었지만, 백수가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에디터이자 팟캐스터. IT가 메인이지만 관심가는 게 너무 많아서 탈이 나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