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5년 동안 취미로 사진을 찍어 온 이주형입니다. “최고의 카메라는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카메라가 아무리 화질이 좋고, 연사력이 좋다 하더라도 지금 나에게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뜻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바디 자체의 성능을 약간 희생해도 휴대성이 좋은 카메라를 선호합니다. 여행을 떠나면 안 그래도 짐이 많은데, 여러 개의 렌즈가 들어간 카메라 가방을 따로 가지고 챙겨야 하는 것만큼 불편한 게 없거든요.
이게 제 메인 카메라가 소니의 RX1RII인 이유입니다. 어딘가로 여행을 가면 꼭 챙기는 카메라인데요. RX1RII는 a7 시리즈와 다르게 렌즈 교환도 불가능하고 콤팩트 카메라용 배터리를 써서 무조건 두 개는 챙겨가야 하지만, 대신 그 작은 크기에 35mm F2 자이쯔 렌즈와 a7RII에 들어간 4,200만 화소짜리 풀프레임 센서를 장착해서 작은 크기에 극강의 화질을 구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제서야 세 보니 2018년 여름에 중고로 영입해서 사용한 지 벌써 5년이 넘었네요.
제가 다시 a7 시리즈에 발을 들일 수 없었던 이유도 RX1RII에 익숙해진 탓이 컸습니다. 다들 크기가 너무 컸거든요. 특히 3세대 계열 바디부터는 더 큰 배터리와 더 좋은 손맛을 위해 그립을 두껍게 키우면서 더욱 묵직해졌습니다. 여행지에서 사진 찍는 것을 즐기는 저에게는 납득하기 힘든 크기였죠.
소니는 다행히도 이런 이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무시하지 않더군요. 2020년에는 a7M3를 기반으로 크기를 한껏 줄인 a7C를 출시하더니, 드디어 2023년에 a7CR이 출시되었거든요. 여기서 ‘R’이라는 접미사는 ‘Resolution(고해상도)’를 의미하며, 소니는 고해상도 센서를 탑재한 바디에 이 접미사를 붙여왔습니다. a7R도 그렇고, 제 메인 카메라인 RX1RII도 고해상도 센서가 탑재된 카메라임을 뜻합니다. 작으면서 고화소 풀프레임 센서가 들어간 카메라라니, 정말 제 꿈속에서 튀어나온 카메라 같았습니다.
저는 a7C도 고화소가 아니라는 이유로 써보지 않아서 이 폼 팩터는 a7CR로 처음 경험해 보는데, 이렇게 큰 센서를 이 정도로 작은 바디에 넣는 걸 대체 어떻게 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여기에 특히 작은 단렌즈를 물리면 거의 제 RX1RII 수준으로 작아집니다. 조금 더 두꺼울 뿐이죠. 물론 카메라가 워낙 작아서 손 크기에 따라 그립에 불리할 수도 있는데, 이를 위해 작은 확장 그립을 같이 줍니다. 저도 카메라 본체만 잡으면 손바닥이 좀 들려서 허전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확장 그립을 붙여주고 나니 제 손바닥 전체가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더군요. 하지만 없어도 크게 지장은 없었습니다.
a7CR의 장점은 특히 작은 렌즈를 물렸을 때 극대화됩니다. 초기에 a7 시리즈가 출시됐을 때 같이 출시한 FE 마운트 렌즈들의 크기 상당해서 작고 가벼운 바디들의 장점을 까먹는다는 불만이 많이 나왔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GM 시리즈를 비롯한 고급 렌즈들은 화질을 보장하기 위해 크게 나오는 편이라 a7CR에 물리면 가분수 같이 보이기는 하지만, a7 시리즈가 사용하는 FE 마운트가 등장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작은 렌즈들이 많이 나오면서 a7CR과 어울리는 렌즈들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RX1RII를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하면서 익숙해진 35mm 단렌즈를 주요 사용했는데, 정말 여행을 가거나 동네 마실을 나갔을 때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촬영하기에 최적의 셋업입니다. 노트북도 들어가지 않는 작은 슬링 백에도 부담 없이 넣고 다닐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작은 크기에서 오는 단점도 있기는 합니다. a7R5에 비해서 조작부가 협소해지다 보니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게 바로 최근 a7 바디들에 장착되어 많은 찬사를 받았던 조그 다이얼입니다. 저는 조그 다이얼이 있는 a7 바디를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이미 있었던 바디를 사용하다가 a7CR로 바꾼다면 아쉬운 부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전자 뷰파인더(EVF)의 배율이 0.7배로 0.9배인 a7R5보다 좀 작은 편입니다. 하지만 제 메인 카메라인 RX1RII도 배율이 비슷한 편이라 제 입장에서는 크게 문제가 없었습니다. SD 카드 슬롯이 하나만 있는 점도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는 분들께는 불안한 요소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 센서 얘기를 해보죠. a7C가 a7M3의 센서를 가져온 것처럼, a7CR은 현행 a7RV의 6,300만 화소 풀프레임 센서를 가져왔습니다. 처음에 a7RII에서 4,200만 화소 센서를 도입했을 때도 “RAW 보정하면 컴퓨터 속도가 못 받쳐주는 거 아니야?”라고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보다도 50% 더 큰 크기로 사진을 찍습니다. 다행히도 PC 프로세서들, 특히 애플 실리콘의 발전 속도가 더 빨랐던 적에 지금은 그런 걱정은 좀 덜합니다. 용량 걱정은 좀 들지만요. (고효율 압축 RAW 기준으로 한 장에 60~80MB대의 용량을 차지합니다.)
먼 옛날에 에디터H가 a7R3 리뷰에도 얘기했지만, 고화소 센서를 가지고 있으면 후보정에서 상당히 유리합니다. 혹여나 촬영 단계에서 원하는 구도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어느 정도 크롭을 통해 극복이 가능하거든요. 요즘은 물론 어도비 라이트룸을 비롯한 다양한 이미지 편집 앱들이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업스케일링 기능을 제공하긴 하지만, 원본 자체가 기본적으로 확보되어야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겠죠?
이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사진 몇 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선호하는 35mm 렌즈로 촬영한 사진을 라이트룸에서 크롭 해보았습니다. 이 정도로 크롭해도 2,400만 화소 정도의 사진이 나옵니다. a7M3의 센서가 2,400만 화소였음을 생각하면 고화소 센서의 실용성이 돋보입니다.
이 사진은 재밌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래 35mm 렌즈로 촬영한 사진인데, 나중에 보정하면서 뭔가 화각이 생각보다 좁아서 파일을 다시 확인해 보니 실수로 1.5배 크롭 모드로 촬영했다는 걸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본 사진 크기가 2,600만 화소였다는 후문…
물론 고화소 센서가 무조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겠죠. 우리가 요즘 사진을 찍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보통은 인터넷, 대부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용도가 대부분일 겁니다. 몇몇 분들은 블로그에도 올리시겠죠. 그런 용도라면 현재 a7CII의 3,300만 화소는 물론이고, 아이폰에서 나오는 1,200만 화소 사진으로도 충분합니다. (아이폰 15 시리즈는 몇몇 상황에서는 2,400만 화소로 사진을 촬영하지만요.) 인쇄를 하려고 해도 1,400만 화소 정도면 A3 용지 정도 크기의 300dpi(인치당 도트) 짜리 고화질 인쇄가 가능한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고화소의 메리트가 유효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휴대성을 위해 주로 단렌즈를 물리고 다니기 때문에, 사진 보정 과정에서 크롭이 차지하는 중요도가 높거든요. 마음껏 보정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4,200만 화소의 자유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소니의 최신 센서이니만큼 다이내믹 레인지도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사진에서의 다이내믹 레인지라는 것은, 한 장의 사진에 얼마만큼의 많은 정보를 담아낼 수 있는가를 의미합니다. 다이내믹 레인지가 좋다는 것은 혹여나 노출값을 잘못 선택해서 너무 어둡거나 밝게 찍었어도 보정을 통해 복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기도 하죠. 위의 샘플은 해가 저무는 시간대에 상당히 극단적인 대비로 찍힌 원본 RAW 파일을 라이트룸으로 보정해 본 사진입니다. 보정 전의 원본에서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나뭇가지나 잎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보정 단계에서 이 정도로 사진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사진을 찍을 당시에 저, 혹은 카메라의 실수로 인해 노출값을 잘못 잡아서 찰나의 순간을 제대로 잡지 못할 걱정을 많이 덜어줍니다. 보정에서 살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고화소 센서에서 아쉬운 부분은 고감도 노이즈가 좀 심해질 수 있다는 점인데, a7CR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생각보다 낮은 감도에서도 암부에서 노이즈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도 고화소 센서인 덕분에 어느 정도 참작을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웹에 올릴 만한 작은 크기로 사진을 줄이면 이러한 노이즈도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 라이트룸의 인공지능 기반 노이즈 감소 기능과 같이 요즘 노이즈를 보정 단계에서 잡아주는 기술이 많이 늘어나서 이게 크게 문제가 될 일이 많이 줄고 있습니다.
a7CR 자체의 바디 성능 또한 출중합니다. 최신 기종에 들어가는 인공지능 자동 초점 추적 기능을 그대로 탑재했습니다. 제가 워낙 옛날 바디만 써봐서 사람을 추적하는 정도의 기능만 익숙해져 있었는데, 이제는 동물은 물론이고 차와 비행기 같은 물체까지 알아서 인식한 다음, 추적할 수 있습니다. 초점 모드를 가운데로 두고 단축 버튼으로 해당 피사체를 추적해 가면서 빠른 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빠른 속도로 집을 돌아다니는 세 살배기 조카도 문제 없이 추적하고 다녔던 걸 보면 그 성능은 상당하다 할 수 있습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바디 내장 손떨림 방지도 흔들림의 걱정을 줄여줍니다. (RX1RII에는 없기도 하고요.)
전자식 셔터를 이용한 무음 셔터 기능도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특히 동물 사진을 찍을 때 유용한데, 동물을 놀라지 않게 하면서 여러 장의 사진을 연사로 찍을 수 있기 때문이죠. 전자식 셔터가 최고 셔터 속도가 더 빠르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전자식 1/8000초, 기계식 1/4000초) 다만 전자식 셔터는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 혹은 움직이면서 촬영하는 상황에서는 곧은 물체를 찍어도 옆으로 흘러내리는 듯한 젤리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기계식 셔터와 전자식 셔터를 바꿔가면서 사용했습니다.
바디가 작아지면서 배터리 크기도 작아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존 a7 기종들이 사용하는 NP-FZ100(일명 Z 배터리)를 그대로 탑재해서 배터리 시간도 오래가는 편입니다. 여분 배터리가 없어서 웬만한 하루 출사는 하나의 배터리로 버텨야 했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거기에 바디 자체에서 USB-C 충전을 지원해서 나가기 전에 빠른 충전을 할 수도 있습니다.
a7CR은 이렇게 탄탄한 기본기 덕분에 여행용 카메라로써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사진을 찍게 됩니다. 자연이나 도시 풍경의 사진을 찍을 때도 있고, 사람이나 동물 등 피사체를 찍을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상황에 a7CR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렌즈 교체가 가능하다는 점도 렌즈를 교체할 수 없는 카메라를 쓰는 입장에서는 새로운 장점으로 다가옵니다. 물론 제가 선호하는 화각대가 있지만, 상황에 따라 하다못해 다른 렌즈를 빌려서라도 쓸 수 있다는 건 안심으로 다가오니까요.
a7CR는 팔방미인입니다. 어떤 순간에 사용해도 맡은 바 사명을 적절히 해냅니다. 명절 때 가족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고, 우연찮게 차량을 시승할 기회에 있었을 때도 이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내와 데이트할 때도 챙겨나갔습니다. (이 리뷰에 정말 올리고 싶었는데 본인의 완강한 의사로 옆모습까지만 겨우 합의했습니다.) 고화소 센서 덕분에 모델 촬영을 하거나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기에도 유용할 것이라 믿습니다. 스튜디오 사진을 찍는 게 익숙하지 않은 편이라 실제로 찍어보지는 못 했지만요.
그렇다고 해서 사진에 관심이 있는 아무한테나 a7CR을 추천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딱 한 가지의 문제가 있거든요. 바로 379만 원이라는 가격입니다. 정말 이 카메라에 꽂힌 게 아니라면 소화하기 힘든 가격이죠. 화소 수가 반으로 줄어드는 것만 감수할 수 있다면 3,300만 화소에 a7CR의 바디 성능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110만 원이 더 저렴한 a7CII가 웬만하면 더 좋은 선택일 겁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전 이 카메라에 꽂혔는걸요. 정말 오랜만에 갖고 싶은 카메라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부터 돈을 모으면 언젠가는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참고: 본 리뷰를 위해 소니 코리아 측에서 카메라 본체와 렌즈를 대여해 주셨습니다.
소니 a7CR로 찍은 사진들
험난한 둑 옆길을 건너고 있는 길냥이의 모습입니다. 105mm로 촬영한 다음에 고화소 센서의 이점을 활용해 크롭으로 더 땡겼습니다.
친구네 9살 강아지의 모습입니다. 덩치는 크지만 하도 얌전해서 이름이 얌곰입니다. 얌전한 곰이라는 뜻이죠.
얌곰 주인인 친구입니다.
풀프레임 센서의 장점은 얕은 심도에 있습니다. 여기에 초점이 제대로 안 맞으면 어지간해서는 보정으로 해결이 어려운데, a7CR의 눈 AF 기능이 정확히 초점을 잡아낸 모습입니다.
리뷰를 위해 카메라를 받았을 시점에는 이미 단풍이 지기 시작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을 최대한 담아보려고 애쓴 흔적입니다.
위의 사진 몇 장에 쓰인 자이스 록시아 2/35 렌즈는 35mm에 최대 개방 조리개값이 F2인 수동 초점 렌즈입니다. 이미 35mm 렌즈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지인에게서 영업당해(?) 구매한 렌즈입니다. 설계가 라이카 M 필름 카메라 시절의 설계를 디지털 시대에 맞게 개량한 렌즈지만, 수동으로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과 더불어 나오는 결과물도 레트로한 맛이 있는 렌즈입니다.
샘플 사진에 음식 사진이 빠질 순 없죠? 위의 a7CR 본체 사진에도 물린 채로 등장하는 FE 35mm F2.8 ZA 렌즈는 FE 마운트의 초기 때부터 있던 렌즈로, 제가 a7을 사용하던 시절 가장 많이 쓰던 렌즈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a7을 쓰진 않지만 처분하지 않고 아직도 가지고 있다가 이번에 a7CR을 리뷰할 때도 자주 썼습니다. 다만 이 렌즈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접사 능력이 거의 없다시피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음식 사진도 꽤 멀리서 찍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고화소의 장점이 또 드러납니다. 크롭하면 되니까요.
고화소의 센서와 상황에 따라 알맞은 렌즈를 선택할 수 있는 렌즈교환형 카메라로서의 장점은 a7CR을 다양한 용도에서 더 높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리스의 시계를 촬영한 두 번째 사진은 매크로 렌즈를 활용해 크롭 없이 촬영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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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백수가 되었지만, 백수가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에디터이자 팟캐스터. IT가 메인이지만 관심가는 게 너무 많아서 탈이 나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