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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카메라를 쓰는 이유, A7R3

안녕, 여러분 자꾸 지르기만 하고 리뷰는 미뤄두던 게으름뱅이 에디터H다. 이상하게 그간 카메라 리뷰에 인색(?)했다. 사실은 가장 빈번하게 쓰는 제품인데 말이다....
안녕, 여러분 자꾸 지르기만 하고 리뷰는 미뤄두던 게으름뱅이 에디터H다. 이상하게 그간 카메라…

2018. 07. 09

안녕, 여러분 자꾸 지르기만 하고 리뷰는 미뤄두던 게으름뱅이 에디터H다. 이상하게 그간 카메라 리뷰에 인색(?)했다. 사실은 가장 빈번하게 쓰는 제품인데 말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촬영을 한다. 어떤 날엔 사진만 찍기도 하고, 어떤 날엔 영상까지 찍는다. 카메라를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촬영이 즐겁다는 뜻은 아니다. 솜씨가 서툰 만큼 때로는 셔터를 누르는 일이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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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카메라는 A7M3]

그래서 더더욱 ‘좋은 카메라’에 욕심을 내게 된다. 쉴 틈 없이 반복되는 사진 작업에 덜 시달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같은 노력을 들이더라도 더 빠르고, 실수 없이, 좋은 사진을 건지고 싶다. 원래 실력이 부족할 땐 장비로 극복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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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 음흉한 속내를 눈치채셨을까? 그래. 맞다. 주제넘는 오버스펙의 카메라를 쓰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구구절절한 변명이었다. 오늘 리뷰의 주인공은 소니 A7R3. 작년 12월에 무려 389만 원 주고 구입한 후끈한 미러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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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프레임 미러리스의 시장의 문을 ‘BAAM!’하고 열어젖힌 소니의 A7시리즈 중에서도 ‘R’이 붙는 모델은 고해상도를 담당한다. A7R3는 무려 4,240만 화소. 타사의 플래그십 모델과 비교했을 때도 압도적인 해상도다. 미리 언급해두고 싶은 것은 “고해상도=개짱”은 아니라는 것. 웹에서 이미지를 소비하려 한다면, 2,000만 화소 대의 카메라로도 충분하다. 인물 사진을 즐겨 찍는다면, 광고 촬영이 아닌 다음에야 4,240만 화소의 픽셀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극강의 디테일 묘사가 이 카메라의 장점인데, 팔자 주름 사이에 껴있는 파운데이션 입자를 생생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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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7R3로 찍은 컷, 커피 거품이 손에 잡힐 것 같다]

이렇게 고화소를 극딜한 다음에 말하려니 쑥스럽지만, 나는 고해상도 카메라를 좋아한다. A7R3를 사기 전에 이미 A7R 첫 번째 모델을 쓰고 있었다. A7R 역시 4,000만 화소가 넘는 고해상도 모델이었다. 지독하게 느려터진 카메라였지만, 사진 결과물은 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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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을 아래처럼 크롭해서 쓰기도 한다]

처음 A7R을 구입할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더 지독한 똥손이었다. 100장을 찍어도 10장을 채 건지지 못하던 나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궁극의 보정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4,240만 화소 RAW 파일에서 펼쳐지는 후보정의 세계는 놀랍고도 은혜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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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도 좋지만 보정으로 분위기를 만지곤 한다]

집 나간 노출도 돌려놓을 수 있었고, 구도가 이상할 땐 사진의 일부만 남기는 파격적인 크롭도 불사했다. 그래도 사진은 여전히 선명했다. 마구마구 잘라내고, 마구마구 보정했다. 사람들이 “디에디트는 사진을 왜 이렇게 잘 찍냐”고 물어봤다. 눈을 제대로 마주칠 수 없어서 “흐흐흐…”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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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정과 편집을 거쳐 완전 다른 분위기로 재활용]

얼마 전에도 디에디트 웹사이트에 업로드할 마땅한 커버 이미지가 없어 고민하다가, 사진을 어마어마하게 크롭해서 재창조했다. 완전 다른 사진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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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가로 사진을 세로로 잘라 편집해봤다]

편집의 여지가 많아진다는 건, 상상력을 자극한다. 자유롭다. 속된 말로 뽕에 취한다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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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찍은 사진을 독사진으로 크롭해도 선명하다]

4천만 화소 대의 고화소 뽕에 한번 번 빠지면 벗어나기가 힘들다. 필수는 아니지만, 좋다. 특히 요즘처럼 출판을 염두에 두고 있을 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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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계적인 성능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보자. A7R을 쓰다 A7R3로 넘어갔기 때문에 어떤 것들이 좋아졌는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속도가 빨라졌다. 굼뜨던 AF 속도가 새로 태어난 듯 경쾌해졌다. AF 포인트 역시 넓고 정밀해졌다. 연속 촬영 성능도 향상됐고, 사람의 눈을 인식하는 EYE AF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정확하다. 저조도 환경에서의 결과나 흔들림 방지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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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슬롯이 2개라고!]

가장 좋은 건 배터리 사용 시간의 비약적인 발전이다. A7R과 A6500을 사용할 때는 항상 배터리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전원을 켠 순간부터 카운트다운하듯 줄어드는 배터리는 전문가들이 A7 시리즈를 선택하기 힘들게 만드는 걸림돌이었다. A7R3에 적용된 새로운 대용량 배터리 NP-FZ100은 그야말로 축복. 이제야 온전히 촬영해 집중할 수 있을 만큼의 배터리 시간이 보장된다. 기존 배터리보다 2배 넘게 쓸 수 있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업그레이드되는 모습은 반갑지만, 이전 모델을 구입한 사용자들 입장에서는 ‘미완성 바디’였다는 억울함을 지울 수 없겠다.

듀얼 SD 슬롯과 외부 배터리 연결이 가능한 USB C 포트 등 사용 편의성 개선도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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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잘 나옵니다]

6개월을 사용해본 뒤 이 카메라에 대해 내린 결론은 간단하다. 이 정도 무게와 크기의 카메라 중, 이 정도 사진 결과물을 보여주는 바디는 없다는 것이다. DSLR에 비해 휴대성에서 분명한 경쟁력을 보이면서도, 기계적인 성능이나 화질에서도 빠지는 부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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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7R3로 촬영한 사진]

사진의 선예도나 칼같은 포커스 능력 역시 흔들린 사진을 질색하는 내 취향에 딱 맞다. 색감이나 사진 특유의 느낌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완성도 높은 사진용 카메라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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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용 바디로서도 빠지는 바가 없었다. 현재 A7M3를 영상용으로 쓰면서, A7R3도 영상에 함께 투입(?)시키고 있다. 포르투에서 촬영한 ‘어차피 일할 거라면’의 상당수를 이 두 카메라로 촬영했으니 참고하시길. 두 모델 모두 4K 촬영과 S-log를 지원하기 때문에 후작업이 용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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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점수를 주며 이제 불만을 털어놓을 시간이다. ‘소빠’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소니는 원래 100% 만족도 같은 건 안기지 않는다. 꼭 약간의 섭섭함을 남겨놓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다음 제품을 기다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A7R3에서 가장 큰 불만은 지독하게 복잡한 메뉴 인터페이스다. 나는 이미 2년 넘게 A7 시리즈를 쓰고 있다. 메뉴 창은 다 비슷하다. 그런데도 아직 원하는 메뉴를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맨다. 2년 넘게 같은 집에 사는데, 그 집에서 길을 잃는 셈이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인터페이스가 사용자를 전혀 배려하지 못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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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잡는 속도는 아주 빠르다]

하다못해 터치 조작이라도 가능하면 슥슥 넘겨보며 찾아 볼 텐데,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소니는 왜 이리 터치에 인색한 것일까? 터치 조작이 가능한 기능은 단 하나, 초점 컨트롤이다. 촬영하다 보면 이 기능은 오히려 혼란을 준다. 썩 빠르지도 않고 말이다. 다음 모델에는 제발 완벽한 터치 인터페이스가 들어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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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7R3, 서울에선 주로 이런 걸 촬영한다]

자, 이제 칭찬과 볼멘소리를 다 했다. 카메라 리뷰의 꽃인 사진 샘플을 볼 시간이다.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엔 주로 제품 사진만 찍다보니 이 카메라의 진면목을 볼 일이 없었다.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있는 아이폰이나 헤드폰을 찍으면서 빠른 연사 성능을 실감할 리도 만무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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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7R3, 좋아하던 집 앞 공원의 풍경]

낯선 곳에서 이국적인 풍경을 담으니 4,240만 화소로 순식간에 포착한 찰나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찬란한지 알겠더라. 특히, 이번 포르투 촬영에 함께한 감독의 도움으로 좋은 사진을 많이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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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7R3, 가장 좋아하는 컷]

카메라의 성능은 중요하다. 하지만 같은 뷰파인더를 통해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어떤 감성을 담아내려는지, 작가의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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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위해 포르투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들춰보며, 그 때의 기분을 다시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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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곳곳에 있던 벽화의 색감, 디테일, 질감까지 모든 게 선명하게 담겨있다. 이번 기회에 알았다. 좋은 카메라를 쓰는 이유는 명료하다. 내가 담고 싶은 순간을 더 선명하고, 빠르게, 의도대로 기록하기 위해서다. 결과물을 더 수월하게 담아내기 위해 더 좋은 카메라와 렌즈에 눈이 가는 것이다. 장비가 다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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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의 조선희 작가라 불리는 에디터M]

A7R3의 반 년 사용기는 여기까지. 다음 리뷰는 강력한 팀킬 바디 A7M3. 몇 개월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다려주시길!

Thanks to, Cho hyung sub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